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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비무장•중립의 올랜드 섬 '비무장•중립’의 올랜드 섬 ​前田朗 발트 해(海)의 올랜드 제도(핀란드 소속)는 비무장•중립•자치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의 비무장 지대와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아 주변국의 승인 아래에 있는 '평화 의 섬'이다. 올랜드 섬이 핀란드 영토이지만, 독자적인 중립 정책을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랜드 섬이 중립의 섬이 된 경과 17세기의 스웨덴은 ‘발트의 제국’이라고 불리울 정도의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올랜드 섬은 당시에 스웨덴 영토이었고, 스웨덴어를 말하는 스웨덴인(人)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18세기 초에 러시아가 스웨덴에 공격을 퍼부어 핀란드와 올랜드 섬을 차지했다. 그 이후 올랜드 섬은 핀란드의 일부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올랜드 섬은 발트해의 안쪽, ..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51) ---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12) 김승국 국제적인 보장 영세중립을 해석함에 있어서 제기되는 문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문제는 보장에 관한 문제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중립 보장국가들이 그들의 조약상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흔히 나타나는 자발성의 부족이다. 만약 중립조약이 마음대로 조약국에 의해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영세중립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영세중립이 어디에서 설립되든지 간에 그 중요 목적은 보장국 간의 질투와 침략을 제거하는 데 있었다. 영세중립은 중립을 보존하고자 하는 국가들 간의 상호 보장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황인관, 17~18)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국제적인 보장 문제는 단순한 서류상의 보장체제와 형식의 의미를 훨씬 넘어 21세기 평화체제 및 통일문제의 성격, 전도, 경로, 귀결과 너무나 중요하게 직결되..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50) ---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11) 김승국 미일동맹의 중립화 미국은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위한 한미동맹ㆍ미일동맹의 중립화에 진력해야 하는데, 오히려 GPR(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전 세계에 걸친 ‘미군 관련 방위체제의 재편’)의 이름으로 두 동맹(한미동맹ㆍ미일동맹)의 연계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북한붕괴 전략과 미일동맹의 북한공략 시스템이 만나는 접점을 강화하고 있다. 한반도 중립화에 역행하는 이러한 군사구조를 지양해야 하는 점에서, 미일동맹의 중립화(미일동맹이 중립적인 태도를 갖고 한반도 정세에 개입하지 않고 북한공략용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의미의 중립화)는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필연적인 과제이다. 1. GPR에 따른 북한공략 시스템 강화 GPR의 요체인 주일미군 재편은 2005년 10월 29일 ..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43)---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4) 김승국 중립 지향적인 군사구조 ➁ 앞에서 드러난 ①항과 ②항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하여 ①항과 관련된 문제를 먼저 제기한다. 1. 고종 정부의 군사력이 부족하여 중립화에 실패했나 고종은 1903년 8월 러일 간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소문을 듣고 러일 양국에 특사를 파견하여 유사시 한국을 ‘전시 중립국’으로 간주해줄 것을 요청하는 외교교섭을 추진하였지만 양국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였다. 일본은 전시국제법에 있어서 중립국 선언은 스스로 이를 지킬 결심과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이 과연 그러한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빈정거렸다.(정용화 외, 62) [이에 앞선] 조선 정부의 제1차 영세중립 시도는 조병식(趙秉式) 특사를 통해 1900년 8월 일본 정계의 중진 近衛篤麿(‘고노에 아즈마로’라고 읽기도 하..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4) --- 1882∼1904년의 한반도 중립화론 (1) 김승국 스위스가 영세중립국가가 된 1815년을 영세중립의 원년(元年)으로 삼아 한반도 중립화의 조건을 탐색하려는 필자의 방침에 따라, 앞에서 1815년 이전의 중립화론을 펼쳤다. 이제 영세중립 원년(1815년) 이후의 조선 역사 특히 임오군란(1882년)~러일전쟁(1904년) 기간에 제기된 중립화론(주1)을 소개하면서 ‘중립화의 가능조건’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1. 