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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칼럼-에세이

[미완성 습작 (2)] 잘사는 평화 (1)

잘사는 평화

 

김 승국

 

 

플라톤(Platon)의 저서 『크리톤』의 대화 중에 소크라테스가 “...우리는 그저 사는 것을 가장 소중히 여길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어 “<잘>이란 <아름답게>라든가 <올바르게>라든가와 같다”라는 말이 나온다. 즉 <잘 산다>의 <잘>을 <아름답게> <올바르게>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잘>이란 결국 <올바르게>요 <잘 산다>는 것은 <올바르게 사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잘 산다>는 것은 돈이나 신체나 세상의 평판이나 지위에 머리를 쓰지 않고,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자기의 영혼 즉 정신을 가장 좋은 것, 가장 훌륭한 것이 되게 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최명관「<잘 산다>는 것의 의미」『숭전대학교 논문집』제3집, 1971, 40․43쪽]

 

 

소크라테스가 말하듯이 ‘잘 사는’것은 ‘올바르게 사는’ 것 즉 정의롭게 사는 것(義로운 삶)이요, 자신의 영혼(이성)을 가장 훌륭한 것이 되도록 정화하는 것으로 평화의 요체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잘 사는’것 자체가 평화이다. 다만 개인만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와 더불어 잘사는 것이 넓은 의미의 평화이다. 사회 공동체와 더불어 잘사는 평화를 강구하는 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하게 요청되어 왔다.

 

 

우선 동양에서 말하는 잘사는 평화의 지평을 살펴 본 다음에 서양의 ‘잘사는 평화’에 접근해본다.

 

 

Ⅰ. 동양의 ‘잘사는 평화’

 

 

동양에서 ‘잘 사는 평화’의 핵심은 天-地-人의 조화에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동양 고대의 춘추전국 시대는 전쟁 ‧ 군사 지향적인 사회, 군사지향적인 사회 구성체(군사 구성체)이어서 ‘잘 사는 평화’를 전혀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군사 구성체를 ‘평화 구성체’로 전환(transformation)하는 것이 춘추전국 시대의 과제이었다. 이 과제를 풀기 위하여 중국 고대의 성현들(공자 ‧ 맹자 ‧ 노자 ‧ 장자 ‧ 묵자 등)은 평화 지향적인 사회 구성체(평화 구성체)의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잘 사는 평화’의 像을 제시했다. 

 

 

이 글은 춘추전국 시대의 ‘평화 구성체 담론’을 유가의 의전론(義戰論), 묵자의 반전론(反戰論), 노자의 비전론(非戰論)으로 나눈 다음, 이를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사회구성체’론으로 연결하기 위해 ‘대동사회(大同社會)’와 ‘소강사회(小康社會)’라는 틀로 다시 수렴한다.

 

 

  1. 유가-묵자-노자

 

 

춘추전국 시대 5백년간은 제후들이 군웅할거하며 쟁패하는 전쟁의 시대였다. 춘추전국 시대는 전쟁, 지배계급의 착취, 민중의 굶주림으로 점철된 말세이었다. 춘추전국 시대라는 난세에 민중들은 전쟁과 착취로 유랑민이 되어, 도둑이 되지 않으면 자식과 스스로를 노예로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비참한 처지였다.

 

 

그 당시 민중들의 소망은 천하에 무엇을 요구하기 보다는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잊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장자는 『莊子』天運에서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忘親易 使親忘我難. 
친구의 우정을 잊기는 쉬우나 친구들에게 나를 잊게 하기는 어렵고,
使親忘我易 兼忘天下難.
친구들에게 나를 잊게 하기는 쉬우나 천하를 두루 잊기란 어렵고,
兼忘天下易 使天下兼忘我難.
천하를 두루 잊기는 쉬우나 천하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기는 어렵다”

 

 

민중이 소망하는 태평성세란 [전쟁의 주동자인] 임금이 누구인지 모르고 아무 간섭 없이 농사짓고 우물 파서 등 따습게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풍년이 들면 태평성세를 기뻐하며 격양가(擊壤歌)를 부른다. 노장[노자 ‧ 장자]이 말하는 ‘무치(無治)의 성군정치(聖君政治)’는 이러한 민중의 소망을 대변한 것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 들에 나가고(日出而作),
날이 저물면 들어와 쉰다(日入而息).
우물을 파 물을 마시고(鑿井而飮),
농사를 지어 밥을 먹으니(耕田而食),
나에게 임금의 노력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帝力于我 何有哉)”

 

 

위의 ‘격양가’는 요 임금 시절의 태평성세에 민중이 부른 노래로 인류의 오랜 소망인 무치(無治)의 사회, 즉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열망한 것이다.

