김승국
1. 절대전쟁인가 전면전쟁인가
절대전쟁은 스피노자(Spinoza) 철학의 의미에서 영원이며, 알뛰세(Althusser) 철학의 의미에서 개념이다. 들뢰즈(Deleuze)와 가따리(Gattari)는 국가에 대한 전쟁기계의 외재성(外在性)을 인정한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가, 핵시대에도 타당한지 어떤지가 논의되어 왔다. 이에 부정적인 논자는, 핵전쟁에서 정치적 목표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Nonsense)하다고 설명한다. 미국 사람들은 ‘한정(限定) 핵전쟁이 가능하다’는 논자를 ‘신(新)클라우제비츠파(派)’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고르바초프(Gorbachev)는 클라우제비츠 부정파(否定派)의 기수이다(市田良彦, 1989, 101).
2. 감시 장치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중정찰(주1)을 벤담(Bentham) ・푸코(Michel Foucault)의 ‘파놉티콘(Panopticon)’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파놉티콘’의 대표적인 공간은 감옥이다. 구치소에서는 저 유명한 벤담의 일망 감시시설을 본뜬 원형 칸막이가 운동공간이었다. 이 시설물은 수인 각자가 보이기만 할 뿐 남을 볼 수는 없게 되어 있다. 각 칸막이마다 문이 달려 있어서 수인을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으면 그는 그냥 부채꼴의 시멘트 담 속에 혼자 갇힌다(홍성욱, 2001, 69).
감시자는 계단을 통하여 위로 올라가 사방의 칸막이를 위에서 동시에 관찰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감시자가 우리를 칸막이에 넣어두고 정말로 충실히 수인들을 관찰하기 위해서 탑의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돌아다니거나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어딘가 보이지 않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동료와 잡담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고개를 쭉 빼거나 돌려서 어느 칸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살필 수가 있다. 시설은 참으로 상징적이었다. 연구실의 쥐새끼들처럼 우리들의 맴도는 움직임은 적나라하다(황석영, 2000, 312).
파놉티콘으로 상징되는 규율 권력이 ‘모세관과 같은 권력(capillary power)’처럼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우리를 통제한다는 푸코의 분석은 철학자나 역사학자의 범주를 넘어서 지식인 일반과 대중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푸코의 영향은 그가 파놉티콘을 벤담이라는 개인에 국한된 에피소드로 보지 않고 이를 근대 규율 권력의 미시구조를 잘 드러내는 전형적인 사례로 독창적으로 해석했다는 데에 주로 기인했다(홍성욱, 2001, 71).
전자기기를 통한 직접 감시가 1960년대 말엽부터 확산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67년 포토스캔(Photoscan)사에 의해 발매되기 시작한 폐쇄 텔레비전(CCTV)이었다. 이것은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람들의 행동을 중앙 통제실에서 동시에 관찰함으로써 전자감시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인공위성은 감시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바꾸었으며, 1970년대부터 미국을 비롯한 5개 선진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에쉘론(Echelon) 시스템은 위성 시스템과 결합해서 전 세계의 비군사용 통신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할 정도로 강력한 정보수집과 독해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상용화된 인터넷은 사이버 공간을 통한 감시(사이버 감시, cybersurveillance)를 구현했다.
미국은, 우주에 띄운 전자첩보 위성 ・상업용 위성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방수(傍受)하기 위해 전 세계 6곳에 대형기지(남부독일의 바드 ・에이브링 기지 / 일본의 미자와 기지 / 호주의 파인 ・캠프 기지 / 영국의 멘위즈 ・힐 기지 / 미국 워싱턴 주의 야키마 기지 / 미국 콜로라도 주의 델버 기지)를 두고 있다. 이 밖에도 영국, 키프로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기지 등이 네트워크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각 기지는 공동으로 매시간 수백만에 이르는 메시지를 방수한다. 컴퓨터 간의 통신 ・이메일 ・팩스 ・전화 및 기타 의사소통 수단이 방수의 대상이다. 방수된 통신내용을 ‘사서(辭書)’라고 불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집어넣어 해석한다. 이 ‘사서’ 프로그램에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이 관심을 갖고 검토대상으로 삼는 (사람 ・단체 ・조직의) 이름 ・번호, 건명(件名) 등이 대량 등록되어 있다. 이 시스템 전체의 코드명(code name) 자체가 ‘에쉘론’이다.
위의 6개 에쉘론 기지 중에서 북한과 관련이 있는 곳은 일본의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미자와(三澤) 기지이다. 미자와 기지에 있는 ‘코끼리 우리(elephant cage)’가 북한을 감시하는 파놉티콘의 본부이다.
냉전시대에 주일미군과 자위대가 합동으로 소련 ・북한 ・중국에 대한 군사정보를 수집해 온 미자와 기지는 냉전시대의 유물이지만,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 ・핵무기개발 여부를 감시하는 새로운 파놉티콘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미자와 기지가 북한과 가까운 거리에 있을 뿐 아니라, 주일미군 ・일본 항공자위대가 합동 운영하는 정찰 비행대가 있기 때문이다.
1) 움직이는 파놉티콘
북한의 미사일을 감시하는 미군 정찰기(움직이는 파놉티콘)의 움직임에 대하여 아래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石川潤一, 2004, 64-77).
* 2003년 3월, 공중전 일보직전
2003년 3월 2일, 동해 공해상을 비행 중이던 미군정찰기 RC-135S 코브라 볼을 추적하던 북한의 미그 29 ・미그 23기 4대가 15미터까지 접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교전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위험한 순간이었다. 미국은 2003년 2월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에 여러 종류의 전자정찰기 ・관측기를 배치한 채 북한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실험을 감시하는 태세를 갖췄다. 북한 미그기의 추적을 받은 RC-135S도 그중의 한 대로서 연일 북한 영공 근처에까지 접근하여 북한을 괴롭힌다.(주2)
*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
가데나 기지는, 미국 네브래스카 州 오파트 공군기지에 사령부를 둔 55WG(제55항공단)의 OL(operating location, 전방 전개기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82RS(제82 정찰비행대)가 편성되어 있다. 82RS에는 통상 한 대의 RC-135V / W가 오파트로부터 파견되어 있으며, 한반도 등에서[북한의 상대로] ELINT(전자정보) 수집을 한다.
