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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전쟁론, 전쟁관

‘포스트 모던’의 국제관계학에서 본 북한 핵문제

김승국

1. 여는 말

탈냉전 세계의 정세를 반영한 새로운 국제관계학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포스트 모던(post modern)’의 국제관계학이다. ‘포스트 모던’ 국제관계학의 근저에는, 푸코(Foucault), 데리다(Derrida), 보들리야르(Baudelliard) 등에 의한 포스트 모던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포스트 모던의 철학은, ‘지식 자체가 권력으로 편입되어 권력의 주요 부분으로 기능하는 한편 권력이 지식을 만들어낸다’는 권력론을 전개한다. ‘인륜 해방’을 표방하는 근대의 지식이, 민중을 지배・억압하고 살육(!)하는 ‘근대의 표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포스트 모던의 철학은 비판한다. 최첨단 과학의 지식을 군사화한 토마호크 미사일 등으로 이라크를 초토화한 걸프전을 통하여, 포스트 모던 철학에 입각한 국제관계론이 발전하게 된다.

푸코는 {권력과 지식}(1977) 등의 저작을 통하여 지식의 권력기능을 비판하면서 근대적인 ‘인륜해방’ 논리의 허망함을 지적했다. 근대의 계몽정신에 따라 민중을 향도하는 ‘지식의 권력성’과 계몽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이와 같은 포스트 모던 철학이 발전시킨 언어학의 방법론적인 성과를, 포스트 모던의 국제관계학이 수용한다. 포스트 모던의 국제관계 이론은, ‘권력과 지식’의 언설(Discourse, 담론)에 대한 분석을 방법론의 주제로 삼는다.

언설은 현실 자체는 아니다. 언설은, 그것이 의미 있다고 규정한 대상을 ‘현실감이 있는’ 생생한 것으로 만든다. 언설은,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의미의 범주’, 즉 이해의 틀이다. 하나의 세계만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세계가 있다. 언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언설을 통해서만, 여러 세계(현실) 중 단 하나의 세계만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선 언설을 몇 가지 현실과 대조시켜 본다. 언설이 만드는 이론・역사・고전의 설화(narrrative)를 엮어내는 ‘텍스트(text)性’을 해체하고 그것을 탈구축(脫構築)한다. 언설에 의해 만들어진 것(construction)의 의미를 해체(deconstruct)하여, 또 하나의 진실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포스트 모던의 ‘의미 해체’ 작업에 따르면,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 등이 위협을 받는다는 현실은 있을 수 없다. 단지 여러 현실 중에서 언어・언설이 만든 ‘표상’, 즉 ‘북한의 공산주의・대포동 미사일・핵미사일 포격’이라는 표상을 매개로 대상(미국 등)을 위협하는 현실만 있을 수 있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의 위협을 받는 현실’이 아니라 ‘북한의 공산주의・대포동 미사일・핵미사일 포격이라는 표상을 매개로 미국이 위협을 받는 현실’이 포스트 모던 국제관계학의 관심사이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의 위협을 받는 현실’이라는 언설을 해체하여 ‘북한의 공산주의・대포동 미사일・핵미사일 포격이라는 표상을 매개로 미국이 위협을 받는 현실’ 쪽으로 탈구축하는 게 포스트 모던 국제관계학의 관심사이다.

여기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근원적으로 촉발한 북한 위협론의 여러가지 표상(북한=악의 축・불량국가・깡패국가・폭정의 전초기지/김정일은 피그미)을 중심으로, 북한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언설(특히 미국 쪽 언설)의 모순을 밝히는 데 있어서, 포스트 모던 철학의 ‘의미 해체’ 방법론을 끌어들일 수 있다.

