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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공동체(도시, 마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북한 발전 모델

김승국

Ⅰ. 개발 ․ 발전 패러다임

武者小路公秀가 「現代における開發と發展の諸問題」라는 논문에서 밝힌 개발․발전 패러다임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면서 해설을 곁들인다.

  1. 근대화 패러다임

1950년대 이후에 풍미했던 근대화 패러다임의 기본적인 특색은, 개발․ 공업화․근대화와 서구화를 동일한 가치로 보는 데 있다. 이러한 근대화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전제 아래 성립된 것이다.

    ① 개발은, 공업화․기술의 진보에 의한 생산력의 증대가 만들어 낸 경제성장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기술진보에 대한 무조건의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개발을 국민총생산(GNP)과 같은 경제적인 지표로 받아들이는 개발관을 초래했다.

    ② ‘개발=공업화’는, 어떤 사회이든지 서구와 동일한 발전단계를 경과한다는 ‘개발경로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도식이다. 개발의 경로가 단일하다는 학설은 19세기의 사회진화론, 독일의 국민경제학파-마르크스 주의에 이르는 발전 단계적 역사관과 연동되어 있다. 이 학설은 개발도상국이 서구의 공업화=근대화 경험을 모방하여 이와 동일한 경로로 나아감으로써 개발을 실현하라고 요구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③ 개발이 공업화=서구화라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은, 서구에서 태어난 과학기술․경제제도 등 공업화의 근거를 이루는 정보․제도가 개발도상국에 보급․전파됨으로써 실현됨을 말한다. 이는 개발의 근본적인 조건을 개발도상 사회의 바깥에서 찾을 뿐 사회 안의 주체적 노력을 전혀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개발을 서구의 모방과 동일시하므로, 개발도상국의 문화 전통을 (전근대적인) 개발에 대한 반대가치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낳았다.

  2. 근대화론에 대항하는 패러다임

근대화 패러다임에 따라 1960년대부터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협력․기술협력이 이루어졌으나 성공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사이에 커다란 불만을 일으켜 이른바 ‘남북문제’가 심각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근대화 패러다임이 초래한 남북문제의 모순(지구촌의 북반구에 있는 선진 공업국들과 남반부의 제3세계 국가들 사이의 모순)을 지양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5가지의 대안이 등장했다. 이 5가지 대안은, 한반도의 남북문제(남북한이 분단되어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평화 지향적인 발전론’의 정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모순을 해결하는 ‘평화 지향적인 발전론’을 내오기 위한 발상을 얻기 위해 5가지 대안을 소개한 뒤에 필자의 논평을 추가한다.

    1) 종속론 패러다임

라틴 아메리카에서 탄생한 종속이론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① 선진공업국이 형성하는 중심부에 대하여, 주변부(선진공업국에 제1차 생산품․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선진공업국 생산물의 시장이 되는 제3세계 국가들)가 종속된다.

    ② 종속이론은, 근대화 패러다임에 대항하여 ‘중심에 대한 종속관계를 고치지 않는 한 개발도상국의 개발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③ 종속이론은 남북문제 발생에 대한 선전공업국의 책임을 주장한다.

    ④ 종속론 패러다임은 국제 시스템의 종속구조 분석에 뛰어나다. 그러나 이 구조를 변혁하여 종속이 없는 국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변혁론이 없다.

    ⑤ 종속론은 ‘다국적 기업이 개발도상국의 종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지적하는 등 국제경제 시스템의 탈국가화(脫國家化)에 관한 관점을 확립하고, 국제경제분업 재편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종속이론은 1980년대의 한국 진보진영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지금은 큰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다. 종속이론을 낳은 라틴 아메리카와 남한의 사회 구성체가 다르고, 현재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남한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잣대로 종속이론이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선진공업국가들과 직접적인 경제관계를 맺지 않는 자력갱생 노선을 걸어왔으므로 종속이론과 동떨어져 있다.

