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1994년 5월 29일에 세계도시계획 헌장인 ‘메거리드 헌장’이 발표되었다. 이 헌장은 21세기의 평화와 과학의 도시 La Citta’ Cablata를 위해 다음과 같은 10가지 원칙을 천명했다.( 국토정보 155호, 73-77)
① 도시와 자연: 도시환경과 자연환경의 균형 유지는 미래 도시의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의 근본 토대이다.
② 도시와 인간: 미래의 도시는 여러 인종의 시민이 함께 살며, 서로 교류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미래의 도시는 각 인종별 지역 공동체의 특성과 문화적 차이점을 존중하며, 모든 시민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생활을 제공하여야 한다.
③ 도시와 시민: 미래의 도시는 모든 시민이 어떠한 장소나 서비스, 정보에도 최대한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또한 각기 다른 집단마다 자신들의 특수한 요구를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재화와 용역, 시설 및 쾌적성(Amenity)의 공급은 실제적인 수요와 일치해야 한다.
④ 도시와 이동: 미래 도시에서의 이동은 주로 집합적인 교통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은 도시 구조와 조화를 이루면서 개인적 이동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보행과 자전거 통행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⑤ 도시와 복합성: 미래의 도시는 전체로서의 도시체계와 각 부분체계를 포함하며, 물리적 체계에서 인식체계까지, 기능적 체계에서 제도적 체계까지, 건축의 체계에서 지역의 체계에 이르기까지 복합적 요소들을 망라하여 관리해야 한다.
⑥ 도시와 기술: 기술혁신, 특히 텔레마틱스(전화와 컴퓨터를 결합한 정보서비스 시스템)는 미래 도시를 관리하고, 도시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⑦ 도시와 재생: 새로운 건물을 구상할 때에는 먼저 기존 건물을 재생시켜 새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여야 한다. 이는 지역성(locality)의 의미를 존중하는 것이다.
⑧ 도시와 안전: 도시계획 전략은 도시를 보다 안전하게 하고, 물리적으로 융통성이 있으며, 접근과 퇴장이 용이하도록 수립되어야 한다. 도시에 도달하고, 도시 내부에서 이동하며, 도시를 떠나는 것, 이러한 방식으로 도시를 공유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⑨ 도시와 미(美): 새로운 건축은 단순히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건물로 만족하지 않고 이를 뛰어넘는 건물과 공간을 생산하여야 한다. 새로운 건축은 물리적인 요구를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민의 내적 세계를 반영하는 아름다운 도시를 창조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사람들의 여러 가지 형태의 표현을 해석하고 이것들을 중시해야 한다.
⑩ 도시와 시간: 21세기의 도시 ‘la citta’ cablata, 평화와 과학의 도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도시 안에 면면히 형성된 역사와 문화를 표현해야 한다.
미래의 평화 도시(la citta’ cablata)를 위한 위의 10대 원칙의 요점은 (시민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생활을 제공하는) 지역 공동체, 지속가능한 개발,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도시, 지속가능한 순환형 도시, 쾌적성에 있다. 이들 요점들 사이의 연동성이 높아질수록 평화 도시의 10대 원칙을 충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요점별로 설명한 뒤 요점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이 평화 도시로 연결되도록 하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한편 이 작업을 서울시를 중심으로 진행하면 훨씬 더 현장감이 있을 것이다. 서울시를 평화 도시로 만들기 위한 ‘요점들의 상호 연관성’을 생각하며 이 작업에 임하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Ⅰ. 평화 도시를 위한 요점
1. 지역 공동체
대표적인 지역 공동체인 도시와 마을 중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의 평화가 급선무이다. 도시라는 지역 공동체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 개개인의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지역 공동체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지역을 공동기반으로 하는 특수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지역 공동체는 단지 일정한 지역의 공유에 의한 연대감만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 가치의 공유를 통해 연대감을 갖고 있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지역 공동체는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많은 주민들이 특정한 이념이나 신앙의 장벽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공유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생활 전 영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지역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① 지역 내에 다양한 공동체 모임들이 존재한다는 것, ② 그 공동체들이 서로 연계하며 교류한다는 것, ③ 그 공동체들이 서로 지역 안에서 공동의 유대감을 갖고 공동의 목적으로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오혁진, 2006, 92-94)
위의 요점에 대한 설명을 서울시에 적용하면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① 서울시도 지역을 공동기반으로 하는 지역 공동체인데, 왜 지역공동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기괴한 거대도시(metropolitan)라는 생각만 떠오를까? ② 서울시에는 지역의 공유에 의한 연대감이 없다. 서울 시민들이 공동의 목표․가치의 공유를 통한 연대감을 갖고 있는가? ③ 서울시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공유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생활 전 영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는 공동체인가? 서울 시민들은 그러한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는가? ④ 서울시 안의 다양한 생활 공동체들이 서로 연계하며 교류하고 있는가? 공동의 유대감을 갖고 공동의 목적으로 협력하고 있는가?