* 오산 기지
55WG와 더불어 전략정찰을 하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州 빌 공군기지의 9RW(제9정찰항공단)로서 한국의 오산 기지에 4대의 U-2S 드라곤 레디를 파견하고 있다[미-일 군사동맹의 북한 감시 체계의 연장선상에 오산 기지가 존재함을 미루어 볼 때, 한-미-일 3각 군사 공동체가 북한에 대한 파놉티콘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 해군의 감시
미 해군의 경우, 워싱턴 州 위드비 아일랜드 항공기지에서 파견된 EP-3E 시리즈Ⅱ가 가데나 기지에 상주한다. EP-3E 시리즈Ⅱ를 보완하는 형태로, COMINT(통신 정보) 수집을 하는 P-3C VPU 아이앤클라트도 가데나 기지에 배치되어 있다. 또 COMINT 수집기로서 주한미군이 RC-12H 캅셀잭을 운용하고 있다.
* 육군의 감시
육군이 운용하는 IMINT 정찰기는 DHC-7 터보 프로펠러 여객기를 기반으로 한 RC-7B, ARL-M(低高度空中偵察機-다기능)으로서, SAR / MIT(합성 開口 레이더 / 이동목표 지시 시스템) ・FLIR(적외선 전방감시 장치) ・적외선 line scanner, 주간 화상 시스템 등을 탑재하고 있다. RC-7B는 COMINT 정찰기 ・RC-12H와 더불어 평택의 캠프 험프리즈에 배치되어 있다.
* 북한의 미사일을 감시하는 비행기 ‘코브라 볼’
2003년 3월 2일 북한 MIG기와 충돌할 뻔했던 미군정찰기 RC-135S 코브라 볼은 어떤 임무를 지니고 있을까? ‘코브라 볼’의 기체 사진을 보면 오른쪽 주익(主翼) 위쪽의 새까맣게 도장되어 있는 부분이 맨 처음 눈에 띈다. 코브라 볼은 동체 앞부분의 오른쪽에 커다란 관측창(觀測窓)을 설치한 채, 몇 종류의 센서로 낙하(落下)하는 미사일을 탐지-추적한다. 새까맣게 도색한 주익(主翼)은 태양광이 주익에 반사하여 광학(光學) 센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방현(防眩)조치이다.
냉전 종료 이후 코브라 볼의 임무가 줄어드는 듯하더니 전술 ・전역(戰域) 미사일의 확산 때문에 더욱 바빠졌다. 1993년 북한이 동해를 향해 ‘노동 1’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를 계기로 코브라 볼이 가데다 기지 ・미자와 기지에 빈번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3. ‘Ge-stell’과 총력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정신상황을 표현한 사람 중의 하나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Ge-stell’이라는 말로 사태를 나타낸다. ‘Ge-stell’이란 ‘버팀목’을 뜻하는 독일어이다. 하이데거는 이 말의 어간 ‘stellen’에서 ‘세운다=stellen’과 관련시켜 세계 속의 사물을 눈앞에 가져오는 작용을 나타내고자 한다. 그는 이 말을 근대 기술(techne)의 본질로 사용한다(市田良彦, 1989, 120).
‘테크네(techne)’의 본질은 탈(脫)은폐이다. 다시 말해, 존재자의 감추어진 모습을 ‘앞으로 드러내 놓는’ 일이다. 요컨대 ‘기술’이라는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의 ‘테크네(techne)’는 존재자를 기능적 부품으로 가공 ・환원하는 수단이 아니라, 탈은폐의 방식이다(제프 콜린스,2004, 64).
인간은 기술을 이용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기술에 대하여 조정되고 배열된다. 인간이 기술(technology)의 부름에 응하여 우왕좌왕한다. 이 주체의 무력함이 확실히 나타난 때가 제1차 대전이었다.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에른스트 융거(Ernst Jünger)는, 현대를 표현하는 표상(表象)으로 ‘노동자’를 채택하고 더 나아가 ‘총동원’에 관하여 말한다. 즉 사람들의 인생은 항상 (노동자처럼) 징발된다는 것이다. 자율화하는 기술(technology)이 사람들을 징용하고 배열한다. “그 속에서 인간이 새로운 공동성과 연대의 ‘기계화된 삶(生) 공동체=Man-Machine System)’의 구체적인 담당자를 민족으로 상정한다.”고 강조하는 융거는, 파시즘의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市田良彦, 1989, 121).
융거는 그의 저서 {노동자}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현상을 전쟁에서뿐 아니라 근대적 삶의 모든 국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산업 현장 역시 그러한 전쟁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융거는 이 책에서 제1차 세계대전은 그 이전의 전쟁과 비교할 경우 분명히 국민과 국가 자원 전체를 총동원한 전쟁[총력전]이라는 면에서 신기원을 열었지만 용병들이 주 전력이었던 구식의 전쟁 양상을 완전히 탈피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다가올 새로운 현대전에서 국민과 국가자원 전체의 철저한 동원이 요구된다. 다가올 시대에는 국가의 자원뿐 아니라 전 국민을 총동원하는 전쟁[총력전]이 영구적인 상태가 된다. 전쟁과 평화의 차이는 사라지는 한편 군인과 시민간의 낡은 분리는 폐기된다. 모든 사람이 전사로 된다. 이러한 전사
적인 인간을 융거는 노동자라고 부른다. 융거가 말하는 진정한 노동자는 오히려 전쟁터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는 영웅적인 전사와 유사하다(박찬국, 2001, 127-128).
박정희 군사파시즘이나 부시의 전쟁내각은 ‘전사와 같은 노동자’를 시민의 이름으로 요구하면서 총력전을 지향했다. 이런 측면에서 나치즘과 유사하다.
4. 그람시의 기동전 ・진지전
그람시(Antonio Gramsci)는 그의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내적 모순과 계속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부르주아의 지배가 유지되는 현상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는 강제력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보편화시키고 대중의 동의를 획득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며, 이러한 부르주아의 헤게모니가 계속되는 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혁명전략은 어떠한 것인가?
그람시는 이것을 진지전과 기동전의 구분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원래 기동전과 진지전의 개념은 1차 대전 중의 군사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기동전이 적의 기지를 향하여 전선을 형성하고 파상공격(Teilaktionen)을 하는 반면, 진지전은 참호와 진지를 구축하고 산업체계와 사회조직의 지원을 받아 적의 진지와 참호를 격파해 나가는 전략이다. 이 군사전략에 의하면 산업화되고 발달된 선진자본주의 국가와의 전쟁에서 기동전은 그들의 외피만을 파괴할 수 있을 뿐, 참호체계로서 시민사회는 분쇄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동전은 전술적인 것으로만 고려되어야 하고 진지전이 올바른 전략이라고 본다. 그람시는 이러한 개념을 정치학의 영역에 도입, 서구사회의 혁명전략에 사용하였다.