    2) 해방 패러다임

종속론 패러다임과 동일한 대항 패러다임 가운데에서도, 대중운동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 해방 패러다임이다. 해방 패러다임은, 개발을 공업화=근대화=서구화와 등가(等價)의 경제성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한편, 민중의 참가에 의한 해방과 등가의 개념이 개발이라고 생각한다. 해방 패러다임은 선진공업국에 대항한 반(反)식민지주의․ 반(反)제국주의적인 민족주의의 입장에 서거나, 개발도상국의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민주화․인민의 정치참가를 요구하는 대중주의(populism)의 입장에 선다.

해방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① 개발을 국가의 경제개발로 보는 지배적인 패러다임(근대화론)을 부정하고, 인간이 자신의 자질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조건 만들기, 즉 인간적․사회적인 개발을 중시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특히 신식민주의․제국주의 아래에 있는 개발도상국 사회가 인간성을 소외시키며, 저개발이 민중의 비인간적인 생활조건을 강요하는 사실을 중시하고, 이 현상을 개조하는 해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② 해방 패러다임에 의해 해방신학․ 프레리(Paulo Preire)의 의식화 운동 등이 전개되었다. 

    ③ 해방 패러다임의 개발관은 개발도상국의 종속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점에서 종속이론과 같은 입장이며, 민중이 자기를 해방시킨다는 자력갱생 또는 자조(自助)의 원리를 중요시하는 의미에서 내발적 발전 패러다임과 공통점이 있다.
    ④ 이 패러다임의 장점은 경제․정치․사회․문화 영역을 넘어선 윤리적 차원에서 개발 문제를 다룸으로써, 민중의 동원․참가에 의한 사회변혁을 시도하는 데 있다.

    ⑤ 해방 패러다임은 한정된 지역에서 민중의 생활 향상을 꾀하는 몇몇 주목할 만한 실험에 성공했으나 국가 차원에서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⑥ 해방 패러다임은 개발의 정의를 인간․사회의 개발 쪽으로 확충했으며, 선진공업국에서도 개발 문제가 존재한다는 점을 제기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선진공업국가에서 학생운동․여성해방운동․소비자운동․공해반대(환경)운동이 전개되는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위의 해방 패러다임을 한반도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① 한반도의 역사적인 해방 패러다임은, 19세기 말 외세의 강점에 대항하는 논리로 시작하여 20세기 초반의 일본제국주의 반대운동에 이은 (20세기 중후반의) 미국 제국주의 반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② 외세의 지배욕이 강하게 작동되는 한반도의 해방 패러다임은 주로 민족해방(NL, National Liberation) 담론과 연결된다. 
   
    ③ 이 ‘NL 담론’은 북한의 인민사회 건설, 남한의 민주화․통일운동의 원동력을 제공했다.

    ④ 1945∼1950년의 과도기에 외세의 개입․국내 정치세력의 분열로 말미암아 ‘NL 담론의 정치세력화-민족통일’에 실패했으며, 이 실패는 분단으로 이어졌다.

    ⑤ 1980년대에 한때 풍미했다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종속이론과 달리 해방 패러다임은 지금도 남북한의 변혁이론으로 큰 몫을 하고 있다. 북한은 정권 차원의 반외세 외교․군사 노선을 고수하고 있으며, 남한은 민간 차원의 미국․일본 반대운동이 정치․군사․경제적인 측면에서 진행 중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운동의 논리 속에 경제적 의미의 해방 패러다임이 내재해 있다.

미국의 북한 공격 전략(5027-98 작전계획 등) 반대운동, (평택을 중심으로 한) 미군재편 전략 반대운동,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정치․외교․안보 노선을 취하라고 요구하는 운동에서 정치․군사적 의미의 해방 패러다임을 감지할 수 있다.

    ⑥ 한반도의 분단체제 해소와 더불어 해방 패러다임에 의한 개발이 가능하다. 분단체제로 말미암아 ‘남북한에 거주하는 개
인들의 인간해방을 위한 개발’이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남북한의 평화 지향적인 내발적 발전’이 어렵다. 그러므로 해방 패러다임은 ‘잘사는 평화-잘사는 평화 경제를 저해하는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3) 생태 발전(Eco-development) 패러다임

이 패러다임이, 1971년에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환경회의의 지도이념이 된 뒤 세계적 차원의 개발 전략론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생태 발전 패러다임에 입각한 남북한 개발 전략론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주요한 담론이 될 것이므로 이에 대비한 논리를 정립해야 한다.

