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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8) ---묵자의 안민, 안민을 위한 안보론

김승국


묵자의 안생생(安生生) 사회의 평화향이 중립화 통일과 연결되는 지점을 앞에서 언급했다. 안생생이 뜻하는 ‘생명 살림ㆍ자유로운 살림살이ㆍ자유로운 생명 살림’은, ‘안민(安民)’의 경지와 마주친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와 같이 전란이 그치지 않는 암울한 시대의 가장 귀중한 가치는 ‘안민(安民; 민중 생활의 안정, 민중의 안전한 삶, 민중이 평화적 생존권을 누리며 잘사는 것)’이었다.(김승국, 307)


민중의 안전한 삶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민중의 안전보장(민중안보) 시스템’ 즉 안민을 위한 안보체계에 관한 제자백가의 의견이 각각 달랐다.


춘추전국 시대에 평화의 대안을 놓고 번민했을 현인들은 ‘안민과 안보’ 양자의 비중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다. 안보 중심적인 가치관을 지닌 법가는 안보를 위해 안민을 희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노자ㆍ장자는 안민 없는 안보란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으며, 유가(공자, 맹자)는 양자의 중간쯤에서 의로운 전쟁을 강조했다.(김승국, 307~308)


그중에서 묵자의 안민, 안민을 위한 안보론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1. 묵자의 안민, 안민을 위한 안보론


묵자가 말하는 ‘겸애(兼愛)’ 속에 ‘안민’이 내재해 있다. 겸애의 ‘겸(兼)’은 공자의 ‘별(別)’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공자의 별(別)에 계급사회의 논리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별(別)에 따르면 안민(민중들 사이의 상호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묵자의 겸(兼)은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는 사상을 반영하므로 안민(兼하는 민중들끼리의 안민)을 보장받을 수 있다. 겸애로 무장된 천하무인의 안생생 사회야말로 안민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고,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는 비공(非功)ㆍ비전(非戰)의 평화공동체를 통해 민중안보(민중의 평화적인 생존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다.(김승국, 318~319)


민중안보를 보장해주는 비공(非功)ㆍ비전(非戰)의 평화공동체는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예약한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의로운 전쟁(義戰)’을 강조하는 법가(法家)ㆍ일부 유가의 논객들의 주장을 따르면 ① 춘추전국 시대의 네가지 전쟁유형인 정(征)ㆍ벌(伐)ㆍ침(侵)ㆍ습(襲) 중 한가지 이상의 전쟁ㆍ전투를 위한 군비확장이 불가피하고 ② 군비확장에 열중할수록 강병(强兵)은 가능하지만 부국(富國)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바로 북한이 위와 같은 상황에 빠져있지 않은가? 분단체제에서 한미 동맹군ㆍ미일 동맹군의 군사적 압력을 견디기 위한 군비확장이 초래한 선군정치가 강병(强兵)을 가능케했지만 부국(富國)은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남한의 경우도 더욱 발전할 수 있었는데 ‘분단체제에 의한 군비확장의 덫’ 때문에 부국(富國)의 속도가 지체되고 있지 않은가?


영세 비무장 중립국가인 코스타리카는 중립을 통한 군비축소의 잉여금(평화 배당금; peace dividend)을 교육ㆍ생태ㆍ복지쪽으로 돌려 생태ㆍ평화의 대국이 되었는데, 남북한도 코스타리카처럼 ‘안생생(安生生)’의 평화향(平和鄕)을 만들어가는 진정한 부국(富國)을 지향할 수 없나?


남북한의 과잉무장(過剩武裝)이라는 질곡을 벗어나는 길은 남북한의 군비축소를 가능케하는 중립적인 체제융합에 있으며, 이 길을 계속 걷다보면 묵자의 비공(非功)ㆍ비전(非戰) 평화공동체와 만나게 되어 있다.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위한 비공(非功)ㆍ비전(非戰) 평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시급한 일은 군비축소이다. 남북한이 서로 공격하지 않는 비공(非攻)의 안보체계, 남북한이 서로 전쟁을 하지 않겠다(非戰)는 평화협정을 맺는 평화공동체야말로 중립화 통일의 진입로가 되므로 이를 위한 군비축소는 필수적이다. 군비축소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중립화 통일의 진도가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2. 군비축소의 길


군비축소를 에워싸고 (묵가의) 송경<宋牼; 宋榮 또는 송견(宋鈃)으로 표기하는 문헌도 있음>과 (유가의) 맹자가 논쟁을 벌였다는 고사(故事)가 있다.