위의 문제 제기에 대한 확답의 정도에 따라 서울시의 평화지수가 결정될 것이다. 만약 서울시라는 지역 공동체의 아노미(anomie) 현상이 심각하여 서울 시민들은 전혀 공동체 의식을 갖지 않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고 있다는 답변이 나오면, 서울시의 평화지수는 바닥을 헤맬 것이다.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생활을 제공하는 지역 공동체일지라
280 | 잘사는 평화를 위한 평화 경제론도, 공동체 안에서 지내는 시민들 사이의 소통․연계성이 부족하면 평화지수는 자연스레 떨어진다.
2. 지속가능한 개발과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도시
현대적 의미의 도시계획과 도시관리는 태생적 기반에서부터 환경 문제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즉 도시계획이라는 개념의 형성은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파급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 문제의 발생 및 생활환경의 악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기술적 관리방안의 모색에서 출발하였다. 환경과 도시개발을 조화하려는 실질적인 시도는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의 전원도시(garden city)론이 중심이었고, 이는 20세기 초에 실제로 영국의 레치워스(Letchworth)와 웰윈(Welwyn)이라는 도시로 실현된 바 있다. 이러한 전원도시의 전통은 전 세계의 도시개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이는 환경 문제의 대두와 함께 ‘지속가능한 개발’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개발, 특히 지속가능한 도시개발 또는 도시에 대한 정의는 아직까지 명확한 개념적 합의를 이루고 있지 못한 상태이며, 또 실제 도시개발의 프로세스에서 정착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도시계획에 있어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인 개념이나 구체적인 개발방식과 지표설정 그리고 추진절차 등 실제적인 도시개발의 측면에서는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념의 명확한 정의 없이 Green City, Eco-city, Ecopolis, Zero-emission City, Livable City, Resourceful City 및 Environmental City 등의 용어가 지속가능한 도시(sustainable city)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김혜천, 2007, 174)
요즘 ‘생태도시’ 혹은 ‘환경도시’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시가 개발되고 기능하는 실제의 모습을 보면 왜 생태도시인지, 왜 환경도시인지를 도무지 알기 어렵다. 공원을 몇 개 더 만들고 가로수를 조금 더 심는다고 생태도시이고 환경도시라고 할 수 있는가?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아니다. 생태도시는 구조와 시스템 자체가 친환경적․생태적이어야 한다.(김혜천, 2007, 315)
위와 같은 관점에 따라 서울시를 생태평화 도시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 서울시가 생태평화 도시로 바뀌려면 도시 구조와 시스템 자체가 친환경적․생태적․평화적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서울시 당국이 생태도시로 거듭나려고 노력 중이어서 과거보다 친환경적인 요소가 증가한 것 같다. 그러나 평화 도시로서의 면모는 전혀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서울은 지금까지 평화 도시를 지향할 겨를이 없었다. 서울은 역사적인 수도로서 외세의 군대가 침략․점령의 마수를 뻗친 최대의 거점이었다. 외세의 군대가 서울을 차지하면 한반도 전체를 관할할 수 있게 되므로 외국 군대가 늘 서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19세기 말에 일본 군대가 진주하기 시작하여 20세기에 일본 군대․미국 군대가 교대하면서 주둔하는 체제가, 21세기 벽두까지 지속되는 ‘종속의 역사’가 3세기 동안 이어지고 있다.
3세기 동안 외국 군대가 서울에 주둔한 사실을 군사적인 측면에서 재평가하면 ‘서울은 식민도시’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서울을 식민도시로 삼은 종속의 역사는 끝내 동족상잔의 전쟁인 한국전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을 제공했다. 이처럼 종속-식민도시화의 결과가 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서울시가 식민도시․종속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평화 도시로 가는 지름길이다(식민도시 ‘서울’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다음 장에서 이루어진다).
서울시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지닌 도시이며, 전쟁 이후 한미 동맹군의 최고 사령부가 자리하고 있는 군사도시이다. DMZ를 놓고 남북한 군대의 대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서울은 한미 동맹군이 사수해야 할 최후의 보루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전쟁․평화의 관점에서 서울이라는 지역 공동체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군사기지 특히 외국 군대의 사령부가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각종 환경오염 사건이 빈발하기도 했다. 용산 미군기지 페놀 방류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앞으로 반환될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제거가 숙제로 남아 있다. 서울 부근의 주한 미군기지 반환과 관련된 각종 생태 문제(기름오염 문제 등)가 아직도 속출하고 있으므로, 생태평화적 관점에서 서울시라는 지역 공동체를 살펴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울시를 지속가능한 순환형 평화 도시로 만들기 위한 로드맵(Road map)이 있어야 한다.
3. 지속가능한 순환형 도시: Eco-village
‘지속가능한 순환’에서 ‘순환’의 좁은 의미는 폐기물의 순환을 말하고, 넓은 의미의 순환은 ‘순환형 사회 만들기’이다. 최근에 지속가능한 참된 순환형 사회 만들기의 일환으로 Eco-village 논의가 활발하다. Eco-village 개념은 서울시와 같은 대도시, 지역 소도시, 농어촌, 마을까지 적용될 수 있다. Eco-village 개념에 따라 생태평화의 도시․마을 만들기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Eco-village 개념에 따라 생태평화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도시 공업사회를 개혁하는 차원에서 경제의 재생․환경기술의 도입․환경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Eco-village 개념에 따라 생태평화의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복지․공동체․농업 살리기․마을 살리기 차원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사회를 형성해야 한다. 그럼 먼저 Eco-village의 배경부터 살펴본다.
