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남한이 주체가 되는 과제ㆍ단계별 실행 구조
1. 중립형 평화국가
‘중립형 평화국가’는 ‘중립’을 지향하는 ‘평화국가’를 의미한다. ‘중립’은 이미 알려져 있는 가치이므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므로, ‘평화국가’에 관하여 설명한다.
평화국가론을 주도한 구갑우 교수는 평화국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국가폭력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한, ‘평화국가’는 모순적 조어이다. 근대 초기 “전쟁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가 전쟁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상기할 때, 평화국가라는 표현은 하나의 모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국가나 안보국가라는 표현은 사용되지만 평화국가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평화국가가 국가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제약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평화국가를 이론적 개념으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평화와 국가에 대한 재정의를 필요로 한다. 평화국가는 국가의 폭력성과 폭력적ㆍ억압적 국가장치에 기초한 평화가 아니라,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체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평화국가론을 남한에 적용할 경우, 남한의 일방적인 군축이 남한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남북한 관계 차원에서는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평화국가가 국가인 한 완전한 무장해제를 이룬 국가가 아니라 최소한의 방어능력을 갖춘 국가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1950년대 중후반 북한의 병력감축에 대해 남한은 지상군 감축으로 화답한 것처럼, 남북한 관계에서도 일방적 군축이 상호 군축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어떤 국가도 자신만의 힘으로 절대안보를 추구할 수 없는 세계에서 국가이익과 국제사회의 규범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할 때, 비로소 평화와 안보를 획득할 수 있다. 공동안보와 협력안보는 바로 이러한 인식의 산물이다. 한반도 차원에서 공동안보와 협력안보의 실현이 곧 한반도 평화체제의 건설이다.
평화국가는 궁극적으로는 안보담론을 평화담론으로 대체하고자 한다.(구갑우, 42~44)
구갑우 교수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체제 붕괴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자기 체제의 유지를 위해 고수해 왔던 ‘적(敵)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거나 폐기하고 이를 평화국가로 만듦으로써 냉전시대 남북한 적대적 공생관계의 기반인 기존의 안보국가 담론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남한이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핵문제를 남북한의 공조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한을 평화국가화하고 남북한의 상호작용을 통해 북한 또한 평화국가의 길을 갈 수 있을 때, 북한 핵문제의 궁극적 해결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통일) 과정에 대한 국제적 승인이 가능할 때다. 이 승인은 평화(통일)의 한반도가 주변국가에게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이병천ㆍ홍윤기, 6)
이처럼 남한이 먼저 평화국가로 발돋움하면서 남북한의 상호작용을 통해 북한도 평화국가의 길을 가도록 유도할 때 북한 핵문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 조짐이 보이면, 남북한이 중립화 통일을 거론할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다. 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도 군축의 대상으로 삼아 줄어나가는 남북한이 되어야 주변국가로부터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국제적인 보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립화 통일의 과정에서 남북한의 국가 성격을 평화국가로 탈바꿈하는 평화적인 이행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평화국가 구상이 아직은 대단히 이상적인 구상으로 여겨질 것은 분명하다. 백영서 교수는 중국과 일본은 맞대고 있는 한반도 전체의 국제적 현실을 엄혹하게 대비시키면서 평화국가 구상이 대한민국 안팎에서 부딪칠 한계를 예리하게 부각시킨다. 그에 따르면 “이 구상의 요체인 남한의 선(先) 군축론에 있어서 그 적정 수준에 대해 남한 내부에서 합의를 얻기도, 또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조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남한이 먼저 ‘평화국가’가 되고 남북한의 상호작용을 통해 북한 또한 평화국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단계설정에서 초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평화체제가 분단영구화로 귀결되지 않도록 통일의 전망 속에서 평화의 제도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백교수는 6ㆍ15 선언에서 합의된 대로 남북이 지속적인 화해와 교류를 축적하여 ‘국가연합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에 도달하는 것, 즉 “남과 북이 함께 (평화국가라기 보다는) ‘평화적 안보국가’로 전환하는 것이 최선의 실현가능한 길‘이라고 주장한다.(이병천ㆍ홍윤기, 7~8)
평화국가 구상이 이상적이므로 평화적 안보국가로 우선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에 동감한다. 중립을 지향하는 평화국가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선 평화적 안보국가로 전환하는 가운데, 남북한 사이에 중립화 통일론이 무르익도록 해야 할 것이다. 평화적 안보국가에로의 전환과 중립화 통일론의 활성화가 맞물리면서 나아가는 것이 선결과제이며, 그 이후에 평화국가 구상을 실현하면 좋을 듯하다. 평화적 안보국가 구상ㆍ평화국가 구상의 실현을 단계론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중립화 통일의 이행과 관련하여 이행표의 제1단계(남북한 교류ㆍ평화공존 단계)에 평화적 안보국가로 전환한 뒤 제2단계에 평화국가로 나아가면서 평화국가 연합(국가연합)을 촉진하면 좋을 것 같다.