    4) 기본적인 인간 욕구(BHN, Basic Human Needs) 패러다임

종래의 개발 전략(근대화론)이 경제성장을 국가 단위에서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 데 반하여, BHN 패러다임은 민중 차원의 빈곤 극복을 위한 의식주․교육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 중점을 둔다.

BHN 패러다임의 특징을 거론하면 ① 개발목표를 국가의 입장에서 인간의 입장으로 바꾼다.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최저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보편주의적인 가정을 한다. ② 더욱 평등한 재화의 분배 문제와 관련하여 개발도상국 내부의 이중구조(공업 부분과 전통․농업 부분의 이중구조) 해소와 빈부 차이의 시정에 역점을 둔다.

BHN 패러다임을 남북한에 적용할 경우 국가의 입장이 아닌 인간(주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개발목표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최저기준을 설정하는 가운데 빈부 차이의 해소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남한은 빈부 차이의 해소에, 북한은 인민들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 인민들의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과도한 군비확장 노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5) 내발적 발전 패러다임

이 패러다임의 특징을 민족 문제 중심으로 들면 ① 민족 내면에 내재하는 사회발전 추진력을 총동원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② 민족적 개성의 문제를 제출한다. 이 패러다임은 (민족적 개성을 지닌 민중의 힘에 의거하여 민중이 참가하는) 해방 패러다임과 비슷하며, (외세의 압력에 대항하는 민족의 결집체인 국가를 동원하여 민족을 분발시키는 점에서) 종속 패러다임과 가깝다.

남북한의 민족공조에 의한 발전(경제발전) 모델이 갈수록 긴요해지는 상황에서 내발적 발전 패러다임을 도입할 만하다. 외세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쓰는 민중의 힘이 내발적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민족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사회발전력을 총동원하는 내발적 발전의 모델을 내오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의 경우, 기아 등의 구조적 폭력이 내발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점에 유의하면서 인간적 발전(human development)․내발적 발전 모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Ⅱ. 인간적 ․ 내발적 발전과 구조적 폭력: 북한을 중심으로

한반도 전체의 발전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 앞에서 언급한 근대화에 대항하는 5가지 패러다임을 종합하면서 ‘민족 구성원 모두가 잘사는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틀이 요청된다. 이 틀을 만들기 위한 선결 과제로서, 북한의 인간적이며 내발적인 발전의 문제를 구조적 폭력의 관점에서 제기한다.

여기에서 ‘북한의 내발적 발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생소하므로, 내발적 발전과 관계가 깊은 ‘자력갱생’을 중심적인 가치로 보면 좋을 듯하다. 구조적 폭력(북한 인민의 기아 등)과 관련하여 북한의 내발적 발전․ 자력갱생을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러한 논의의 이론적인 뒷받침을 받기 위해 橫山正樹이 지은 {フィリピン援助と自力更生論-構造的暴力の克服}의 제1장(“構造的暴力と自力更生”)을 요약하면서 필자의 의견을 덧붙인다.

  1. 구조적 폭력을 극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자력갱생

橫山正樹는, 구조적 폭력을 극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자력갱생’을 중심으로 내발적 발전론을 전개한다. 그는 먼저 갈퉁의 구조적 폭력론에 의거한 자력갱생의 개념을 설명한다.

갈퉁은 1969년에 발표한 논문 「Violence, Peace, and Peace Research」에서 구조적 폭력 개념을 제기한다. 갈퉁이 말하는 폭력의 세 가지 요소는 가해자․피해자․영향(폭력의 영향․피해)이다. 갈퉁은, 전쟁행위와 같이 가해자가 직접 눈에 보이는 폭력을 직접적 폭력이라 부르고 기아․억압․학정․착취와 같이 가해자가 직접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구조적으로 다수의 피해자들이 사회적 불공정에 빠지는 폭력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부른다(직접적 폭력을 지양한 상태가 소극적 평화이고 구조적 폭력을 지양한 상태가 적극적 평화임을 갈퉁은 강조한다). 사회구조에 내재하는 구조적 폭력은 권력의 불평등, 권력의 불평등에 의한 생존기회의 불평등을 포함한다. 소득의 불평등으로 물자가 불균등하게 배분됨으로써, 글을 배우고 교육받을 기회가 불균등해지거나 의료 등의 복지가 특정한 지역․계층에 편중될 때 구조적 폭력이 발생한다. 물질 분배의 결정권이 불균등하게 배분되는 문제도 구조적 폭력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잠재적 실현성(the potential)과 현실(the actual) 사이의 괴리에서 구조적 폭력이 생긴다. 인간(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경제․사회구조가 구조적 폭력의 온상이라는 것이다. 구조적 폭력의 온상에서 피해자는 분명히 있으나 가해자가 구조적으로 은폐되어 있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직접 물을 수 없다.