Eco-village는, 시장 중심의 대량 소비사회에 대한 반대명제(Anti-These)의 이념이 핵심이었다. 이러한 Eco-village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흐름을 지니고 있다.
① 하워드(E․Howard)의 전원도시론(1903년)으로서 Eco-village의 출발점이다. 전원도시에서는 생산․소비가 기본적으로 자립․자급형이므로, 지역의 순환경제 사회가 상정된다.
② 독일의 슈타이너 교육(1919년)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슈타이너 교육은,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를 통한 학습․상호 협력․사랑 나누기에서 생활을 위한 사회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자와 건강한 사람들이 교류하면서 스스로 사회를 형성하는 마당인 ‘Camp Hill’(1960년대 후반)에 이은 환경학습 공원(1974년)이 대표적이다.
③ 1960년대 후반의 히피 운동(Hippi Movement)을 통하여 농촌회귀 운동이 벌어지면서, 자연공생형 사회에서 농업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어 유럽을 중심으로 생태적 특성을 지닌 ‘Farmer Culture’(1987년) 운동이 전개되어, Farmer Culture가 Eco-village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④ 1968년부터 환경 문제가 대두되자 공업단지를 생태산업 공원(Ecoindustrial park)으로 만드는 운동이 활성화되었다. (植田和弘, 2005, 34-35)
이와 같은 Eco-village 발상에 따른 도시계획이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되어, 지구촌 곳곳에서 Eco-polis, Eco-city의 이름으로 생태평화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또 1990년대에 들어 전 세계적인 Eco-village 운동을 수렴하기 위한 Global Ecovillage Network가 덴마크에서 출범했다.
Global Ecovillage Network에 의하면 “Eco-village는 협력적인 사회환경과 생활의 환경부하(負荷) 최소화를 통합하려는 사람들의 도회․마을 공동체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생태 디자인(ecological design)․Farmer culture․생태건축․청정(淸淨) 생산․대체 에너지․공동체(community) 형성 등을 통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Eco-village의 평가기준으로 ① 환경 ② 문화․정신 ③ 사회․경제의 세 가지 축(軸)으로 각 축마다 5가지 항목을 배치했으며, 이 15개의 항목이 Eco-village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植田和弘, 2005, 37)
Eco-village의 사례를 국가별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인도의 오로빌(Auroville) ② 인도 캐시미르의 라다크(Ladakh) ③ 일본 사가(滋賀)현의 ‘滋賀エコ村’ ④ 스리랑카의 Sarvodaya Dhamsak ⑤ 남아프리카의 Tlholege Eco-Village Development Project ⑥ 덴마크의 Growth Highschool ⑦ 독일의 Ökodorf Sieben Linden ⑧ 이탈리아의 Torri Supeiore ⑨ 노르웨이의 Bridge-Building School ⑩ 포르투갈의 Tamera ⑪ 스코틀랜드의 Findhorm Foundation ⑫ 세네갈의 Eco Yoff Community program ⑬ 웨일즈의 Centre for Alternative Technology ⑭ 아르헨티나의 Asociación GAIA-Ecovilla Navarro ⑮ 브라질의 Instituto de Permaculture e Ecovilas do Cerrado ⒃ 멕시코의 Ecoaldea Huehuecoyotl 17) 미국의 Los Angeles Eco-village(植田和弘, 2005, 40-41)
위의 Eco-village의 모범 사례에서 한국의 도시(서울 등)가 빠져 있다. 서울 등의 국내 도시에서 행정적으로 Eco-village를 흉내 내지만, 그 수준이 모범 사례로 꼽힐 정도에 미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서울이라는 지역 공동체 자체를 진정한 Eco-village로 만드는 노력 없이 모범 사례를 창출할 수 없을 것 같다.
4. 쾌적성
쾌적성(Amenity) 개념은 영국의 도시계획 가운데에서 형성되었다. 1909년의 주택도시 계획법에서 쾌적성은 도시계획의 전체적인 목표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Civil Amenities Act 법안에 대한 의견을 밝힌 홀포드 경은 Amenity를 ‘the right thing in the right place’, 즉 ‘그래야 마땅한 것(예컨대 숙소․온도․光․깨끗한 공기․집안의 서비스 등)이 그래야 마땅한 장소에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지역사회에서 어떤 곳에 어떤 것이 어떻게 있는 것이, 쾌적한 생활인지에 대하여 그 지역 공동체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이해될 때 비로소 ‘쾌적성’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그래서 쾌적성은 지역마다 달리 구체화되는 개념이다.
도시에서 쾌적성의 보전․창조․관리의 문제를 생각할 때 Amenity의 경제적 성격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① 쾌적성은 토지-토지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영위(營爲)의 상호 작용 안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토지 고착성(固着性)이다. ② 쾌적성에는 분할 불가능성이 있다. 쾌적성은 종합적인 것이어서 그 요소마다 분할하는 게 기술적으로 곤란하다. ③ 쾌적성은 공동소비의 성격을 지닌다. 동일한 공간․동일한 공동체에서 사는 일은, 쾌적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쾌적성은 공공재(公共財)의 성격을 갖고 있다. ④ 쾌적성의 공급은 고정적이다.