 

 

전쟁이 지긋지긋하여 ‘격양가’를 부르며 평화의 세상을 꿈꾸었던 민중들. 이들의 희망을 담아 ‘평화의 담론’을 제시한 성현들의 말씀을 중심으로, 춘추전국 시대 당시의 ‘지속적인 평화를 통한 사회구성체’론을 살펴본다.

 

 

  1) 유가의義戰論

 

 

孔 ‧ 孟이 부르짖는 ‘의전(義戰)’은 멸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끊긴 세습귀족의 가계(家系)를 잇는 이른바 ‘인사(仁師)’의 발동이었다. 서주(西周) 이래의 노예주 사회 상부구조를 파괴하려는 신흥지주 세력을 응징하는 정벌(반혁명) 전쟁만이 정당하다는 것이었다.[이 운구 ‧ 윤무학 공저 『묵가 철학 연구』(서울, 성균관대 대동문화 연구원, 1995) 61~64쪽 요약]

 

 

공자는 전쟁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고 제후들 간의 겸병전쟁이나 제후국 내의 소자치국(附庸)들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병합하는 전쟁을 반대한 것뿐이다. 천자가 임명한 공경들의 소국을 제후가 없애면, 주례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는 제후들이 천자를 무시하고 주례를 범하는 무례를 한탄했을 뿐, 영일 없는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으며, 전쟁비용 때문에 굶어죽고 얼어 죽는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맹자도 반(反)패도주의를 계승했으므로 당시 제후들의 겸병전쟁을 반대한다. 그래서 맹자가 춘추시대에 義戰이 없었다(春秋無義戰)고 『孟子』「盡心下」에서 비판한 것이다.

 

 

공자 ‧ 맹자의 의전론(‘天子에게 의로운 전쟁의 독점권이 있으므로 제후들의 겸병전쟁은 부정의하다’는 논리)은, 묵자의 반전론과 그 성격을 달리한다. 그러면 묵자의 반전론을 설명한다.

 

 

  2) 묵자의 ‘兼愛-非攻’

 

 

묵자(墨子)가 제창하던 十大 슬로건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정치이슈로 ‘겸애(兼愛)’와 ‘비공(非攻)’을 들 수 있다. 묵자가 보기에 인인(仁人)이 반드시 해내야 할 임무가 있다. 그것은 천하의 해(害)를 물리쳐서 이(利)를 추구하는 일이다. 천하의 해(害)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제후국(諸侯國)들이 저지르는 침략행위이다. 귀족들 간에 세력이 큰 집안이 세력이 작은 집안을 겁탈하고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는 일들이다. 이 모두가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을 가려서 달리 보는, 자기 이익만을 챙기려는 데서 일어난 것들이다. 그러므로 墨子는 ‘別, 非也’라고 배척했던 것이다.

 

 

묵자가 활약하던 때는 주대(周代) 노예제 사회가 해체 길에 직면한 시기였다. 그는 ‘別’이 역사발전의 커다란 걸림돌이라고 파악하였다. 여기서 ‘겸애 ‧ 교리’는 천하의 해(害)를 물리치고 이(利)를 일으키기 위한 최대의 정치이슈였다. 그것만이 인류 모두가 서로의 이익을 옹호해줌으로써 복지증진을 기대할 길이라고 묵자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를 기저로 하여 ‘비공(非攻)’의 논리가 전개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 받아야 하는 직접 피해의 당사자가 그들 민중이었기 때문이다.

 

 

『墨子』전편에 걸쳐 그 기저를 이루는 ‘겸애 ‧ 교리’의식은 ‘비공’의 논리를 필연적으로 전개시킨다. ‘비공’은 침략전쟁이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가 없다는 논리이다. 특히
민중의 이익과 상치되는 침략전쟁은 불의(不義)이다.

 

 

  3) 노자의 無爲 정치․ 小邦(小國) 寡民

 

 

노자는 ‘부쟁(不爭)’을 자기 삶의 방식으로 결정하였다. 노자가 보는 최상의 정치형태는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 일이다. 상대와 극한까지 맞서지 않는 이가 실제로 잘 싸우는 자라고(『老子』27장) 한다. 본래 자연의 법칙은 弱이 强을 이기고 柔가 剛을 누르게 되어 있다(『老子』78장)는 것이다. 단단한 나무가 쉽게 부러진다. ‘兵强則滅’이라고 하였다.