市井三郞은, 이처럼 누구에게도 폭력의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부담하는 고통을 ‘부조리한 고통’이라고 부른다.(市井三郞, 1971, 146-147) ‘부조리한 고통’ 개념에는, 쾌락의 양을 늘리는 공리주의의 개발관 대신에 고통의 양을 줄이자는 발상의 전환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직접적․구조적 폭력의 결과 제3세계 민중이 부조리한 고통에 빠지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적․구조적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평화창출이 있어야 하며 이와 연동된 발전 모델이 나와야 한다.
제3세계와 선진 공업국의 격차는 기본적으로 사회구조에 내재하는 폭력의 문제이므로, 구조적 폭력의 극복, 즉 적극적 평화창출의 과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구조적 폭력에 맞서 일상적으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들이며 부조리한 고통 속에 있는 제3세계 나라의 민중들인바, 이들의 투쟁이 바로 자력갱생이다. 여기에서 자력갱생은 ‘피해자들(구조적 폭력의 피해자들)이 구조적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주체적․의식적인 행위의 과정’이며, 이러한 자력갱생이 없으면 민중의 자립에 의거하는 인간적․내발적 발전이 불가능하다.

  2. 내발적 발전과 자력갱생

鶴見和子가 엮은 內發的發展의 제2장(“內發的發展論の系譜”)에서 소개하는 내발적 발전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① 식량․건강․주거․교육 등 인간이 살기 위해 기본적인 요구가 충족되는 것, ② 지역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실현하는 자조(自助), ③ 지역의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 ④ 각각의 사회 내부의 구조변혁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발적 발전의 요건이 어우러져야만 자력갱생이 가능하므로 양자(내발적 발전과 자력갱생)의 공통성, ‘구조변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내발적 발전에서 말하는 ‘인간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갈퉁의 구조적 폭력 극복(인간의 잠재적 실현성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함)에 다름 아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내발적
발전의 동의어인 자력갱생은, 구조적 폭력을 극복하는, 즉 부조리한 고통을 줄이는 접근방법이다.

  3. 북한의 구조적 폭력과 자력갱생-내발적 발전

앞에서 기술한 내발적 발전-자력갱생-구조적 폭력-부조리한 고통의 연관성을 북한의 현실에 적용하면서 평화 지향적인 발전 모델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① 현상적으로 볼 때 북한의 기아는 구조적 폭력에 해당된다.
   
    ②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폭력의 원인을 소급하면 직접적 폭력(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전쟁 위협)이 등장한다.북한 인민이 당하는 ‘부조리한 고통(미국의 대북 군사․전쟁 위협이 부조리하지만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 직접적 폭력의 계기를 이룬다.
 
    ③ 미국의 대북 군사․전쟁 위협이라는 직접적 폭력과 북한의 경제난이 어우러져 대량 기아 사태가 발생했다. 기아 사태를 일으키는 자연재해도 직접적 폭력(60년 이상 지속된 미국의 대북 군사․전쟁 위협)에 따른 사회 인프라의 결여와 연관이 있다.
   
    ④ 북한 인민의 기아라는 구조적 폭력의 상당 부분은 북미 간의 구조(대립구조)에서 파생된 것이다. 북미 간의 대립구조라는 외부요인에 의해, 북한 인민이 신체적․정신적인 잠재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 기아 등의 구조적 폭력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⑤ 이처럼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전쟁 위협이라는 직접적 폭력이 기아 사태라는 구조적 폭력을 유발하고, 기아 사태 속에서 인민의 생존․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한편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경제제재․군사적 압박으로, 북한 인민의 구조적 폭력(기아)이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이 전개되고 있다.
   
