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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폭력론 일반

용산참사에서의 폭력-테러리즘


김승국


용산참사를 ‘평화의 눈’으로 바라보면 많은 점이 눈에 띈다. 뉴타운 재개발로 인한 마을 공동체의 해체, 세입자들의 ‘평화로운 밥상 공동체’의 파괴, 인간안보를 해치는 막개발‧난(亂)개발, 평화지향적인 내재적 개발(발전)론의 적용 가능성, 공권력의 과잉 진압, 폭력(저항폭력 對 국가폭력, 테러리즘) 등 다양한 주제가 떠오른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 중에서 폭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용산참사의 쌍방(경찰‧용역깡패 對 망루 속의 철거민들)이 폭력을 서로 교환한 ‘폭력의 상호교환 체계’ 위에서 폭력 문제를 다루면 입체적인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비록 방어적인 수단이지만 화염병을 던지고 망루 안에 시너와 가스통을 지니고 있었던 점이 폭력의 상호교환 체계를 거론할 수 있게 한다(공격적인 경찰의 진압장비는 ‘폭력의 상호교환 체계’의 주동자이다). 철거민들이 촛불시위와 같이 비폭력적인 촛불만 들고 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용산 철거민들이 지녔던 화염병‧시너‧가스통은 저항폭력의 수단으로 이해된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저항폭력의 경우 화염병‧시너‧가스통 보다 더 강렬한 수단과 무기가 동원된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레바논의 경우 민중의 저항폭력 수단으로 박격포‧미사일까지 동원된다. 팔레스타인의 인디파타(Indifata)의 경우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적(이스라엘 군)에 던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고엽제 관련 투쟁에 나선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나 특전사 출신자들이 보상요구 투쟁을 할 때 가스통을 들고 나오기 일쑤이다. 목숨을 건 결의의 강도에 비례하여 저항폭력의 수단이 격렬해진다.


방어적인 입장에 선 저항폭력이지만 더욱 폭력 지향적이 되면서 경찰과 부딪치고 폭력의 상호교환 체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저항자들의 폭력은 근원적으로 ‘가진 자들의 연합(용산참사의 경우 뉴타운 재개발 관련 재벌 건설회사+검찰‧경찰+행정기관)’이 유발한 것이지만, 폭력을 주고받은 투쟁현장을 미세하게 관찰하면 폭력의 상호교환 체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항자들은 삶을 보전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방어무기를 들지만 폭력의 상호교환 체계를 내재적으로 지니게 된다. 방어무기이지만 그것을 든 순간부터 폭력논의에 편입되기 시작한다. 국가권력이 (방어무기를 들고 투쟁하는) 저항자들을 향하여 폭도(4.3 학살이나 5.18 광주항쟁의 희생자를 폭도라고 규정함) 또는 테러리스트(용산참사의 경우 도심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므로, 더욱 폭력논의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단순한 방어수단이 아닌 방어무기를 든 경우에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여기에서 폭도‧테러리스트로 매도하며 공권력을 과잉 사용하는 ‘국가권력의 폭력(국가폭력)’과 저항자들의 폭력(저항폭력)을 동일시하고 폭력의 상호교환 체계를 논의하면 논리적인 모순에 빠지므로, 폭력 문제를 2원적(二元的)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폭력 문제를 2원적으로 다루기 위한 학문적인 장치를 거론할 여유가 없지만, 용산참사에서와 같이 저항폭력이 도심 테러로 매도되는 현상을 중대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용산참사의 ‘폭력의 상호교환 체계’ 속에서 ‘저항폭력-공권력의 충돌에 이은 사망사건이 발생했으며, 억울하게 죽은 철거민들이 도심 테러리스트가 되는 구조’ 즉 ‘용산참사에서의 폭력-테러리즘’ 구조를 이 글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이 글은,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자(者)들의 말 즉 ‘용산참사 희생자=도심 테러리스트’ 담론을 화두로 제시하고, 이 화두의 정당성 여부를 검증하는 순서를 취한다.  



