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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평화

고대 중국의 民은 노예 고대 중국의 民은 노예 김승국 정리 평화의 담지자가 민(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民’은 주권자로서의 민중•多衆•국민•시민•주민의 ‘民’을 의미한다. 그런데 고대 중국의 ‘민’은 이러한 주권자로서의 民과 반대로 노예이었다. 이 점을 상술한 아래의 자료를 참고할 것.(출처=장이칭 외 지음, 나진희 옮김 『한자 가족』 (서울, 여문책, 2016) 57~58쪽) 더보기
평화 사경 (63)-장자의 眞人 ① 평화 사경 (63)-장자의 眞人 ① 김승국 정리 예수님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격찬했습니다 그렇다면 동양의 성인들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Peacemaker)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동양의 성인들도 ‘평화’의 담론을 제시했지만 ‘평화를 만드는 사람(Peacemaker)’은 特稱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보통의 Peacemaker’보다 높은 수준의 인간에 관한 언급은 아주 많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격앙가(擊壤歌: 日出而作,日入而息,鑿井而飮,耕田而食,帝力于我何有哉)를 부르게 한 성인(최고의 정치지도자) 이야말로 가장 수준 높은 Peacemaker입니다. 노자•장자가 기리는 ‘무위정치를 펼치는 성인’ 역시 極上의 Peacemaker입니다. 특히 『莊子』 「大宗師」편의 ‘.. 더보기
평화 사경 (56)-不爭之德 평화 사경 (56)-不爭之德 김승국 정리 善為士者,不武;善戰者,不怒;善勝敵者,不與;善用人者,為之下。是謂不爭之德 훌륭한 무사는 무용을 보이지 않습니다. 훌륭한 전사는 성내지 않습니다. 훌륭한 승리자는 대적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고용인은 스스로를 낮춥니다. 이를 일러 ‘겨루지 않음의 덕(不爭之德)’이라 합니다. 진정한 무사는 함부로 날뛰거나 자기의 무술, 무력을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기 때문이다....남과 물리적으로 힘을 겨루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하나됨으로 얻는 도의 힘, 자애의 힘으로 이기는 것이 완전한 이김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경우 상대방과 무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 파악(satyagraha)’을 통해 진리의 .. 더보기
평화 사경 (54)-天下之牝, 牝常以靜勝牡 평화 사경 (54)-天下之牝, 牝常以靜勝牡 김승국 정리 세상의 여인, 여성은 언제나 그 고요함으로 남성을 이깁니다. 제36장을 비롯하여 『도덕경』 전체를 통해 여성적인 성격, 부드럽고 안온하고 차분하고 겸허하고 포용적이고 개방적이고 수납적인 태도가 떠들썩하고 덤벙거리고 저돌적이고 능동적인 남성을 이긴다고 본다. 여기서는 특히 ‘고요함’과 ‘자기 낮춤’의 자세를 통해 남성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김승국의 의견; 도가(노자•장자)와 유가(공자) 모두 주역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도가는 주역의 地-坤 卦 중심의 어머니(母性) 지향적인 반면에 유가는 天-乾 卦 중심의 아버지(父性) 지향적(가부장 지향적)입니다. 天-乾 卦 중심인 탓인지 유가는 수직적, 권위적, 진취적, 창조적, 능동.. 더보기
평화 사경 (52)-民多利器, 國家滋昏 평화 사경 (52)-民多利器, 國家滋昏 김승국 정리 民多利器, 國家滋昏 사람 사이에 날카로운 무기가 많을수록 나라가 더욱 혼미해지고 세력확장을 위해서 영토를 넓힌다,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 전쟁을 하고, 이를 위해서 무기를 개발한다, 이런 저런 새 아이디어를 창출해서 뭔가 사회를 위해서 공헌한다, 기술을 개발하여 신기한 물건을 자꾸 만들어 낸다, 질서와 안정을 위해서 이런 저런 법령을 계속해서 제정한다 하는 등등은 결국 한 편으로는 사람을 너무 주눅들게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 야심을 품게 하므로 그들을 더욱 가난하게 하고, 더욱 혼미하게 하고, 더욱 괴상한 일을 꾸미게 하고, 더욱 부정 부패가 창궐하도록 하는 등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온다는 것이다. 더보기