    ⑥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음으로써 북한 인민의 구조적 폭력을 지양하는 적극적 평화의 노력이 긴요하며, 이를 위해 구조적 폭력의 원인을 제공하는 미국의 대북 군사․전쟁 위협(직접적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 미국의 대북 군사․전쟁 위협이 상존하는 한 북한의 내발적이며 평화 지향적인 발전 모델을 내오기 어렵다.

    ⑦ 이와 같은 발전 모델을 내오기 위한 자력갱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북한은 이미 위로부터의 자력갱생(국가가 인민을 동원하는 자력갱생) 노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인민의 기아라는 구조적 폭력을 지양하는 새로운 목표가 추가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는 인민 개개인의 ‘아래로부터의 자력갱생 노력이 인간적․내발적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발전론’
을 새로이 강구해야 하며, 이를 위한 남한의 대북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남한의 대북지원․경제협력은 북한의 인간적․내발적 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남한의 정부․민간 차원의 대북지원 사업이 직접적으로는 인민의 기아(구조적 폭력)를 방지하는 데 주력해야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악순환(미국의 대북 군사․전쟁 위협이라는 직접적 폭력이 구조적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쪽에도 무게를 두어야 한다. 2007년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남북한 경제 공동체’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기여해야 한다.

    ⑧ 그러나 미국의 대북 군사․전쟁 위협(직접적 폭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평화통일 이전까지의 과도기에 필요한 북한의 발전 패러다임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과도기의 발전 패러다임으로서 ‘자력갱생의 인간적․내발적 발전 모델’이 적합하며, 아래의 GPID를 통한 ‘인간적․내발적 발전의 방법론’을 북한에 적용할 수 있겠다.

Ⅲ. 북한에 인간적 ․ 내발적 발전 모델을 적용하는 문제: GPID를 중심으로

  1. GPID 프로젝트

유엔 대학의 주도 아래에서 갈퉁이 1978년에 작성한 GPID(개발의 목표․과정․지표; Goals, Processes and Indicators of Development)는, 개발의 새로운 이론과 실천에 공헌할 목적으로 작성된 프로젝트이다.

GPID의 서론에 나와 있는 5가지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개발’을 ‘인간의 개발(인간적 개발)을 위한 것’으로 정의한다. 인간의 개발은 기본적인 인간 욕구(BHN)의 만족, 인간욕구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욕구에는 물질적 욕구․비물질적 욕구가 있으며, 안전․복지․주체성․자유라는 네 가지 항목으로 나뉜다.

    ② 이와 같은 개발의 정의에 의거하여 개발국(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국가)은 안전․복지․주체성․자유의 수용 가능한 최저한도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상에 이를 실현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고 ‘불량 개발국’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개발국․개발 도상국으로 양분하지 않고 과소(過少)개발국과 과잉개발국으로 구분하는 태도를 취한다. 과소개발국은, 목표(안전․복지․주체성․자유)를 달성하는 수단이 불충한 나라이다. 과잉개발국은, 수단이 과잉하기 때문에 목표 달성에 장애가 생기는 나라이다.

    ③ 개발의 단위로서 국가만을 상정하는 것은 아니며, 개발의 결과 인간의 자기실현, 폭력의 감소․비참함의 제거, 소외의 감소, 억압의 폐지와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④ 욕구의 개념을 인간적 개발의 출발점으로 상정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대화(시민과의 대화, 국제적 대화, 권력을 쥔 계획 입안자․정책 결정자와의 대화, 개인적․집단적인 대화)의 과정이 새로운 연구방법으로 추가되어야 한다.

    ⑤ 개발의 조건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더욱 심층적인 이론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예컨대 과소개발과 과잉개발의 상호 연관을 더욱 깊이 통찰할 필요가 있으며, 인간의 욕구를 중심으로 한 연결이론을 향한 지적작업이 요청된다.

    ⑥ 다양한 연구 사이의 연관을 종합하는 접근태도가 중요하다.