 

 

전쟁은 인간 최대의 작위(作爲)이다. 老子는 처음부터 이를 부정한다. ‘무위(無爲)’라야만 능히 ‘無不治’할 수 있다고 한다.

 

 

老子가 제시한 ‘부쟁(不爭)’의 전술에 따르면, ‘不敢爲主, 而爲客’하여야만 한다. 주동의 위치에 절대로 서지 말고 수동의 자세를 취하라. 먼저 도발해서는 안 되며 침공에 대한 방어만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노자는 몰락귀족의 신흥집권세력에 대한 질책에 머물렀다. 그 이상의 적극성은 없다. ‘민중으로 하여금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해 줄 것이며 전쟁무기가 비록 우수하다 할지라도 이를 쓸 데 없도록 만들라’(『老子』80장)고 하는 당부로 그칠 뿐이다. 민중의 직접 항쟁(농민전쟁)과는 질이 다른 ‘부쟁(不爭)’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소방과민(小邦寡民)’은 老子가 그리던 이상적 정치형태이다. 옛날(夏 ‧ 殷)에는 나라 수가 삼천을 넘었던 것이 춘추(春秋)시대에 들어와 백 수십 국으로 줄고 다시 전국(戰國)시기는 7대(七大)강국으로 병합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바로 겸병(兼倂)전쟁을 반대한다는 뜻이다.

 

 

  2. 大同社會-小康社會

 

 

중국 성현들의 평화의 담론이 비록 ‘의전론’ ‘반전론’ ‘비전론’으로 갈리지만, 모두 전쟁이 없는 태평성세를 꿈꾼다.

 

 

‘태평성세’의 어원은『禮記』禮運편에 최초로 보이는 이상사회로서의 ‘大同’이다. 이 때의 同은 平과 和의 뜻이며 大同社會는 평등 ‧ 평화 사회를 의미한다.

 

여불위(呂不偉)는 BC. 239년에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펴냈는데 그는 이 책에서 ‘大同이란 천지만물이 일신동체(一身同體)라는 뜻이며, 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천하 만인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 묵자의 大同-安生生 사회

 

 

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인민이 전쟁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난세였다. 그의 이상사회는 전쟁이 없고 생명이 안락하게 살아가는 ‘천하에 남이 없는(天下無人)’ 安生生 大同社會이었다. ‘天下無人의 安生生 大同社會’는 묵자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통한 사회구성체’이었으며, 『禮記』禮運 편이 묵자의 安生生 大同社會를 잘 표현하고 있다.

 

 

기세춘 선생은 자신의 저작 여러 곳에서『禮記』禮運편과 묵자의 安生生 大同社會論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禮記』의 ‘대동사회’는 유가의 사상이 아니라 묵자의 이상사회인 ‘安生生사회’를 설명한 것이다.『禮記』에 이것을 기록한 것은 묵가들이 주장하는 대동사회를 찬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비현실성을 비판함으로써 이와 대립되는 유가들의 ‘小康社會’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禮記』禮運편의 대동사회에 대한 기록과 묵자의 天下無人의 安生生사회에 관한 어록을 비교해 보면 너무도 같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① 정치적으로 <민주· 평등사회>라는 점에서 같다.
<예기의 대동사회>
大道之行也
대도가 행해지니
天下爲公
천하가 만민의 것이 되었고
選賢與能
어질고 유능한 자가 선출됨으로써,
講信修睦.
모두가 신의를 중히 여기고 화목한 사회가 되었다.

 

 

<묵자의 안생생 사회>
* 하느님이 처음 백성을 지으실 때는
지도자가 없었으며 백성들이 주권자였다.
그러나 백성이 각각 주권자이므로
서로 자기의 義는 옳다 하고 남의 義는 비난하며
크게는 전쟁이 일어나고 작게는 다투게 되었다.
이에 天下의 義를 하나로 통일하고자
어질고 훌륭한 사람을 選出하여 天子로 삼았던 것이다(『墨子』尙同).

* 그러므로 君主란 인민들의 일반적인 契約이다(君 臣萌通約)(『墨子』經說).
* 따라서 농사꾼이든 노동자든 장사치든 유능하면 등용되었으므로
벼슬아치는 항상 귀한 것이 아니고 백성은 항상 천한 것이 아니다(『墨子』尙賢).

 

② 도덕적으로 <겸애의 공동체 사회>라는 점에서 같다.
<예기의 대동사회>
故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 부모만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식만 자애하지 않고
모두가 한 가족같이 사랑하였다. 

