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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길』의 머리말

김승국

1.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한반도는 스위스⋅오스트리아와 같은 지정학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오스트리아처럼 중립국가가 되는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모색하자는 논의가 거의 없다. 스위스와 같이 모범적인 연방제 아래에서 영세중립을 통해 통일을 이룬 ‘중립화 통일’의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중립화 통일이라는 평화통일의 지름길이 있는데도 기존의 국가연합⋅연방제 논의에 매몰된 통일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2. 이 글의 구도


  1)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함


지금까지 남북한에서 제기된 통일방안은 국가연합과 연방제에 중점이 있었다. 남한은 주로 국가연합에 의한 통일을, 북한은 연방제 통일을 주창했다. 6⋅15 선언의 제2항은 국가연합과 연방제의 ‘합성’ 가능성에 관한 논의만 불러일으켰을 뿐, ‘합성’의 구체적인 방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논의만 무성한 이유는, 국가연합 또는 연방제라는 국가체제의 통합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국가체제 중심의 논의에 초점을 맞추면, 국가연합이냐 연방제이냐의 양자택일 문제로 집중되면서 계속 겉돌게 된다.   


그러나 논의의 각도를 좀 달리하여, ‘중립’의 요소를 집어넣으면 겉도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모범적인 연방제 아래에서 영세중립 국가로 나아가면서 민족분열을 극복한 스위스의 ‘중립 통일’을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스위스처럼 중립화 통일의 길을 걷는 가운데, 6⋅15 선언의 제2항을 실천할 방도를 찾을 수 있겠다. 중립화 통일이라는 새로운 통일 방안을 중심에 놓으면, 기존의 국가연합-연방제 논의가 겉도는 현상을 지양하면서 통일의 지름길을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중립화 통일을 새로운 통일방안으로 제시한다.


  2) 인문학적인 시도


중립화 통일이라는 새로운 통일방안을 내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외로 관심이 없다.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에 대한 관심은 좀 있지만, 스위스와 같은 나라가 되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중립화 통일론’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그나마 몇몇의 중립화 통일론자들은, 주로 정치학(국제정치학)의 입장에서 스위스⋅오스트리아 같은 중립의 제도화에 관심이 크다.


그런데 중립의 제도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중립화 통일의 사상적⋅역사적인 맥락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 필자는 동양사상 속에서 ‘중립(中⋅時中⋅中和)’의 사상적 맥락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주역』등과 같은 동양의 고전 속에서 중립(時中)의 요소를 찾아 중립화 통일론으로 연결시키려는 인문학적인 시도를 했다. 춘추전국 시대의 혼돈을 평화적으로 융합한 유가(공자)⋅묵가(묵자)의 담론에서 중립화 통일의 지혜를 발견하려고 했다.


필자는 더 나아가 조선의 역사 속에서 중립의 요소를 발견하려고 시도했다. 중립지향적인 외교정책을 전개한 광해군과 사대주의 외교를 펼친 인조 이후의 서인⋅노론 세력을 대비시키며, 역사적인 지평에서 중립화 통일론을 심화시키려고 노력했다. 특히 분단 이후에 나온 중립화론을 재검토하는 가운데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를 작성한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3)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를 통해 대안을 제시함


지금까지 총론적으로 ‘중립화 통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그쳤다. 이제 중립화 통일론의 각론으로 들어가 중립화 통일의 구체적인 상(像)을 보여주면서 대안을 제시해야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아래와 같은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를 그렸다.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생략)


3. 중립화 통일의 조건


필자가 모험적으로 그린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를 실행하면서 중립화 통일을 이루어내려면 어떠한 조건을 충족시켜야하는가?


필자는 중립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 즉 사상적⋅역사적⋅사회적⋅지정학적 조건을 제시했다.


  1) 사상적인 조건


원효의 평화담론과 동학의 반외세⋅보국안민(輔國安民) 사상에서 중립화 통일의 사상적인 맥락을 찾으려했다.