Ⅰ. ‘용산참사 희생자=도심 테러리스트’ 담론



냉전수구 언론에 의해  ‘용산참사 희생자=도심 테러리스트’ 담론이 의외로 강하게 유포되어 있으며, 이 담론을 촉발한 사람은 용산참사의 진압책임자인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이다. 김석기 씨는 2009년 2월 10일 발표한「경찰청장 내정자 사퇴 기자 회견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한다; “어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용산 화재사고의 실체적 진실은 명백히 밝혀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도 한복판에서 화염병과 벽돌, 염산병이 무차별로 날아들어 건물이 불타고 교통이 마비되는 준 도심테러와 같은 불법행위가 더 이상 재발해서는 안 됩니다.”


위의 기자회견문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도심 테러’이다.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이 도심 테러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김석기 씨가 보기에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은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가 아니라 도심 테러를 일으킨 테러리스트이다. 도심 테러의 주동자이다.


망루에 올라가 죽은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것은, 김석기 씨 한 사람만의 태도가 아니라는 게 심각성을 더한다. 이명박 권부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지배적인 경향이라는 게 문제이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김석기 씨의 기자회견 바로 다음날인) 2월11일, 용산참사와 관련한 국회 긴급현안 질문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생존권 문제로 시위를 벌인 철거민 등에 대해 “알 카에다, 암적 집단” “자살 폭탄 테러”라고 비난하며 참사의 책임을 시위대에 돌렸다.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질의에서 “이번 참사는 ‘다 함께 죽자’는 알카에다식 자살폭탄 테러’와 다를 것이 없다”며 “인질범이 폭탄을 터뜨려 경찰과 인질범이 다 죽었다면, 경찰에게 책임을 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경찰 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뉴라이트 출신의 장제원 의원은 “‘전국 철거민 연합‘이라는 좌파도 포기한 불법폭력 집단이 힘 없는 세입자라는 양의 탈을 쓰고 국가 대혼란과 참사를 야기했다”면서 “사법 당국이 암적 집단을 뿌리 뽑지 않고 방치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경향신문』2009.2.12자 1면 기사>.


위는 여권이 보는 ‘용산 참사’의 관점을 드러낸 발언이다. 민주당‧민주노동당 등의 야당들이 용산참사를 생존권 투쟁이라고 본데 비하여 여권은 도심 테러로 규정한 것이다. “인면수심의 반인륜적‧반국민적 정권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럴 수 없는”(민주당 장세환 의원의 발언) 정부‧여당(여권)이, 생존권 투쟁에 나선 철거민들을 반인륜적인 도심 테러리스트로 낙인찍는 ‘적반하장’이 발생한 것이다. 뉴타운 재개발 사업의 희생자들을 ‘도심 자살 테러리스트’로 내몰았기 때문에 적반하장이다.


이와 같은 적반하장에 대한 반론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는데 그 중에서 용산참사 당사자‧네티즌‧인터넷 신문의 항변을 소개한다;


① 용산참사로 시아버지 잃고 남편이 구속된 정영신 씨의 반응(『한겨레신문』2009.2.12):


정영신(37) 씨의 시아버지 이상림(72) 씨는 용산참사가 벌어진 2009년 1월 20일 농성 건물 옥상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남편 이충연(36‧용산4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 위원장) 씨는 열흘 뒤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정씨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실망을 넘어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가 모인 검찰이 20일 동안이나 수사한 결과가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며 “내 아버지가,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다 같이 죽자고 화염병을 던질 이가 어디 있겠냐”고 반문했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임 기자회견은 “마음만 상할 것 같아” 보지 않았다. “김석기 씨 기자회견을 본 시어머니가 너무 분통해 하시길래 ‘이젠 기대하지도, 마음 아파하지도 마시라’고 했어요.” 정씨는 지난달(2009년 1월) 19일 아침 6시부터 시작된 ‘악몽의 40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참사 전날 오후 남편과 나눴던 통화 내용도 귓가에 생생하다. “제가 신랑에게 말했어요. 다치기 전에 그냥 내려오라고. 그랬더니 신랑이 ‘아니야, 그래도 한번은 얘기할 거야. 한 번은 내 얘기를 들어주겠지’ 했어요. ‘우린 지금 상황에서 진짜 갈 데가 없다’ 그 말 하겠다고 올라갔는데 그 한마디를 못하고….”