  (1) 북한 핵관련 언설해체 작업

북한 핵과 관련된 언설을 해체-탈구축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 대립적인 2항 개념(zero sum 관계로 대치시킨 대항개념)을 만들어내는 위계질서(hierarchy)를 역전시킨다. 북한 핵과 관련된 2항 개념은, 평화/전쟁, 질서/무질서, 문명/야만, 민주주의/전제・독재, 진보된 근대 서구/비서구(非西歐)이다. 위에서 평화・질서・문명・민주주의・진보된 근대 서구는 미국 쪽이고, 전쟁・무질서・야만・전제・비서구는 북한 쪽이다. 이러한 2항 개념을 역전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위와 같은 2항 대립을 해체시켜 북한 핵관련 담론을 다른 문맥으로 수정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언설・정체성(identity)에 숨은 ‘차이성(差異性) ・배제’의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북한 핵관련 2항 대립은 (진보된 서방인) 미국이 (지체된 非西歐인) 북한에 대하여 ‘差異化(estrangement)’ ・‘疎外化(alienation)’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진보된 근대의 미국이 지체된 전근대(前近代)의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비합리적이고 이율배반적인 2항 대립의 세계상(世界像)’을 해체해야 한다. 근대(미국)의 표상인 첨단기술・민주주의가 선(善)이고 우위에 서 있는 반면 전근대(前近代)의 개발도상국 북한이 악(惡)이고 열등하다는 ‘폭력적인 차이화의 구조’를 해체-탈구조시켜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타자화(他者化)함으로써 제국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국제관계의 구조(mechanism) 속에서 이러한 차이화가 발생한다. 이러한 차이화의 선례는 냉전시대의 ‘공산주의・소련・중국’ 위협론의 담론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탈냉전시대에는 ‘불량국가(Rogue state: 북한・이라크・이란 등)'라는 화제(Text: 주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Text(텍스트)를 탈구축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2) ‘텍스트’의 탈구축

국제관계에서 우리들/주체는, 직접적인 접근로를 갖고 있지 않다. 대상/객체와 주체의 관계는 씌어진 줄거리/대본(Script) ・언설과 (언설을 만드는) 텍스트에 의해 중개된다. 대본 또는 대본을 구성하는 텍스트가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대본은 단일하지 않다. 그것은 개개의 주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상속된다. 이러 측면에서 그것은 제
도이다.

북한 위협론은, 부시 정권의 북한 죽이기 시나리오의 줄거리, 미국 언론의 북한 비난 논평 속의 대본・언설・텍스트에 의해 중개된다. 이러한 대본은 미국인 개개의 주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제국 미국이 집단적으로 북한 위협론을 의제(擬制)한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제도이다. 북한 죽이기의 제도이다. 이 제도의 함정을 파괴하기 위해, 북한이 2 ・10 선언(2005년 2월 15일의 핵무기보유 선언)을 한 것이 아닐까?

북한 핵관련 담론을 탈구축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텍스트(미국의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북한 핵관련 텍스트 및 미국 언론을 추종하는 한국・일본 언론의 논평)에 대항하는 텍스트(2 ・10 선언 이후 미국에 저항하는 북한 쪽의 논평들)를 맞대응시켜 ‘또 하나의 독해(讀解)’를 해야한다. 이 독해의 대상을, 북한 죽이기에 열중인 한국・미국・일본의 황색언론・스파이 소설・신문 독자 기고란・코미디・영화・텔레비전・비디오 게임・영상물의 대본(텍스트)으로 확대함으로써, 북한 죽이기 시나리오의 징후를 읽는 게 긴요하다. 이 징후 읽기를 통해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제국 미국의 지배 담론에 은폐된 현실’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본질 파악을 통해 미국의 북한 협공(북한 핵시설 공습) 징후를 재빨리 알아채야 이에 대비할 수 있다.

2. 북・미간 포스트 모던 전쟁

앞에서 설명한 징후 읽기를 중심으로 북・미간 포스트 모던 전쟁구도를 설명한다. 이 설명을 통해 북・미간 핵공방의 뿌리에 접근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던의 국제관계학에 정통한 데리안(Derrian)이 ‘전쟁은 곧 처벌’이라고 강조했듯이, 미국의 대북 전쟁기획은 북한에 대한 처벌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처벌하기 위한 대북 전쟁․북한 공습을 기획하는 네오콘(부시 정권 안의 강경파)의 발상을 조심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패권국가가 ‘이형화(異形化)된’ 他者인 북한에 대한 처벌, ‘異常者(abnormal)’인 북한을 ‘정상화(normal)’하기 위한 행위, 동북아의 질서유지를 위한 전투행위로서 북한 핵시설 폭격이 가능하다는 발상을 네오콘이 갖고 있다.