  2. GPID를 북한에 적용하기

이와 같이 GPID 프로젝트는 ① 욕구(BHN) ② 개념과 이론(과잉개발․ 과소개발을 상호 연관시키는 개발의 개념과 이론을 전개함) ③ 대화(개발의 문제점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대화) ④ 네트워크(지구적 규모의 연구 네트워크를 통하여 다른 이론 사이의 중개역할을 함) ⑤ 통합적인 접근(목표․과정․지표의 복합체에 대하여 통합적으로 접근)의 5가지 관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통합적인 접근이 힘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4가지 관건을 중심으로 한 24개의 하위 프로젝트를, 1977년 4월 15∼22일 유고슬라비아의 Dubrobnik에서 열린 회의에서 확정했다.

여기에서 GPID의 24개 하위 프로젝트를 평가하기에 앞서 24개의 하위 프로젝트를 북한에 적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에 대한 적용 가능성이 판명되어야 24개 하위 프로젝트를 북한의 인간적․내발적 발전 모델로 삼기 위한 작업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에서 우선 24개 하위 프로젝트와 북한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표 1; GPID의 24개 하위 프로젝트와 북한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제시한다[표1 생략]; 김승국『잘사는 평화를 위한 평화 경제론』(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24쪽에 [표1]이 실려 있으니 참고하세요.

[표 1]의 왼쪽에 있는 24개 하위 프로젝트를 북한에 적용하여 인간적․ 내발적 발전 모델을 내오는 방도를 찾으면서, 오른쪽의 칸(북한에 적용 가능성)을 채우면 좋을 듯하다. 그러나 필자가 천학비재하여 오른쪽의 칸을 다 채우지 못함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의도적으로 칸을 비워 놓는다. 다만 몇 가지 판단 자료를 [표 1]의 번호순으로 제시한다.

    1) 제1群: 목표

북한의 인간적․내발적 발전의 목표를 뚜렷하게 정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인간적․내발적 개발(발전) 개념(1)을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인민의 기본적인 인간 욕구(BHN)를 충족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충족시키는 발전이 인간적 발전의 출발이며, 이 발전을 자력갱생에 의해 이루는 게 내발적 발전이다. 그리고 욕구(2) 충족의 제도화가 기본적 인권(3)으로 집약된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욕구 충족의 제도화가 미흡한 데서 발생한다. 여기에서 욕구 충족의 제도화․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북한 인민사회의 대안적 생활양식(4)이 요청된다. 북한이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생활양식을 개발해 왔으나 (인민의) 욕구 충족의 제도화에 이르지 못한 듯하다. 예컨대 쿠바의 생태적인 대안 생활양식 등을 북한에 도입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의 새로운 대안적 생활양식을 통하여 바람직한 사회비전(5)을 내오고 바람직한 세계비전(6)(한반도를 에워싼 동아시아의 평화창출 비전 포함)에 이를 수 있겠다.

    2) 제2群: 과정

목표의 출발점인 개발 개념과 나란히 개발이론(7)이 중요하다. 개발의 배경을 설명하고 정립하는 이론적 작업이 필요하다. 북한 인민들이 개발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이유를 대는가를 학문적 연구의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어 팽창․착취의 과정(8)과 해방․자립화의 과정(9)은 변증법적인 관계이다. 양자<(8)과 (9)>가 서로 대화하는 방법으로 연구해야 한다. (8)은 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의 팽창에 따른 착취 과정을 뜻하지만, 북한의 인민정권 출범 이전의 자본 팽창과 이에 따른 착취의 과정을 애써 상정할 수 있다. 북한의 인민정권 출범 이전의 자본 팽창과 이에 따른 착취의 과정(8)을 명제(These)로 상정할 경우, 이 (8)을 북한 정권(김일성 정권)이 지양한 해방․자립화의 과정(9)을 상정할 수 있겠다. (8)이라는 명제의 모순에 맞선 반대명제(Anti-These)로서의 (9)를 생각할 수 있다. 반대명제로서의 (9)는 북한이 해방․자립화의 과정에서 취한 개발(발전)론, 즉 주체사상에 입각한 인민사회 발전론을 포괄한다. 그러나 반대명제로서의 (9) 안에서 오랫동안 내부모순(경제모순, 생산관계의 난맥상에 의한 생산력 저하와 이에 따른 기아 사태, 인민사회 안의 차이․차별, 북한의 고질적인 자연재해에서 나타나는 인간-자연의 순환구조 단절)이 쌓였으므로, 이를 지양하는 새로운 테제(Syn-These)가 요망된다. 이 Syn-These의 하나로 인간적․내발적 발전론을 상정할 수 있다.