그런데 토지의 사유제와 그 토지를 대규모의 자본이 자유로이 이용․독점할 수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쾌적성을 상품화함으로써 토지․공간의 교환가치를 높이는 경향이 보편적이다. 그 결과 쾌적성 있는 환경이 일부의 기업이나 개인에 의해 소유․이용․독점되는 일이 생긴다. 쾌적성의 지역적․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한다. 쾌적성은 본래 사회적 공통자본으로서 사회적 기준에 걸맞게 사회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植田和弘, 2005, 13-15)
쾌적성은 도시의 매력을 표현하는 말이다. 도시 고유의 소재(자연․자연자본 등)와 시민의 지혜․생활문화가 상호 작용하면서 양성되는 삶의 질이 쾌적성으로 나타난다. 서울시가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쾌적성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도시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 쾌적성이 낮아 서울 시민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 서울시가 평화 생태도시로 거듭나려면 쾌적성 높이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이 강조하는 인간적 발전의 기본 요소인 잠재능력(Capability)을 서울 시민 개개인이 갖도록 해야 한다. 쾌적성이 보장하는 잠재능력의 고양을 통해 서울 시민들 개개인이 잘사는 생활(Well-being)․잘사는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서울이라는 풍토를 아름답게 가꿔 시민들의 ‘Amenity Capability’를 높임으로써, 서울이라는 지역 공동체가 잘사는 평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Amenity Capability’에 의한 잘사는 평화 공동체 만들기는, 화폐․화폐가치로 측정되는 복지개념의 한계를 뛰어넘는 잘사는 평화(Well-being Peace)의 문제를 제기한다. 개개인이 개성적으로 체화된 ‘잠재능력’을 활성화함으로써 ‘자기의 인생을 꽃피우기 위한 사회적 조건을 합의에 의해 실현하는 게 행복․복지의 요체임’을 역설한 아마티아 센의 이론에서, 서울의 잘사는 평화 공동체가 시작된다.
Ⅱ. ‘식민도시’ 서울
지금까지 평화 도시를 위한 네 가지 요점인 ① 지역 공동체 ② 지속가능한 개발과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도시 ③ 지속가능한 순환형 도시: Eco-village ④ 쾌적성에 관한 논의를 했다. 이들 네 가지 요소가 잘 어울리는 ‘생태평화 도시 만들기’를, 서울을 중심으로 비교․평가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서울을 생태평화 도시로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은 이미 평화도시를 위한 네 가지 요점의 어느 하나도 만족시킬 수 없는 비(非)생태평화 도시의 전형이 되어 있다. 서울이라는 기괴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민주주의(시민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므로 지역 공동체의 평화를 창출할 수도 없다. 서울이라는 지역 공동체에 평화의 기운을 불어넣기 위한 시민 사이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죽은 도시에서 평화 도시를 위한 가버넌스(Governance)는 너무나 난망하다. 평화 도시를 위한 서울 개조․개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한국 자본주의의 수도인 서울이 신자유주의의 교두보로 변환되는 가운데 도시공간의 변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횡행하는 투기자본의 거점이 되었다. 신자유주의 자본의 연계성․네트워크가 강하게 작동하는 곳이 서울이다. 서울은 전 세계에 걸친 신자유주의 자본 연결망의 하부 동맹체로 움직이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본점인 월 스트리트의 지점 역할을 하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의 식민도시(植民都市; colonial city)로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의 도시 공간도 신자유주의형으로 변용되고 있다. 서울의 도심이,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이 활약할 수 있도록 재편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이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는 각종 인프라(IT 시설 등)가 서울을 중심으로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서울 시민들이 초고속 인터넷을 즐길수록, 신자유주의의 우산 아래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속수무책으로 다가오는 양극화 현상은, 한국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서울이 신자유주의의 우산 아래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의 원죄(原罪)는 ‘서울이 신자유주의의 식민도시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서울이 식민도시로 전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식민도시의 원류는 조선 시대의 한성(漢城)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성이 식민도시로 전락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로서, 사대주의적인 지배계급의 외세의존이 큰 몫을 했다. 급기야 사대주의적인 지배계급의 무능력을 틈탄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력에 의해 조선 왕조가 멸망하게 되어, 한성은 본격적인 식민도시 ‘경성(京城)’으로 탈바꿈했다.
19세기 말, 식민도시 한성에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주둔하기 시작하여 20세기 전반(1945년까지)까지 경성의 한복판인 용산에 일본군 사령부가 위용을 자랑했다. 이 용산기지는 일제의 패망 이후 진주한 미군의 사령부로 전환된다. 용산기지의 주인이 일본 군대에서 미군으로 바뀌었을 뿐, 용산기지의 식민성은 21세기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서울 전역이 주한미군의 전략거점으로 변용되어 21세기를 맞이한 것도 부족하여, 신자유주의(미군을 자본으로 엄호하는 신자유주의)의 서울 지점이 된 식민성․식민도시성(植民都市性)이 강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서울의 식민성․식민도시성을 청산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이러한 청산이 없이 서울을 평화 공동체로 만들 수 없으며, 서울 공화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대한민국도 평화 공동체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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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19호에 실린 필자의 글「잘사는 평화 (12)」(2008.4.19)을 참고하세요.