미국은 이미 동북아의 질서유지를 위한 ‘감시(surveillance)’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감시탑(panopticon)’을 세워놓았다. 벤담(Bentham)이 죄수들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원형 감시탑인 ‘panopticon’을 구상했듯이, 부시 정권이 처벌 대상인 북한의 핵무기 관련 동향(핵실험 준비 포함)을 지켜보다가 여차하면 공습하기 위한 panopticon을 증설하고 있다. 기존의 대북 정밀 공중정찰을 강화하고 북한 핵시설만 전담하는 군사위성을 가동하고, 전 세계의 337곳에 있는 핵실험 탐지 장치(특히 일본 원자력 연구소 東海 연구소의 장치)가 북한 쪽을 향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는 고전적인 전쟁에서 ‘최첨단 기술(Hi-tech 기술)을 동원한 포스트모던 전쟁’에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는 포스트 모던 전쟁 체계는 네 가지 S群인 ① Surveillance(감시)/Spy(첩자) ② Speed(속도)/Space ③ Security State(안보국가)/Terrorism ④ Simulation(대북 전쟁게임)/Spectacle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 네 가지 S群에 따라 북・미간 포스트 모던 전쟁의 본질을 살펴본다.

(1) 북・미간 포스트 모던 전쟁의 첫 번째 본질
      ---첫 번째 S群: Surveillance/Spy

우선 감시하는 미국(권력/패권국가) 측과 감시당하는 북한(異形의 他者/민중) 측 사이에 ‘정보의 거대한 불균등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이라는 스파이(가장 오래된 직업은 매춘부?)의 對人 정보(Human intelligence: HUMINT)에서 최첨단 기기・우주정찰위성 등의 기술정보(Technical intelligence: TECHINT)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수단을 확보한 미국(권력/패권국가) 측은, 대량의 확실한 정보를 거의 순식간에 확보할 수 있고 대량 유포할 수 있다. 그러나 감시당하는 북한(異形의 他者/민중) 측은 이러한 매체를 갖고 있지 못하므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불안한 가운데 정보조작을 당한다. 조작통제(control)하는 미국의 확실성과 조작통제당하는 북한의 불확실성이 나타난다. 이런 정보의 불균등성이 북한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불안’의 증대가 북한으로 하여금 ‘위기관리’의 중요함을 일깨워준 끝에 ‘위기관리’ 차원에서, 북한이 2 ・10 선언을 한 것이 아닐까?

미국은 기술 전략적(techno strategic)인 힘에 의해 ‘이상(異常)’한 타자(他者)인 북한을 정상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타자화(他者化)된 이교도(異敎徒)’를 중개/조정하는 고전적인 외교 대신 ‘反外交(anti diplomacy)’가 부시 정권 아래에서 설치고 있다.

  (2) 북・미간 포스트 모던 전쟁의 두 번째 본질
      ---두 번째 S群: Speed의 정치화(時政學)

최첨단의 포스트 모던 전쟁의 본질은, 공간/영토보다 속도/시간을 지배/획득하는 쪽으로 이행하는 데 있다. 미국의 정보 미디어・교통수단・무기의 급속한 발달이 북한을 향한 속도전(速度戰)을 가능케 한다. 미국의 대북 속도전에서 영토상의 거리가 갖는 의미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공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은 주요한 전략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측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북한군과의 게릴라 지상전에 말려들지 않으며 족집게 폭격(pinpoint 공습)에 의한 북한 진압이 가능한지, 다시 말하면 시간(속도)을 더 많이 지배할 수 있는지가 대북 전쟁의 중심과제이다. 스피드의 정치화, 地政學(Geo-politics)에서 時政學(Chrono-politics)에로
의 전환이 대북 전쟁의 중심 과제라는 말이다.

물자와 미군병사를 대북 전쟁터인 한반도에 잽싸게 수송하는 게 ‘時政學에 입각한 대북 전쟁’의 숙제이다. 이 숙제풀기의 일환으로, 펜타곤이 GPR(전 세계의 미군체제 재편)을 남한 땅에 적용하는 가운데 주한미군의 재편(미군기지의 평택 총집결) ・주일미군-자위대의 대북 전쟁동원 체계를 치밀하게 가다듬고 있다.

