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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무기(核, 북한 핵, MD)

제국의 핵무기에 대한 제3세계의 대응

김승국

미국이 가장 증오한 제3세계의 지도자인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공개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1986년 미국이 트리폴리를 공습했을 때 만약 뉴욕을 사정거리로 하는 미사일이 있었다면 쏴버렸을 것이다. 아랍 국가들은 향후 20년 안에 억지력으로써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 리비아도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일을 꿈조차 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런 힘을 가져야 한다.”<김승국 {한국에서의 핵문제・핵인식론} (서울, 일빛, 1991) 25쪽>

카다피의 이 발언은 김정일 위원장의 심정을 대변하고도 남음이 있다. ‘만약 뉴욕을 사정거리로 하는 미사일이 있었다면 쏴버렸을 것이다’는, 북한을 비롯한 제3세계 반미국가 지도자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미국이 우리를 공격하는 일을 꿈조차 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핵무기를 억지력으로 가져야 한다’는 카다피의 절규가 한반도 북녘 땅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아랍 국가들은 향후 20년 안에 억지력으로써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요청에 부응하듯 파키스탄이 아랍의 대표선수로 핵무기를 보유했고, 이라크는 핵무기 보유의 꿈을 꾸다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란도 핵물질을 만지작거리는 도중에 미국의 강력한 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미국을 보란 듯이 한방 먹일 ‘핵무기 보유’를 열창했던 카다피는, 미국과의 물밑협상을 통해 핵무기 보유의 꿈을 접었다. 꿈을 접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을 향하여 “너희들도 핵무기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며 리비아식 핵포기의 수용을 권유하고 있다.(주1)

이처럼 리비아의 트리폴리에서 북한의 평양까지 이어지는 제3세계의 핵무기 개발 전선의 쌍곡선을 면밀하게 관찰해야, 제국의 핵무기에 대한 제3세계권의 대응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카다피의 발언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을 공공연히 촉구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호전적 발언은 최근 동서간의 평화 분위기가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제3세계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상의 배경을 정확히 설명해주는 것이다. 1986년의 공습으로 사랑하는 양녀를 잃었기 때문에 “만약 핵무
기가 있었다면 미국놈들이 감히 이러지 못했을 텐데”라며 입술을 깨물었을 카다피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쨌든 그 정당성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카다피의 노골적 발언은 최근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제3세계의 핵무기 개발경쟁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김승국 {한국에서의 핵문제・핵인식론} (서울, 일빛, 1991) 25쪽>

카다피도 김정일 위원장도 핵강대국 특히 미국의 핵검(核劍)에 대항하기 위한 핵방패로서 핵무기를 보유하려했다. 핵무기의 매력은 앞서 언급한 카다피의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강력한 무기이면서도 동시에 완벽한 전쟁억지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일단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경우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지위를 갖는 ‘핵의 정치력’도 제3세계 국가들을 유혹한다. 그렇다면 제3세계에서도 전쟁을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공포의 균형’을 이룩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누구도 할 수 없겠지만 서방 전문가들의 견해는 매우 회의적이다.

제3세계 국가의 핵무기는, 제국(미국)의 핵무기-핵검(核劍)에 대한 값싼 핵방패로서 완벽한 전쟁억지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핵의 정치력도 지닐 수 있는 다목적 무기라는 믿음이 강하다. 이러한 믿음이 너무 강하면 신화가 된다. ‘제3세계의 핵무기는 값싼 반제의 방패’라는 신화가 올바른지를 검증하는 뜻에서 제3세계 국가의 핵무기관(核武器觀)을 살펴본다.<이하 생략>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핵문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7) 164~174쪽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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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한 때 김일성 주석을 향해 반미・반제운동을 시원치 않게 전개한다며 비난했던 카다피가 서방과의 화해・경제협력을 위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한 ‘굴종’이, 제3세계 반미국가의 서글픈 현주소를 말해준다. 북한은 현재 리비아식 굴종을 요구하는 미국에 반기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