 

 

<묵자의 안생생 사회>
* 천하 만민은 하느님의 평등한 臣民이다.
* 하느님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기를 바라고
서로 미워하고 해치는 것을 싫어하신다(『墨子』法儀).
* 남의 나라를 내 나라 보듯이 하고,
남의 집안 보기를 내 집같이 하고,
남의 몸을 내 몸같이 보라!(『墨子』兼愛)
* 천하에 남이란 없다(『墨子』大取).

 

③ 경제적으로 <완전고용의 복지사회>라는 점에서 같다.
<예기의 대동사회>
使老有所終
그렇게 함으로써 늙은이는 수명을 다하고
壯有所用 幼有所長 
젊은이는 재능을 다하고 어린이는 무럭무럭 자랐으며
鰥寡孤獨廢疾者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 병자들도
皆有所養 男有分女有歸.
모두 편히 부양 받게 되었다.
男有分女有歸.
남자는 모두 직분이 있고 여자는 모두 시집을 갈 수 있었다.

 

 

<묵자의 안생생 사회>                    
* 모든 노동자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의 소질에 따라 일에 종사하도록 하며(완전 고용),
모든 백성들에게 필요한 대로 충분히 공급해 주고(필요공급)
그 이상의 낭비는 그쳐야 한다(『墨子』節用).

*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평등의 정치는
장님과 귀머거리가 서로 도와
장님도 볼 수 있고 귀머거리도 들을 수 있게 하는 정치다.
그렇게 함으로써 처자식이 없는 늙은이도
부양을 받아 제 수명을 다할 수 있고
부모 없는 고아들도 의지할 데가 있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등은 성왕의 도리인 것이다(『墨子』兼愛).

* 어진 사람이 되려면 힘 있는 자는 서둘러 남을 돕고,
재물이 있는 자는 힘써 남에게 나누어주고,
도리를 아는 사람은 열심히 남을 가르쳐 주어라.
그러면 굶주린 자는 밥을 얻고,
헐벗은 자는 옷을 얻고,
피로한 자는 쉴 수 있고,
어지러운 것이 다스려지리라.
그것을 일러 편안하고 자연스런 삶이 이루어지는 ‘安生生 社會’라고 말한다(『墨子』尙賢).

 

④ 사회적으로는 <노동 절용 공유의 共生社會>라는 점에서 같다.
<예기의 대동사회>
貨惡其棄於地也
재물을 땅에 버리는 낭비를 싫어하지만
不必藏於己
결코 자기만을 위하여 소유하지 않으며,
力惡其不出於身也
몸소 노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나
不必爲己
반드시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다.

 

<묵자의 안생생 사회>
 * 성왕은 정치를 함에 있어 영을 내려 사업을 일으키되
무기와 같은 실용이 아닌 것을 생산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므로 재물을 낭비하는 풍조가 사라지고
백성들은 피로하지 않고 크게 이롭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군주들은 재화와 노동을 허비하여
사람의 생활에 긴요하지 않는 무용한 일에 사용한다.
그러므로 부하고 높은 사람은 사치하고
고아들과 과부들은 헐벗고 굶주린다(『墨子』辭過).

* 그래서 도둑이 들끓는 어지러운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유를 없애지 않고는 결코 도둑을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사유는 자기만을 위한 것일 뿐 자기와
남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墨子』大取).

* 유가들은 인간의 근본을 배반하여 노동을 기피하고
게으르고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먹기만을 탐하니.
기한에 얼어 죽고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해도
거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그들은 남의 집에 의지해서 살찌고
남의 밭에서 의지해서 술 취하는 자들이다(『墨子』非儒). 

 

⑤ 도둑과 전란이 없는 <평화 사회>라는 점에서 같다.
<예기의 대동사회>
是故謀閉而不興
이처럼 풍습이 순화되어 간특한 모의가 통하지 않으니
盜竊亂賊而不作
도둑과 변란과 약탈이 일어나지 않으니,
故外戶而不閉
대문을 닫지 않고 살았다.
是謂大同.
이것을 일러 “大同”이라 말한다.

 

<묵자의 안생생 사회>
* 하느님의 뜻을 순종하는 “의로운 정치”는
대국이 소국을 공격하지 않고,
강자가 약자를 겁탈하지 않고,
귀한 자가 천한 자를 무시하지 않고,
다수가 소수를 해치지 않고,
지혜 있는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지 않고,
부가가 가난한 자에게 교만하지 않고,
장정이 노인을 약탈하지 않는다.
이로써 천하의 모든 나라들은
불과 물과 화약과 병기로써 서로 살상하지 않게 되었다(『墨子』天志).