평화 사경 (50)-安平太 평화 사경 (50)-安平太 김승국 정리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위대한 형상을 굳게 잡으십시오 세상이 모두 그대에게 모여들 것입니다. 그대에게 모여들어 해받음이 없을 것입니다. 오직 안온함과 평온함과 평화만이 깃들 것입니다. 지도자가 위대한 상징의 참뜻을 터득하고 그 원리에 따라 다스리면 모든 사람이 그에게로 모일 것이다. 모두 모여들어 그 지도 밑에 살게되면 해받는 일이 없게 된다. 모두가 그의 지도 아래에서 쉼과 평안함과 만족을 얻게 된다.(이 구절을 “도를 굳게 잡고 세상에 나가면 어디를 가더라도 해받음이 없고, 오직 안온함과 평안함과 평화만을 누릴 수 있다.”로 풀이할 수도 있다.) 더보기
평화 사경 (49)-不欲以靜 天下將自定 평화 사경 (49)-不欲以靜 天下將自定 김승국 정리 不爲以靜 天下將自定 욕심이 없으면 고요가 찾아들고 온누리에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욕심이 없어지면 고요함(靜)과 평화가 깃들게 된다고 한다. 부처님도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가르치면서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집착’ 때문이라고 하였다. 칩착을 끊은 상태 곧 ‘욕심의 불길이 꺼진’ 상태, 이 때 가능하게 되는 시원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자유의 경지가 바로 ‘니르바나(열반)’라는 것이다...나 중심의 생각, 거기서 나오는 덤벙거림을 청산하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의 평화에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보기
평화 사경 (46)-朝三暮四 평화 사경 (46)-朝三暮四 김승국 정리 謂之朝三 何謂朝三? 狙公賦芧曰: “朝三而暮四.” 衆狙皆怒. 曰: “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 어느 날 저공狙公이 원숭이들에게 말했다. “아침에는 도토리를 세 개 주고, 저녁에는 네 개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저공이 다시 말했다. “좋다. 그러면 아침에는 도토리를 네 개 주고 저녁에는 세 개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사실 원숭이들만 그런게 아니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핏대를 세우고 얼굴을 붉혀가며 다투는 것들 중 대부분이 아침에 세 개냐, 저녁에 세 개냐의 문제가 아닌가? 아침에 세 개냐, 저녁에 세 개냐 하는 논쟁은 사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병력이 손실.. 더보기
평화 사경 (44)-吾喪我 평화 사경 (44)-吾喪我 김승국 정리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된다; “南郭子綦隱几而坐,仰天而噓,嗒焉似喪其耦。顏成子游立侍乎前,曰:「何居乎?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今之隱几者,非昔之隱几者也。」子綦曰:「偃,不亦善乎而問之也!今者吾喪我,汝知之乎?女聞人籟而未聞地籟,女聞地籟而未聞天籟夫!」子游曰:「敢問其方。」子綦曰:「夫大塊噫氣,其名為風。是唯无作,作則萬竅怒呺。而獨不聞之翏翏乎?山林之畏佳,大木百圍之竅穴,似鼻,似口,似耳,似枅,似圈,似臼,似洼者,似污者;激者,謞者,叱者,吸者,叫者,譹者,宎者,咬者,前者唱于而隨者唱喁。泠風則小和,飄風則大和,厲風濟則眾竅為虛。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子游曰:「地籟則眾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敢問天籟。」子綦曰:「夫吹萬不同,而使其自已1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 더보기
평화 사경 (42)-眇乎小哉,所以屬於人也 평화 사경 (42)-眇乎小哉,所以屬於人也 김승국 정리 위의 문장을 해설하면 아래와 같다; 내가 바로 하늘이고 하늘이 곧 나이며, 몸이 곧 道이고 道가 곧 몸이기 때문에 아주 위대하다. 그것이 바로 성인이다! *출처=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나는 장자다』 357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