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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6)-중립화 통일을 위해 묵자처럼 유세할 수 없나?

김승국



1. 묵자의 겸애ㆍ비공(非攻)


공자가 춘추시대 말기의 사상가라면 묵자(墨子; B.C. 479~381)는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이다.


공자는 관료 출신으로 귀족주의적이다. 벼슬에서 쫓겨난 후에는 13년 동안 벼슬을 구하려 천하를 주유했다. 그러나 묵자는 땅을 주겠다는 제후들의 제의도 거절하고 민중의 편에 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반전운동을 한 투쟁가였다.(기세춘, 368)


묵자는 일생 동안 검은 옷을 입고 반전, 평화, 평등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한 기층 민중 출신의 좌파 사상가로 평가되고 있다. 검은 노동복을 입고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虛禮)와 허식(虛飾)을 배격하며 근로와 절용(節用)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工人)들의 집단이 묵가라는 것이다.(신영복, 364ㆍ368)


공자를 비롯한 유가(儒家)의 이상적인 인물이 주공(周公)이었다면, 묵자를 비롯한 묵가(墨家)의 모델은 우(禹)임금이었다. 우임금은 황하의 치수를 담당하여 장딴지와 정강이의 털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신명을 바쳐 있했던 사람이다.(신영복, 366) 
 

공자는 서주(西周) 이래의 예악(禮樂)에 나타난 귀족 중심의 통치 질서를 새로운 지식인(君子)의 자기 수양과 덕치(德治)의 이념을 통하여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이에 반하여 묵자는 종래 귀족 지배계층의 행동규범인 예악을 철저히 부정하고 유가의 덕치 이념 대신에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인민의 협동적 연대(兼相愛)와 경제적 상호 이익(交相利)을 통하여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려고 했다.(신영복, 372)


공자는 주나라(西周)의 예(禮)에 입각한 인정(仁政)을 베풀면 전쟁이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전쟁의 판단기준이, 인정(仁政)을 베푸는 군자(지배층)에 달려있다.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仁이다’라는 사상을 제기함으로써 유가의 근본이념을 형성하였지만 이것은 실제로 西周 이래의 종법질서에 기초한 관념으로서 묵가의 입장에서 보면 편애(偏愛)에 불과한 것이었다. 묵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천하의 모든 혼란은 서로 겸애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부조리이다.(윤무학, 81~82)


묵자는 당시 전쟁의 참혹상과 부조리에 대하여「비공(非攻」의 이념을 먼저 제기하고 다시 「겸애」로써 그것의 이론적 근거로 삼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겸애」는 묵가가 추구한 도덕적 이상이자 정치적 주장이다. 묵자서에서 ‘평화’ 이념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非攻」에 대한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된 「겸애」라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비공」은 「겸애」의 다른 표현이다.(윤무학, 74ㆍ81)


묵자는 어느 누구나 자애(自愛)와 자리(自利)만을 일삼게 된다면, 반목과 대립은 끊일 날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춘추전국 시기의 공벌전쟁(攻伐戰爭)은 그와 같은 제후들의 이해가 상충하던 극열 상태였다. 역으로 말해서 “제후가 서로 사랑한다면 들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겸애’가 강조되지 않을 수 없었다.(이운구, 230)


묵자는 당시 혼란한 상황에 직면하여 직접 列國을 유세하였다. 묵자는 ‘대국으로서 소국을 공격하는 일, 大家로서 小家를 어지럽히는 일, 강자가 약자를 협박하고, 다수가 소수를 폭행하고, 사기꾼이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귀한 자가 천한 자를 업신여기는 일, 이것이 천하의 해악이다’고 갈파한다(『墨子』「兼愛下」).


그러면 묵자가 어떻게 평화를 위한 유세(평화 유세)를 했는지 알아본다. 묵자의 평화 유세는, 주로『墨子』「非攻」편에 나오므로 독자 여러분이 참고하기 바란다.


2. 묵자의 평화 유세


묵자는「非攻下」에서 공벌을 좋아하는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예를 들고 있다. 그에 의하면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서 桃李(복숭아와 자두)를 몰래 따먹는 경우 그것을 벌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손해를 입혔다는”(虧人自利)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남의 가축을 훔치고 죄 없는 이를 죽이는 일은 이보다 더욱 심한 ‘虧人自利(휴인자리)’이고 그 ‘不仁함’이 더욱 심한 것이므로 천하의 군자가 모두 불의라고 비난한다. 따라서 불의한 전쟁을 일으켜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심한 불의이다. 그런데도 천하의 군자들이 그것을 “의로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의와 불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윤무학, 78)


묵자는 이와 같은 논법으로 제후들의 ‘불의의 전쟁’에 쐐기를 박는 반전평화 활동을 전개했다.