② 어느 네티즌의 글:


검찰의 수가결과 발표는 전철연의 돈독한 협조와 지도 아래 6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이고 ‘망루’를 설치하고 기억하기에도 끔직한 시너의 양과 400개의 화염병을 안고 철거민들이 자살난동을 벌였으므로 경찰책임이 절대 아니란다. 참으로 ‘주도면밀한 철거민들의 자살 난동’이 ‘용산참사’의 원인이자 결론이 되므로 그들의 죽음은 그들의 의도한 바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그들 죽음에는 그들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그 불지옥의 현장에서 돌아가신 분들은 범죄자이다. 이런 억지가 없다. 분노에도 끝은 있는 법이다. 냉정해지려고 하여도 오히려 정부가 하루, 하루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다. 조롱, 희롱, 농락으로 돌아가신 분들과 그 현장의 철거민들의 가슴을 난도질하여도 이럴 수가 없을 것 같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대한민국 1%의 두뇌집단이 내어 놓은 결론은 발상의 전환치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대통령도 물로 알던 젊은 검사의 오만이 차라리 그리울 지경이다. 대한민국의 최우수 두뇌집단으로 대표되는 권력기관의 공무원이 어째서 그 불지옥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주검조차 평안하게 쉬게 하지 못하는 무례를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되는지. 어째서 경찰의 무혐의를 그처럼 억지로 짜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런 억지 문서를 써 내려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그런 각본이 국민에게 먹혀들어 갈 것이라는 생각은 어떻게 하는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자신이 오히려 답답할 지경이었다.


③「포클레인으로 찍고, 밟고…진짜 도심 테러를 보라」『프레시안』(2009.2.12)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211230706&section=03


