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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종교적인 접근

핵무기와 神 (11) -나가이 다카시의 번제설 (1)

김승국


나가사키에서 피폭 당한 가톨릭 신자ㆍ부락민ㆍ나병환자ㆍ조선인ㆍ중국인은 ‘피폭된 희생양’으로서 고난의 중층화를 겪었다. 그런데 피폭이라는 동일한 체험을 한 나가이 다카시(永井隆)는, 피폭이라는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피폭=번제(燔祭)’설을 주장했다. ‘피폭이라는 천벌(주1)을 받았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피폭=번제’설은, 난해한 문제를 낳는다. 지옥 같은 피폭이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졌다는 나가이 다카시의 역설을, 필자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난제를 풀어갈 셈이다. 그럼 나가이 다카시는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밝힌다. 
     

Ⅰ. 나가이 다카시는 어떤 사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의사이었던 나가이 다카시는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해 피폭되었다. 그는 피폭된 몸으로 피폭환자들을 극진하게 치료하다가 병상에 누워 숨졌다. 그의 인생역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가이 다카시는 1908년 2월 3일, 이즈모 다이샤(出運大社: 일본의 토속 신앙인 神道의 한 계파로 시마네 현에 있는 神社)의 신자였던 의사 집안의 5형제 중 장남으로 일본 시네마 현(島根県) 마쓰에 시(松江市)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1928년에 국립 나가사키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악성 중이염으로 중태에 빠진 것을 비롯하여, 원폭의 피해를 당한 38세까지 네 번이나 위독 상태를 겪었다. 방사선 전문의로서의 직업병이라 할 백혈병(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3년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인생의 선고를 1945년 6월에 받고도 원폭 투하 후 5년을 더 벼텼으나, 결국에는 두 자녀를 남겨 두고 43세의 한창 나이에 귀천(歸天)하고 말았다.(永井隆『로사리오의 기도』, 238)


[나가이 다카시는] 1932년, 전후 18년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의학사의 자격을 얻었으나, 계속 나가사키 의대 물리요법과의 조수로서 적을 두고 연구를 계속했다. 1933년, 단기 군의관으로서 만주사변에 종군하던 중, 위문대 안에 들어 있던「천주교 교리문답」을 읽었다. 이듬해인 1934년, 귀환하여 우라카미의 독실한 가톨릭 농가의 외동딸 미도리 양과 결혼했다. 1937년 의대 강사, 1938년 4월 조교수, 1944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44년 1월 교수가 되었다.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폭격 당했으며(주2) 부인 미도리 여사는 자택에서 즉사했다. 1946년 7월, 나가사키 역 앞에서 쓰러진 이래 병상에 눕게 되었다. 1949년 12월, 나가사키 명예시민의 칭호를 받았다. 1951년 5월 1일 오후 9시 50분 선종했고, 5월 3일에 교회장, 5월 14일에 나가사키 시민장을 치렀다.(永井隆『평화탑』, 175~176)


나가이 다카시의 저서는 다음과 같다(괄호 안에 저서를 펴낸 시기를 표기함).
『長崎の鐘』(1946년 8월)/『原子野録音』(1947년~1951년:「聖母の騎士」誌에 연재)/『亡びぬものを』(1948년 1월)/『ロザリオの鎖』(1948년 3월)/『この子を残して』(1948년 4월)
『生命の河』(1948년 8월)/『花咲く丘』(1949년 4월)/『いとし子よ』(1949년 10월)/『乙女峠』(1951년 4월)/『如己堂随筆』(1957년 12월)/『村医』(1978년 4월)/『平和塔』(1979년 11월)/『長崎の花』 上・中・下