묵자는 비록 전쟁을 반대하였으나 정의의 방어전쟁에는 결코 반대하지 않았거니와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것은『史記』「孟子筍卿列傳」에서 그[묵자]를 일러 “방어에 능하였다”(善守禦)고 평하였거니와 그가 공벌과 겸병을 불의로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성읍의 방위에 분골쇄신하였던 데서도 알 수 있다.(윤무학, 79)


묵자는 전쟁이 일어나려 하면 제자들을 공격받는 나라로 미리 보내 방어에 임하게 하고 자신은 침략하려는 나라로 달려가서 왕을 만나 담판했다. ‘만약 [당신이] 공격한다 해도 300명의 제자들이 나의 우수한 방어 무기를 가지고 지키고 있으므로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설득했다. 그래서 묵자는 송(宋)나라를 공격하려던 초(楚)나라를 설득하여 전쟁을 사전에 막았으며, 초나라가 정(鄭)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막았고, 노(魯)나라를 공격하려던 제(齊)나라를 저지시킨 일도 있었다.(기세춘, 368)


특히『墨子』「公輸」편은 감동적인 전쟁저지 드라마이다.


공수반(公輸盤)이라는 명장(名匠)이 초왕(楚王)에게 초빙되어 운제(雲梯)라는 공성 기구(攻城機具; 성을 공격하는 기구)를 제작했다. 초 나라는 그것을 이용하여 송(宋)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 소문을 들은 묵자가 제나라를 출발하여 열흘 낮 열흘 밤을 달려가서 초나라로 하여금 전쟁을 단념하게 한다.(신영복, 384)


3. 몇 가지 제안



묵자가 반전평화 운동가로서 평화유세를 펼친 점이, 선비인 공자의 평화유세와 다르다.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위한 평화유세를 공자처럼 할 수 있고, 묵자처럼 할 수 있다. 공자처럼 할 경우 오늘날의 군자(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정당 대표, 국회의원, 외교관)ㆍ선비(학자, 전문가)의 몫이다. 묵자처럼 할 경우, 반전평화 운동가ㆍ운동단체를 비롯한 진보세력(진보정당 포함)의 몫이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묵자처럼 중립화 통일을 위한 평화유세를 하라고 권유하면서 아래와 같이 제안한다;


첫째, 겸애(兼相愛)ㆍ交相利의 중립화 통일 운동을 전개하라!
묵자는 민중의 협동적 연대(兼相愛)와 경제적 상호 이익(交相利)을 통하여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려고 했다. 이러한 묵자의 兼相愛ㆍ交相利 모델을 한반도에 적용하여, 남북한 민중의 兼相愛와 남북한의 交相利를 도모하는 중립화 통일을 이루라!


둘째, 交相利의 국제관계를 통해 한반도 중립화를 성취하라!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경제적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交相利의 국제관계는 중립화를 위한 평화구조와 직결된다. 이 평화구조는 전쟁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구조이므로, 반전평화 운동 세력이 주력해야할 일이다.


셋째, 묵자처럼 설득력 있는 반전운동을 하라!
『墨子』「公輸」편에서, 묵자는 초나라 왕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여 전쟁을 포기하도록 유세했다. 이렇듯 한국의 진보세력도 (중립화 통일을 가로막는 전쟁에 집착하는) 한반도 주변국의 정치 책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전쟁책동을 중단하라고 유세하는 능력을 길러야한다.


넷째, 묵자처럼 조직적이고 규율 있는 ‘모범적인 운동’을 펼쳐라!
묵자의 실천 방법이 개인주의적이거나 개량주의적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언제나 집단적이고 조직적이며 철저한 규율로써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묵가는 강고한 조직과 엄격한 규율을 가진 집단으로 널리 알려졌다.(신영복, 370) 


다섯째,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방어전쟁에 주력하는 쪽으로 방향전환 하도록 유도하라!
공격전쟁에 반대한 묵자는 방어전쟁에 주력하라고 유세했다. 이러한 묵가의 유세를 따라 ‘남북한ㆍ미국ㆍ일본ㆍ중국ㆍ러시아가 한반도 주변에서 공격전쟁 지향적인 안보전략을 중단하고 방어전쟁 지향적인 전략으로 수정하라’고 유세하는 진보세력이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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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기세춘『묵자』(서울, 바이북스, 2009)
* 신영복『강의』(파주, 돌베개, 2004)
* 윤무학『중국철학 방법론』(서울, 한울, 1999)
* 이운구『동아시아 비판 사상의 뿌리』(서울, 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