2009년 2월 11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는 용산 4구역을 비롯한 각 재개발 지역에서 자행되는 용역업체의 폭력에 대한 증언 대회가 열렸다. 증언 대회에 참석한 재개발 지역 주민들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건지 답답하다”, “지금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다”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또 용역업체의 폭력을 입증하는 사진과 동영상도 공개됐다.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0일부터 용산 4구역 주민들을 인터뷰하며 강제퇴거 실태 조사를 벌였던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진상 조사단’ 미류 활동가는 “2008년 2월, 관리처분인가가 나기 전부터 철거용역이 지역에 상주하며 폭행, 협박, 영업방해, 성희롱 등을 일상적으로 자행했다”며 “주민들이 신고해도 경찰은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류 활동가는 “주민들이 어제는 누가 맞았고, 오늘은 누가 맞았다 등의 얘기를 나누는 일이 1년 동안 한 동네 안에서 진행됐다”며 “행위 하나하나가 폭력죄, 경범죄로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 년간 반복된 이런 범죄를 처벌하지 않으면 용산 같은 사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며 “철거업체 문제를 직원의 문제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용산 4구역에서 15년간 식당을 운영했던 최순경(67) 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당한 강제퇴거의 순간을 설명했다.
“명도 집행이 한 달 남아 있어서 걱정은 들었지만 열심히 장사했다. 그런데 11월 4일 오전 10시 법원 집행관 2명과 용역 200명이 와서 저희 집을 몇 겹으로 둘러쌌다. 내가 말했다. 2시간 있으면 예약한 손님 몇 십 명이 오니까 끝나고 하면 안 되냐고. 요구를 말살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밖에 나왔다. 가게 물건을 전부 실어간 다음 제가 보는 앞에서 도끼를 들고 집을 전부 부쉈다. 그전에도 용역들은 쓰레기를 다 가져와서 가게 문 못 열게 행패를 부렸다. 점심시간에 식당에 와서 삼삼오오로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 손님을 내쫓았다. 그렇게 고통을 주면서 나가게끔 했다. 한 달 여유가 있는데도 강제 집행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법이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뒤에도 세입자 보상이 잘못된 거 같다며 조합에 이의를 제기했더니, 옆에 있던 용역 직원이 ‘너는 이사 가지 말아라. 포클레인으로 찍어죽일 때까지 여기 살아야 된다’고 협박을 했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서울 동대문 왕십리에서 온 이지연 씨는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지고 나서야 철거가 시작되는 걸로 알고 있었다”며 “그렇지만 사업시행인가가 난 직후부터 용역깡패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관리처분인가를 빨리 내기 위해서 세입자들이 자기 권리를 알기 전에 쫓아내려고 용역들이 아기가 자고 있는 새벽까지 집으로 찾아와 언제 이사 갈 거냐고 묻는다”며 “이건 극히 작은 폭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창문으로 내다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는 이유로 한 여성을 30~40명 깡패가 짓밟았다”며 “그러면서도 철거가 아니라고 우기는, 그 형태는 어느 지역이나 계속 똑같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왕십리뉴타운 2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 임흥규 위원장은 “용산 참사 이후 검찰이 세입자 조직을 없애버리려는 것 같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용역이 폭력을 휘두르는데도 경찰이 방관을 했다”며 “그래서 세입자 주거권을 위해 도로를 점거했는데, 그날 주민 39명이 연행됐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넘겼고, 검찰은 처음에 위원장만 재판에 회부하겠다더니, 참사 이후에는 세입자 39명 전원에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했다”며 “검찰은 지난해 12월 포클레인 작업을 저지하다 연행된 것까지 문제 삼아 다시 나서서 재수사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재개발 지역에서 온 한 주민은 “작년 10월 10일에 집이 부서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10월 9일 밤, 저녁을 먹는데 양복 입은 신사가 와서 종잇조각을 줬다”며 “아무것도 몰라서 옆집에 가지고 가서 보여줬더니 동네 분들이 철거한다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이웃들이 사람이 사는 집은 부수지 않으니까 지켜주자며 우리 집으로 모였다. 다음날 오전 10시쯤 되니 용역들이 집에서 나오라고 하더라.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올 것 같아서 버텼다. 용역이 소화기 같은 걸 방안으로 쏘았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연기를 마셔서 지금도 목이 아프다. 끌려나올 때 안에 있는 속옷이라도 가지고 나오겠다고 했는데 막았다. 아무것도 못 가지고 맨몸으로 쫓겨났다. 저희들 짐을 다 어디로 묻었는지 모른다.”

지금 이웃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다는 그는 “우리가 지나가면 용역들은 ‘질긴 년들, 아직도 버티고 산다’며 욕을 한다”며 “아이들은 집에 들어오질 않고, 남편은 충격 때문에 아직도 일을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에도 용역들이 현수막 하나를 떼려고 쇠파이프, 낫,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다”며 “지금 우리는 지옥이다. 말은 재개발이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가정 파탄”이라고 호소했다.

당시 철거 현장에 같이 있었던 이효성 씨는 “재개발 지역으로 되는 순간부터 세입자 동네에는 법이 없어지고 용역들이 법을 집행하는 집행관인 것 같다”며 “넉넉한 삶은 아니었지만 이웃끼리 재미있게 살던 동네 자체가 죽음의 동네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폭력에 당하는 걸 방치하는 관할구청이나 경찰을 보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건지 답답하다”며 “용산뿐만 아니라 나머지 지역도 다 똑같다”고 덧붙였다.