1994년 5월 29일에 세계도시계획 헌장인 ‘메거리드 헌장’이 발표되었다. 이 헌장은 21세기의 평화와 과학의 도시 La Citta’ Cablata를 위해 다음과 같은 10가지 원칙을 천명했다.( 국토정보 155호, 73-77)
① 도시와 자연: 도시환경과 자연환경의 균형 유지는 미래 도시의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의 근본 토대이다.
② 도시와 인간: 미래의 도시는 여러 인종의 시민이 함께 살며, 서로 교류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미래의 도시는 각 인종별 지역 공동체의 특성과 문화적 차이점을 존중하며, 모든 시민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생활을 제공하여야 한다.
③ 도시와 시민: 미래의 도시는 모든 시민이 어떠한 장소나 서비스, 정보에도 최대한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또한 각기 다른 집단마다 자신들의 특수한 요구를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재화와 용역, 시설 및 쾌적성(Amenity)의 공급은 실제적인 수요와 일치해야 한다.
④ 도시와 이동: 미래 도시에서의 이동은 주로 집합적인 교통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은 도시 구조와 조화를 이루면서 개인적 이동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보행과 자전거 통행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⑤ 도시와 복합성: 미래의 도시는 전체로서의 도시체계와 각 부분체계를 포함하며, 물리적 체계에서 인식체계까지, 기능적 체계에서 제도적 체계까지, 건축의 체계에서 지역의 체계에 이르기까지 복합적 요소들을 망라하여 관리해야 한다.
⑥ 도시와 기술: 기술혁신, 특히 텔레마틱스(전화와 컴퓨터를 결합한 정보서비스 시스템)는 미래 도시를 관리하고, 도시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⑦ 도시와 재생: 새로운 건물을 구상할 때에는 먼저 기존 건물을 재생시켜 새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여야 한다. 이는 지역성(locality)의 의미를 존중하는 것이다.
⑧ 도시와 안전: 도시계획 전략은 도시를 보다 안전하게 하고, 물리적으로 융통성이 있으며, 접근과 퇴장이 용이하도록 수립되어야 한다. 도시에 도달하고, 도시 내부에서 이동하며, 도시를 떠나는 것, 이러한 방식으로 도시를 공유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⑨ 도시와 미(美): 새로운 건축은 단순히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건물로 만족하지 않고 이를 뛰어넘는 건물과 공간을 생산하여야 한다. 새로운 건축은 물리적인 요구를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민의 내적 세계를 반영하는 아름다운 도시를 창조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사람들의 여러 가지 형태의 표현을 해석하고 이것들을 중시해야 한다.
⑩ 도시와 시간: 21세기의 도시 ‘la citta’ cablata, 평화와 과학의 도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도시 안에 면면히 형성된 역사와 문화를 표현해야 한다.
미래의 평화 도시(la citta’ cablata)를 위한 위의 10대 원칙의 요점은 (시민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생활을 제공하는) 지역 공동체, 지속가능한 개발,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도시, 지속가능한 순환형 도시, 쾌적성에 있다. 이들 요점들 사이의 연동성이 높아질수록 평화 도시의 10대 원칙을 충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요점별로 설명한 뒤 요점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이 평화 도시로 연결되도록 하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한편 이 작업을 서울시를 중심으로 진행하면 훨씬 더 현장감이 있을 것이다. 서울시를 평화 도시로 만들기 위한 ‘요점들의 상호 연관성’을 생각하며 이 작업에 임하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Ⅰ. 평화 도시를 위한 요점
1. 지역 공동체
대표적인 지역 공동체인 도시와 마을 중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의 평화가 급선무이다. 도시라는 지역 공동체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 개개인의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지역 공동체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지역을 공동기반으로 하는 특수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지역 공동체는 단지 일정한 지역의 공유에 의한 연대감만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 가치의 공유를 통해 연대감을 갖고 있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지역 공동체는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많은 주민들이 특정한 이념이나 신앙의 장벽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공유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생활 전 영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지역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① 지역 내에 다양한 공동체 모임들이 존재한다는 것, ② 그 공동체들이 서로 연계하며 교류한다는 것, ③ 그 공동체들이 서로 지역 안에서 공동의 유대감을 갖고 공동의 목적으로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오혁진, 2006, 92-94)
위의 요점에 대한 설명을 서울시에 적용하면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① 서울시도 지역을 공동기반으로 하는 지역 공동체인데, 왜 지역공동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기괴한 거대도시(metropolitan)라는 생각만 떠오를까? ② 서울시에는 지역의 공유에 의한 연대감이 없다. 서울 시민들이 공동의 목표․가치의 공유를 통한 연대감을 갖고 있는가? ③ 서울시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공유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생활 전 영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는 공동체인가? 서울 시민들은 그러한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는가? ④ 서울시 안의 다양한 생활 공동체들이 서로 연계하며 교류하고 있는가? 공동의 유대감을 갖고 공동의 목적으로 협력하고 있는가?