  2) 역사적인 조건


① 광해군의 중립외교(광해군의 군사적인 중립외교) ②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중단시킨 인조반정 이후의 서인⋅노론 정권에 의한 사대주의(숭명배청崇明排淸) 외교 ③ 병자호란 당시의 주화파-척화파의 갈등(광해군 중립외교의 맥을 이은 주화파의 최명길 對 김상헌의 숭명배청(崇明排淸) 외교 ④ 조선 말기(1882~1904년)에 쏟아져 나온 중립화론(고종의 중립화론 포함)에 대하여 검토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 속의 지역 중립론과 분단 이후의 중립화론을 살펴보았다.


  3) 사회적인 조건       


인조반정 이후 서인⋅노론 세력이 3백년간 조선을 통치하면서 누적된 민중의 생활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폭발한 민란, 민란에 이은 동학 농민전쟁을 낳은 사회적인 조건, 이러한 사회적인 조건과 분단과의 관련성을 다뤘다.(주1)


  4) 지정학적인 조건


① 스위스의 지정학적인 조건 ②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대변되는 朝-中의 지정학적인 조건(북한-중국의 순망치한 관계) ③ 동북아라는 Rimland(연변 지대) 속의 한반도 ④ 한반도의 분단과 지정학적인 전략 ⑤ 중립화 통일의 실현을 위한 ‘점(点)-선(線)-면(面)’ 전략 ⑥ 한반도 주변 해상 권력의 중립화 ⑦ 미국 주도의 해상 교통로(Sea Lane)에서 벗어난 Eurasian Land Bridge(유라시안 대륙의 통합을 위한 가교) ⑧ 시베리아 철도 즉 ‘철(鐵) 실크로드’를 통한 남북한의 생명선 통합 ⑨ TSR⋅TKR을 통한 Eurasian Peace Bridge(유라시안의 평화를 위한 다리 놓기).


필자가 쓴 글의 순서로 보면, 사상적⋅역사적⋅사회적⋅지정학적 조건에 관한 설명이 먼저 나온다. 그러므로 위의 네 가지 조건에 관한 글을 먼저 읽은 뒤에 ① 네 가지 조건이 어떻게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필요⋅충족 조건이 되는지를 따지면서 ② 네 가지 조건을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에 비추어 보면 ③ 중립화 통일에 관한 빛나는 발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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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1) 한반도 분단은 (국제)정치적으로 1945년 해방 이후에서 비롯되었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조선 후기의 민생고(民生苦)로 말미암은 19세기의 민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의 학정, 지배계급의 가렴주구⋅토지수탈로 밥상 공동체를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민(民)의 저항이 민란으로 폭발하고 이 민란이 이어져 갑오 농민전쟁이 발발했다. 갑오 농민전쟁을 계기로 청일전쟁이 터지면서 외세가 한반도 문제에 개입했으며, 그 결과 한반도는 국제 대리전의 전쟁터로 전락한다. 19세기의 민란⟶신미양요→갑오 농민전쟁⟶청일전쟁⟶민비시해 사건→아관파천→러일전쟁⟶을사 보호조약⟶의병전쟁→한일 합병조약⟶일제(日帝)지배⟶일제의 패망과 민족해방⟶미 군정⟶한국전쟁⟶정전⟶분단체제로 이어져 오는 가운데, 민초들의 평화로운 삶은 아예 불가능했다. 民이 잘사는 길을 모색할 겨를이 없었다. 평화의 밥을 먹을 수 없는 民의 유랑⋅삶의 분단, 생활세계의 분단이 밥상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져 사회⋅경제적 분단이 가중되었다. 19세기 이후의 사회⋅경제적 분단이 1945년 이후의 (국제)정치적 분단과 어우러져 한반도 분단의 원류를 이룬다. 그러므로 조선후기부터 비롯된 사회⋅경제적 분단(및 이로 말미암은 민중의 밥상 공동체 해체)을 거론하지 않는 한반도 분단론은 단견에 그친다. 민생고로 인한 밥상 공동체 해체가 사회⋅경제적 분단을 낳은 조선후기의 민중생활사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사회적인 조건을 다루면서 분단해소-중립화 통일을 논의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