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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동맹(한미동맹,미일동맹)

탈미 사회구성체

김승국

Ⅰ. 친미-반미의 이분법을 넘어 ‘탈미’를

한겨레신문이 주도한 ‘선진대안 포럼’ 참가자들은 “친미-반미의 이분법 넘어 탈미를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된 {한겨레신문}(2006.4.4)의 기사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친미로 세운 나라 반미로 망한다.” 최근 어느 보수단체 집회에 나붙은 현수막 내용이란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소개했다. 참석자들이 크게 웃었다. “미국 숭배자도 미국 공항 검색대에서 한번 발가벗겨지면 반미가 된다.” 또 한 번 참석자들이 웃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꺼낸 이야기였다. “친미-반미를 대립시키는 것만큼 허구적인 게 없다.”고 말했다. “지금 ‘반미’하자는 의견은 무의미하고 관념적이다.”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미에 반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반미를 넘어 ‘탈미’로 가자”는 게 김명인 인하대 교수의 제안이었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참석자들은 그렇게 친미-반미의 이분구도를 입을 모아 비판했다. 그 이분구도 안에서 자라난 냉전 반공주의자들이 비판의 첫 번째 대상이었다. 동시에 ‘기계적 ・관성적 반미’도 성찰의 대상이 됐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는 “반미 또는 친미로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들은 엄숙한 명분을 현실에 단순화시켜 적용하는 경향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하나의 입장만으로 미국을 바라보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김명인 교수는 특히 반미 구호가 국민적 공감대를 넓게 얻지 못하는 지점을 짚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신세대들에게 미국의 ‘역사적 죄과’만 강조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오히려 현재의 한미 관계에 대한 합리적 ・객관적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김 교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반미를 넘고 지미(知美) ・용미(用美)를 거쳐 탈미로 가자”고 제안했다. 여기서 ‘탈미’란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한 ・미 관계를 정상화시키자는 것이다. 지미 ・용미는 그 상태에 이르기까지 적절하게 미국의 힘을 활용해 운신의 폭을 넓히자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제 세계적 차원에서 누구도 미국을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인류의 공존공영을 방해하는 고약한 말썽꾸러기라는 인식이 더 크다. 이런 점에서 ‘탈미’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면 보수와 진보를 다 설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정인 교수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 “한국인들의 인지 구조에는 친미 ・숭미 ・반미 ・혐미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세력은 한-미동맹이 국익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고, 진보세력은 반미 역시 평화공존 ・공동번영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국제정세의 맥락에서 탈미의 가능성을 짚었다. 이 교수는 우선 “미국을 배제하면 동북아나 한반도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이 새로운 동북아 질서 구축을 모색하고 있고, 한국 역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비교적 잘 발전시킨 상태”라며 “바로 이 지점에 한국이 미국을 변화시켜 새로운 한미 관계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80년대 이후 반미운동의 변화 흐름을 짚은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반미’ 개념의 새로운 적용을 주문했다. 홍 교수가 관심을 두는 것은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박은 “미국은 좋은 사회라는 이데올로기”다. 그는 “세계 최대의 낭비국가 ・오염국가 ・전쟁국가인 미국의 실체를 제대로 본다는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반미라는 개념을 새롭게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미국’을 정돈해야 ‘우리 밖의 미국’과도 대등한 관계를 모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1. 왜 탈미인가?

최근 보수주의자들이 애용하는 단어 중에 ‘용미(用美)’라는 것이 있다. 종전처럼 미국에 대한 ‘의리’를 강조해 봐야 젊은이들의 비웃음을 사게 되고 대중의 자긍심마저 커졌으니, “우리가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대미 예속의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 가장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반도의 남반부가 미국의 영향권에 편입된 1945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을 ‘이용’할 여유도 없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보호’를 원했던 토착 통치자들과 동아시아에서 군사 거점이 전략적으로 필요했던 미국 사이에 일종의 ‘운명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남한의 부르주아 ‘온건파’에게 전쟁광인 부시와 시장을 교란시키는 미국계 투기 자본은 버거운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온건파는 자유주의적 투지 ・자주성을 결여한 주변부형 부르주아 정객의 보수성과 미숙성에다 독재 시절 때부터 그대로 온존해 온 군 ・관 ・학계의 숭미파의 무게가 가미돼 탈미(脫美)를 시도하기는커녕 미국의 ‘총알받이 공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한겨레신문}(2004.3.8), 박노자 교수의 기고문>

최근의 북한 핵 사태 속에서 아주 굵직한 하나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그 어떤 것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이 우리 앞에서 용솟음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탈미(脫美)다. 생경하기 짝이 없는 이 조어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빚은 부산물에 다름 아니다.