위의 문제 제기에 대한 확답의 정도에 따라 서울시의 평화지수가 결정될 것이다. 만약 서울시라는 지역 공동체의 아노미(anomie) 현상이 심각하여 서울 시민들은 전혀 공동체 의식을 갖지 않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고 있다는 답변이 나오면, 서울시의 평화지수는 바닥을 헤맬 것이다.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생활을 제공하는 지역 공동체일지라
280 | 잘사는 평화를 위한 평화 경제론도, 공동체 안에서 지내는 시민들 사이의 소통․연계성이 부족하면 평화지수는 자연스레 떨어진다.
2. 지속가능한 개발과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도시
현대적 의미의 도시계획과 도시관리는 태생적 기반에서부터 환경 문제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즉 도시계획이라는 개념의 형성은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파급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 문제의 발생 및 생활환경의 악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기술적 관리방안의 모색에서 출발하였다. 환경과 도시개발을 조화하려는 실질적인 시도는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의 전원도시(garden city)론이 중심이었고, 이는 20세기 초에 실제로 영국의 레치워스(Letchworth)와 웰윈(Welwyn)이라는 도시로 실현된 바 있다. 이러한 전원도시의 전통은 전 세계의 도시개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이는 환경 문제의 대두와 함께 ‘지속가능한 개발’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개발, 특히 지속가능한 도시개발 또는 도시에 대한 정의는 아직까지 명확한 개념적 합의를 이루고 있지 못한 상태이며, 또 실제 도시개발의 프로세스에서 정착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도시계획에 있어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인 개념이나 구체적인 개발방식과 지표설정 그리고 추진절차 등 실제적인 도시개발의 측면에서는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념의 명확한 정의 없이 Green City, Eco-city, Ecopolis, Zero-emission City, Livable City, Resourceful City 및 Environmental City 등의 용어가 지속가능한 도시(sustainable city)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김혜천, 2007, 174)
요즘 ‘생태도시’ 혹은 ‘환경도시’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시가 개발되고 기능하는 실제의 모습을 보면 왜 생태도시인지, 왜 환경도시인지를 도무지 알기 어렵다. 공원을 몇 개 더 만들고 가로수를 조금 더 심는다고 생태도시이고 환경도시라고 할 수 있는가?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아니다. 생태도시는 구조와 시스템 자체가 친환경적․생태적이어야 한다.(김혜천, 2007, 315)
위와 같은 관점에 따라 서울시를 생태평화 도시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 서울시가 생태평화 도시로 바뀌려면 도시 구조와 시스템 자체가 친환경적․생태적․평화적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서울시 당국이 생태도시로 거듭나려고 노력 중이어서 과거보다 친환경적인 요소가 증가한 것 같다. 그러나 평화 도시로서의 면모는 전혀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서울은 지금까지 평화 도시를 지향할 겨를이 없었다. 서울은 역사적인 수도로서 외세의 군대가 침략․점령의 마수를 뻗친 최대의 거점이었다. 외세의 군대가 서울을 차지하면 한반도 전체를 관할할 수 있게 되므로 외국 군대가 늘 서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19세기 말에 일본 군대가 진주하기 시작하여 20세기에 일본 군대․미국 군대가 교대하면서 주둔하는 체제가, 21세기 벽두까지 지속되는 ‘종속의 역사’가 3세기 동안 이어지고 있다.
3세기 동안 외국 군대가 서울에 주둔한 사실을 군사적인 측면에서 재평가하면 ‘서울은 식민도시’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서울을 식민도시로 삼은 종속의 역사는 끝내 동족상잔의 전쟁인 한국전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을 제공했다. 이처럼 종속-식민도시화의 결과가 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서울시가 식민도시․종속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평화 도시로 가는 지름길이다(식민도시 ‘서울’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다음 장에서 이루어진다).
서울시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지닌 도시이며, 전쟁 이후 한미 동맹군의 최고 사령부가 자리하고 있는 군사도시이다. DMZ를 놓고 남북한 군대의 대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서울은 한미 동맹군이 사수해야 할 최후의 보루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전쟁․평화의 관점에서 서울이라는 지역 공동체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군사기지 특히 외국 군대의 사령부가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각종 환경오염 사건이 빈발하기도 했다. 용산 미군기지 페놀 방류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앞으로 반환될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제거가 숙제로 남아 있다. 서울 부근의 주한 미군기지 반환과 관련된 각종 생태 문제(기름오염 문제 등)가 아직도 속출하고 있으므로, 생태평화적 관점에서 서울시라는 지역 공동체를 살펴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울시를 지속가능한 순환형 평화 도시로 만들기 위한 로드맵(Road map)이 있어야 한다.
3. 지속가능한 순환형 도시: Eco-village
‘지속가능한 순환’에서 ‘순환’의 좁은 의미는 폐기물의 순환을 말하고, 넓은 의미의 순환은 ‘순환형 사회 만들기’이다. 최근에 지속가능한 참된 순환형 사회 만들기의 일환으로 Eco-village 논의가 활발하다. Eco-village 개념은 서울시와 같은 대도시, 지역 소도시, 농어촌, 마을까지 적용될 수 있다. Eco-village 개념에 따라 생태평화의 도시․마을 만들기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Eco-village 개념에 따라 생태평화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도시 공업사회를 개혁하는 차원에서 경제의 재생․환경기술의 도입․환경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Eco-village 개념에 따라 생태평화의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복지․공동체․농업 살리기․마을 살리기 차원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사회를 형성해야 한다. 그럼 먼저 Eco-village의 배경부터 살펴본다.