2. 중립 지향적인 군사구조 ①
‘중립화’가 ‘평화ㆍ안전체제’의 제도화에 궁극의 목표를 두며 따라서 여기서는 군사문제가 중심과제를 이루는데 비하여 ‘통일’의 경우는 ‘통일된 국가체제’의 형성에 궁극의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여기서는 포괄적 의미의 정치 문제가 중심과제이다. 요컨대 분단국의 통일문제에 대한 ‘중립화’의 기능은 일차적으로 외부세력들 간의 경합관계를 조정하는 데 있고 그 핵심은 군사문제를 위주로 한 평화질서의 제도화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강광식 외, 40)
그렇다면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평화질서의 제도화에 필요한 무력을 어느 정도로 갖춰야할까? 중립화 통일의 주체인 남한이 어떠한 군사구조(병력규모ㆍ군사력ㆍ국방비ㆍ안보전략ㆍ군사체계)를 갖춰야 중립을 이루어내는데 적절한가? 중립화 통일을 위한 군사구조의 적정선은 어느 정도인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상반된 두 가지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① 19세기말 고종 정부가 일본 등을 향해 줄곧 중립화 제안을 했는데, 일본 쪽에서 “조선은 중립화를 이끌어낼 만큼의 무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며 거부했다. ② 1953년의 휴전협정 체결 이후 줄곧 남북한은 150만 명의 병력이 DMZ를 에워싸고 대립하고 있다.
①항의 경우 군사력이 부족하면 중립화가 불가능하다는 논의를 성립시킬 수 있다. ②항의 경우 남북한 간의 과잉 군사력 때문에 오히려 중립화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논의도 성립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군사력이 부족해도 중립화가 안 되고 군사력이 넘쳐나도 중립화가 안 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러한 딜레마를 드러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①항과 관련하여 고종 정부의 군사력 부족이 중립화 정책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이 많은데, 과연 ‘19세기 말의 조선 정부가 너무 적은 군사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중립화를 이룰 수 없었나? 군대가 없는 코스타리카의 경우 19세기말의 조선 정부와 비슷하거나 약한 경찰력으로도 중립화를 지켜내고 있지 않나? 반드시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중립화가 가능한가? ②항과 관련하여 ‘1953년의 휴전협정 체결이후 60년 동안 남북한 병력 150만 명이 DMZ를 에워싸고 대립하고 있는 냉전 상황 때문에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없게 되어 중립화 통일이 불가능한 게 아닌가?
이 두개의 질문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않으면 ‘적절한 군사구조를 갖춘 군사적 중립을 통한 중립화 통일’이 불가능하므로 선결과제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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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강광식 외『한국통일 문제의 현주소』(서울, 늘품플러스, 2009)
* 강종일『고종의 대미외교』(서울, 일월서각, 2006)
* 구갑우「한반도 분단체제와 평화국가 만들기」『시민과 세계』제10호(2007년 상반기)
* 이병천ㆍ홍윤기「평화의 국가, 공공의 국가: 다시 광장의 진보로 가는 길」『시민과 세계』제10호(2007년 상반기)
* 정용화 외『동아시아와 지역주의』(양평, 미래인력연구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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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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