탈미는 한자어 그대로 ‘미국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그러나 일상어가 된 반미(反美)와 비교했을 때 탈미란 말의 뜻이 알기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미국을 반대함’과 ‘미국에서 벗어남’, 이는 둘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을 반대함이라는 표현은 보다 직접적이고 전투적이다. 반면에 미국에서 벗어남이라는 표현은 전자를 포괄하면서 그 단계를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미는 반미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이러한 탈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작금 미국은 허겁지겁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북핵 사태를 야기하면서 처음부터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는 강수를 뒀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경제봉쇄로 후퇴했다. 그것은 이내 대화할 수 있다는 쪽으로 대폭 조정됐다.

물론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배경에는 이라크전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조치들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이상기류를 읽고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조건부 대화를 제안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 이상기류는 탈미다.

주지하다시피 핵공격도 불사하겠다고 분기탱천하고 있을 때 정작 동맹관계인 한국은 이를 명백히 반대하면서 중국 등에 특사를 보내 중재를 요청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일본도 평화적 해결을 지지했다. 경제봉쇄 역시 모두 반대했다. DJ는 “냉전시대 때도 공산국가에 대한 경제봉쇄가 성공한 적이 없다.”며 정면으로 미국에 어퍼컷을 날렸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동시에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가 미국을 참혹하게 ‘왕따’시킨 것이기도 하다. 피 흘리는 것은 고사하고 격렬한 구호 한번 없이 반미를 넘어 탈미의 경지에 접어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탈미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객관적 조건은 탈미로 흐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것을 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부시가 읽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탈미로 흐르고 있었던 객관적 조건은 동아시아의 공동의 이해관계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 남한, 북한 등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축으로 제2의 경제부흥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동아시아 경제연합. 남북 정상회담과 북일 수교, 한러 외교강화, 북러 외교강화 등은 이 같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었지만 세계 경찰국가인 미국은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는 우를 범했다.

미국은 스스로 왕따를 자초한 셈이다. 그러나 탈미 이면에 미국의 패권적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약육강식만으로는 더 이상 여러 나라의 경제를 부흥시킬 수 없다는 비판이다. 일본이 북핵 사태에 소극적인 것은 이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탈미의 주관적 조건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를 비핵 평화지대로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주체적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주체적 행위의 극적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탈미는 더욱 값지다.<{디지털 성남 일보(http://snilbo.co.kr)}(2004.11.11), 이건행 씨의 기고문>

노무현 정권과 탈미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집요한 압력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강행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성격상 ‘반미(단호한 파병 거부)’는 못 하지만 ‘탈미’는 할 수 있다. 국민의 정서를 핑계 삼아 미국이 원하는 파병을 하기 어렵다는 ‘탈미(협상을 통한 파병 거부 또는 유보)’의 움직임이 없는 게 아쉽다.

스페인을 보라. 2003년에 스페인에서 정변이 일어나 사회당이 집권했다. 선거 유세기간 중 스페인의 사회 노동당 당수인 로드리게스 사빠테로 씨는 ‘스페인군의 철수’를 주장하면서 ‘부시와 블레어는 자기비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미국에 종속적이었던 스페인의 외교 자세를 수정하여, 미국에 비판적인 독일 ・프랑스 쪽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집권 이후 그의 뜻대로 스페인은 미국의 우산에서 벗어나 유럽(독일 ・프랑스) 지향적인 외교를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스페인의 대전환에 자극을 받은 폴란드 역시 지금까지의 ‘친미-反독일 ・프랑스 외교’를 중단하고 스페인처럼 ‘탈미(脫美)-親유럽(親독일 ・프랑스)’으로 돌아서려고 하며, 그 징표가 ‘이라크 주둔 폴란드군의 철수’ 카드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한가? 형님 나라 ‘미국’이 종용하니까 어쩔 수 없이 파병하는 꼴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처럼 정색을 하며 철군하겠다는 근성도, 폴란드처럼 배짱을 내밀며 미국을 굽실거리게 만드는 외교술도 없이 미국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2. 탈미 현상