Ⅱ. 나가이 다카시의 신앙심


위의 저서 중『ロザリオの鎖』에서, 나가이 다카시가 가톨릭 신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을 소개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유물론에 사로잡혀 있었다...영혼이 어쩌고 하는 얼빠진 소리는 믿기지도 않았으며 믿을 필요조차 없었다...[그런데] 대학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봄 방학에 어머니가 뇌일혈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어머니의 그 마지막 눈길은 나의 사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리고 말았다. 나를 낳고, 나를 기르고, 나를 한결 같이 사랑해 준 어머니가 떠나는 자리에서 말없이 나를 바라본 그 눈은 “어미는 죽어도 영혼은 언제까지나 네 곁에 있을 거야”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영혼을 부정하던 나는 그 눈을 본 순간 ‘의심할 나위 없이 어머니의 영혼은 있다.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 사라지지만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감했다...[대학 3학년 때] 나는 파스칼의『팡세』를 읽었다. 파스칼의 말은 어김없는 진리였다. 과학자 파스칼이 그의 과학과 아무런 모순도 없이 믿었던 이 가톨릭교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저절로 가톨릭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대학과 바로 이웃한 북쪽에 우라카미(浦上) 가톨릭 성당이 있었다...파스칼에 의해 나의 사상이 송두리째 파괴되기에 이르자 새삼스럽게 성당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급기야 하숙도 우라카미로 옮기고 말았다...만주 사변에 종군한 뒤 귀환하자마자 나는 우라카미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성령의 빛을 받아 나는 우주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永井隆,『로사리오의 기도』, 120~125)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된 나가이 다카시는 ‘여기애인(如己愛人;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활신조로 삼고, 자택의 이름마저 ‘여기당(如己堂)’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병은 하늘이 내려 준 은혜다. 병자도 신체에 남아 있는 기능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이었다.(永井隆,『로사리오의 기도』, 242~243)


나가이 다카시는 ‘병은 하늘이 내려 준 은혜다’와 같은 역설어법을 즐긴다. 병과 같은 부정적인 일도 은혜로 생각하여 긍정적인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중병에 걸렸다가 간신히 낳은 뒤 몸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고 다짐할 때 ‘예전에 병에 걸린 것을 오히려 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병에 걸렸다가 낳은 기독교 신자의 경우 ‘병이 오히려 하늘이 내려 은혜이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렇게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킬 때, 하늘ㆍ하나님(천주)ㆍ예수님ㆍ성모 마리아의 뜻을 강조하며 신앙심을 높이는 어법이  나가이 다카시의 저서 곳곳에 보인다.


나가이 다카시가, 일상적인 역설인 ‘병이 오히려 하늘이 내려준 은혜’를 언급할 경우 크게 모순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나가이 다카시의 어법이 비약하여 ‘나가사키의 피폭(핵무기가 인류에 안겨준 지옥 같은 病)은 하늘이 내려준 은혜’, 하나님의 섭리’, ‘피폭자는 하나님ㆍ하나님 나라에 바쳐진 어린 양ㆍ희생양ㆍ번제’라고 설파하는 ‘번제(燔祭)’설을 납득할 수 없다.


필자가 기독교인도 아니고 피폭의 경험도 없기 때문에, 나가이 다카시의 번제설을 납득할 수 없다면, 나가이 다카시와 같은 피폭자들은 번제설에 동의하는지, 특히 기독교 신자중의 피폭자들이 번제설에 동의하는지가 중요한데...나가이 다카시의 제자로서 피폭 당한 의사인 秋月辰一郞, 나가사키의 피폭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高橋眞司 교수, 피폭자로서 원폭(원자폭탄)과 관련된 詩를 쓴 山田かん씨도 나가이 다카시의 번제설을 비판했다(단, 가톨릭 측은 번제설을 옹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순의 극치인 번제설이 너무 난해하여 피폭자, 피폭을 언급하는 학자들ㆍ문학인들도 납득하지 못하거나 비판한다면 대중적인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가이 다카시 자신이 진리처럼 여기는 번제설을 믿을 사람들이 적거나 없다면 번제설은 참(眞)이 아니고 거짓(僞)이 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며, 이 문제<번제설의 진위(眞僞)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다.


우선 나가이 다카시 개인이 피폭자로서 번제설을 언급하기에 이르는 정황, 피폭 당시의 심경을 살펴보는 게 좋을 듯하며, 이것이 번제설에 접근하는 해석학적(hermeneutic) 방법이 될 수 있겠다. Text(나가이 다카시의 저서, 나가이 다카시의 번제설에 관하여 비평한 저서)를 통해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먼저 한다.              