그람시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테제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사회 구성체 내에서 정치적으로 지배계급이 되기 전에는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구사회의 혁명전략인 진지전 전략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의 기관들인 학교, 출판계, 대중매체, 노동조합 등을 차례로 정복해 나가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통한 부르주아의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이데올로기 투쟁과정이고, 부르주아의 헤게모니를 분쇄하고 노동계급의 헤게모니에 의한 새로운 역사적 블록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람시는 이렇게 시민사회의 정복과 정치적, 문화적 지도력을 장악하는 진지전을 강조하면서, 진지전은 장기간의 인내와 창조성을 요구하는 과정이지만 한 번 승리하면 결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람시는 우선 사회주의의 건설은 자본주의의 국가권력을 장악한 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체제 내에서 대중의 사고의 지적, 도덕적 개혁을 통해 시작되고, 권력 장악 후에도 계속적인 교육과 도덕적 쇄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이신호, 1990, 37-42).
위의 문장을 평화운동 쪽으로 끌어들여 각색하면 다음과 같다; “발달된 선진자본주의 국가(미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와의 평화를 위한 전쟁(투쟁)에서 기동전은 그들의 외피만을 파괴할 수 있을 뿐, 참호체계로서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의) 시민사회는 분쇄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동전은 전술적인 것으로만 고려되어야 하고 진지전이 올바른 전략이라고 본다. 이것이 세계 평화를 위한 혁명의 전략이다. 평화애호 계급이 자본주의 사회 구성체 내에서 정치적으로 지배계급이 되기 전에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문화적, 이데올로기적인 진지를 여기저기에 만들어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엮어내는 진지전 전략이 필요하다. 진지전 전략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 기관인 학교, 교회, 출판계, 대중매체, 노동조합 등에 차례로 진입해 나가면서 평화옹호 세력의 이데올로기 확산을 통한 부르주아의 (전쟁 지향적)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이데올로기 투쟁과정이다. 이와 동시에 부르주아의 (전쟁) 헤게모니를 분쇄하고 평화옹호 세력의 헤게모니에 의한 새로운 역사적 블록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평화운동의 진지전을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 전쟁 노동자의 기갑화(機甲化)된 신체
근대전을 지배하는 것은 속도이다. 육군병사는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어 단련된 체력을 무기로 싸운다. 여기에서 ‘몸과 전쟁’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신체의 기계화, ‘변신(變身)’에로의 원망(願望)은 신체에 대한 미래파적인 몽상이 아니다. 오히려 거대해진 무기와 군대 시스템의 광대한 기갑화(機甲化) 속에 흡수되어 버린 신체를 다시금 개별적인 힘으로 되찾는, 이른바 중세적인 기사(騎士), 미적(美的)인 전사(戰士)의 재현을 지향하는 몽상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고풍(古風)스러운 몽상이다. 하지만 탈근대적인(post-modern)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주3) ‘탈근대적인 신체의 의고주의(擬古主義, archaism)’에 따라 몸과 전쟁에
관한 논의를 전개해야 할 것 같다.
탈근대의 최첨단 무기가 횡행하는 현대전(걸프전과 이라크전이 대표적인 사례)에서 거꾸로 자신의 신체의 비참한 한계를 느낀다. 최첨단 전차로 무장한 이라크 주둔 미군이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무슬림 게릴라들에 둘러싸여 신체의 비참한 한계를 느낀다. 신체가 거꾸로 보병을 무위(無爲) 속으로 틀어박히게 하여 그들을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게 만든다. 돈벌이를 위해 이라크전에 참전한 하층계급의 미군 병사들은 미국 자본주의가 벌이는 이라크 전쟁의 하수인으로서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 즉 전쟁 노동자이다. 이들의 비참한 신체와 이라크 전쟁을 대비시켜 고찰할 필요가 있다.
6. 전쟁 노동자 ‘김선일’
2004년 6월 22일 이라크의 무슬림 게릴라에 의해 참수된 (가나무역의 사원) 김선일 씨는 ‘전쟁 노동자(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이다.
김 씨는 미군을 도와주는 군납업체인 가나무역의 근로자였으므로, 이라크 저항세력이 보기에 미군의 동조자이다. 이 점 때문에 납치의 대상이 된 것이다. 김 씨는 이라크의 최전선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전쟁 노동자(주4)이므로, 노동집약적인 전투를 벌이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밥’이 되었다. 김 씨의 신체가 미군 측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납치의 대상이 된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김 씨는 돈(밥)벌이 하러간 일반 노동자의 성격도 지닌다. 예전에 중동으로 돈벌이 간 노동자와 달리 전쟁터에서 돈을 벌려고 했고, 돈 버는 행위가 미국 측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이라크 저항세력은 김 씨의 행위를 친미행동으
로 간주함) 납치자 명단에 올랐다(김 씨가 이라크 주둔 미군 부대에 납품하고 돌아오던 길에 납치된 경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음).
어찌 되었든 돈벌이에 나선 가난한 전쟁 노동자 김선일 씨가 거대한 전쟁체계의 희생양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일반 산업장에서 근무하는 일반 노동자의 죽음’보다 더욱 처절한 ‘구조적인 사망’이다.
가나무역의 원청업체로 알려진 AAFES(The Army and Air Force Exchange Service: 미국 육 ・공군 복지기관)는 ‘신종 죽음의 상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민간 군사(戰士) 기업(PMC)의 일종이다. 이 회사의 이사회 중 대다수가 미군 현역장성과 정부 고위직 인사로 구성돼있으며, 직원 중 1,000명이 현역 장병이다. AAFES의 이사회 의장은 미군 중장인 찰스 S. 메헌 Jr.이며 다른 현역 장성 외에도 미 육군성 존 맥클로린 부차관보, 미 공군성 켈리 F. 크레이븐 부차관보 등이 포함돼 있다. 또 AAFES 소속 직원 47,323명 가운데 1,000명 가까운 1.9%는 현역 미군 장병이다.
AAFES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미군 서비스 업체’로서 흔히 말하는 군수업체이다. AAFES는 미국의 군 ・산 복합체(軍産複合體, military industrial complex)에 속하는 PMC 계열의 관변회사로서 군수자본의 담지자이다. AAFES는 이라크를 종횡무진하는 미국계 전쟁자본의 한 지파이고, 이 지파의 지파인 가나 무역에 김 씨가 고용되었으므로, 김 씨는 전쟁 자본의 희생자이다.