미국은 현재 GPR에 따라 전 세계 어느 곳이든 10일 안에 미군을 투입하고, 30일 안에 승리를 거둔 다음 30일 안에 또 다른 전쟁터에 미군을 파견한다는 ‘10-30-30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2005년의 ‘10-30-30 전략’은, 1991년의 120일 전략(1991년 걸프전 직후 미국의 합참의장이 120일 전투 시나리오를 제시함)에 비하면 4배나 빠른 것이다. 4배 빠른 속도전으로 승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정학(時政學)에 입각한 대북 전쟁’의 속도도 4배 빨라졌으며, 4배 빨라진 대북 전쟁속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북한이 2 ・10 선언을 통해 미국의 대북 속도전을 차단하려고 한 듯하다.

‘시정학(時政學)에 입각한 대북 전쟁’의 표상인 GPR의 배경으로 1-4-2-1 전략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시정학(時政學)에 입각한 대북 전쟁’을 위해 ‘1-4-2-1 전략’을 북한에 적용할 태세이다. ‘1-4-2-1 전략’에서 ‘1’은 미국 본토의 완전한 방어, ‘4’는 전 세계 4개 지역에서의 전진 억제, ‘2’는 2개 지역 전쟁터(중동・한반도)에서의 신속한 승리, 맨 끝의 ‘1’은 마지막 남은 1개 전쟁터에서의 결정적인 승리를 뜻한다. 여기에서 맨 끝의 ‘1’이 북한이냐 이란이냐의 선택만 남겨놓은 상태이다. 공교롭게도 북한과 이란 모두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함정, 즉 핵무기 개발 시비에 걸려 있다. 미국 측에서 볼 때 ‘1’의 최종 후보를 선정하여 핵관련 시설을 공습하는 군사행동의 마지막 조율만 남아 있다.

  (3) 북・미간 포스트 모던 전쟁의 세 번째 본질
      ---세 번째 S群: Security State/Terrorism

핵에 의한 냉전 체제 아래에서 만들어진 ‘국가안전보장 국가(National security state)’는, 기술정치(Techno politics)의 등장에 의해 비대화한다.

그리고 비대화한 국가안전보장 국가는 처벌하는 측과 처벌당하는 측 쌍방에 ‘테러와 폭력’의 기회를 증대시킨다. 처벌하는 측(미국)은 정교한 기술 전략적인 힘에 의해 ‘국가 폭력’으로써 국가테러리즘의 기능을 한층 강화한다. 미국이 벙커 버스터(Bunker buster)폭탄과 같은 ‘사용하기간편한 핵무기’를 북한 제압용으로 개발하는 것 자체가 국가테러이다. 미국의 대북
핵공격 의도가 깃든 NPR(Nuclear Posture Review),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발사에 대비하여 미국이 배치하려는 MD(Missile defense: 미사일 방어) 시스템・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의 초정밀 첨단무기들 안에 국가테러의 기능이 내재한다.

한편 처벌당하는 북한은 미국의 국가테러에 대항하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폭력장치인 핵무기를 통해 미국에 맞서려고 한다. 미국 측에서 볼 때, 북한이 테러 지정 국가답게 (국가테러의 수단인) 핵무기를 통하여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북한 정규군의 상대적 열세(한・미 연합군의 통상무기와 비교한 열세)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핵억지력의 상대적 우위를 미국을 향해 구사하려고 한다. 북한이, 한・미 연합군에 대한 군사력(통상무기 중심의 군사력)의 열세를 정반대로 뒤집기 위해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 핵무기를 국가폭력 또는 국가테러의 상징물로 간주한다면, 처벌하는 미국 측과 처벌당하는 북한 측이 모두 ‘핵무기를 통한 국가폭력(테러)’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4) 북・미간 포스트 모던 전쟁의 네 번째 본질
      ---네 번째 S群: Simulation/Spectacle