Eco-village는, 시장 중심의 대량 소비사회에 대한 반대명제(Anti-These)의 이념이 핵심이었다. 이러한 Eco-village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흐름을 지니고 있다.
① 하워드(E․Howard)의 전원도시론(1903년)으로서 Eco-village의 출발점이다. 전원도시에서는 생산․소비가 기본적으로 자립․자급형이므로, 지역의 순환경제 사회가 상정된다.
② 독일의 슈타이너 교육(1919년)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슈타이너 교육은,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를 통한 학습․상호 협력․사랑 나누기에서 생활을 위한 사회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자와 건강한 사람들이 교류하면서 스스로 사회를 형성하는 마당인 ‘Camp Hill’(1960년대 후반)에 이은 환경학습 공원(1974년)이 대표적이다.
③ 1960년대 후반의 히피 운동(Hippi Movement)을 통하여 농촌회귀 운동이 벌어지면서, 자연공생형 사회에서 농업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어 유럽을 중심으로 생태적 특성을 지닌 ‘Farmer Culture’(1987년) 운동이 전개되어, Farmer Culture가 Eco-village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④ 1968년부터 환경 문제가 대두되자 공업단지를 생태산업 공원(Ecoindustrial park)으로 만드는 운동이 활성화되었다. (植田和弘, 2005, 34-35)
이와 같은 Eco-village 발상에 따른 도시계획이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되어, 지구촌 곳곳에서 Eco-polis, Eco-city의 이름으로 생태평화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또 1990년대에 들어 전 세계적인 Eco-village 운동을 수렴하기 위한 Global Ecovillage Network가 덴마크에서 출범했다.
Global Ecovillage Network에 의하면 “Eco-village는 협력적인 사회환경과 생활의 환경부하(負荷) 최소화를 통합하려는 사람들의 도회․마을 공동체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생태 디자인(ecological design)․Farmer culture․생태건축․청정(淸淨) 생산․대체 에너지․공동체(community) 형성 등을 통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Eco-village의 평가기준으로 ① 환경 ② 문화․정신 ③ 사회․경제의 세 가지 축(軸)으로 각 축마다 5가지 항목을 배치했으며, 이 15개의 항목이 Eco-village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植田和弘, 2005, 37)
Eco-village의 사례를 국가별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인도의 오로빌(Auroville) ② 인도 캐시미르의 라다크(Ladakh) ③ 일본 사가(滋賀)현의 ‘滋賀エコ村’ ④ 스리랑카의 Sarvodaya Dhamsak ⑤ 남아프리카의 Tlholege Eco-Village Development Project ⑥ 덴마크의 Growth Highschool ⑦ 독일의 Ökodorf Sieben Linden ⑧ 이탈리아의 Torri Supeiore ⑨ 노르웨이의 Bridge-Building School ⑩ 포르투갈의 Tamera ⑪ 스코틀랜드의 Findhorm Foundation ⑫ 세네갈의 Eco Yoff Community program ⑬ 웨일즈의 Centre for Alternative Technology ⑭ 아르헨티나의 Asociación GAIA-Ecovilla Navarro ⑮ 브라질의 Instituto de Permaculture e Ecovilas do Cerrado ⒃ 멕시코의 Ecoaldea Huehuecoyotl 17) 미국의 Los Angeles Eco-village(植田和弘, 2005, 40-41)
위의 Eco-village의 모범 사례에서 한국의 도시(서울 등)가 빠져 있다. 서울 등의 국내 도시에서 행정적으로 Eco-village를 흉내 내지만, 그 수준이 모범 사례로 꼽힐 정도에 미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서울이라는 지역 공동체 자체를 진정한 Eco-village로 만드는 노력 없이 모범 사례를 창출할 수 없을 것 같다.
4. 쾌적성
쾌적성(Amenity) 개념은 영국의 도시계획 가운데에서 형성되었다. 1909년의 주택도시 계획법에서 쾌적성은 도시계획의 전체적인 목표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Civil Amenities Act 법안에 대한 의견을 밝힌 홀포드 경은 Amenity를 ‘the right thing in the right place’, 즉 ‘그래야 마땅한 것(예컨대 숙소․온도․光․깨끗한 공기․집안의 서비스 등)이 그래야 마땅한 장소에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지역사회에서 어떤 곳에 어떤 것이 어떻게 있는 것이, 쾌적한 생활인지에 대하여 그 지역 공동체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이해될 때 비로소 ‘쾌적성’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그래서 쾌적성은 지역마다 달리 구체화되는 개념이다.
도시에서 쾌적성의 보전․창조․관리의 문제를 생각할 때 Amenity의 경제적 성격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① 쾌적성은 토지-토지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영위(營爲)의 상호 작용 안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토지 고착성(固着性)이다. ② 쾌적성에는 분할 불가능성이 있다. 쾌적성은 종합적인 것이어서 그 요소마다 분할하는 게 기술적으로 곤란하다. ③ 쾌적성은 공동소비의 성격을 지닌다. 동일한 공간․동일한 공동체에서 사는 일은, 쾌적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쾌적성은 공공재(公共財)의 성격을 갖고 있다. ④ 쾌적성의 공급은 고정적이다.