김 씨는 PMC라는 전쟁 자본가에 고용된 전쟁 노동자이므로 형식상 전쟁을 에워싼 노사관계가 형성되지만, 전쟁터에서 죽고 사는 문제를 놓고 계약하므로 생명을 담보로 한 노사관계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다만 일반 노동자처럼 생산현장에서 일하지 않으므로, 전쟁 노동자로서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 이 점에서 전쟁 노동자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면서 김 씨의 사망에 대한 관점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즉 전쟁 자본의 희생자인 김 씨를 자본과 노동의 관계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주5)
7. 몸과 전쟁: 신체를 넘어선 전쟁
김선일 씨의 몸은 전쟁이라는 구조적 폭력의 희생양이다. 이라크 전쟁은, 인간의 신체를 추월한 전쟁의 비인간성을 드러낸다. 전차와 장갑한 기갑부대가 인간의 신체를 초월한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 속에 있었던 옛날의 전쟁은 인류를 절멸할 정도가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인간적이었다.
그러나 핵시대의 전쟁양식 ・정보전쟁 양식은 인간의 신체를 초월한 전쟁(인간의 신체는 전쟁의 도구나 객체일 뿐 인간이 전쟁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정보기기나 핵무기가 주체이다)이므로 비(非)인간적 ・비인류적 ・비인륜적이다.
8. 국민 전체가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로 된다
전쟁터의 기계화는 국민군(국민의 군대)의 형성에 의해 진행되어 온 전투원-비전투원의 구별을 더욱 미묘하게 만든다. 전쟁터가 기계화되는 현대전에서, 국민군의 위상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걸프전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국민군 병사)이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C4I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컴퓨터 엔지니어(비전투원)인지 전투원인지를 구별하기 어렵다. 한편 이라크전의 피해를 받은 사람들 대다수가 이라크 국민이므로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국가 전체가 기갑화 ・전차화(戰車化)하므로, 전투원 ・비전투원을 불문하고 국민 전체가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한다.
케인즈주의적인 조직 자본주의(organized capitalism) 아래의 국가 총동원형-국민 총징용형의 전쟁양식(걸프전 이전의 전쟁양식)에서, 유연 생산방식(도요타 생산방식)이나 탈조직 자본주의(disorganized capitalism) 아래의 전자전쟁 양식으로 전환되어 가는 것이 현대전의 특징이다. 이러한 현대전 아래에서 여전히 국민을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로 삼아 동원하는 게 문제이다. 이때의 국민개념 ・국민군의 의미를 재조명해야 한다.(2004.12.9)
--------
[참고자료]
* 박찬국 {하데거와 나치즘}(서울, 문예출판사, 2001).
* 이신호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 관한 연구」(공주사범대 석사논문, 1990).
* 제프 콜린스 지음, 이경현 옮김 {하이데거와 나치}(서울, 이제이북스, 2004).
* 황석영 {오래된 정원 (상)}(서울, 창작과 비평사, 2000).
* 홍성욱 「벤담의 파놉티콘에서 전자 시놉티콘까지」 {한국과학사학회지} 제23권 제1호(2001).
* Duncan Campbell 「Major American base forced to close in spy satellite controversy」<{世界}(2001년 8월호, 164~171쪽)에 일본어로 번역됨>.
* 市田良彦 {戰爭}(東京, 新曜社, 1989).
* 石川潤一 「北朝鮮の彈道ミサイルを監視する米軍偵察機」 {軍事硏究)(2004년 4월호).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304~320쪽을 참조하세요.
==============
<註>
(주1) 북한은, 미국이 2004년 9월 중 각종 전략 및 전술 정찰기를 동원해 180여 차례에 걸쳐 대북(對北) 공중정찰을 했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군사소식통을 인용, 대북 공중정찰에 이용된 항공기는 U-2고공정찰기를 비롯하여, RC-135 정찰기, E-3 공중 조기경보 통제기, EP-3 전자정찰기 등이라고 주장했다. 중앙통신은 “9월 13일에는 RC-135 정찰기와 RC-12, RC-7B 전술 정찰기 등 10대가 우리의 종심 지역과 중요 대상물들에 대한 공중정탐 행위를 벌였다.”고 덧붙였다. 중앙통신은 “최근 미제가 남조선 지역에 최신 살인장비들을 대량 끌어들이고 남조선강점 미제 침략군 무력의 한강 이남 재배치와 맞물려 조선반도에서 새 전쟁을 도발하려는 불순한 목적 밑에 공화국에 대한 기습 선제타격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연합뉴스}(2004.10.1)>
(주2) ‘미군의 위협적인 정찰비행에 깜짝 놀란 북한군이 추적을 위해 출격을 하면 할수록 북한의 군사비가 탕진되어 경제가 흔들리면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믿음’ 아래, 미군의 ‘5030’ 작전계획이 진행 중이다. ‘5030’ 작전계획은 북한 붕괴를 위한 파놉티콘의 가장 엄혹한 형태이다.
(주3) 18세기까지는 병사들이 몸으로 싸웠으나, 1차 대전 이후 기계가 전쟁에 도입된 이후 거꾸로 되었다. 최근의 에이브러햄 전차를 비롯한 병기들이 최첨단화(탈근대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사의 신체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주4) 가나 무역은 미국 관변의 민간 군사(戰士) 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인 AAFES와 계약을 맺은 회사이다. 김 씨가 가나 무역의 근로자이므로 김 씨는 PMC 계통의 전쟁 노동자로 분류된다.
(주5) 유명한 PMC인 해리버튼사(社)는, 미국의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수주 제1위의 업체이고 네오콘(Neo Con, 신보수주의자)의 수장인 체이니 부통령의 영향 아래에 있는 군수업체이다. 해리버튼은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종하는 초국적 기업이다. 해리버튼이 PMC로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것은 ‘자유주의의 군사화’에 해당된다. 해리버튼의 종사자 역시 봉급쟁이이지만 신자유주의의 군사화에 동원되었고, 그게 빌미가 되어 이라크 저항세력의 납치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PMC 노동자의 ‘전쟁을 위한 노동의 대가(전쟁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사용가치 산출, 이 사용가치는 생명을 파괴하는 가치이다)’ 및 이와 관련된 노사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나?