전쟁 모의실험(Simulation), 전쟁게임(Gaming), 전쟁을 구경거리(Spectacle)로 만드는 시스템이 북・미간 포스트 모던 전쟁의 네 번째 본질이다. 북한을 감시・처벌하는 미국은 처벌에 앞서 전쟁 모의실험, 전쟁게임에 의한 실전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핵문제를 에워싼 제1차 북・미 공방이 벌어진 1994년의 전쟁위기(미국의 북한 처벌)에 앞서 펜타곤이 여러 차례 전쟁 모의실험을 했다. 전쟁 모의실험 결과 수만 명의 미군 사망자 속출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미국이 대북 전쟁을 중단한 바 있다. 이제 2005년의 제2차 북・미 핵공방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라는 새로운 정황 때문에, 핵전쟁까지 고려한 정밀한 전쟁모의실험이 불가피하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때문에 대북 전쟁의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진 현재의 상황 속에서 펜타곤이 어떤 전쟁 모의실험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부시 정권 안의 강경파(네오콘)가, 1994년에 북한 핵시설을 폭파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 ‘북한 핵보유 상황 아래에서의 대북 전쟁기획’ 자체가 난제임을 알아챌 수 있다. 이러한 난제는, 걸프전 때와 같은 전쟁의 구경거리(Spectacle)를 CNN이 중개하도록 함으로써 대북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펜타곤의 고난을 대변해준다.

북・미간에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은 장대(壯大)한 볼거리(Spectacle)로서 전 세계 민중 앞에 다가설 것이다. 민중들은 감자 칩을 짓씹으며 전투를 응시하고, 일희일비(一喜一悲)도 없이 전투를 지원하고, 전쟁행위에 푹 빠져 가해자 측(미군)의 잔학성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어, (북・미간의 관계가 요구하는) 윤리성・전쟁비판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민중에게 빵을 주고 서커스를 보여주라’는 로마 황제 네로의 말을 상기하면 될 것이다.

3. 포스트 모던의 안전보장론을 북・미간 핵공방에 적용하기

포스트 모던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이 주창하는 인간안보(Human security) ・환경안보론을 배척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안보론을 제시한다.

  (1) ‘언설이 안보불안・위협을 만들어낸다’는 안보론

포스트모더니즘의 측면에서 보건대 ‘안전보장’은 무릇 언설의 실천이며 언설에 의해 전쟁・분쟁의 문맥(context)이 ‘구성(construct)’된다. 이러한 언설의 구성은, 북한 핵을 둘러싼 북・미간의 말싸움(언설전쟁)이 양국의 기세(氣勢) 싸움으로 번지고 급기야 무력 싸움으로 급전(急轉)할 수도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발견된다. 일단 언설에 의한 ‘안보불안(insecurity)’ 상태가 조성된다. 1994년에 전쟁위기까지 치달은 제1차 북・미 핵공방을 뉴욕 타임즈 의 언설(영변 핵시설을 찍은 프랑스 상업위성의 사진을 폭로한 기사)이 불 질렀으며, 제2차 북・미간 핵공방의 불씨인 ‘켈리 특사의 우라늄 농축 협박(방북한 켈리 특사가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음’을 시인하라고 협박함)’ 카드도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등이 제공했다. 이렇
게 미국 언론의 언설에 의한 안보불안(북한의 핵개발이 미국을 위협하므로 미국의 안보불안이 커진다)이 조성되는 가운데 ‘북한에 의한 위협’이 특정되면, 안보 전략(NPR 전략, 작전 계획 5026 ・5027 ・5029 ・5030 ・5055 등)의 초점이 북한으로 모아져 ‘북한 붕괴를 위한 대북 전쟁’이 당연시된다. 미국의 언론 매체가 만들어내는 북한 위협론의 언설이 ‘북한=악마・사탄’이
라는 표상을 대량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표상이 실제의 안보 현장이나 전쟁터에 적용된다. 북한 위협론의 언설과 관련하여 인터넷에 유포되는 가상, 뉴욕 타임즈 등의 표상이 전쟁의 실상―대북 전쟁의 실전화(實戰化)를 유도한다는 뜻이다.

  (2) 타자(他者)를 위협의 원천으로 보는 안보론

부시 정권은 미국과 북한의 차이성(差異性)을 찾아 그 차이성을 확대해왔다. 더 나아가 이 차이성을 미국(우리들)과 이질적인 他者性(Otherness)으로 변환함으로써 북한을 안보불안・위협의 대상으로 창출했다. 북한의 他者性은 ‘우리들(미국)’의 밖에 있는 타자(External others)일 뿐 아니라, 미국 안에 있는 타자(Internal others: 9 ・11 테러와 관계가 있다고 선전하
는 무슬림 세력/반체제 세력)를 동일하게 위협의 원천으로간주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일본이 북한 위협론을 통해 북한을 국외의 타자로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의 타자인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의식을 강화한 것도 비슷한 사례이다.

