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장사 수기 (103)
유기농 커피의 모호한 경계
김승국(커피공방 뜰의 점장)
한때 우리 가게에서 ‘유기농 커피’라는 이름으로 자연 정제한 커피를 팔았다. 유기농에 가까운 만데린, 모카 하라, 시다모 등의 커피를 유기농 커피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따르므로, 유기농 커피라는 메뉴 밑에 ‘비료․농약을 살 돈이 없는 농민들이 숙명적으로 만들어 내는 유기농 커피’라는 해설을 붙인 유기농 커피를 팔았다. 코스타리카 등의 농장에서 비료․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지렁이 퇴비 등을 투입하여 재배한 본격적인 유기농 커피, 과테말라 등에서 나무 그늘 밑에서 자란 ‘shadow grown coffee’, 국제인증 마크를 획득한 유기농 커피를 ‘적극적인 유기농 커피(positive organic coffee)’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리 가게에서 파는 자연정제 커피는 ‘소극적인 유기농 커피(passive organic coffee)’라고 부를 수 있겠다.
여기에서 적극적인 유기농 커피와 소극적인 유기농 커피의 차이점은 지렁이 퇴비의 사용여부, 그늘 재배(shadow grown)의 여부, 국제인증 마크의 여부인데, 자연정제 커피 중 그늘 재배한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차이점의 폭은 좁혀진다. 특히 모든 커피가 유기농이 아니냐는 일부 손님들의 질문을 고려하면 위의 차이점이 유별나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양자의 차이점은 그리 크지 않지만, 적극적인 유기농 커피를 정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소극적인 유기농 커피는 족보에 없는 유기농 커피이다. 심하게 비판하면 ‘짝퉁 유기농 커피’이다. 정통 유기농 커피-적극적인 유기농 커피와 ‘준(準; pseudo) 유기농 커피-소극적인 유기농 커피의 차이점이 커진다. ‘준(準)의 영어표기인 pseudo가 짝퉁이라는 의미도 내포하므로 ‘準 유기농 커피’와 ‘짝퉁 유기농 커피’ 사이의 문지방도 낮아진다.
이와 같이 보는 관점에 따라 적극적인 유기농 커피와 소극적인 유기농 사이의 차이점이 크게 보이기도 하고 작게 보이기도 하므로, 유기농 커피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유기농 커피만이 진짜라고 주장하며 사이비 유기농 커피와의 경계를 확실하게 주장하기 곤란한 경우가 있다.(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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