Ⅲ. 피폭자로서의 심경이 담긴 나가이 다카시의 저서에서


나가이 다카시는 피폭 두 달 전인 1945년 6월에 백혈병으로 3년 뒤에 죽는다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는다.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나가이 다카시는 피폭 당하고도 살아남았지만, 사랑하는 아내는 피폭 즉시 사망하여 먼저 세상을 뜬다.


이 때의 심경을 담은 나가이 다카시의 글을 읽어보자;
“1945년 8월 8일 아침, 아내는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환한 웃음으로 내 출근길을 배웅해 주었다. 조금 가다 보니 도시락을 집에 두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뜻밖에도 현관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그것이 마지막 이별이었다. 그날 밤은 당번이어서 연구실에서 잤다. 다음날인 9일, 원자폭탄은 우리 머리 위에서 작렬했다. 나는 부상을 당했다. 언뜻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환자를 구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5시간이 흐른 뒤 나는 출혈로 인해 밭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아내의 죽음을 직감했다. 왜냐하면 끝내 아내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대학까지는 1킬로미터이므로 엉금엉금 기어와도 5시간이면 충분했다. 아내는 설령 깊은 상처를 입었더라도 생명이 붙어있는 한 기어서라도 반드시 나를 염려하여 찾아올 사람이었다. 3일째, 죽거나 부상당한 학생들의 처리도 대충 마무리되어 저녁 무렵에 집으로 돌아갔다. 온통 잿더미였다. 하지만 나는 이내 찾아내고 말았다. 부엌이 있던 자리에 있는 새까만 덩어리를...그것은 다 타고 남은 골반과 허리뼈였다. 곁에는 십자가가 달린 로사리오(주3)가 떨어져 있었다. 시꺼멓게 그을린 물통에 아내를 주워 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슴에 안고 묘지로 향했다. 이웃사람들은 전부 죽고 말았는지 석양이 비치는 잿더미 위에 여기저기 검은 뼈가 흩어져 있었다. 머지않아 내 뼈를 아내가 안고 갈 참이었건만 인간의 운명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내 품 안에서 아내가 바삭바삭하는 인산석회(燐酸石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귀에는 그 소리가 “죄송해요, 죄송해야”하고 아내가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永井隆,『로사리오의 기도』, 26~27)


피폭으로 자기보다 먼저 사망한 아내의 뼈가 바삭바삭하는 인산석회(燐酸石灰) 소리를 듣는 순간 나가이 다카시가 어떠한 신앙적인 직감을 했을까? 나가이 다카시의 저서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두 가지의 직감을 한 것 같다. 하나는「천지는 변할지라도 내 말은 변치 않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 또 하나는 원자폭탄 보다 위력이 있는 하나님의 힘을 직감한 듯하다.