중립화의 가능조건 중립화가 가능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춰야한다; ① 중립화 대상 국가는 자위력을 갖춰야하는바 군비가 충실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재정자립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② 지정학적 위치가 국제중간지대로서 전략상의 요충이거나 열강 간의 완충지대이어야 한다. ③ 중립화 국가는 대내적으로 중립화를 위한 거족적이며 초당적인 국민..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3) --- 지정학적인 조건 ⑦ 김승국 브레진스키가『거대한 체스판』에서 언급하는 유라시아 관리(관할ㆍ통제ㆍ분할통치ㆍ개입) 전략을 다음과 같이 폭넓게 해석할 수 있겠다; ① 미국은 유라시아라는 경락을 누르고 있어야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군사정치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 ② 유럽과 아시아가 뭉치면 미국의 국익이 위협받게 된다. ③ 따라서 유럽과 아시아가 뭉치지 못하도록 분할통치 하는 전략을 수행한다. ④ 유라시아의 요충(要衝)인 중동의 석유자원을 미국이 영원히 틀어쥐고 있어야하며, 이를 위해 전쟁도 불사(不辭)한다(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 ⑤ 중동의 원유를 전 세계로 실어 나르는 해상 교통로(Sea Lane)를 미군이 지킴으로써 원유의 유통망을 움켜쥔다. 원유의 해양 수송로 장악을 통해, 원유에 의존하는 국..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2) --- 지정학적인 조건 ⑥ 김승국 한때 남북한 사이에 전쟁 분위기까지 자아낸 천안함 사건은, 미국ㆍ중국이 해상권력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터졌다. 앞으로 미국ㆍ중국 사이의 ‘해상권력 갈등’이 깊어지면 동중국해ㆍ남중국해에서 천안함 사건과 같은 일이 터질지 모른다. 동중국해ㆍ남중국해의 해상 교통로(sea lane)를 통제해온 미국에 중국이 도전장을 낸 상태이므로, 해상교통로를 에워싼 눈에 보이지 않는 파고가 미국ㆍ중국 사이에서 높아져 가고 있다. 여기에서 분쟁지향적인 해상교통로를 평화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로 변환시키는 일이 중요한데, 이와 관련된 필자의 대안을 소개한다. 1. 해상 교통로 첫째, 아시아[동아시아]의 분쟁ㆍ전쟁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를 평화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로 전환시켜야 한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자원 수송로는 원..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28) --- 지정학적인 조건 ② 김승국 명(明)ㆍ청(淸) 교체기에 일본은 화이변태(華夷變態)로 선회했는데, 조선은 일본처럼 화이변태를 선택하지 않고 ‘숭명배청(崇明排淸)’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숭명배청’에 매달린 조선 정부가 선뜻 화이변태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지정학적인 요인 때문이지 않을까? 당시 천하를 지배한 중국의 코 앞에 조선이 위치해 있고, 일본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조선의 화이변태는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지정학의 측면에서 본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조(朝)-중(中) 관계가 ‘탈(脫)중국-화이변태’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1. 조(朝)-중(中) 관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지정학적인 조건 지정학은 지리학과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일국의 정치지도자들이 국가 외..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26) --- 사회적인 조건 ③ 김승국 1. 나라가 썩어 문드러졌다 필자는 광해군 이후의 조선후기 역사를 조명하면서, 광해군 중립외교를 단절시킨 서인에 이은 노론ㆍ세도정치 집단의 3백 년 지배가 조선왕조의 멸망으로 이어졌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광해군 이전의 조선 전기(前期)부터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배계급의 무능함으로 인한 망국의 징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징조를 독파한 이율곡의 저서 『율곡전서(栗谷全書)』를 소개한다.(기세춘, 241~245) “민생은 생선처럼 썩어 문드러지고 흙처럼 무너질 것이다. 오늘날 민력(民力)을 살펴보면 죽어가는 사람처럼 숨소리가 잦아들어 평시에도 지탱하기 힘들 지경이니 만일 외환(外患)이 남북에서 일어나면 장차 질풍에 낙엽이 쓸리듯 할 것이다.” 위와 같이 임진왜란을 경고하는 발언에 이어 ‘..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25) --- 사회적인 조건 ② 김승국 1. 평화가 밥 평화(平和)는 동양사회에서 기본적으로 ‘밥(米)을 사람들(口)에게 균등하게(平) 나누어준다(和)’는 것을 의미한다. 밥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곳에 평화가 있고, 평화가 있는 곳은 밥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세상일 것이다. ‘평화가 밥이다’는 매우 평범한 말이지만 그 속에 격렬함이 내재해 있다. 동서고금의 민중항쟁은 밥상 공동체가 해체되었을 때 일어났다. 지배계급이 백성들에게 평화의 밥을 주지 않아 밥상 공동체가 무너졌을 때, 민중들은 항쟁의 맹아를 키우기 시작한다. 중국의 크고 작은 항쟁은 농민들의 밥상 공동체가 유린되면서 일어났다. 러시아 혁명도 예외가 아니다. 1917년 혁명 당시 평화의 밥이 그리운 러시아 민중들은 “빵을 달라! 평화를 달라!”고 절규했다. 밥상 공동체가 깨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