탈미를 요청하는 정세가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감행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에 앞서 민초들이 ‘탈미’를 선언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두 여중생(효순 ・미선 양)의 사망 이후 들불처럼 번진 탈미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두 여중생의 사망과 탈미 현상

두 여학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다. 그런데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에 의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니, 그 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양키 고 홈’으로 치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12개국 20개 도시에서 여중생 추모 1주기 행사가 엄숙하고 경건하게 거행됐다. 어디에서도 ‘양키 고 홈’을 외치며 불상사를 야기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우리 국민은 이제 미국과 평등한 관계, 즉 서로를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를 원하고 있다. 최근 강만길 상지대 총장이 ‘탈미(脫美)’라는 용어로 이런 정서를 대변하기도 했다. 이 단어는 오늘날 우리 국민 대다수의 대미(對美)정서를 표현한 말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부적절한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미국의 시각이 어떠하든 우리 사회의 ‘탈미’ 경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Press 25(http://www.press25.co.kr)}(2003.6.14), 박병우 씨의 기고문>

    2) 강만길 총장의 탈미 현상 진단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2004년 4월 2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특수관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관계가 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의 현실인식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6.25 전쟁 이후) 그동안 한미동맹이 반세기 가량 유지돼 왔어요. 그러나 대등한 입장에서의 동맹이 아니었죠. 수평관계가 아닌 수직관계였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과거 한미동맹으로는 우리가 지향하는 남북 평화통일을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과거 한미동맹으로 통일을 한다면 북한 지역까지도 미국과의 특수관계로 들어가기 때문이죠. 그 경우 중국 ・러시아가 용인하겠습니까?”

이런 인식 아래 그는 옳은 의미의 한반도 평화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미관계가 우선 정상적인 국제관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2002년 말 전국을 달구었던 의정부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는 강 총장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는 촛불시위는 여태의 비정상적인 한미관계를 정상관계로 가져가는 운동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일각에서 반미(反美)운동이 아니었느냐는 의견을 내놓지만 엄밀히 얘기한다면 탈미(脫美)운동이라고 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연합뉴스}(2004.4.29)>

    3) 탈미의식의 보편화

한국일보가 미디어 리서치를 통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57.5%가 반대 입장을 밝혔고, 찬성은 41%로 조사됐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안보불안 유무에 대해서도 52.6%가 ‘불안하지 않다’고 답한 반면 ‘불안하다’는 47.2%였다. 미군 주둔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서는 ‘감축’(38.5%) 또는 ‘철수’(9.7%) 주장이 ‘증강’(3.2%) 또는 ‘현 수준 유지’(47.7%)와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역시 2004년 2월 조사에서 61.4%가 ‘상당기간’ 또는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답한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사무처가 폴에버에 의뢰해 2004년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대학생 1,270명을 상대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변국의 한반도 통일 우호도 평가에서는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중국(38.3%)을 꼽았고 미국(28.4%), 러시아(25.8%), 일본(7.4%)이 뒤를 이었다.

역으로 통일에 가장 적대적인 국가를 묻는 설문에는 응답자의 49.1%가 미국을 꼽았고 다음으로 일본(35.7%), 중국(10.3%), 러시아(5%) 순 이었다. 한미관계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7.1%가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민주평통의 이번 조사는 대학생 모집단의 성, 지역, 학제를 고려해 표본집단을 추출,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8%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6 ・15 정상회담,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과 반미 촛불시위 등을 겪으며 사회 인식이 크게 변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대미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십여 년 전만해도 미국을 ‘제일의 우방’이요 ‘우리와 제일 친한 나라’로 꼽던 친미의식은 2002년 풀뿌리까지 타오른 촛불의 물결을 타고 ‘반미’로, 이제 주한미군을 감축해도 안보불안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탈미’ 의식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민중의 소리(http://www.vop.co.kr)}(2004.6.8)>