1. 절대전쟁인가 전면전쟁인가
절대전쟁은 스피노자(Spinoza) 철학의 의미에서 영원이며, 알뛰세(Althusser) 철학의 의미에서 개념이다. 들뢰즈(Deleuze)와 가따리(Gattari)는 국가에 대한 전쟁기계의 외재성(外在性)을 인정한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가, 핵시대에도 타당한지 어떤지가 논의되어 왔다. 이에 부정적인 논자는, 핵전쟁에서 정치적 목표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Nonsense)하다고 설명한다. 미국 사람들은 ‘한정(限定) 핵전쟁이 가능하다’는 논자를 ‘신(新)클라우제비츠파(派)’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고르바초프(Gorbachev)는 클라우제비츠 부정파(否定派)의 기수이다(市田良彦, 1989, 101).
2. 감시 장치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중정찰(주1)을 벤담(Bentham) ・푸코(Michel Foucault)의 ‘파놉티콘(Panopticon)’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파놉티콘’의 대표적인 공간은 감옥이다. 구치소에서는 저 유명한 벤담의 일망 감시시설을 본뜬 원형 칸막이가 운동공간이었다. 이 시설물은 수인 각자가 보이기만 할 뿐 남을 볼 수는 없게 되어 있다. 각 칸막이마다 문이 달려 있어서 수인을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으면 그는 그냥 부채꼴의 시멘트 담 속에 혼자 갇힌다(홍성욱, 2001, 69).
감시자는 계단을 통하여 위로 올라가 사방의 칸막이를 위에서 동시에 관찰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감시자가 우리를 칸막이에 넣어두고 정말로 충실히 수인들을 관찰하기 위해서 탑의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돌아다니거나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어딘가 보이지 않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동료와 잡담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고개를 쭉 빼거나 돌려서 어느 칸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살필 수가 있다. 시설은 참으로 상징적이었다. 연구실의 쥐새끼들처럼 우리들의 맴도는 움직임은 적나라하다(황석영, 2000, 312).
파놉티콘으로 상징되는 규율 권력이 ‘모세관과 같은 권력(capillary power)’처럼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우리를 통제한다는 푸코의 분석은 철학자나 역사학자의 범주를 넘어서 지식인 일반과 대중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푸코의 영향은 그가 파놉티콘을 벤담이라는 개인에 국한된 에피소드로 보지 않고 이를 근대 규율 권력의 미시구조를 잘 드러내는 전형적인 사례로 독창적으로 해석했다는 데에 주로 기인했다(홍성욱, 2001, 71).
전자기기를 통한 직접 감시가 1960년대 말엽부터 확산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67년 포토스캔(Photoscan)사에 의해 발매되기 시작한 폐쇄 텔레비전(CCTV)이었다. 이것은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람들의 행동을 중앙 통제실에서 동시에 관찰함으로써 전자감시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인공위성은 감시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바꾸었으며, 1970년대부터 미국을 비롯한 5개 선진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에쉘론(Echelon) 시스템은 위성 시스템과 결합해서 전 세계의 비군사용 통신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할 정도로 강력한 정보수집과 독해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상용화된 인터넷은 사이버 공간을 통한 감시(사이버 감시, cybersurveillance)를 구현했다.
미국은, 우주에 띄운 전자첩보 위성 ・상업용 위성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방수(傍受)하기 위해 전 세계 6곳에 대형기지(남부독일의 바드 ・에이브링 기지 / 일본의 미자와 기지 / 호주의 파인 ・캠프 기지 / 영국의 멘위즈 ・힐 기지 / 미국 워싱턴 주의 야키마 기지 / 미국 콜로라도 주의 델버 기지)를 두고 있다. 이 밖에도 영국, 키프로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기지 등이 네트워크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각 기지는 공동으로 매시간 수백만에 이르는 메시지를 방수한다. 컴퓨터 간의 통신 ・이메일 ・팩스 ・전화 및 기타 의사소통 수단이 방수의 대상이다. 방수된 통신내용을 ‘사서(辭書)’라고 불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집어넣어 해석한다. 이 ‘사서’ 프로그램에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이 관심을 갖고 검토대상으로 삼는 (사람 ・단체 ・조직의) 이름 ・번호, 건명(件名) 등이 대량 등록되어 있다. 이 시스템 전체의 코드명(code name) 자체가 ‘에쉘론’이다.
위의 6개 에쉘론 기지 중에서 북한과 관련이 있는 곳은 일본의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미자와(三澤) 기지이다. 미자와 기지에 있는 ‘코끼리 우리(elephant cage)’가 북한을 감시하는 파놉티콘의 본부이다.
냉전시대에 주일미군과 자위대가 합동으로 소련 ・북한 ・중국에 대한 군사정보를 수집해 온 미자와 기지는 냉전시대의 유물이지만,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 ・핵무기개발 여부를 감시하는 새로운 파놉티콘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미자와 기지가 북한과 가까운 거리에 있을 뿐 아니라, 주일미군 ・일본 항공자위대가 합동 운영하는 정찰 비행대가 있기 때문이다.
1) 움직이는 파놉티콘
북한의 미사일을 감시하는 미군 정찰기(움직이는 파놉티콘)의 움직임에 대하여 아래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石川潤一, 2004, 64-77).
* 2003년 3월, 공중전 일보직전
2003년 3월 2일, 동해 공해상을 비행 중이던 미군정찰기 RC-135S 코브라 볼을 추적하던 북한의 미그 29 ・미그 23기 4대가 15미터까지 접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교전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위험한 순간이었다. 미국은 2003년 2월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에 여러 종류의 전자정찰기 ・관측기를 배치한 채 북한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실험을 감시하는 태세를 갖췄다. 북한 미그기의 추적을 받은 RC-135S도 그중의 한 대로서 연일 북한 영공 근처에까지 접근하여 북한을 괴롭힌다.(주2)
*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
가데나 기지는, 미국 네브래스카 州 오파트 공군기지에 사령부를 둔 55WG(제55항공단)의 OL(operating location, 전방 전개기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82RS(제82 정찰비행대)가 편성되어 있다. 82RS에는 통상 한 대의 RC-135V / W가 오파트로부터 파견되어 있으며, 한반도 등에서[북한의 상대로] ELINT(전자정보) 수집을 한다.
* 오산 기지
55WG와 더불어 전략정찰을 하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州 빌 공군기지의 9RW(제9정찰항공단)로서 한국의 오산 기지에 4대의 U-2S 드라곤 레디를 파견하고 있다[미-일 군사동맹의 북한 감시 체계의 연장선상에 오산 기지가 존재함을 미루어 볼 때, 한-미-일 3각 군사 공동체가 북한에 대한 파놉티콘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 해군의 감시
미 해군의 경우, 워싱턴 州 위드비 아일랜드 항공기지에서 파견된 EP-3E 시리즈Ⅱ가 가데나 기지에 상주한다. EP-3E 시리즈Ⅱ를 보완하는 형태로, COMINT(통신 정보) 수집을 하는 P-3C VPU 아이앤클라트도 가데나 기지에 배치되어 있다. 또 COMINT 수집기로서 주한미군이 RC-12H 캅셀잭을 운용하고 있다.