  (3) 타자화(他者化)와 정체성

부시 정권은 위협 대상인 북한을 타자화함으로써 제국 미국의 정체성(Identity)을 강화했다. 미국의 정체성(Pax Americana 등)이, 북한이라 타자를 창출함으로써 통용되었다. 달리 말하면 미국 자신(Self)의 정체성은, 북한 등의 무수한 타자(Non-self)에 의해 구성됨으로써 유지된다. 여기에서 정체성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적인 것이다.

부시 정권은 북한과의 차이성을 ‘급진화(radicalize)’하는 등 북한을 ‘급진적인 타자(Radical others)’로 변환시킴으로써 부시 정권의 정체성을 확보했는데, 여기에는 ‘미국 내의 압력’이 개재되어 있다. 북한을 급진적인 타자로 만들어 군비증강을 꾀하려는 군・산 복합체의 압력, 북한을 사탄으로 몰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압력, 이 두 가지 압력을 종합하여 대북 전쟁을 전개함으로써 미국-미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네오콘(Neo Con)의 압력이 개재되어 있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과 네오콘이 북한을 급진적인 타자로 내몰아 북한을 붕괴시키라고 부시 정권에 압력을 넣는 밑바탕에, 북한이라는 민족의 정화(淨化), 즉 북한이라는 인종의 청소(Ethnic cleansing) 발상이 있다. 마치 나치즘이 유대인을 인종청소했듯이 부시 정권은 인종청소하듯 북한을 ‘싹쓸이’하려 하며 그 수단으로서 전쟁 카드를 사용하려고 한다.
대북 전쟁의 뜸을 들이기 위해 북한을 급진적인 타자(극악한 깡패국가)로 만들고 있으며, 이에 맞선 북한이 2 ・10 선언을 통해 ‘철저하게’ 저항하는 것이다. 2 ・10 선언 이후 미국 쪽에서 대북 인종청소의 칼을 가는 소리가 아우슈비츠의 비명・아메리칸 인디언의 절규와 중첩되어 들리는 듯하다.

급진적인 타자인 북한을 인종청소하는 기획의 이론적인 근거는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에 있다.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에 따라 북・미 갈등을 해설하면, 한반도를 넘보는 미국의 자본주의 문명과 (비서구・비자본주의 국가인) 북한의 주체 문명(?)이 대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한복판에서 2 ・10 선언이 나왔다. 주체 문명(?)의 핵무장이, 미국의 제국주의 문명에 도전장을 낸 데 대하여 북한 인종청소․북한 죽이기 전쟁으로 응전하지 못하면 ‘제국의 종말’을 앞당기게 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관념을 부시 정권이 갖고 있는 듯하다. 이 때문에 북미 관계가 더욱 악화되어 두 나라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있다. 이 ‘원수 상(像)’을 지양한 다음에 한반도 안팎의 평화를 예비하는 하나의 지적인 작업으로서 ‘포스트 모던의 관점에서 북한 핵문제’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4. 닫는 말

포스트모더니즘은 민족주의를 타자화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펜타곤의 포스트 모던 안보 전략에 따라 대북 전쟁이 기획되고 있으며 이에 저항한 북한이 2 ・10 선언을 함으로써 전쟁의 불씨가 커져가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포스트 모던의 국제관계학을 통해 통찰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2 ・10 선언 이후 다양한 북한 붕괴 전략을 구사하는 가해자 ‘미국’의
의도를간파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포스트 모던의 국제관계학을 원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해자 측이 동원하는 이론 체계가 무엇인지를간파해야 피해자 측의 대항이론 체계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 핵공방의 예상되는 제1차적인 피해자는 북한・북한 인민이며, 제2차적인 피해자로 남한・남한 국민이 내정되어 있다. 이렇게 우리 민족 전체가 직간접적인 피해자로 상정되어 있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민족의 지혜가 총동원되어야 하며, 지혜를 동원하는 방편의 하나로 포스트 모던의 국제관계학에 접근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2005. 8. 20.)

* 이 글을 쓰기 위하여, 進藤榮一 지음 {現代國際關係學}(東京, 有斐閣, 2001) 187∼202쪽을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