 

* 지배자들은 전쟁에 나가 남의 재물을 많이 빼앗고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의로운 사람이라고
민중의 마음을 물들인다(『墨子』非攻).

* 전쟁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그 아들이 상을 받는 중국의 풍습은
아들을 잡아먹고 그 아비가 상을 받는 식인종과 무엇이 다른가?
인의를 저버린 것은 똑같은데 어찌 식인종만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墨子』魯問)

 

 

  2) 유가의 小康社會

 

 

『禮記』를 편찬한 劉向은 堯舜시대를 大同으로, 禹, 蕩, 文․武․周公의 三代를 ‘禮治의 小康社會’로 규정한다. 堯舜의 大同時代에는 대도(大道)가 이루어졌으나, 三代에 이르러 大道가 이미 쇠미해졌다. 劉向은 요순의 평화공동체가 존재했던 시기를 大同時代로, 三王의 신분차별이 요구되는 禮治사회가 존재했던 시기를 小康時代로 구분했다. 
 

 

이처럼 劉向 등의 유가들은『예기』의 역사발전 단계를 ‘大同社會→小康社會의 이행’으로 본다. 소강사회를, ‘지속가능한 평화를 통한 사회구성체’의 이상적인 형태로 본다는 뜻이다.[기세춘『동이족의 목수 철학자』(서울, 화남, 2002) 371~372쪽]

 

 

공자의 목표는 주나라 禮를 부흥시키자는 ‘復禮’였다. 周公이 정비한 周禮는 소강사회의 제도와 예법이면서, 요순의 대동사회 정신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大道는 사라졌지만 대동사회의 목표인 天下一家를 禮治로서 이루어내겠다는 뜻이다. 유가의 이상사회는 天下를 一家처럼 생각하는 小康社會이며, 이 소강사회는 孝悌를 최고의 통치이념으로 삼는 사회이며, 그리고 孝를 인간일반과 국가에까지 확장한 것이 仁인 것이다. 그러므로 ‘孝悌를 仁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자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천자의 전쟁은 인정했다. ‘소강사회를 저해하는 패도주의’를 정벌하는 전쟁, 이러한 정벌 전쟁을 일으키는 천자의 부국강병을 인정하였다. 맹자 역시 폭군방벌(暴君放伐)을 주창했다. 천자가 제후를 징계하는 정치행위로서의 전쟁이 정의의 전쟁(義戰)이며, 이러한 의전이 ‘소강사회에서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평화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3) 노자 ‧ 장자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통한 사회구성체’

 

 

노자는 전국통일(戰國統一)을 지향하는 ‘유가 ‧ 법가의 부국강병에 의한 대국주의(大國主義)’에 반대하면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소국과민’은 “소(小)”와 “과(寡)”를 사역 동사로 해석하여 “나라의 크기를 작게 하고, 나라의 인구를 적게 하라”는 당위적 요청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소국과민’은 “隣國相望鷄犬之聲相聞, 甘其食, 美其服, 安其俗, 樂其居”(이웃 나라의 닭과 개의 소리를 서로 들을 수 있는 지경이다. 王은 백성들에게 그 고을의 음식을 달게 여기게 하고, 자기 고을의 복장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며, 그 풍속을 편안하게 하고, 그들의 주거지를 즐기도록 해 준다)[『史記』卷129「貨食列傳」에서 인용된『老子』의 문장임]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隣國相望鷄犬之聲相聞, 甘其食, 美其服, 安其俗, 樂其居’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통한 사회구성체가 현대인의 삶 속에서 구현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노자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통한 사회구성체’인 소국과민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도(道)’ ‧ ‘박(撲)’에서 평화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노자에게 자연계는 있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세계이다. 그와 대비해서 인간세, 특히 인위로 조작된 문화 세계는 박진(撲眞)을 깨뜨리고 형평을 잃어 계속 문제가 가중되어 가는 세계이다. 즉 자연계는 그 자체가 하나의 평화로운 세계인 데 반해, 인간세는 불평 ‧ 불화의 세계이다. 자연은 그 운행이 곧 평화를 회복하는 노력인 데 반해, 인위는 오히려 평화를 깨 나가는 파괴 행위라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그것만이 근본적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길이 된다는 말이다. 노자가 돌아가라는 ‘자연’은 문화 문명이 오염되지 않은 작은 나라 적은 백성(小國寡民)의 조그마한 이상향이었다.

