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헌 속의 ‘평화’ (6)
‘和平’의 뜻풀이 1
김승국(평화 활동가)
‘평화’라는 용어는 일본인이 만든 ‘平和(헤이와)’를 우리말로 직역하여 쓰는 말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서양의 ‘Peace'에 가까운 의미의 ‘平和(헤이와)’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평화(한반도)’ ‘平和(일본)’은, 한반도•일본에서 겨우 250년 전부터 사용한 용어일 뿐이다. 그 이전에는 동양권(중국•한반도•일본•동남아시아 등)에서 모두 ‘和平(허핑)’을 공식어로 사용했다. 동양의 고전에는 ‘和平’으로 표기되어 있지 ‘平和’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和平’이 대세이고 ‘平和’는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평화’의 한자표기의 뿌리인 ‘和平(허핑)’을 중심으로 뜻풀이를 시도한다.
1. ‘和(허)’의 어원(語源)
‘和平(허핑)’은 ‘和(허; hé)’와 ‘平(핑; ping)’의 결합어이지만 앞부분인 ‘和(허; hé)’에 더욱 큰 무게가 있다. 그래서 ‘和(허; hé)’에 중점을 두고 어원을 찾아들어간다.
1) 소생(小笙)이라는 악기의 이름
소생(小笙; 아래의 그림)이라는 악기를 지칭하여 ‘和’라고 부른다.
위의 악기를 형상화한 중국의 고자(古字)가 ‘화(龢)’이다. ‘화(龢)’는 소생((小笙)이라는 악기의 전신(前身)으로 생황(笙簧; 雅樂)에 쓰는 관악기의 하나이며, 화(和)라는 한자의 어원을 이룬다. 즉, ‘화(龢)’라는 관악기를 입으로 불면서 ‘소리를 서로 맞춘다’는 뜻에서 ‘和’의 고자(古字)인 ‘龢’가 맨처음에 등장했다. ‘和’라는 글자의 변화과정을 나타낸 아래의 그림에서 맨처음 등장하는 A가 ‘화(龢)’이다.
위의 그림의 A처럼 ‘龢’라는 관악기를 입으로 불면서 소리를 서로 맞추는 모습에서 B와 같은 갑골문(甲骨文)이 등장했고 오랜 세월에 걸쳐 C와 같은 소전(小篆)체, D의 예서(隸書)체, E의 해서(楷書)로 변화를 거듭했다. E의 해서체 ‘和’가 현대인들이 애용하는 문자이다.
이렇게 몇 천년 동안 이어져온 ‘和’라는 문자의 변화과정을 무시한 채 ‘和’라는 글자의 겉모습만 보고 “和=禾(벼를 뜻하는 部首)+口(입을 뜻하는 部首)”라고 공식화하는 데 문제가 있다.
‘和=禾+口’라는 공식에 따라 흔히 아래와 같이 해석하곤 한다;
“평화(平和)는 ‘밥(米)을 사람들(口)에게 균등하게(平) 나누어 준다(和).’는 것을 의미한다.
밥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곳에 평화가 있고, 평화가 있는 곳은 밥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세상이다.”
위의 일반적인 해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禾(화)’라는 부수(部首)가 벼(벼화 字)를 뜻하니 밥(米)과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데에 문제의 발단이 있다. 앞의 그림에서와 같이 ‘龢’라는 악기를 부는 모습이 和의 어원임을 무시하거나 생략한 채, ‘和=禾+口’라는 공식에 따라 禾(벼화)가 근원이라고 판단하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龢’의 오른쪽 부수(部首)인 禾는 ‘악기의 소리를 서로 맞추다•조화되다•화답하다•화합한다’는 의미이지 벼(禾)와는 해석상 무관하다. 더욱이 밥(米)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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