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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48) ---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9)

김승국


주한미군의 중립화 ➂


1. 미국 쪽의 한반도 중립화 방안에 대한 평가


미국 쪽에서 제기되거나 논의된 한반도 중립화 방안은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미국의 국익이 되느냐 마느냐가 관심사이었다. 미국의 국익만이 아니라, 당사자인 남북한의 국익ㆍ국내사정을 배려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1) 국가안보회의 기획실 제출 초고


1953년 6월 15일자의 국가안보회의 기획실 제출 초고(황인관, 1988, 207-210)를 보면, ‘한국에서 미 병력과 기지의 철수 그리고 한국을 미 군사권에서 배제시키는 대신으로 미국의 이해가 관철된 한국통일에 대한 공산측 동의를 수반해야 될 것이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미국의 이해가 관철될 것인지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그나마 이 문건은 ‘중립화로 인해 그 군사적 지위를 포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에게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전면전인 경우 한국의 방어는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미국 군사력에 대한 대응으로서만 그러한 공격을 저지시킬 수 있을 것이다.’고 언급한다. 이어 중립화 발상의 긍정적인 면으로 ‘일본의 안보는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의 공군을 포함한 공산 병력의 철수에 의해 유리하게 될 것이다. 또 한국 내의 미군기지와 중무장된 한국 군사력을 지원할 필요성이 경감됨으로써, 절약되는 국방비를 기타 자유세계의 군사적 지위를 강화시키는 데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고 기술하고 있다. 한반도의 중립화가 일본의 안보에 도움이 되는 점, 한국에 대한 군사력 지원이 경감됨에 따른 국방비 절약이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관점이 내재해 있다.


이 문건은 ‘통일되고 중립화된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이며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여기에서 중립화된 한국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입장은, ‘19세기말의 일본 정부가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 방침을 세우고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제시한 것’과 비슷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국무성 토의 요지의 회의록


1953년 6월 16일에 21명이 참가하여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 ‘국무성 토의 요지의 회의록’(황인관, 217)은 두 개의 대안 즉 한반도 분단(남한만을 미국이 수용하는 분단)안과 중립안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지만 논의의 기준점은 미국의 국익이다(중립화된 한국의 밖에서 군이나 기지를 가지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 되느냐, 아니면 분단된 한국에서 그것을 가지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 되느냐?). 한국에 비(非) 공산주의 정권을 세움으로써 미국의 국익을 달성하는 데 중립화가 유리한가 분단이 유리한가의 논쟁을 벌일 뿐, 당사자인 남북한을 배려하는 논점이 배제되어 있다.


  3) 국방장관에게 보내는 합동참모 본부의 비망록


미국의 조야에서 휴전협정 협상의 대안으로 떠오른 한반도 중립화 구상에 대한 비판이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진 끝에 나온 1953년 6월 30일자의「국방장관에게 보내는 합동참모 본부의 비망록(황인관, 1988, 218-221)은 ‘중립화 불가(不可)’이었다. 통일되고 중립화된 한국의 수립이 전략적으로 미국의 불이익이 될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립화됨으로써 생겨나는 진공을 공산주의자들이 메우면, ‘한국에 비(非) 공산주의 정권을 세움으로써 얻을 미국의 국익’을 챙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국익증진 차원의 한반도 중립화가 관심사이었기 때문에 한반도 내부의 사정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미국 조야에서 제기된 중립화론의 경우를 보면, 한반도 내부의 국지사정이 진지하게 고려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한반도의 위상이 신탁통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던 해방공간에서는 물론, 한국전쟁을 겪은 이후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의 위상이 특히 자존능력에 대한 저평가로 인하여 ‘군사적 전초기지의 관리’ 대상 외에는 내부사정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오래도록 경주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예컨대 당시 미국의 정책구상이 ‘2개의 한국’에 대한 남ㆍ북한의 합의⟶UN 동시가입과 4강 교차승인에 의한 분단체제의 ‘합법화’⟶한반도 격리(미군철수 기반조성)의 행로를 전제로 하여 모색되었고, 그 과정에서 중립화론도 제기되었던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발상은 그 자체가 한반도 내부사정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결여하고 있었던 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강광식, 215~216)


