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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도시

히로시마 탐방 (28) 폭심지에서 36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옛 일본은행 히로시마 지점] 건물이 피폭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이 건물 안에 있던 28명중 17명이 생존하는 기적을 낳았다. 내진 설계(지진에 대비하여 40~70센티미터의 벽으로 둘러싼 설계) 탓에 붕괴되지 않고 사망자의 숫자를 줄인 것이다. 피폭 당시 1~2층은 셔터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폭 사망자를 크게 줄였다. 생존자의 대부분은 1~2층에 있던 사람들이고, 셔터를 내리지 않아 원폭에 대하여 무방비이었던 3층 사람들은 거의 사망했다. 피폭 직후 영업을 재개하여 피폭으로 기능 마비된 여러 은행들이 이곳에 몰려 들어와 히로시마 금융가의 중심지이었다. 이 건물을 피폭 유적지로 삼아야한다는 시민들의 운동이 성과를 발휘한 끝에, 이 건물을 히로시마 시청에 무..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7) 폭심지에서 36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옛 일본은행 히로시마 지점] 건물이 피폭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이 건물 안에 있던 28명중 17명이 생존하는 기적을 낳았다. 내진 설계(지진에 대비하여 40~70센티미터의 벽으로 둘러싼 설계) 탓에 붕괴되지 않고 사망자의 숫자를 줄인 것이다. 피폭 당시 1~2층은 셔터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폭 사망자를 크게 줄였다. 생존자의 대부분은 1~2층에 있던 사람들이고, 셔터를 내리지 않아 원폭에 대하여 무방비이었던 3층 사람들은 거의 사망했다. 피폭 직후 영업을 재개하여 피폭으로 기능 마비된 여러 은행들이 이곳에 몰려 들어와 히로시마 금융가의 중심지이었다. 이 건물을 피폭 유적지로 삼아야한다는 시민들의 운동이 성과를 발휘한 끝에, 이 건물을 히로시마 시청에 무..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6) 폭심지에서 36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옛 일본은행 히로시마 지점] 건물이 피폭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이 건물 안에 있던 28명중 17명이 생존하는 기적을 낳았다. 내진 설계(지진에 대비하여 40~70센티미터의 벽으로 둘러싼 설계) 탓에 붕괴되지 않고 사망자의 숫자를 줄인 것이다. 피폭 당시 1~2층은 셔터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폭 사망자를 크게 줄였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5) 1945년 8월의 피폭 당시 34명의 교사와 886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던 후쿠로마치 초등학교(폭심지로부터 460미터 떨어짐)가 피폭을 당하여 교사 17명과 학생 140명이 사망했다. 이 학교의 칠판(피폭으로 새까맣게 그을은 칠판) 위에, 학생들의 안부를 묻는 '전언(傳言)'이 남아 있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4) 히로시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는 ‘안데르센(Andersen)’이라는 제과소 겸 카페는, 1945년 8월 6일 피폭 당시에 일본 제국은행의 히로시마 지점이었다. 폭심지로부터 360미터 떨어진 이 건물의 지붕•천정이 떨어지고 기둥이 파괴되고 철근이 노출되는 등 건물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콘크리트의 외벽이 남았다(건물 윗부분의 검게 그을은 부분이 피폭된 외벽임). 이 건물의 소유주가 피폭된 외벽을 고집스렙게 보존한 끝에 피폭 유적지가 되었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3) 히로시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는 ‘안데르센(Andersen)’이라는 제과소 겸 카페는, 1945년 8월 6일 피폭 당시에 일본 제국은행의 히로시마 지점이었다. 폭심지로부터 360미터 떨어진 이 건물의 지붕•천정이 떨어지고 기둥이 파괴되고 철근이 노출되는 등 건물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콘크리트의 외벽이 남았다(건물 윗부분의 검게 그을은 부분이 피폭된 외벽임). 이 건물의 소유주가 피폭된 외벽을 고집스렙게 보존한 끝에 피폭 유적지가 되었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2) 1945년 8월 6일에 핵무기 세례를 받아 잿더미가 된 히로시마가, 시민들의 투혼에 힘입어 평화의 도시로 거듭났다. 피폭 이후 생존한 시민들은 불타고 남은 집의 부스러기 자재를 모아 허름하기 짝이 없는 군대식 막사를 짓는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시민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공동체가, 피폭의 지옥도(지옥 같은 피폭현장)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1) 1945년 8월 6일에 핵무기 세례를 받아 잿더미가 된 히로시마가, 시민들의 투혼에 힘입어 평화의 도시로 거듭났다. 피폭 이후 생존한 시민들은 불타고 남은 집의 부스러기 자재를 모아 허름하기 짝이 없는 군대식 막사를 짓는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시민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공동체가, 피폭의 지옥도(지옥 같은 피폭현장)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더보기
히로시마 탐방 (20) 히로시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는 ‘안데르센(Andersen)’이라는 제과소 겸 카페는, 1945년 8월 6일 피폭 당시에 일본 제국은행의 히로시마 지점이었다. 폭심지로부터 360미터 떨어진 이 건물의 지붕•천정이 떨어지고 기둥이 파괴되고 철근이 노출되는 등 건물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콘크리트의 외벽이 남았다(건물 윗부분의 검게 그을은 부분이 피폭된 외벽임). 이 건물의 소유주가 피폭된 외벽을 고집스렙게 보존한 끝에 피폭 유적지가 되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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