전국시대에 진(秦)나라와 초(楚)나라가 서로 전쟁을 서두르고 있었다. 침략전쟁을 금지하고 군비축소를 주장한 송경이 양국의 전쟁을 중단시키려고 楚나라 왕을 설득하러 가다가 석구(石丘)에서 맹자를 만나 전쟁-군비축소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논쟁의 내용은 지면제약상 생략할 수밖에 없는데, 맹자가 전쟁을 반대하는 방법은 제후와 각국의 정치가들을 만나 인의(仁義)의 도리를 실천하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침략과 정복전쟁의 한 복판에서 인(仁)과 의(義)의 정치를 통해 전쟁을 중단시키겠다는 맹자의 사상은, 제후들에게는 너무나 이상적인 주장이었을 것이다. 맹자가 얼마나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상주의자’인지 판단해 볼 수 있다.(고전연구회, 297~299)
 

이에 반해 송경은 구체적이다. 송경의 지론은 ‘전쟁은 어느 쪽도 이롭지 못하므로 결코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맹자는 진(秦)나라ㆍ초(楚)나라 중에서 예치(禮治)에 어긋나는 패도(覇道)를 추구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에 대한 의로운 전쟁(義戰)을 벌여야하며 그 때 투입되는 군대를 의병(義兵)이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송경을 비롯한 묵가는 ‘비공(非攻)’의 노선에 따라 침략전쟁에 대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 점에서 전쟁ㆍ전투행위 자체를 절대 반대하는 노자ㆍ장자의 절대평화주의(pacifism)ㆍ관념적 평화론(주1)과 다르다.


이렇게 유가(맹자)의 의병(義兵)과도 다르고 노자ㆍ장자의 상서롭지 않은 군대와도 다른 묵가의 ‘언병(偃兵)’(주2) 안에, 중립화 통일될 군대의 모습이 내재해 있다.


3. 언병의 전수방위


‘언병(偃兵)’의 ‘언(偃)’은 ‘쉰다’ ‘그만둔다’는 뜻이고 ‘언병’은 ‘전쟁을 그만둔다’는 의미이다.  태평한 세상ㆍ대동세상을 위해 무기를 거두거나 전쟁을 그만둔다는 ‘비전(非戰)’의 각오가 ‘언병’에 내재해있으며, 묵자의 ‘비전론’을 반영한다. 언병의 기능을 하는 군대도 언병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묵자의 언병은『묵자』「비공」편의 평화사상을 실현하는 군대, 전쟁을 그만두게 하는 군대, 무장은 하되 전쟁 억지력을 지닌 군대,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 군대, 패권국가의 침략적인 정책을 거부하는 군대이다.(김승국, 357) 이러한 군대는,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준비하는 군대로서 안성마춤이다.


그러면『묵자』「비공」편의 평화사상을 실현하면서 중립화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한반도 형(型) 언병’이 수행해야할 안보전략은 무엇일까?
 

묵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의 정세에서 비무장론은 국가 멸망론과 직결되므로, 묵가는 비무장을 주장하지 않고 ‘최소한의 무장 상태에서의 비공(非功)’을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주변의 정세가 춘추전국 시대와 유사하므로 ‘한반도 형(型) 언병’이 준비해야할 중립은, 코스타리카와 같은 비무장 중립이 아닌 스위스와 같은 무장 중립이어야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정도 무장하는 안보전략을 갖춰야 국제적으로 중립을 인정받을 수 있는냐에 있다. 무장 중립국가의 안보전략에 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수방위’에 있다.


전수방위는 자위를 위한 수동적 전략이고, 군사적으로는 전략적 수세로 국가를 방위하는 것을 말한다. 전수방위는 ① 상대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한다 ② 이러한 방위력 행사의 양태도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으로 줄이며 ③ 보유하는 방위력도 자위를 위해 ‘최소한으로 국한’하는 등 수동적 방위전략 자세를 말한다.


묵자식으로 전수방위를 이야기하면 ‘최소한의 무장 상태에서의 비공(非功)’이다. 전갈(미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 등의 강대국)이 우굴대는 한반도 안팎의 엄중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무장 상태에서 비공(非功)’하는 ‘묵자 방식의 전수방어 안보전략을 채택하는 것은 현재의 남북한간 군사 대치 상태에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지만 가야할 길이다. 그래서 중립화 통일은 고난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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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1) 노자ㆍ장자의 ‘小國寡民’을 위한 군대는 존재 의미가 없다. 노자는 ‘대저 우수한 병기는 상서롭지 않은 도구이다(夫佳兵者 不祥之器)’라고 강조했다.(『老子』31장)
(주2) 제후국들 사이에 벌이는 침략전쟁인 공벌(攻伐)ㆍ겸병(兼倂)을 단호히 저지해야하며, 이 때 투입되는 군대를 언병(偃兵)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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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고전연구회 편저『2천년을 이어져온 논쟁』(서울, 포럼, 2006)
* 김승국『잘사는 평화를 위한 평화경제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