그런데 토지의 사유제와 그 토지를 대규모의 자본이 자유로이 이용․독점할 수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쾌적성을 상품화함으로써 토지․공간의 교환가치를 높이는 경향이 보편적이다. 그 결과 쾌적성 있는 환경이 일부의 기업이나 개인에 의해 소유․이용․독점되는 일이 생긴다. 쾌적성의 지역적․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한다. 쾌적성은 본래 사회적 공통자본으로서 사회적 기준에 걸맞게 사회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植田和弘, 2005, 13-15)
쾌적성은 도시의 매력을 표현하는 말이다. 도시 고유의 소재(자연․자연자본 등)와 시민의 지혜․생활문화가 상호 작용하면서 양성되는 삶의 질이 쾌적성으로 나타난다. 서울시가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쾌적성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도시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 쾌적성이 낮아 서울 시민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 서울시가 평화 생태도시로 거듭나려면 쾌적성 높이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이 강조하는 인간적 발전의 기본 요소인 잠재능력(Capability)을 서울 시민 개개인이 갖도록 해야 한다. 쾌적성이 보장하는 잠재능력의 고양을 통해 서울 시민들 개개인이 잘사는 생활(Well-being)․잘사는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서울이라는 풍토를 아름답게 가꿔 시민들의 ‘Amenity Capability’를 높임으로써, 서울이라는 지역 공동체가 잘사는 평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Amenity Capability’에 의한 잘사는 평화 공동체 만들기는, 화폐․화폐가치로 측정되는 복지개념의 한계를 뛰어넘는 잘사는 평화(Well-being Peace)의 문제를 제기한다. 개개인이 개성적으로 체화된 ‘잠재능력’을 활성화함으로써 ‘자기의 인생을 꽃피우기 위한 사회적 조건을 합의에 의해 실현하는 게 행복․복지의 요체임’을 역설한 아마티아 센의 이론에서, 서울의 잘사는 평화 공동체가 시작된다.
Ⅱ. ‘식민도시’ 서울
지금까지 평화 도시를 위한 네 가지 요점인 ① 지역 공동체 ② 지속가능한 개발과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도시 ③ 지속가능한 순환형 도시: Eco-village ④ 쾌적성에 관한 논의를 했다. 이들 네 가지 요소가 잘 어울리는 ‘생태평화 도시 만들기’를, 서울을 중심으로 비교․평가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서울을 생태평화 도시로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은 이미 평화도시를 위한 네 가지 요점의 어느 하나도 만족시킬 수 없는 비(非)생태평화 도시의 전형이 되어 있다. 서울이라는 기괴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민주주의(시민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므로 지역 공동체의 평화를 창출할 수도 없다. 서울이라는 지역 공동체에 평화의 기운을 불어넣기 위한 시민 사이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죽은 도시에서 평화 도시를 위한 가버넌스(Governance)는 너무나 난망하다. 평화 도시를 위한 서울 개조․개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한국 자본주의의 수도인 서울이 신자유주의의 교두보로 변환되는 가운데 도시공간의 변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횡행하는 투기자본의 거점이 되었다. 신자유주의 자본의 연계성․네트워크가 강하게 작동하는 곳이 서울이다. 서울은 전 세계에 걸친 신자유주의 자본 연결망의 하부 동맹체로 움직이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본점인 월 스트리트의 지점 역할을 하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의 식민도시(植民都市; colonial city)로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의 도시 공간도 신자유주의형으로 변용되고 있다. 서울의 도심이,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이 활약할 수 있도록 재편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이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는 각종 인프라(IT 시설 등)가 서울을 중심으로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서울 시민들이 초고속 인터넷을 즐길수록, 신자유주의의 우산 아래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속수무책으로 다가오는 양극화 현상은, 한국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서울이 신자유주의의 우산 아래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의 원죄(原罪)는 ‘서울이 신자유주의의 식민도시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서울이 식민도시로 전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식민도시의 원류는 조선 시대의 한성(漢城)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성이 식민도시로 전락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로서, 사대주의적인 지배계급의 외세의존이 큰 몫을 했다. 급기야 사대주의적인 지배계급의 무능력을 틈탄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력에 의해 조선 왕조가 멸망하게 되어, 한성은 본격적인 식민도시 ‘경성(京城)’으로 탈바꿈했다.
19세기 말, 식민도시 한성에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주둔하기 시작하여 20세기 전반(1945년까지)까지 경성의 한복판인 용산에 일본군 사령부가 위용을 자랑했다. 이 용산기지는 일제의 패망 이후 진주한 미군의 사령부로 전환된다. 용산기지의 주인이 일본 군대에서 미군으로 바뀌었을 뿐, 용산기지의 식민성은 21세기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서울 전역이 주한미군의 전략거점으로 변용되어 21세기를 맞이한 것도 부족하여, 신자유주의(미군을 자본으로 엄호하는 신자유주의)의 서울 지점이 된 식민성․식민도시성(植民都市性)이 강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서울의 식민성․식민도시성을 청산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이러한 청산이 없이 서울을 평화 공동체로 만들 수 없으며, 서울 공화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대한민국도 평화 공동체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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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19호에 실린 필자의 글「잘사는 평화 (12)」(2008.4.19)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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