증언대회에 참석한 조동진 진보신당 기획국장은 “소위 용역깡패들이 개발이 진행 중인 동네에 일상적으로 상주하거나 배회하면서 각종 폭력과 인권 침해를 일삼고 강제퇴거를 담당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익숙하게 여겨지기도 한다”며 “바로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동진 국장은 “세입자들은 개발 과정에 대한 정보 자체가 막혀 있고, 대부분 개발사업 마지막 단계에서 보상책 등 본인과 관련된 사실을 알게 된다”며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나고 가게를 잃게 생겼지만 진지한 협상의 기회는 원천적으로 차단되며 용역업체의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개발 현장에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조직폭력 세력이 정비업체, 철거업체, 경비업체를 운영하면서 개발 이권에 개입하기 때문”이라며 “경찰은 용산에서도 나타나듯 용역업체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조 국장은 “개발이익의 공통점은 개발사업 기간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이라며 “용역업체의 배후에는 개발기간 단축을 노린 조합, 시공사, 관청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용산 4구역 재개발에서 삼성물산은 2010년부터 분양에 따른 개발이익을 제외하고 매년 867억 원씩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고 한다”며 “뉴타운 공약을 발표한 용산구청장 역시 자기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 주민들을 몰아내는 전면 재개발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Ⅱ. 폭력과 테러리즘의 사이



이렇게 억울한 심정으로 철거반대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은 망루에 접근하는 용역(깡패)의 접근을 막기 위해 폭력지향적인 물질을 보유하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투쟁의 진지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용산참사의 희생자들도 망루에 올라갈 때 화염병, 시너, 가스통 등의 폭력지향적인 물질을 지니고 올라갔으며, 그 것들을 경찰기동대‧용역깡패를 향해 사용했으므로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전면부정하기 어렵다. 방어를 위한 폭력도 폭력이라면 폭력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이 테러리즘‧도심 테러에 해당되는가?


여기에서 테러리즘이라는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도심 테러가 된다. 김석기 씨, 일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말하듯이 ‘용산참사 희생자=도심 테러리스트’의 등식이 성립된다.


문제는 ‘용산참사 희생자=도심 테러리스트’의 등식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폭력과 테러리즘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너무나 함부로 이러한 등식을 들이대며 용삼참사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이는 죄악이다. 폭력과 테러리즘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무지가 낳은 죄악이다. 이러한 죄악을 드러내기 위해 폭력과 테러리즘 사이의 간극을 논증하는 순서를 밟는다.



  1. 폭력과 테러리즘 사이의 간극



용산참사와 같은 폭력의 상호교환 체계에서 폭력과 테러리즘의 의미를 에워싼 투쟁(공방전)이 쌍방 간에 벌어지고 있다. 이 투쟁은 의미를 에워싼 투쟁이므로, 폭력의 의미와 테러리즘의 의미를 간파하는 게 급선무이다. 이 공방전의 논리적인 종차(種差)가 테러리즘에 있으므로 테러리즘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게 바람직하다.


테러리즘의 고전적 의미는 프랑스 혁명에서 찾을 수 있다. 자코뱅파 혁명정부를 이끈 로베스피에르는 ‘공화국에 대한 내외의 적을 분쇄해야한다. 공화국의 원리는 민중을 교도하여 이성을 활동케하는 데 있으며, 공포수단 (terreur)을 통해 적을 견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발상에 근거하여 로베스피에르는 반혁명적인 인물의 대량학살에 의해 혁명정권의 방위를 시도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렇게 공포를 이용한 통치(reign of terror)를 공포정치, 공포체제라고 부르며 이게 테러리즘의 첫 번째 의미이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위로부터의’ 폭력행사인데, 이와 달리 국가‧정부에 저항하는 ‘아래로부터의’ 폭력행사도 있다. 앞에서 인용한「포클레인으로 찍고, 밟고…진짜 도심 테러를 보라」『프레시안』(2009.2.12)의 ‘진짜 도심 테러’는 전자(위로부터의 폭력행사)를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김석기 씨의「경찰청장 내정자 사퇴 기자 회견문」의 ‘준 도심테러와 같은 불법행위’는 후자(아래로부터의 폭력행사)를 비난한 것이다. 이렇게 관점에 따라 폭력-테러리즘의 의미 사용이 다르므로 의미를 에워싼 투쟁이 전개된다.