인간적․내발적 발전과 관련된 Syn-These가 관철되는 평화 지향적 인민사회를 창출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북한 인민이 이와 같은 평화 지향적 인민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외부요인에 의한 군사화(10)이다.

북한 정권의 출범 이후 지속되어 온 ‘한․미․일 3각 군사공동체의 대북 군사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과잉 군사비 지출은, 북한의 인간적․내발적 발전의 길을 막았다. 이처럼 외부요인에 의한 군사화(10)로 말미암아 해방․자립화의 과정(9)에 걸맞은 인민의 욕구(2)․권리(3)를 충족시키지 못한 탓에, 인간적․내발적 발전을 위한 자본․자원의 축적이 불가능했다. 특히 소비에트 붕괴 이후의 경제난에 설상가상으로 ‘한․미․일 3각 군사 공동체의 대북 군사압력’이 강화되자, 이에 대비하기 위해 선군정치라는 비상체제를 가동했으며. 그 결과 인간적․내발적 발전의 길이 막히게 되었다. 이 막힌 길을 뚫는 수단 중의 하나로 유엔 시스템의 과정(11)을 들 수 있다.

UNDP 등의 유엔 기관이 북한의 인간적․내발적 발전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한․미․일 3각 군사공동체의 대북 군사압력’을 뿌리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으며, 그 결과 북한의 ‘국가안보-인민의 인간안보-인간적․내발적 발전의 3위1체’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된 대안적 전략과 시나리오(12)가 들어 있는 평화통일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3) 제3群: 지표

위의 대안적 전략과 시나리오(12)를 창출하기 위한 인간적․내발적 발전의 지표를 생각해야 한다. 개인(인간적․내발적 발전의 주인공인 개인, 북한의 경우 인민으로서의 개인)의 생존율․자살률․1인당 의사숫자 등을 개발의 목표 지표(13)로 설정할 수 있다. 한편 개인이 영토 시스템에 묶여 있으므로 영토 시스템과 관련된 지표(14)를 고려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영토 시스템이 아닌 지방 차원의 지표, 국제 차원의 지표 등과 같은 비영토 시스템의 지표(15)도 생각할 수 있다. 비영토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개발에서 중요한 것이 생태학적 균형의 지표(16)이다. 북한의 거듭되는 자연재해는 생태학적 균형이 깨진 결과이므로, 생태학적 균형의 지표를 높이기 위한 발전 모델을 강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생태학적 균형의 열매가 촉발하는 과학기술의 지표, 군사화의 지표, 평화․개발의 지표를 상보적으로 높이는 인간적․내발적 발전모델을 세워야 한다. 이와 같은 제3群의 지표들을 설정하고 달성하는 힘(행정력을 동원하는 가운데 지표들을 조화롭게 달성하는 힘)은 결국 정치력에서 나오므로, 지표의 정치학(17)이 요청된다.

    4) 제4群: 연구의 도구

[표 1]의 하위 프로젝트들 사이에, 방법론을 에워싼 대화(18)․네트워크(19)가 필요하다. 이 밖의 기호론(20)․수학(21)․발표의 형식(22)․분석의 방법(23)․지역 간 연구(24)는, 언어학․수학 등이 동원된 분석․표현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이는 갈퉁과 같이 수리에 밝은 평화학자들의 학문적 취향이 반영된 것이므로 더 이상의 해설은 생략한다. 기호론․수학 등이 북한의 인간적․내발적 발전 모델을 내오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24개 하위 프로젝트가 완벽한 것이 아니므로, 이 프로젝트를 북한에 적용하여 인간적․내발적 발전 모델을 내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장담할 수 없다’는 표현에는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겸손한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 실제로 GPID 프로젝트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분발한 끝에 SCA(Social-Cultural Development Alternatives in a Changing World)라는 별도의 프로젝트가 1977년에 공표되었다. 따라서 SCA를 보완장치로 삼는 GPID 프로젝트를 북한에 적용하면 더욱 정교한 인간적․내발적 발전 모델을 수립할 수 있겠다.