* 육군의 감시
육군이 운용하는 IMINT 정찰기는 DHC-7 터보 프로펠러 여객기를 기반으로 한 RC-7B, ARL-M(低高度空中偵察機-다기능)으로서, SAR / MIT(합성 開口 레이더 / 이동목표 지시 시스템) ・FLIR(적외선 전방감시 장치) ・적외선 line scanner, 주간 화상 시스템 등을 탑재하고 있다. RC-7B는 COMINT 정찰기 ・RC-12H와 더불어 평택의 캠프 험프리즈에 배치되어 있다.
* 북한의 미사일을 감시하는 비행기 ‘코브라 볼’
2003년 3월 2일 북한 MIG기와 충돌할 뻔했던 미군정찰기 RC-135S 코브라 볼은 어떤 임무를 지니고 있을까? ‘코브라 볼’의 기체 사진을 보면 오른쪽 주익(主翼) 위쪽의 새까맣게 도장되어 있는 부분이 맨 처음 눈에 띈다. 코브라 볼은 동체 앞부분의 오른쪽에 커다란 관측창(觀測窓)을 설치한 채, 몇 종류의 센서로 낙하(落下)하는 미사일을 탐지-추적한다. 새까맣게 도색한 주익(主翼)은 태양광이 주익에 반사하여 광학(光學) 센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방현(防眩)조치이다.
냉전 종료 이후 코브라 볼의 임무가 줄어드는 듯하더니 전술 ・전역(戰域) 미사일의 확산 때문에 더욱 바빠졌다. 1993년 북한이 동해를 향해 ‘노동 1’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를 계기로 코브라 볼이 가데다 기지 ・미자와 기지에 빈번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3. ‘Ge-stell’과 총력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정신상황을 표현한 사람 중의 하나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Ge-stell’이라는 말로 사태를 나타낸다. ‘Ge-stell’이란 ‘버팀목’을 뜻하는 독일어이다. 하이데거는 이 말의 어간 ‘stellen’에서 ‘세운다=stellen’과 관련시켜 세계 속의 사물을 눈앞에 가져오는 작용을 나타내고자 한다. 그는 이 말을 근대 기술(techne)의 본질로 사용한다(市田良彦, 1989, 120).
‘테크네(techne)’의 본질은 탈(脫)은폐이다. 다시 말해, 존재자의 감추어진 모습을 ‘앞으로 드러내 놓는’ 일이다. 요컨대 ‘기술’이라는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의 ‘테크네(techne)’는 존재자를 기능적 부품으로 가공 ・환원하는 수단이 아니라, 탈은폐의 방식이다(제프 콜린스,2004, 64).
인간은 기술을 이용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기술에 대하여 조정되고 배열된다. 인간이 기술(technology)의 부름에 응하여 우왕좌왕한다. 이 주체의 무력함이 확실히 나타난 때가 제1차 대전이었다.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에른스트 융거(Ernst Jünger)는, 현대를 표현하는 표상(表象)으로 ‘노동자’를 채택하고 더 나아가 ‘총동원’에 관하여 말한다. 즉 사람들의 인생은 항상 (노동자처럼) 징발된다는 것이다. 자율화하는 기술(technology)이 사람들을 징용하고 배열한다. “그 속에서 인간이 새로운 공동성과 연대의 ‘기계화된 삶(生) 공동체=Man-Machine System)’의 구체적인 담당자를 민족으로 상정한다.”고 강조하는 융거는, 파시즘의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市田良彦, 1989, 121).
융거는 그의 저서 {노동자}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현상을 전쟁에서뿐 아니라 근대적 삶의 모든 국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산업 현장 역시 그러한 전쟁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융거는 이 책에서 제1차 세계대전은 그 이전의 전쟁과 비교할 경우 분명히 국민과 국가 자원 전체를 총동원한 전쟁[총력전]이라는 면에서 신기원을 열었지만 용병들이 주 전력이었던 구식의 전쟁 양상을 완전히 탈피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다가올 새로운 현대전에서 국민과 국가자원 전체의 철저한 동원이 요구된다. 다가올 시대에는 국가의 자원뿐 아니라 전 국민을 총동원하는 전쟁[총력전]이 영구적인 상태가 된다. 전쟁과 평화의 차이는 사라지는 한편 군인과 시민간의 낡은 분리는 폐기된다. 모든 사람이 전사로 된다. 이러한 전사
적인 인간을 융거는 노동자라고 부른다. 융거가 말하는 진정한 노동자는 오히려 전쟁터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는 영웅적인 전사와 유사하다(박찬국, 2001, 127-128).
박정희 군사파시즘이나 부시의 전쟁내각은 ‘전사와 같은 노동자’를 시민의 이름으로 요구하면서 총력전을 지향했다. 이런 측면에서 나치즘과 유사하다.
4. 그람시의 기동전 ・진지전
그람시(Antonio Gramsci)는 그의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내적 모순과 계속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부르주아의 지배가 유지되는 현상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는 강제력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보편화시키고 대중의 동의를 획득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며, 이러한 부르주아의 헤게모니가 계속되는 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혁명전략은 어떠한 것인가?
그람시는 이것을 진지전과 기동전의 구분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원래 기동전과 진지전의 개념은 1차 대전 중의 군사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기동전이 적의 기지를 향하여 전선을 형성하고 파상공격(Teilaktionen)을 하는 반면, 진지전은 참호와 진지를 구축하고 산업체계와 사회조직의 지원을 받아 적의 진지와 참호를 격파해 나가는 전략이다. 이 군사전략에 의하면 산업화되고 발달된 선진자본주의 국가와의 전쟁에서 기동전은 그들의 외피만을 파괴할 수 있을 뿐, 참호체계로서 시민사회는 분쇄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동전은 전술적인 것으로만 고려되어야 하고 진지전이 올바른 전략이라고 본다. 그람시는 이러한 개념을 정치학의 영역에 도입, 서구사회의 혁명전략에 사용하였다.