  3. 탈미의 범주
 
    1) 탈식민주의(decolonialism)로서의 탈미(de-USA / de-America)

정정호는 ‘탈식민주의로서의 탈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단절한다는 의미에서 ‘탈’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삼고 있는 목표를 지칭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안이함과 단순함은 곧 탈식민하려는 우리를 배반할 것이다. 식민주의를 반대한다는 것(anti-colonialism)은 구호로서는 쉬운 일이나 벗어난다는 것(decolonization)은 얼마나 어렵고도 복잡한 과정인가?(정정호, 2000, 148)

식민주의를 포월(匍越)하기 위한 ‘탈’식민이론의 수립을 위해 우리는 근대론, 탈근대론, 생태론을 동시에 접합시켜야 한다. 식민이론의 토대로서의 근대(화)를 ‘탈’하고 근대라는 제국주의의 생태학적 정복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론이 개입되는 복합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근대(성), ‘탈’근대, 생태론의 세 개 고리가 동시에 논의되어야 일방적인 근대화와 서구화에 맞서는 ‘탈’식민 방략이 효과적으로 전개될 것이다(정정호, 2000, 150).

김동춘 교수는 ‘한국 사회과학에서의 탈식민의 과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다국적 기업은 과거의 제국주의의 총과 칼을 대신하는 새로운 점령군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나이키(Nike)와 맥도날드(Macdonald)의 공략, ‘디지털 혁명’ 인터넷의 담론에 노출되고 있는 세계 각 지역의 젊은이들과 주민들은 이제 새로운 형태의 식민화의 조건에 놓였다(김동춘, 2000, 216-217).

우리는 식민화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것은 정보와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나 그것이 군사력 대신 자본의 논리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부드러운 식민주의’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초기적 미국화-세계화와 맞물린 미국화가 공존하는 세계의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초기적 미국화가 해방 후 군사 정치적 종속 과정에서 발생한 미국화라면, 오늘의 미국화는 미국 자본주의의 전지구화로 인한 미국화이다. [전자의 희생양]이 매향리 주민이고 [후자의 경우] IMF 광풍으로 인한 실업자, 비정규직 군상, 디지털이라는 ‘神’에 의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모두 노예화되고 있다(김동춘, 2000, 222-223).

그러므로 생활세계의 식민화의 문제와 함께 보아야 문제의 성격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식민화라는 것은 곧 지식 권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지식 권력을 가능케 하는 현실 정치권력과 현실 경제권력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고, 따라서 탈식민의 과제 역시 단순한 지적인 단절 혹은 주체화의 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건 지은 물질적인 조건, 정치적 지배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김동춘, 2000, 238).

지배하는 앎도 아니고 지배당하지도 않는 앎, 그것은 진정한 탈식민의 전략이며, 이 점에서 탈식민의 과제는 과거의 단순한 반식민(反植民)의 패러다임과는 차별적이다(김동춘, 2000, 245).

    2) 탈미 자주 평화

한반도에서 탈미의 요체는 ‘자주평화’에 있다. ‘자주평화’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탈미의 문이 열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탈미 자주평화의 사회 구성체’ 형성을 가로막는 주한미군-미국에 대한 군사 ・정치적 종속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주평화에 관하여 앞에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4. 탈미의 전략

  1) 탈미 동북아 경제평화 협력체

6 ・15 공동선언 가운데 통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1항의 자주와 2항의 통일방안에 초점을 맞추어 공동선언 이행의 현주소를 평가하고, 이행을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공동선언의 민족사적 의의를 논하고, 공동선언 1항인 민족자주 이행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공동선언 자주이행의 합의와는 정반대로 한미 군사동맹이 기존의 예속 ・방어 동맹에서 예속심화 침략동맹으로 변질되는 역사의 퇴행을 점검하고, 반자주적인 반역의 길이 아닌 역사 순응의 행로인 한미관계의 탈군사동맹화와 우호협력 관계로의 변환을 촉구한다. 이에는 주한미군의 전면철군과 탈미 동북아 경제평화 협력체의 태동을 포함한다.

