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안보-군사/전쟁론, 전쟁관

구경거리(spectacle)와 전쟁

김승국

전쟁을 체험하는 것과 전쟁을 보는 것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병사는 놀이꾼(Player)이자 구경꾼(Spectator)이다. 적을 공격하는 것은 적을 비추이는 것(allumer)이다. 영화는 전쟁이며, 전쟁은 영화이다. ‘전자 정보전’ 시대인 현대에 들어서 ‘현실’과 ‘영상’의 길항이 생겨난 게 아니다. 무릇 사진이나 회화의 기술(techonology)단계, 즉 非언어적인 미디어가 활용될 때부터 이미 ‘정보전쟁’이 일어났다. 에이젠스타인의 {전함(戰艦) 표촘킨}은 ‘오데사 단계’의 전투장면 속에 ‘구경거리와 전쟁’의 연관을 잘 나타낸다.} 전쟁은 파괴의 수단과 파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뒤섞고 운동의
과도한 생산을 통해 거리를 위조함으로써 외양을 위조한다.<폴 비릴리오(Paul Virilio) 지음, 권혜원 옮김 {전쟁과 영화} (서울, 한나래, 2004), 87쪽>

전장은 처음부터 지각의 장이기 때문에 군사령관에게 있어서 병기는 화가에게 있어서의 붓과 팔레트에 비유될 수 있을 만한 재현의 수단이다. 동양의 전사들은 회화적 재현을 중요시했다. 전사의 손은 붓을 놀리는 것에서 백병(白兵)을 다루는 것으로 쉽게 이행하였다. 마찬가지로 비행사의 손은 머지않아 무기를 가동시키면서 이중 카메라의 셔터를 자동적으로 가동시키게 된다. ‘전쟁 중인 인간에게 무기의 기능이란 곧 눈의 기능이다.’ 폭발이라는 은유는 정치에서만큼이나 예술에서도 통용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영화인들은 전장에서 뉴스나 선전 영화를 제작했으며, 그러고 나서 ‘예술 영화’로 연속적으로 진화하게 된다.<폴 비릴리오 {전쟁과 영화} 73쪽>

전쟁 뉴스 영화나 공중 고속도 촬영 자료들이 군사 기밀로 남아 있거나, 특히 미국에서는 방치되거나 무용지물로 평가된 반면, 영화감독들은 이러한 기술적 효과들을 거대한 대중에게 전달하게 된다. 전대미문의 스펙터클로서, 전쟁과 그 형태학적 파괴의 연장으로서 말이다.<폴 비릴리오 {전쟁과 영화} 74쪽>

따라서 표상 없는 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심리적 신비화를 수반하지 않는 최첨단 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기는 파괴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지각의 도구이기도 하다. 즉 그것은 감각기관과 중추신경 체제의 층위에서 화학적, 신경적 현상에 의해 나타나는 자극제로서, 반작용되고 지각된 대상들을 확인하여 다른 대상들과 구별하는 것 등등에 영향을 미친다. 2차 세계대전의 급강하 폭격기 융커 87(Junker87)은 잘 알려진 예이다.<폴 비릴리오 {전쟁과 영화} 29쪽>
(2004.12.17)
-----------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337~338쪽을 참조하세요.


 

 

'전쟁-안보-군사 > 전쟁론, 전쟁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각(知覺)의 병참술  (1) 2009.05.15
군사-산업적 영화  (2) 2009.05.15
전쟁과 숭고 미학(崇高美學)  (1) 2009.05.15
공포의 균형  (2) 2009.05.15
한반도의 전쟁 구도  (2) 2009.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