 

노자가 바람직한 인간세를 대동(大同)사회로 확대하지 않고 굳이 작은 나라 적은 백성으로 제한한 것은 바로 인성의 본연, 즉 순박성이 지켜질 수 있는 범위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의 이상향을 노자는 다음과 같이 형용했다; “무기가 있어도 사용할 곳이 없고 사람들은 생명을 아껴 위험한 짓을 하지 않는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지 않으며 일이 없으니 행정 사무를 볼 것이 없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히 살며 자연을 즐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삶에는 싸움이 없다. 그저 적막하리만큼 평화로울 뿐이다. 이것이 노자가 이상으로 내세운 평화[지속가능한 평화]의 모습이다.[김충열『김충열 교수의 노장 철학 강의』(서울, 예문서원, 1995) 222~225쪽 요약]

 

 

  3. 동양의 평화-생태론

 

 

    1) 老子‧ 莊子의 사상과 평화-생태론

 

 

『道德經』에서 노자는 하나님의 주재성과 인격성을 부인한다. 노자에게 하늘은 자연일 뿐이며, 그 운행은 자연의 도, 즉 인과법칙일 뿐이다. 그러므로 노자에게 조물주는 하느님이 아니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며, 그 존재의 운행법칙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道이다.

 

노자가 무위자연을 도라고 한 것은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에 정통으로 반기를 든 데서 비롯한다. 그는 공자가 주장한 주례(周禮)뿐만 아니라 국가, 제도, 문화 등 인위적인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는 인간이 만든 의(義)니 인(仁)이니 예(禮)니 하는 현재의 지배이념을 버리고 각자 자신의 생명을 존중하고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 무위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인간 사회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기세춘 『일곱 번째 구멍을 뚫으면 도가 죽는 까닭』(서울, 화남, 2002) 36, 56쪽]

 

 

장자(莊子)는 전쟁을 반대한다. 그는 천지만물의 공존과 평화를 설파했다. 그는 ‘천하보다 생명이 귀하다’고 역설한다. 『莊子』의「徐无鬼」편은 ‘군주만이 넓은 땅의 주인이 되어 한 나라 백성을 괴롭히고 당신의 이목구비를 기릅니다. 대저 귀신(정신)은 그것을 좋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화를 좋아하고 간악함을 싫어합니다(君獨爲萬乘之主 以苦一國之民. 以養耳目口鼻 夫神者不自許也 夫神者好和而惡姦)...백성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백성을 해치는 시초입니다. 義를 위해 병사를 폐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근원입니다(爲義偃兵 造兵之本也). 군주께서 비록 仁義를 위한다고 해도 그것은 ‘人爲’에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형체는 형체를 낳고, 명성은 자기 자랑일 뿐이며, 자연의 일을 변경시키려 함은 밖으로는 전쟁입니다(變固外戰)...전쟁으로 남을 이기려하지 말아야 합니다(无以戰勝人). 대저 남의 백성을 죽이고 남의 토지를 겸병하여 내 몸과 내 정신을 보양하려 한다면 그 전쟁은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습니다’며 전쟁을 비판한다.[기세춘 『일곱 번째 구멍을 뚫으면 도가 죽는 까닭』(서울, 화남, 2002) 330~331쪽 요약]

 

 

이처럼 장자는 평화를 사랑(好和; peace loving)하는 정신을 강조하면서, 지배자(군주)의 ‘義를 위한 전쟁(정의의 전쟁)’을 비판하며, 자연을 변경시키려는 ‘人爲’가 외부로 드러난 것이 전쟁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남의 백성을 죽이고 남의 토지를 약탈함으로써 자연을 파괴하는 전쟁이 부당함을 장자는 역설한다.

 

 

또 『莊子』의 「讓王」편의 ‘대왕 단보는 가히 생명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夫大王亶父可謂能尊生矣)/ 왕자 수 같은 사람은 나라를 위해 생명을 손상시키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若王子搜者 可謂不以國傷生矣)/ 군주께서는 몸을 괴롭게 하고 생명을 해치면서 땅을 얻지 못해 걱정하고 있습니다(君固愁身傷生 以憂戚不得也)’에서 ‘尊生/ 不以國傷生/ 傷生’을 ‘無爲自然의 생명평화’로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老子‧ 莊子의 철학에서 배어 나오는 이와 같은 ‘無爲自然의 생명평화’ 사상으로 평화-생태론에 접근할 길이 열린다.