Ⅳ. 맺는말

지금까지 1970년대의 대안적 개발(발전)론을 중심으로, 북한에 적용 가능한 인간적․내발적 발전 모델을 선보이는 시론을 펼쳤다. 이 시론은, 북한의 인간적․내발적 발전 모델이 한반도의 평화를 증진시키리라는 믿음에 따라 작성된 것이다.

북한은 이미 내발적 발전의 요소가 있는 자력갱생형 발전 노선을 취하고 있으나, 위로부터의 국가 주도의 발전 노선이라는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내발적 발전의 본래의 모습을 일탈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형 자력갱생형 발전 노선은 기아 등의 구조적 폭력을 초래한바, ‘구조적 폭력의 극복과정으로서의 자력갱생’을 다시 이룩해야 한다. 북한의 발전 노선은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자연의 선순환(善循環)을 통한 인간적․내발적 발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북한 당국이 강조하는 ‘자력갱생’은 외세 의존도를 줄이자는 강박 관념이 강하여 대외적으로 고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의 폐쇄형 자력갱생 노선과 달리 남한은 (지나치게 대외개방적인) 신자유주의 개발 노선을 취하고 있다. 시장(시장경제)만능의 신자유주의로 인한 구조적 폭력(신빈곤, 급증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잠재능력 발휘 불가능, 빈부격차 확대)은, 남한 사회의 비평화(peacelessness)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와 같이 남북한 모두 바람직한 발전 노선에서 벗어난 끝에 구조적 폭력을 유발함으로써, 적극적 평화(구조적 폭력을 지양하는 적극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실패를 딛고 남북한 사회 구성체에 걸맞은 발전 모델을 새로이 내옴으로써, 남북한의 통합적인 평화경제 체제의 구축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통합적인 발전 모델 중의 하나로서 인간적․내발적 발전 모델을 남북한에 추천하고자 한다. 특히 경제난으로 고생하는 북한 인민을 위한 인간적․내발적 발전 모델을 강구하는 게 한반도 평화통일의 관건이라고 판단하여 이 글을 썼다.

필자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북한 발전 모델을 강구하는 데 있어서 1970년대의 대안적 개발(발전)론을 고집하는 이유는, 현재의 북한 체제가 1970년대의 경제발전 상태를 거의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가 발전했던 1970년대의 유제(遺制)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으므로, 1970년대에 전 세계를 풍미했던 대안적 개발(발전)론이 시스템의 측면에서 어울린다고 보았다.

그런데 인간적․내발적 발전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마을운동식 개발론을 북한의 지도자가 선호하는 것 같아 유감이다. 2002년 5월 13일에 박근혜 의원이 김정일 위원장을 예방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박정희식 개발 모델․새마을운동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관심표명의 맥락을 충분히 살펴보아야 하지만, 박정희 개발독재의 상징인 새마을운동에 대한 북한 지도자의 관심은 필자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개발독재의 유물인 새마을운동에 대한 북한 측의 불감증을 보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완결하는 발전의 길이 아득함을 느낀다. 박정희 개발독재의 폐품인 새마을운동을 모방해서라도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북한 지도부가 애처롭게 보인다. 개발독재의 독(毒)이 묻어 있는 새마을운동은 북한의 인간적․내발적 발전을 저해하는 독소가 될 것이다. 북한이 박정희 파시즘의 근대화 경제발전의 표상인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적․내발적 발전론을 받아들일 공간이 협소함을 반증한다. 이 협소한 공간을 조금이나마 넓히는 데 필자의 글이 공헌하길 바라며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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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市井三郞 歷史の進步とはなにか(岩波新書, 1971)
* 武者小路公秀 「現代における開發と發展の諸問題」, 三輪公忠 외 엮음 現代
國際關係論(東京: 東京大學出版會, 1980)
* 鶴見和子 엮음 內發的發展(東京: 東京大學出版會, 1989)
* 橫山正樹 フィリピン援助と自力更生論: 構造的暴力の克服(東京: 明石書
店,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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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02호에 실린 필자의 글「잘사는 평화 (6)」(2007.12.12)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