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안보-군사/전쟁론, 전쟁관

군사-산업적 영화

김승국

루스(Anita Loos)는 ‘할리우드의 기원을 1차 세계대전에 귀속시킨다’고 말했다. 군사 산업 시대의 영화-도시 <치네치타(Cinecittà), 할리우드>가 고대 도시 국가의 연극 도시의 뒤를 잇는다. 처음에는 스튜디오와 상영관이 과거의 공동묘지처럼 교외에 세워졌다. 연극이 여전히 경험적으로 ‘(도시의) 시민권(droit de cité)’을 가진 것으로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관계들의 원천이었던 반면에 ‘무성 영화’는 주변적이었고, 말단 변두리에 흩어져 존재하는 아직 통합되지 않고 심지어 귀화하지도 않은 인구, 즉 문맹의 이민 노동자를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전사의 최면 상태처럼, 영화의 최면 상태는 삶 자체가 인구 과잉의 교외에서의 힘든 일상이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특정한 사회적 고통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동양과 서양이 시민적 형제애를 발견하거나 서로 융합되지 못하면서 뒤섞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목표 대상이 된 인구는 동일했다. 그것은 군사-산업적 프롤레타리아라는 ‘무정형의 사회학적 집계’로서, 이들은 ‘볼셰비키의 위협’이 뮌헨에서 인도의 국경으로까지 확산되던 순간에, 그리고 미국인들이 날마다 러시아인들이 이미 파리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염려했던 그 순간에 공장으로, 전쟁터로 무차별적으로 소환되었다.

역설적으로, 지속적이고 영원하기까지 한 조국에 대한 이주민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준 것이 영화였다. 그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시민권이 되었다. … 당시 관객들 사이에서 공황(panic) 상황을 야기한 것은 카메라-사격의 정밀성이다. 이때 관객 각자는 자기 자신이 열차에 치이거나 다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 자신의 신경반응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관객들은 죽음을 재미있는 것으로 느끼기 시작했으며, 서부 영화는 더욱더 많은 죽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사람들은 정확히, 더 많은 희생자를 내고 (적군) 부대와 군수품을 더 강력하게 파괴하는 것은 유능함의 표지, 전쟁 지휘자의 인격의 표지, 더 나아
가서는 자신들의 정통기술의 입증의 표지로 간주하는 군사령부처럼, 사망자들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군사-산업적 영화는 전쟁과 그 대단원의 정수이기도 한 살인-자살(동족 간이든 다른 종족 간이든)의 결투를 무한정 재생산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을 급속히 뒤흔들 모델이 된다.

수필가 존 A. 코우웬호벤(John A. Kouwenhoven)은 ‘미국에서 미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작품을 출판한다. 여기서 그는 마천루, 껌, 일관 조립 라인, 만화, 야구 등과 같은 ‘징후’들로 이루어진 이 나라에서 어떤 공통 요인이 응집될 수 있을지를 묻고 있다. 사실상, 군사-산업적 영화는 국가의 일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그리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각 시민들의 인성 프로필을 구성하기 위해 이 기호 더미들과 정보들을 책임지고 있었다.<폴 비릴리오(Paul Virilio) {전쟁과 영화}  136쪽>
(2004.12.17)
---------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338~340쪽을 참조하세요.

'전쟁-안보-군사 > 전쟁론, 전쟁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유(Metaphor)로서의 전쟁  (6) 2009.05.15
지각(知覺)의 병참술  (1) 2009.05.15
구경거리(spectacle)와 전쟁  (0) 2009.05.15
전쟁과 숭고 미학(崇高美學)  (1) 2009.05.15
공포의 균형  (2) 2009.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