 

 

  2) 묵자

 

 

아래의『墨子』의「魯問」편은 ‘墨家 집단의 10계명’으로서 적극적인 반전평화 의지를 담고 있다; ‘나라(國)와 가문(家)이 혼란하면 어진이를 숭상할 것(尙賢)과 화동일치(尙同)를 말하고, 국가가 가난하면 재화의 절도 있는 소비(節用)와 간략한 장례(節葬)를 말하고, 국가가 음악과 술에 빠져 있으면 음악이 인민에게 이롭지 않을 것(非樂)과 운명론이 거짓임(非命)을 말하고, 국가가 음란하고 질서가 없으면 백성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天志)과 밝은 귀신의 권선징악(明鬼)을 말하고, 국가가 인민을 수탈하고 남의 나라를 침범하면 겸애(兼愛)와 비공(非攻)을 말하라.’

 

 

묵자는 인류사에서 최초로 전쟁에 대해 고찰하고 반전운동을 전개한 사상가였다. 그는 전쟁을 도덕적‧ 정치적으로 고찰할 뿐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전쟁을 노예 소유주들이 노예를 얻기 위한 살인행위라고 규정한다.

 

첫째, 그는 전쟁을 인륜 도덕적으로 비판한다.

 

묵자는 군주와 국가, 도리와 진리 등 그 어떤 보편적 이념보다도 인간의 생명과 민중의 이익을 더 중시한 사상가였다. 그래서 그는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한 사람의 무고한 목숨을 끊는 것도 죄악이라고 주장한다.

 

묵자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는 한마디로 자기 사상을 요약하였다. 그는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그는 전쟁은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반인륜적 죄악으로 단죄했다. 하느님의 뜻은 겸애와 교리(交利)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하느님의 백성을 살해하는 하느님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이다.   
      

 

  3) 불교

 

 

불교의 자연관을 논하려면, 자연(nature)이라는 표현 자체가 서양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먼저 그것에 대응하는 것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우주만물의 이법(理法)이나 본성을 ‘연기(緣起)’로 보는 것은 ‘본성으로서의 자연’에 해당하며, 연기를 본성적 원리로 하여 ‘연기한’ 일체의 존재들은 ‘전체로서의 자연’에 해당한다. 전자를 연생성(緣生性)으로서의 법성(法性)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연기한 제법’ 즉 일체법(一切法)으로서의 법계(法界; dharma-dhātu)이다.[불교문화 연구원 편 『자연, 환경인가 주체인가』(제2회 불교생태학 세미나의 자료집, 2003) 74쪽]

 

 

화엄사상의 핵심은 우주만유를 일대연기(一大緣起)로 보는 법계연기(法界緣起)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법계연기의 진리를 신라의 의상(義湘) 스님은 『법성게(法性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한 먼지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담겨있나니
모든 티끌 또한 이와 같도다
억겁의 길고도 긴 시간이 한 찰나이고
한 찰나의 짧은 시간이 곧 영겁이도다.“

 

 

이처럼 법계연기의 입장은 인간과 자연을 각각 독립된 실체로서 파악한 근대 서구의 이원론(二元論)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법계연기에서 말하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한 법계는 이른바 ‘생태계(ecosystem)'의 개념과 흡사하다. 연기론에서 인간과 자연은 존재의 심연에서 서로 얽혀있다. 중국의 승조(僧肇)는 ‘천지는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했으며(『大正藏』45, p.159b), 『화엄경』에서는 ‘일체중생이 모두 같은 뿌리임을 결정코 잘 알아야한다’고 말했다.[불교문화 연구원 편 『자연, 환경인가 주체인가』(제2회 불교생태학 세미나의 자료집, 2003) 32~35쪽]

 

 

이처럼 상호의존적 연기를 통해 성립되는 불교적 다르마(dharma)로서의 ‘자연’이야말로 상호의존성을 근본 원리로 하는 생태학의 ‘자연’과 훌륭하게 조화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현대의 가장 바람직한 대안적 자연관이 된다고 할 수 있다.[불교문화 연구원 편 『자연, 환경인가 주체인가』(제2회 불교생태학 세미나의 자료집, 2003) 74쪽]

 

 

그리고『무량수경』의 ‘천하는 화순하고 기후는 청명하며 때맞춰 바람 불고 비가 내리며 재난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라는 풍요롭고 백성들은 평안하며 군대와 무기가 소용이 없다. 덕을 존중하고 인이 흥하며 예절과 양보를 힘써 닦는다’는 구절에서 ‘평화-생태론’으로 진입할 근거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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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서양의 ‘잘사는 평화’

 

 

  1. 예수의 비폭력

 

 