  1.「천지는 변할지라도 내 말은 변치 않으리라」


부인의 주검을 확인한 1945년 8월 11일의 심경이 담긴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이 글에 나오는 류우끼찌는 나가이 다카시의 가명이고 하루노는 부인의 가명이다);
“잿더미 위에 조금 높게 나타나 있는 검은 것이---하루노여! 부엌 뒤쪽 그릇이 깨어진 조각 옆에---겨우 이것 밖에 안 되는 뼈가 되어...다가가서 손을 댔다. 아직 미지근했다. 주어 올리니까, 아아 가볍게---푸스스 부서진다. 뼈에 로사리오의 줄만이 걸쳐져 있었다. 탄 바께쓰[양동이]에 뼈를 주어 담고, 류우끼찌는 두 팔로 안아 무덤으로 향했다...류우끼찌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고 재 위에 쓰러졌다. 재는 이미 차가와지고 있었다---모든 것이 없어지고 말았다...영예도 없어지고 말았다...제자들도 모두 죽어 없어지고 말았다...연구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친구도 없어졌다...건강도 없어졌다...그렇잖아도 백혈병의 무거움에 신음하던 그 위에, 다시 [피폭으로 인한] 중상을 입고, 지금은 아주 폐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내도 없어졌다...조국은 패전했다...우라카미 성당도 전멸에 가까웠다...아아, 나의 일생의 온갖 노력의 성과는 무엇 하나 남은 것이 없고, 나의 장래의 희망은 일체 무(無)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잿더미 위에 쓰러져 있는 류우끼찌 위에 밤의 어두움이 덮쳐오고, 그와 동시에 류우끼찌의 마음 위에는 완전한 절망이 덮쳐왔다. 그리고 류우끼찌는 혼수상태에 빠져 버렸다...정신이 든 것은 새벽녘이었다. 하늘은 훤하게 밝아가고, 별 그림자도 드물고 곤또비라 山[우라카미 성당 부근의 山] 위에는 샛별이 크게 빛나고 있었다...샛별은 성모 마리아에 비취지고 있다. 그것은 태양의 선구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 세상에 빛을 내려주고, 사랑의 열을 베풀어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降生)전에 성모 마리아는 암흑한 구약시대의 마지막 무렵에 하나의 빛나는 별로서 원죄의 물듦이 없는 빛을 내었다. 류우끼찌는 로자리오[로사리오]를 꺼내어,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고 기구했다. 재야말로 인류와 그 영위함이 허무하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다. 고요했다. 원자의 벌판[원자폭탄이 떨어진 벌판]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고 살아 있는 물건의 기색도 없었다. 동쪽 하늘은 밝아오고 있었다. 절망의 어둠 속을 향하여 저 쪽에서 희망의 빛이 비쳐오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류우끼찌는 마음을 가다듬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요히 힘차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천지는 변할지라도 내 말은 변치 않으리라」---예수의 말씀이었다.”(永井隆『영원한 것들』, 345~350)


  2. 원자폭탄 보다 위력이 있는 ‘하나님의 힘’?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번쩍! 하고 빛났다.「앗!」하고 외치는 소리가 입에서 나올까 말까할 사이에, 우라카미 일대의 땅위에 있는 물건이란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앗! 지구는 벌거숭이가 됐다!」...「이 힘은 대체 무엇일까?」류우끼찌는 우선 감탄했다. 그리고 근본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자폭탄이란 말은 들은 일은 있으나, 우라늄 235의 순수분리(純粹分離)의 곤란과 생산과정이 용이하지 못하여, 대공업으로 이룩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단 한방으로 이만한 위력을 발휘할만한 대량의 원자를 아무리 미국이라 하더라도, 정제(精製)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永井隆『영원한 것들』, 332ㆍ333ㆍ335ㆍ336)


아무리 미국이라도 정제(精製)할 리가 없다면, 누가 핵무기를 정제했을까? 나가이 다카시는 핵무기를 정제한 주체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이 정제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예비하거나 도와주지 않았으면 저렇게 정밀하게 원자폭탄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한 듯하다. 원자폭탄은 실제로 미국 정부가 맨하탄 계획에 따라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밀하게 만드는데 개입했다는 것은, 실제와 너무나 먼 터무니없는 말이다.(주4)


그런데 ‘근본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문구를 보면, 단순한 착각으로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원자폭탄의 힘을 절감한 나가이 다카시가 ‘하나님이 저런 힘을 예비하지 않았으면 미국이라도 원자폭탄을 개발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하나님의 힘을 우러러보아야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러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원자폭탄이 우라카미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큰 뜻이며 큰 은혜이므로, 우라카미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永井隆『長崎의 鐘』, 131)’고 설파하지 않았을까?