그람시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테제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사회 구성체 내에서 정치적으로 지배계급이 되기 전에는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구사회의 혁명전략인 진지전 전략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의 기관들인 학교, 출판계, 대중매체, 노동조합 등을 차례로 정복해 나가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통한 부르주아의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이데올로기 투쟁과정이고, 부르주아의 헤게모니를 분쇄하고 노동계급의 헤게모니에 의한 새로운 역사적 블록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람시는 이렇게 시민사회의 정복과 정치적, 문화적 지도력을 장악하는 진지전을 강조하면서, 진지전은 장기간의 인내와 창조성을 요구하는 과정이지만 한 번 승리하면 결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람시는 우선 사회주의의 건설은 자본주의의 국가권력을 장악한 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체제 내에서 대중의 사고의 지적, 도덕적 개혁을 통해 시작되고, 권력 장악 후에도 계속적인 교육과 도덕적 쇄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이신호, 1990, 37-42).
위의 문장을 평화운동 쪽으로 끌어들여 각색하면 다음과 같다; “발달된 선진자본주의 국가(미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와의 평화를 위한 전쟁(투쟁)에서 기동전은 그들의 외피만을 파괴할 수 있을 뿐, 참호체계로서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의) 시민사회는 분쇄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동전은 전술적인 것으로만 고려되어야 하고 진지전이 올바른 전략이라고 본다. 이것이 세계 평화를 위한 혁명의 전략이다. 평화애호 계급이 자본주의 사회 구성체 내에서 정치적으로 지배계급이 되기 전에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문화적, 이데올로기적인 진지를 여기저기에 만들어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엮어내는 진지전 전략이 필요하다. 진지전 전략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 기관인 학교, 교회, 출판계, 대중매체, 노동조합 등에 차례로 진입해 나가면서 평화옹호 세력의 이데올로기 확산을 통한 부르주아의 (전쟁 지향적)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이데올로기 투쟁과정이다. 이와 동시에 부르주아의 (전쟁) 헤게모니를 분쇄하고 평화옹호 세력의 헤게모니에 의한 새로운 역사적 블록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평화운동의 진지전을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 전쟁 노동자의 기갑화(機甲化)된 신체
근대전을 지배하는 것은 속도이다. 육군병사는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어 단련된 체력을 무기로 싸운다. 여기에서 ‘몸과 전쟁’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신체의 기계화, ‘변신(變身)’에로의 원망(願望)은 신체에 대한 미래파적인 몽상이 아니다. 오히려 거대해진 무기와 군대 시스템의 광대한 기갑화(機甲化) 속에 흡수되어 버린 신체를 다시금 개별적인 힘으로 되찾는, 이른바 중세적인 기사(騎士), 미적(美的)인 전사(戰士)의 재현을 지향하는 몽상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고풍(古風)스러운 몽상이다. 하지만 탈근대적인(post-modern)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주3) ‘탈근대적인 신체의 의고주의(擬古主義, archaism)’에 따라 몸과 전쟁에
관한 논의를 전개해야 할 것 같다.
탈근대의 최첨단 무기가 횡행하는 현대전(걸프전과 이라크전이 대표적인 사례)에서 거꾸로 자신의 신체의 비참한 한계를 느낀다. 최첨단 전차로 무장한 이라크 주둔 미군이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무슬림 게릴라들에 둘러싸여 신체의 비참한 한계를 느낀다. 신체가 거꾸로 보병을 무위(無爲) 속으로 틀어박히게 하여 그들을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게 만든다. 돈벌이를 위해 이라크전에 참전한 하층계급의 미군 병사들은 미국 자본주의가 벌이는 이라크 전쟁의 하수인으로서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 즉 전쟁 노동자이다. 이들의 비참한 신체와 이라크 전쟁을 대비시켜 고찰할 필요가 있다.
6. 전쟁 노동자 ‘김선일’
2004년 6월 22일 이라크의 무슬림 게릴라에 의해 참수된 (가나무역의 사원) 김선일 씨는 ‘전쟁 노동자(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이다.
김 씨는 미군을 도와주는 군납업체인 가나무역의 근로자였으므로, 이라크 저항세력이 보기에 미군의 동조자이다. 이 점 때문에 납치의 대상이 된 것이다. 김 씨는 이라크의 최전선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전쟁 노동자(주4)이므로, 노동집약적인 전투를 벌이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밥’이 되었다. 김 씨의 신체가 미군 측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납치의 대상이 된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김 씨는 돈(밥)벌이 하러간 일반 노동자의 성격도 지닌다. 예전에 중동으로 돈벌이 간 노동자와 달리 전쟁터에서 돈을 벌려고 했고, 돈 버는 행위가 미국 측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이라크 저항세력은 김 씨의 행위를 친미행동으
로 간주함) 납치자 명단에 올랐다(김 씨가 이라크 주둔 미군 부대에 납품하고 돌아오던 길에 납치된 경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음).
어찌 되었든 돈벌이에 나선 가난한 전쟁 노동자 김선일 씨가 거대한 전쟁체계의 희생양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일반 산업장에서 근무하는 일반 노동자의 죽음’보다 더욱 처절한 ‘구조적인 사망’이다.
가나무역의 원청업체로 알려진 AAFES(The Army and Air Force Exchange Service: 미국 육 ・공군 복지기관)는 ‘신종 죽음의 상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민간 군사(戰士) 기업(PMC)의 일종이다. 이 회사의 이사회 중 대다수가 미군 현역장성과 정부 고위직 인사로 구성돼있으며, 직원 중 1,000명이 현역 장병이다. AAFES의 이사회 의장은 미군 중장인 찰스 S. 메헌 Jr.이며 다른 현역 장성 외에도 미 육군성 존 맥클로린 부차관보, 미 공군성 켈리 F. 크레이븐 부차관보 등이 포함돼 있다. 또 AAFES 소속 직원 47,323명 가운데 1,000명 가까운 1.9%는 현역 미군 장병이다.
AAFES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미군 서비스 업체’로서 흔히 말하는 군수업체이다. AAFES는 미국의 군 ・산 복합체(軍産複合體, military industrial complex)에 속하는 PMC 계열의 관변회사로서 군수자본의 담지자이다. AAFES는 이라크를 종횡무진하는 미국계 전쟁자본의 한 지파이고, 이 지파의 지파인 가나 무역에 김 씨가 고용되었으므로, 김 씨는 전쟁 자본의 희생자이다.