박 종화 교수는, 비폭력과 관련된 마태복음 5:38-42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빰도 내주고 오 리를 가려거든 십 리까지 가주라”는 말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서 무저항적 ‧ 수세적 비폭력이 아니라 불의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의 표현임을 최근의 연구결과가 밝히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예컨대 이미 탈권된 피식민지 주민으로서는 로마 시민이 오른 뺨을 때릴 때 저항할 권한이 없는 대신 왼 뺨을 스스로 대주는 행위는 로마의 부당한 체제에 대한 항거의 간접적 표시이자 동시에 노예신분으로 취할 수 있는 ‘자주적 자유’의 발현이었다는 점이다. 로마 시민은 노예들에게 무거운 짐을 ‘오 리’까지 들어다 달라고 명령할 권한이 있으며 노예는 이에 승복해야 할 의무만 있었다. 여기에 또 오 리를 추가하여 십 리까지 가주는 결단은 노예의 자주적 결단과 자유에 속할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로마제국의 불의를 비웃고 무의미하게 하는 비폭력적 저항의 표현이었다는 말이다.<박종화「기독교 평화운동의 이론과 실천유형」『평화-이론과 실천의 모색(Ⅱ)』 (서울: 삼민사, 1992), 30쪽.>

 

이어 김 창락 교수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도 내주고 오 리를 가려거든 십 리까지 가주라”는 예수의 이 말은 흔히 절대평화주의의 근거로 이용된다. 이에 반해서 예수가 마지막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제는‧‧‧ 검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누가복음 22:36)고 지시한 말씀은 경우에 따라서는 劍 사용이 정당화된다는 근거로 이용된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성전정화 활동이 폭력사용의 좋은 본보기로 원용되기도 한다. 앞의 인용에서 왜 예수는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을 금했는가? 예수는 불의한 폭력에 대항하는 대응 폭력도 꼭 같이 불의한 것으로 거부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막강한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다가는 자멸하거나 막대한 희생을 치를 수 밖에 없다는 전략적 계산에 근거하여 대응폭력을 삼가하라고 권유했는가?
 “오른편 뺨을 치는 사람에게 왼편 뺨을 돌려대라”는 예수의 권고를 실천할 수 있는 또는 실천해야 하는 행동규칙으로 절대화하여 무저항적 순응주의 처세술의 근거로 이용하는 것은 그 본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며 반대로 그것을 그렇게 처신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상황에서의 행동지침으로 상대화하여 자유자재로 처신할 수 있는 保身術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은 그 본래 의미를 곡해하는 것이다. 예수는 폭력적 상황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느냐는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예수는 악한 강자의 일차적 폭력은 문제 삼지 않은 채 단지 선한 약자의 대응폭력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강자의 폭력에 대항해서 약자가 호신 또는 보복의 목적으로 대응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단지 전술적 계산에 의거해서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대응폭력을 단념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예수가 대응폭력을 단념하고 폭력에 순응하는 것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가르치려고 했다면 “누가 네 뺨을 치더라도 대응하지 말고 참아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네 오른편 뺨을 치는 사람에게 왼편 뺨마저 돌려대라”는 것은 단순히 폭력에 맞서지 말고 폭력에 순응하라는 소극적인 행동지시가 아니다. 오른뺨을 치는 사람에게 왼뺨마저 돌려 대고 오 리를 가자고 강요하는 사람에게 십 리를 가주고 속옷을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내주는 것은 폭력의 소극적 수용태도가 아니라 폭력에 대한 적극적 응수행위이다. 이것은 폭력을 당하는 측에서 폭력을 증폭시켜 그 폭력의 폭력성을 더욱 선명하게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이것은 폭력의 위력에 압도당해서 폭력에 비겁하게 굴복하는 패배주의적 처신이 아니라 폭력이 노리는 것에 스스로를 내던짐으로써 폭력의 위세에 맞서는 적극적 행동이며 그리하여 폭력의 부도덕성을 폭로하는 희생적 투쟁방식이다. <김창락 지음『새로운 성서해석과 해방의 실천』(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3), 290~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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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르크스

 

 

  1) 자유인의 연합에 의한 Assoziation(association)

 

 

마르크스가 말하는 ‘自由人들의 연합(Verein freier Menschen)[Marx『Das Kapital』MEW 23, p.92], 자본주의의 노동방식인 통합노동(combined labour)이 아닌 連帶勞動(結合勞動; associated labour)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結社(die freie Assoziierung der Arbeiter)’ 즉 ‘Assoziation’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세계적 규모로 실현될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의 실현에 의하여 국가는 死滅하고 인간의 自己疏外가 극복되어 땅(地上)에 평화가 깃든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평화구상은 ‘(세계공산주의) 혁명에 의한 평화’이며 ‘Assoziation’이 이러한 평화의 담지자(Träger)이다.

 

 

마르크스의 저작 곳곳에 散在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