여중생 압살사건을 계기로 반미 촛불시위라는 주권 되찾기가 활발히 전개되고, 미국에 비판적이고 대등한 한미관계를 역설해 왔던 노무현이 집권 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되는 등 새로운 움직임이 시민사회 수준에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들 남북한과 동북아에서 동시에 일어난 큰 흐름은 남북한 개별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 러시아, 중국 등과 합주곡을 울린 결과였고, 동북아라는 큰 지각의 총체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미국의 일방주의가 지배하는 동북아에서 벗어나 탈미의 동북아시아 경제평화 협력체제의 서막일 수 있었다.<강정구 「6 ・15 공동선언 1-2항 이행의 현주소」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2호(2004.7.28)>

2003년 7월 26일 연세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포럼’에서 ‘전쟁위기의 연속인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보장체제로’라는 주제로 발표한 강정구 교수는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의 강화를 통한 대중국 포위망 구축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동북아 군사패권전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미 동북아협력체 형성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협력체는 시베리아 개발 중심의 경제 협력체를 통해 동북아 5개국의 공통이익을 진전시키면서 이를 바탕으로 안보 협력체를 추구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면서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2) 탈미 동아시아 연합

동아시아 각국의 대내외 정책이 평화 지향적으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모색하는 가운데 아시아의 평화 공동체를 지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개의 구도 즉 아시아의 ‘탈미 정치연합’, ‘탈미 다자간 안보 틀’ ‘탈미 경제협력 틀’이 3위 1체를 이루며 ‘아시아의 반미(反美) 민중연대’와 결합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아시아의 ‘탈미 정치연합’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ASEAN(동남아시아 국가 연합)+3(한국 ・일본 ・중국)의 기능을 ‘탈미(脫美)’쪽으로 견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2년에 ASEM 사상 처음으로 한 ・일 정상이 미국에 ‘북한과의 전쟁’을 자제하도록 요청한 기백으로 ASEAN+3 정상회담에 임하면 ‘탈미’의 기운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ASEAN에 기반을 둔 ARF(ASEAN 지역 포럼)에서 ‘탈미 다자간 안보 틀’을 모색하길 바란다. ARF는 현재 아시아에서 국가 간의 공동안보를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이므로, 우선 이런 기구를 이용하여 아시아인들끼리 벌이는 각종 분쟁(영토 분쟁 포함)을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ASEAN, ARF, ASEM에 미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김에서 벗어난 위치에서 ‘탈미 정치연합’을 내올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탈미 경제협력 틀’인데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아시아의 시장을 휩쓸고 있는 마당에 이런 틀을 내오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시아의 자원 ・자본을 아시아인이 공동 사용하는 취지의 아시아 경제공동체(EU의 아시아판)를 지향한다면 어려울 일도 아니다. EU(유럽연합)가 1953년의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부터 비롯되었듯이 아시아의 공동자산인 지하자원 ・‘철(鐵)의 실크로드’를 아시아인이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다. ‘철의 실크로드’에 아시아인의 공동자산인 지하자원을 실어 나르는 다자간 협정을 맺음으로써 미국 자본 없이도 아시
아의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는 게 급선무이다.

5. 결 론

앞으로 탈근대, 탈자본주의, 탈사회주의에 ‘탈미’를 추가하는 사회구성체 논쟁이 긴요하다. (미국에 의해 남북한의 사회 구성체가 관리 당하는) 한반도 분단체제를 탈피하는 ‘탈미의 행군’을 하지 않는 한,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 사회 구성체의 성격 변화는 기대난이다.

남북한 각 사회 구성체의 성격을 평화 지향적으로 변환시키지 않으면, 필자가 제시한 평화 로드맵 제1단계의 대강이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남북한 각각 <지속 가능한 평화(sustainable peace)를 통한 사회 구성체(남한의 경우 ‘탈미 자주형 사회 구성체’)>를 창출해야 평화 로드맵의 제1단계가 완성될 것이다.

평화 로드맵 제1단계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통한 탈미 자주 사회구성체’를 더욱 발전시켜, 평화국가 연합에 걸맞은 사회 구성체로 변환시켜야 통일의 대문이 열릴 것이다.
(20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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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395~410쪽을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