그런데 위의 의미 투쟁은 폭력행사의 형태(어떠한 수단을 이용하여 폭력을 행사했느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경계가 모호해지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되기 쉽다. 폭력의 수단, 폭력에 동원된 물질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폭력과 테러리즘의 사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용산참사의 경우 희생자들이 보유한 물질이 저항폭력의 수단으로 그쳤지만, 경우에 따라 그러한 물질이 테러리즘의 도구가 되지 말라는 법칙이 없다. 경찰 특공대가 동원한 진압장비 역시 국가폭력(국가폭력에 의한 진짜 도심 테러)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동일한 물질이 폭력의 도구도 될 수 있고 테러리즘의 도구도 될 수 있으므로, 경계가 모해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호함을 피하려면 폭력형태가 아닌 폭력의 목적을 중심으로 살피는 게 좋다. 테러리즘과 폭력을 구별할 경우 그러한 행동이 수행되는 목적이 중요하며, 그러한 행동이 정치적인 목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테러리즘은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다수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며, 그 목적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다. 테러리즘의 본질적 특징은, 그 범죄행위‧사회파괴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데 있다. 주목 받을만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행사되는 폭력이 테러리즘이다. 이러한 목적은 조직적‧계획적으로 수행된다. 폭력을 충동적인 것과 전략적인 것으로 구분한다면, 테러리즘은 명백히 전략적인 폭력이다. 테러리즘은 폭력을 지닌 전략성, 즉 목적을 위한 폭력이라는 측면을 극단적으로 현실화한다. 그러므로 테러리즘은 ‘정치적 과제를 호소하기 위해 수행되며, 제3자가 희생되는 것을 용인하는 전략적 폭력이다. 이 점에서 통상의 폭력과 다르다. 다시 정리하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폭력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정책‧주의가 테러리즘이다.


위와 같은 차이점은 ‘용산참사 희생자=테리리스트’의 등식이 성립되는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이 기준점을 발견하기 위해 필자는 아래와 같이 질문한다(용산참사 희생자들을 테러리즘의 용의자로 간주하므로, 이 질문은 용산참사 희생자라는 주체를 향해 던져진다. 편의상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A'로 표기한다);


A는 2009년 2월 19일 망루에 올라갈 때 ①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다수의 사람을 죽일 의도가 있었으며 실제로 다수의 사람들을 죽였는가? ② 다수의 사람들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목적이 있었나? 있었다면 어떠한 메시지인가?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메시지이었나? 아니면 진짜 테러리스트처럼 다수의 사람들을 인질로 삼아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할 의도가 있었나? 다수의 사람들을 인질로 삼는 범죄행위‧사회파괴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의도가 있었나? ③ 자신들의 목적을 조직적‧계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통상적인 폭력이 아닌 전략적인 폭력을 사용했나? 목적을 위한 폭력이라는 측면을 극단적으로 현실화했나? 제3자가 희생되는 것을 용인하는 전략적 폭력을 동원했나?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모두 그렇다 즉 ‘전칭 긍정’을 하면 용산참사 희생자는 테러리스트가 된다. 부분 긍정 또는 부분 부정을 하면 폭력과 테러리즘의 사이에 빠진다. 모두 그렇지 않다고 전칭 부정을 하면  ‘용산참사 희생자=테리리스트’ 담론은 허위가 되어 용산참사 희생자를 근거 없이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은 무고죄가 성립된다. 위의 질문에 대하여 전칭 긍정할 만한 확증적인 근거가 없으면 ‘용산참사 희생자=테리리스트’의 담론이 성립되지 못할 뿐 아니라, 용산참사 희생자를 테리리스트로 몰아 두 번 죽이는 이중의 살인자로 전락하게 된다. 정부‧여당이 그런 짓을 했다면 무고한 민중을 집단학살한 살인정권이 된다. 살인정권으로 전락하는 ‘전복’ 현상이 일어난다.