피폭 받은 사람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핵무기 자체를 저주하거나,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을 비난했다. 천황 숭배자가 아닌 피폭자라면, 원폭 투하의 원인을 제공한 천황ㆍ천황 중심의 전쟁체제를 비난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ㆍ천황을 비난하기는커녕 미국의 배후에 하나님의 힘이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해야한다’는 자학적인 표현이 신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피폭이라는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는 자학적인 신앙(주5)을 제대로 이해해야, 나가이 다카시의 섭리설(주6)ㆍ번제설(주7)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피폭이라는 시련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는 특유한 신앙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Ⅳ. 섭리, 번제, 시련


피폭과 관련된 이야기를 대화체로 엮은『長崎의 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힘 없는 걸음으로 市太郞氏가 들어온다. 양복바지에다 대님을 친 귀환병(歸還兵). 돌아와 보니 고향은 폐허. 내 집은 재 뿐이고 사랑하는 아내와 5남매의 흑골(黑骨)이 드문드문 널려 있었다. 「나는 이제는 더 살 재미가 없소」「전쟁에 지고 무슨 살 재미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그것은 그렇지만 누구를 만나도 이러는데요. 원자탄은 천벌(天罰). 죽은 자는 악인(惡人)이고 산 사람은 하느님이 도와준 선인(善人)이라고. 그렇다면 내 아내 내 새끼들이 악인(惡人)이란 말이람!!」 「글쎄? 나는 아주 정반대인데. 원자탄이 浦上(우라카미)에 떨어진 것은 하느님의 큰 뜻이며 큰 은혜라고 浦上은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지요」”(永井隆『長崎의 鐘』, 128~129)


위는 ‘市太郞’이라는 보통 사람과 나가이 다카시가 나눈 대화로서, 주제는 ‘원자탄은 천벌인가 아닌가’, ‘피폭자는 악인인가 선인인가’이다. ‘누구를 만나도 이러는데요. 원자탄은 천벌(天罰). 죽은 자는 악인(惡人)이고 산 사람은 하느님이 도와준 선인(善人)이라고...’는 ‘피폭자가 평소에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원자탄이라는 천벌을 받았다’는 당시의 악언(惡言)ㆍ루머를 반영한 것 같다. ‘가톨릭 신자들이 불교ㆍ신도(神道)를 믿지 않기 때문에, 원자폭탄이라는 천벌을 받았다’는 말이 당시에 떠돌아다닌 듯하다.


여기에서 ‘가톨릭 신자중의 피폭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으므로 악인이 아니라 선인이다. 따라서 평소에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원자탄이라는 천벌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악인이 아닌 선인인데, 선인이 천벌을 받을 수 있나?’는 반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반론에 대한 나가이 다카시의 대답이 “글쎄? 나는 아주 정반대인데. 원자탄이 浦上에 떨어진 것은 하느님의 큰 뜻이며 큰 은혜라고 浦上은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지요” 이다. 그냥 정반대가 아니라 아주 정반대를 하며 ‘원자탄이 浦上에 떨어진 것은 하느님의 큰 뜻이며 큰 은혜라고 浦上은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학적인 역설을 하는데, 이 역설이 ‘浦上 번제설(燔祭說)’의 핵심이다.


浦上 번제설은 나가이 다카시가 ‘천주공교(天主公敎) 浦上 신도 대표’로서 낭독한「原子爆彈死者合同弔辭」(1945년 11월 23일) 및 「浦上合同慰靈祭弔詞(第1周年)」(1946년 8월 9일) 속에 표명되어 있다. 전자는『長崎の鐘』(172~178쪽)에, 후자는『ロザリオの鎖』(69~74쪽)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면 나가사키 원폭에 대한 세 가지 질문<도대체 나가사키 원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원폭에 의한 사망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살아남은 피폭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를 제기할 수 있다. 나가이 다카시는 이 질문에 대하여 ① 섭리 ② 번제 ③ 시련이라고 해답을 제시하며 ‘浦上 燔祭說’을 정립한다.
 

