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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 만들기의 대안

동아시아의 평화 공동체를 위하여

김승국

요즘 한반도-일본-중국-러시아를 에워싸고 ‘탈미(脫美) 동아시아 연합체’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전쟁 중독에 걸린 부시 정권은, 동아시아에서의 ‘반테러 전쟁 전선’ 붕괴가 ‘탈미 동아시아 연합체’를 형성함으로써 ‘평화의 바람[平和風]’이 일어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최근 들어 ‘북한 핵 개발’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또 다시 두들기는 미국 행정부의 행각에서 ‘평화풍[平和風]에 대한 미국의 공포심’을 읽어낼 수 있다.

미국 배제의 새로운 바람이 ‘아시아인 주도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강풍이 될 것을 우려한 미국은, 강풍의 예방조치로 ‘북한 핵 개발 시인’ 소동을 벌였다. 새로운 바람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북한을 ‘핵 개발을 시도하는 악(惡)의 축(軸)’으로 떼어냄으로써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를 망친 다음에 ‘탈미 동아시아 연합체 형성 기류’에 찬바람을 일으키려는 저의가 엿보인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정세를 해독하는 코드(Code)는, ‘반테러 전쟁 전선 對 탈미 아시아 연합체 형성 기류’의 길항관계(拮抗關係) 위에서 부는 ‘전쟁 바람[戰爭風] 對 평화 바람[平和風]의 작용 ・반작용’이다. 여기에서 미국의 작용(戰爭風으로서의 action)에 맞서는 반작용(reaction: 平和風)의 힘, 즉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힘’을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축적해 가느냐가 관건이다.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
-‘탈미(脫美)’를 중심으로-

우선 동아시아 각국의 대내외 정책이 평화 지향적으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모색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를 지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개의 구도, 즉 아시아의 ‘탈미 정치연합’, ‘탈미 다자간 안보 틀’ ‘탈미 경제협력틀’이 3위1체를 이루며 ‘아시아의 반미(反美) 민중연대’와 결합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아시아의 ‘탈미 정치연합’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ASEAN(동남아시아 국가연합)+3(한국 ・일본 ・중국)의 기능을 ‘탈미’ 쪽으로 견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ASEAN에 기반한 ARF(ASEAN 지역 포럼)에서도 ‘탈미 다자간 안보 틀’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탈미 경제협력 틀’인데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동아시아에 침투해 있는 마당에 이런 틀을 내오기가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자원 ・자본을 동아시아인이 공동사용하는 취지의 동아시아 경제공동체(EU의 동아시아판)를 지향한다면 어려울 일도 아니다. 동아시아의 공동자산인 지하자원 ・‘철(鐵)의 실크로드’를 동아시아인이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다. ‘철(鐵)의 실크로드’에 동아시아인의 공동자산인 지하자원을 실어 나르는 다자간 협정을 맺음으로써, 미국 자본 없이도 동아시아의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는 게 급선무이다.

위에서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거론했는데, ‘동아시아 민중 연대’와 결합되지 않고는 결코 ‘동아시아 연합체’를 이룰 수 없다. 지금 동아시아 민중의 반미정서가 날로 고조되어 가고 있다. 동아시아에 일반화된 ‘반미의 민중정서’를 ‘탈미 정치 ・안보 ・경제 연합’과 결합시켜 내는 것이 ‘동아시아 평화 전략’의 최대 과제이다. 이런 전략적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NGO의 전략적 연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탈미 동아시아 연합’은 미국을 배제하는 게 목표가 아니며 미국 문명과의 평화적인 공존을 통해 동아시아도 평화롭게 잘 살고 미국도 잘 사는 게 최종 목표이다. 이 목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술적으로 동아시아 각국이 ‘탈미’하고 동아시아의 민중이 ‘반미(反美)’할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의 ‘탈미’와 동아시아 민중의 ‘반미(反美)’가 어우러져 ‘미국의 상대화(相對化)를 통한 평화의 힘’을 창출할 수 있다. 이때 미국 문명이 응수하여 전쟁(북한과의 전쟁 등)이 아닌 ‘평화’로 화답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전쟁에 굶주린 미국의 지배계급이 불응한다면 동아시아인과 미국인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형성에 주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방콕에서 2003년 12월 8일~13일에 열린 ‘Asian Civil Society Forum’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의 일부이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37호(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