여권이 제기한 ‘용산참사 희생자=테리리스트’ 등식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질문을 던지며 전칭긍정, 전칭부정, 부분 긍정, 부분 부정을 유도하면 논리적인 전복이 발생할 수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모는 여권이 전칭 긍정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용산참사 희생자를 테리리스트로 몰아 두 번 죽이는 이중의 살인자, 무고한 민중을 집단학살한 살인정권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는 ‘전복’이 발생한다. 용산참사를 도심 테러로 뒤집으려는 여권의 전복(용산사태의 전복) 시도가 뒤집혀(전복되어), 학살정권이라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는 진짜 ‘전복’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여권은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Ⅲ. 용산참사는 자살폭탄 테러인가?         



그러면 여권 인사들(김석기 씨와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장하듯이 ‘용산참사의 희생자는 도심 자살 테러리스트’인가? 용산참사는 자살폭탄 테러인가? 이라크의 자살폭탄 테러와 같은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전칭 긍정(확실하게 ‘자살폭탄 테러이다’는 답변)을 하지 못하면, 무고한 백성을 자살폭탄 테러범으로 낙인찍어 배제하는 ‘민중 학살의 범죄집단’이 된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이 이라크의 자살폭탄 테러와 같은 행동을 했다는 증명을 하지 못하면, 실정법적인 심판을 받기 이전에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민중 무고죄’의 죄목으로...


용산참사의 희생자를 도심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싶어 하는 여권 인사들의 발언이 망언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라크의 자살폭탄 테러와 견주면서 용산참사 희생자들이 정말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는지 추정한다.


이러한 필자의 노력이 주효하여 ‘용산참사 희생자=도심 테러리스트’의 누명을 벗게 된다면, 그러한 누명을 씌운 여권 인사들을 ‘민중 무고죄’로 걸어 역사의 심판장에 올릴 수 있겠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경우 면책특권 때문에 망언을 해도 실정법적으로 심판할 수 없으므로 역사의 심판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여권 인사들의 망언을 소극적인 측면에서 실정법적으로 심판하는 작업보다, 역사의 심판장에 올리는 게 더욱 중요하고 적극적인 작업일 수 있다.


그럼 이라크의 자살폭탄 테러를 거론하면서 필자의 의견을 덧붙인다.



  1. 이라크의 자살폭탄 테러



이라크의 자살폭탄 테러는, 현대성이 이슬람적 본질을 오염시켰다는 차원에서 그것을 조장‧촉진시키는 개인이나 집단을 그 주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 본질의 복원을 위한 차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행위, 곧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이해한다…이슬람의 세속화 거부가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는 테러로 나타나는 것이므로…이슬람 세계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넓지 못하면 인간의 신체를 무기로 활용하는 ‘자살폭탄’ 테러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테러는 왜 자살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이라크의 자살폭탄 테러는 테러 행위자들의 자살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지하드(jihad)로 명명된 이러한 자살은 결국 현대성으로 오염된 이슬람적 본질의 복원을 위해 행해짐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들에게 있어 자살테러는 이슬람의 이름을 앞세운 거룩한 ‘종교’ 전쟁이다…일반적으로 이슬람교도는 세 가지 상징을 통해 지하드를 수행한다. 첫째는 펜이다. 이는 강의, 비디오테이프 설교, 책, 토론 등을 통해 이슬람을 전도하는 것이다. 둘째, 저울, 즉 법률이다. 이슬람교도가 지역의 다수를 차지하면 선거를 통해 이슬람법으로 개정을 하고 시행하려는 것이다. 셋째, 칼과 무력이다. 이와 관련하여 알 카에다의 훈련교범에도 ‘펜과 총으로, 말과 총탄으로, 혀와 이로’라는 모토가 적혀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상징을 통한 지하드가 한계에 직면할 경우 이들은 이슬람적 본질을 지키기 위해 투쟁의 강도를 높이면서 이른바 물리적 폭력수단을 동원하는 테러로 나아간다. 물론 이슬람교도가 지하드로 상징되듯이 ‘거룩한’ 이유에서의 순교가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물리적 폭력을 열망하거나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보기에 그러한 폭력은 단지 시련과 위기의 시기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통상의 폭력이 아닌 테러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신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종교적인 신앙심이나 어떤 신념‧이념에 따라 테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자살폭탄 테러가 잦은 중동의 경우 이슬람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자살폭탄 테러는 주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감행하며 유교를 믿는 동양인들은 선호하지 않는다. ‘신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는 유교의식,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는 불교의식이 강한 동양인들은 극렬한 자살폭탄 테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동양인도 테러를 했지만 불특정 다수를 죽이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혼자 죽는 방식을 선택한다. 일본인의 할복자살과 한국인의 분신자살은 자신의 신체만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유교‧불교의 사생관에 영향을 받는 동양인의 자살방식이 자신의 주로 신체만을 가해하므로 자살테러라고 이름 붙이기 어렵다. 더구나 도심 한복판에서 드러내고 자살테러를 감행하지 않는다. 아랍 게릴라들이 중동의 대도시에서 행하는 자살폭탄 테러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유사한 것이 있다면 도쿄 시내에서 발생한 옴 진리교 사건이다. 이 사건도 옴 진리교라는 유사종교의 근본주의에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용산참사가 도심 테러라면 적어도 옴 진리교 사건과 같은 일이 용산참사 현장에서 발생한 점, 옴 진리교와 같은 근본주의가 내재해있는 점을 밝혀야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심증에 따라 도심 테러라고 규정하면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살인자가 된다.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은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무슬림들처럼 성전(聖戰; sacred war)을 전개하기 위해 망루에 올라가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살려고’ 망루에 올라갔다. 죽으려고 올라가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를 테러의 방식으로 죽이려고 망루에 올라간 것은 더욱 아니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 분투한 ‘생활의 전사(戰士)’이지, 무슬림과 같은 ‘성전(聖戰)의 전사’가 아니다. 이러한 생활의 전사를 도심 테러리스트로 내모는 것은 ‘저주 받아야할 역설’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의 혓바닥으로 내뱉을 말이 아니다.