첫째, 나가사키 원폭의 성격에 관하여, 나가이 다카시는 우라카미(浦上)에 원폭이 투하된 것은 우연이나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신(神)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945년] 8월 9일의 한밤중에 우라카미의 천주당이 불타 오른 것, 천황이 ‘종전의 성단(聖斷)’을 내린 것, 성모가 승천(昇天)한 大祝日에 ‘종전의 대조(大詔)’가 발표된 이러한 ‘이상한 일치’는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천왕(天王)의 묘한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둘째, 원폭 사몰자(死沒者)에 관하여, 나가이 다카시는 신의 제단에 올려진 희생 즉 ‘번제’(holocaust)로 본다. 원폭 사몰자는 ‘정치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죽어야할 곳’을 얻어 ‘아름다운 최후’를 마치며 ‘더럽게 죽은 어린양’이다. 전란(戰亂)의 그야말로 암흑 속에서 마지막 평화의 빛을 보낸 8월 9일. 이 천주당 앞에서 불꽃으로 올라간 커다란 번제여! 극도로 비통한 가운데 우리들은 번제를 곱고 정결하며 소중하게 모신다.       

셋째, 겨우 살아남은 자들에게 원폭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가이 다카시는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순교, 끊이지 않는 박해, 원자폭탄. 이것들 모두는 결국 종교를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도, 천주의 광영(光榮)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한 시련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神이] 우라카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라카미에 고난을 안겨 주었으며,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결핍을 안겨주셨다. 그래도 끊임없이 은혜의 비를 이 교회 위에 쏟아주시는 천주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올리나이다.’

원자폭탄은 신에 의해 주어진 ‘시련’이라는 것이다. ‘우라카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라카미에 고난을 주시는 신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올려야한다’는 것이다.(高橋眞司, 198~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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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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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1) 1945년 8월의 피폭 당시 불교ㆍ신도(神道)를 믿고 있던 사람들은, 우라카미에 살면서 피폭된 기독교 신자들을 향해 ‘당신들이 불교ㆍ신도를 믿지 않고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천벌을 받았다’며 저주했다.
한편 나가사키에 핵무기가 투하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일제; 日帝)의 전쟁이다. 한반도 등을 침략한 일제의 전쟁이 핵무기 투하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핵무기 투하는 잘못된 것이지만, 핵무기 투하를 초래한 일제의 전쟁ㆍ식민지 지배는 더욱 잘못된 일이다. 더욱 잘못되었기 때문에 핵무기에 의해 천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일제의 잔학한 지배에 분노하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ㆍ일제(1945년 피폭 이전에는 일제이었음)가 하나님의 벌(천벌)을 받아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폭을 바라보기 때문에, 한국인 등의 ‘원폭투하=천벌’觀이 더욱 강화되는 것 같다.

(주2) 나가이 다카시는, 우라카미 성당의 가까이에 있던 나가사키 의과대학 부속병원 본관의 부장실에서 유해 방사능을 띤 원폭에 맞아 오른쪽 두부(頭部) 동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주3) 가톨릭에서 로사리오의 기도를 드릴 때 쓰는 성물로, 큰 구슬 6개, 작은 구슬 53개를 꿰고 끝에 작은 십자가를 단 묵주를 말한다.

(주4) 나가이 다카시가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무언가 허깨비를 보고 그것을 하나님의 위대한 힘으로 착각한 듯하다.『영원한 것들』을 탈고한 1948년 1월 17일, 백혈구의 수가 31만에 달하고, 전신의 탈력(脫力)은 심하고, 의식은 가끔 몽롱해져(永井隆『영원한 것들』, 352) 무언가 환영(幻影)을 보고 그것을 하나님의 힘으로 착각하지 않았다면, ‘원자폭탄을 미국이 정제할 리 없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5) 가톨릭 신앙에 자학적인 요소, 고난을 찬미하는 요소가 있다고 한다.
(주6)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주7) 원자폭탄 투하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피폭자는 하나님에게 바쳐진 희생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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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永井隆 지음, 이승택 옮김『長崎의 鐘』(서울, 삼일 출판사, 1949)
* 永井隆 지음, 이승우 옮김『영원한 것들』(서울, 성바오로 출판사, 1970)
* 永井隆 지음, 백태희 옮김『평화탑』(서울, 성바오로 출판사, 1981)
* 永井隆 지음, 조양욱 옮김『로사리오의 기도』(서울, 베틀 북, 1999)
* 高橋眞司『長崎にあって哲學する』(東京, 北樹出版,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