김 씨는 PMC라는 전쟁 자본가에 고용된 전쟁 노동자이므로 형식상 전쟁을 에워싼 노사관계가 형성되지만, 전쟁터에서 죽고 사는 문제를 놓고 계약하므로 생명을 담보로 한 노사관계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다만 일반 노동자처럼 생산현장에서 일하지 않으므로, 전쟁 노동자로서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 이 점에서 전쟁 노동자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면서 김 씨의 사망에 대한 관점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즉 전쟁 자본의 희생자인 김 씨를 자본과 노동의 관계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주5)
7. 몸과 전쟁: 신체를 넘어선 전쟁
김선일 씨의 몸은 전쟁이라는 구조적 폭력의 희생양이다. 이라크 전쟁은, 인간의 신체를 추월한 전쟁의 비인간성을 드러낸다. 전차와 장갑한 기갑부대가 인간의 신체를 초월한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 속에 있었던 옛날의 전쟁은 인류를 절멸할 정도가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인간적이었다.
그러나 핵시대의 전쟁양식 ・정보전쟁 양식은 인간의 신체를 초월한 전쟁(인간의 신체는 전쟁의 도구나 객체일 뿐 인간이 전쟁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정보기기나 핵무기가 주체이다)이므로 비(非)인간적 ・비인류적 ・비인륜적이다.
8. 국민 전체가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로 된다
전쟁터의 기계화는 국민군(국민의 군대)의 형성에 의해 진행되어 온 전투원-비전투원의 구별을 더욱 미묘하게 만든다. 전쟁터가 기계화되는 현대전에서, 국민군의 위상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걸프전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국민군 병사)이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C4I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컴퓨터 엔지니어(비전투원)인지 전투원인지를 구별하기 어렵다. 한편 이라크전의 피해를 받은 사람들 대다수가 이라크 국민이므로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국가 전체가 기갑화 ・전차화(戰車化)하므로, 전투원 ・비전투원을 불문하고 국민 전체가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한다.
케인즈주의적인 조직 자본주의(organized capitalism) 아래의 국가 총동원형-국민 총징용형의 전쟁양식(걸프전 이전의 전쟁양식)에서, 유연 생산방식(도요타 생산방식)이나 탈조직 자본주의(disorganized capitalism) 아래의 전자전쟁 양식으로 전환되어 가는 것이 현대전의 특징이다. 이러한 현대전 아래에서 여전히 국민을 전쟁터의 프롤레타리아트로 삼아 동원하는 게 문제이다. 이때의 국민개념 ・국민군의 의미를 재조명해야 한다.(2004.12.9)
--------
[참고자료]
* 박찬국 {하데거와 나치즘}(서울, 문예출판사, 2001).
* 이신호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 관한 연구」(공주사범대 석사논문, 1990).
* 제프 콜린스 지음, 이경현 옮김 {하이데거와 나치}(서울, 이제이북스, 2004).
* 황석영 {오래된 정원 (상)}(서울, 창작과 비평사, 2000).
* 홍성욱 「벤담의 파놉티콘에서 전자 시놉티콘까지」 {한국과학사학회지} 제23권 제1호(2001).
* Duncan Campbell 「Major American base forced to close in spy satellite controversy」<{世界}(2001년 8월호, 164~171쪽)에 일본어로 번역됨>.
* 市田良彦 {戰爭}(東京, 新曜社, 1989).
* 石川潤一 「北朝鮮の彈道ミサイルを監視する米軍偵察機」 {軍事硏究)(2004년 4월호).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304~320쪽을 참조하세요.
==============
<註>
(주1) 북한은, 미국이 2004년 9월 중 각종 전략 및 전술 정찰기를 동원해 180여 차례에 걸쳐 대북(對北) 공중정찰을 했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군사소식통을 인용, 대북 공중정찰에 이용된 항공기는 U-2고공정찰기를 비롯하여, RC-135 정찰기, E-3 공중 조기경보 통제기, EP-3 전자정찰기 등이라고 주장했다. 중앙통신은 “9월 13일에는 RC-135 정찰기와 RC-12, RC-7B 전술 정찰기 등 10대가 우리의 종심 지역과 중요 대상물들에 대한 공중정탐 행위를 벌였다.”고 덧붙였다. 중앙통신은 “최근 미제가 남조선 지역에 최신 살인장비들을 대량 끌어들이고 남조선강점 미제 침략군 무력의 한강 이남 재배치와 맞물려 조선반도에서 새 전쟁을 도발하려는 불순한 목적 밑에 공화국에 대한 기습 선제타격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연합뉴스}(2004.10.1)>
(주2) ‘미군의 위협적인 정찰비행에 깜짝 놀란 북한군이 추적을 위해 출격을 하면 할수록 북한의 군사비가 탕진되어 경제가 흔들리면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믿음’ 아래, 미군의 ‘5030’ 작전계획이 진행 중이다. ‘5030’ 작전계획은 북한 붕괴를 위한 파놉티콘의 가장 엄혹한 형태이다.
(주3) 18세기까지는 병사들이 몸으로 싸웠으나, 1차 대전 이후 기계가 전쟁에 도입된 이후 거꾸로 되었다. 최근의 에이브러햄 전차를 비롯한 병기들이 최첨단화(탈근대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사의 신체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주4) 가나 무역은 미국 관변의 민간 군사(戰士) 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인 AAFES와 계약을 맺은 회사이다. 김 씨가 가나 무역의 근로자이므로 김 씨는 PMC 계통의 전쟁 노동자로 분류된다.
(주5) 유명한 PMC인 해리버튼사(社)는, 미국의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수주 제1위의 업체이고 네오콘(Neo Con, 신보수주의자)의 수장인 체이니 부통령의 영향 아래에 있는 군수업체이다. 해리버튼은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종하는 초국적 기업이다. 해리버튼이 PMC로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것은 ‘자유주의의 군사화’에 해당된다. 해리버튼의 종사자 역시 봉급쟁이이지만 신자유주의의 군사화에 동원되었고, 그게 빌미가 되어 이라크 저항세력의 납치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PMC 노동자의 ‘전쟁을 위한 노동의 대가(전쟁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사용가치 산출, 이 사용가치는 생명을 파괴하는 가치이다)’ 및 이와 관련된 노사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나?
'전쟁-안보-군사 > 전쟁론, 전쟁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과 숭고 미학(崇高美學) (1) | 2009.05.15 |
---|---|
공포의 균형 (2) | 2009.05.15 |
전쟁구조 고찰 (0) | 2009.05.15 |
‘포스트 모던’의 국제관계학에서 본 북한 핵문제 (1) | 2009.05.10 |
제국의 핵무기에 대한 사회주의 국가의 대응 (0) | 2009.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