Ⅳ. 결어



위와 같은 필자의 독설(?)을 감수하면서 용산참사 희생자가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끝까지 주장하고 싶으면, 2009년 2월 19일에 참사현장 건물의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이 ‘성전의 전사로서 지하드의 순교의식과 유사한 의식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해야한다. 생활의 전사가 아닌 성전의 전사임을 증명해야한다. 증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책임은 단순한 실정법적인 책임을 넘은 역사적인 책임이 될 것이다. 의도적으로 ‘도시 테러리스트’라는 망언을 내뱉은 망나니의 짓으로 기록될 것이다.    


부시 정권이 이라크의 저항 게릴라들을 향해 ‘도심 자살폭탄 테러범’이라고 비난하는 상투적인 수법을 이 명박 정권도 모방한 듯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도심 자살폭탄 테러리스트’고 매도하고 있는 듯하다. 부시 정부가 보기에 미국 패권에 저항하는 모든 조직이 테러리스트이듯이, 이명박 정권에 저항하는 모든 조직‧철거민 운동조직(전철연)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용산참사의 철거민들은 이라크의 저항 게릴라‧알 카에다처럼 도심 자살폭탄 테러를 주도면밀하게 실행할 능력도 의지도 계획도 없다. 바그다드‧예루살렘 시내에서 자주 발생하는 도심 자살폭탄 테러와 용산 철거민 투쟁의 유형이 다르다. 이 점을 경찰이 더 잘 알 텐데, 경찰이 앞장서서 철거반대 투쟁자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낙인찍는 저의가 무엇인가? 폭도로 배제하여 철거민들을 시민사회에서 추방하려고 하는가? 공안차원에서 반체제 세력‧빨갱이로 규정하여 철거민 운동의 사회적인 거세를 시도하는 것인가?


위의 질문에 대한 성실하고 합리적인 답변이 없으면, 무고한 백성들을 테러범으로 내몬 역사적인 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용산참사에 대한 본말전도의 검찰수사 발표, 김석기 씨의 ‘도심 테러’ 발언, 한나라당 의원들의 ‘알 카에다 식 자살폭탄 테러’ 발언에 대하여 역사는 반드시 엄중한 문책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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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359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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