2. 탈미(脫美)의 중립화


그러면, 한반도의 내부사정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결여되고 미국의 국익 중심의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넘어서는 묘안은 없을까? 미국의 국익도 살려주고 한반도의 이익도 살리는 상호이득 게임(win-win game)은 불가능한가? 미국의 국익 일변도에서 벗어나는 탈미(脫美)의 중립화 방안은 없을까?


미국의 이익만 반영되는 한반도 중립화 방안이 남북한에 통용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국ㆍ러시아ㆍ일본에도 통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ㆍ러시아ㆍ일본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다국간 협력체제’를 갖추는 ‘탈미형 다국체제의 중립화 방안’이 긴요하다. 미국의 이익만 챙겨주는 친미형 중립화 방안은 효용성이 떨어진다. 19세기말에 2자간 중립화 협상(일본-청나라 또는 일본-러시아가 한반도의 지배권을 나누어 먹기 위해 중립지대를 설정하려한 중립화 협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참작하여, 다국 간 협력 속의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찾아야할 것이다. 미국의 입김이 강한 2자간(미국-북한, 미국-남한, 미국-중국) 협상의 틀을 넘어서는 탈미의 중립화 방안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3. 탈미의 중립화 방안을 모색하는 운동


그러면 탈미의 중립화 방안을 모색하는 운동은 어떻게 전개해야할까?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면서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중립화 운동은 불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① 중립화 통일의 최대 난관인 미군철수를 통해 탈미형 중립화의 길을 다지고 ② 미군철수-탈미형 중립화가 미국의 국익에도 보탬이 되게 하며 ③ 그러한 탈미형 중립화 추진이 한반도 통일의 단방약(單方藥)이 되도록 만드는 ‘탈미-상생형 중립화 운동’에 있다.


‘탈미-상생형 중립화 운동’을 전개하려면, 기존의 ‘친미-반미 2분법 구도 속의 반미운동’ 및 그러한 반미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미군철수 운동에 대한 종합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 문제에 관한 주종환 선생의 제안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평화통일을 촉구하는 운동을 정확하게 자리매김하고 그 전략과 전술을 고민해야 한다. 대중의 의식수준과 동떨어진 구호를 내세우면, 오는 손님을 스스로 쫓아버리는 우를 범할 위험성이 있다. 운동권 일부가 내걸고 있는 미군철수 주장은 바로 그런 위험성을 내포한 구호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당장 미군이 철수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그런 원색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안이다. 물론 한반도에 미군 없는 세상은 민족적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요구해야할 궁극적인 민족의 숙원이다. 그렇기에 무조건적인 미군철수를 시대를 앞질러 강력히 주장하는 것 또한 애국애족 운동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여론조사에 의하면, 확실한 대안도 없이 미군이 철수하면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대다수라고 한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미군 나가라고 외치는 것은 대중의 불안감만 조성할 뿐 어떤 실익이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논리적으로 보면, 남북 연방제/연합제를 전제로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미군 없는 세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중립화 운동도 미군철수 주장에 대한 대안으로서 매우 대중 설득력을 갖고 있는 구호다.”(주종환,  217~220)


‘아무런 대안도 없이 무조건 미군철수 하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중립화 통일의 논리에 따른 미군철수 운동을 전개하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종환 선생의 제안은 경청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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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강광식『중립화와 한반도 통일』(서울, 백산서당, 2010)
* 주종환「한반도 자주ㆍ평화운동과 중립화 통일」, 강종일 편저『한반도 중립화로 가는 길』(서울, 광양사, 2007)
* 황인관 지음, 정대화 옮김『중립화 통일론』(서울, 신학문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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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