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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2) -『주역』에서 ‘중립’의 가치를 찾는다

김승국


『주역(周易)』64괘의 모든 괘(卦)는 6개의 효(爻)로 이루어져있으며 밑에서 두 번째 효(爻) 즉 二爻와 밑에서 다섯 번째 효(爻) 즉 五爻를 中爻(6개 爻의 가운데에 있는 爻)라고 부른다. 각 괘의 中은 二爻와 五爻의 상관관계에서 나타난다. 64괘의 핵심인 건(乾)괘의  二爻와 五爻가 괘의 中으로 작용한다. 건괘 二爻(九二)의 ‘현룡대인見龍大人(見龍在田, 利見大人)’은 군자의 덕(德)을 갖춘 자로서, 五爻(九五)의 ‘비룡대인飛龍大人(飛龍在天, 利見大人)’의 성덕(聖德)을 봄이 이(利)롭다. 五爻의 비룡대인(飛龍大人)은 성덕(聖德)을 갖춘 자로서, 二爻의 현룡대인(見龍大人)의 군덕(君德)을 봄이 利롭다. 중효(中爻)에 있는 현룡대인과 비룡대인이 상호관계를 가지며 中(中正ㆍ正中)의 가치를 드러낸다. 中과 正이 함께 수반하여 완벽한 中을 이룩해낸다.(柳七魯, 54)


위의 현룡대인(見龍大人)과 비룡대인(飛龍大人)의 상호작용을 좀 비약하여 해석할 경우, 사람이 아닌 국가 간의 관계로 치환하여 한반도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겠다. 남북한이 각각 현룡대인과 비룡대인의 역할을 하며 중립화 통일을 이루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의 주변국에도 해당된다. 북한이라는 현룡대인과 미국이라는 비룡대인의 상호관계가 원만해져서 북미 간에 정전협정ㆍ평화협정을 맺는 가운데 중립화 통일의 초석을 놓을 수 있다. 북한이라는 현룡대인과 일본이라는 비룡대인의 상호관계가 원만해져(납치 문제 등의 해결), 북-일 수교가 이루어져 중립화 통일에 기여할 수 있다. 건괘 중효(현룡대인ㆍ비룡대인)의 상호관계를 한반도 주변정세에 잘 적용하여 중립화 통일의 길을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주역의 中(中正ㆍ正中)의 가치를 잘 살리는 시중(時中)의 정신으로 중립화 통일을 준비할 수 있다.


주역의 64괘에 걸쳐 중정(中正)의 도(道)가 나타나며, 변화무쌍한 364개의 각 효(爻)마다 그 상황에 따라 적절한 시중(時中)의 정신이 드러난다. 주역의 시중정신(時中精神)에 따라 中(중립)의 시(時)ㆍ위(位; 공간)를 찾아 중립화의 길을 걸으면, 한반도 평화통일의 정도(正道)를 걸을 수 있다.


괘에서 표현되는 하나의 상황은, 일종의 이념형적으로 표상된 사회적 상황ㆍ정치적 상황[중립화 통일을 생각할 때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시(時)와 구체적인 위(位; 爻의 위치, 지위)의 中과 正, 그리고 다른 爻와의 상호관계에 의해 그 때 거기에서 가장 적절한, 즉 자기가 처한 時와 位를 잃지 않는 시중(時中)의 행위가 군자[君子; 중립화 통일을 주도하는 인물ㆍ주도 집단]의 행위이다.(김재범, 135) 이를 한반도의 중립화 쪽으로 확장하여 해석하면, 時와 位를 잃지 않는(시ㆍ공간의 조화를 이루는) 시중(時中)의 행위(중립외교)를 통해 중립화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주역은 시ㆍ공간(時와 位)의 상황을 판단할 때의 기미(幾微)를 중요시한다. 주역의 군자[중립화 통일의 지도자ㆍ주도 집단]는 항상 올바르고 정확한 사회적 인식을 위해 사실의 기미를 살피되, 그 인식은 언제나 실천적 행위와 결부되어 있다(김재범, 136). 달리 말하면 중립화 통일을 이끌 군자(지도자ㆍ주도 집단)는 한반도 주변정세의 기미를 잘 살펴 시중(時中)의 정신을 발휘해야한다.『계사전(繫辭傳』上, 10장의 “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硏畿也. 唯深也故, 能通天下之志. 唯畿也故, 能成天下之務(易은 성인이 깊음을 다하고 기미를 살피는 것이니 깊기 때문에 천하의 뜻을 통하며 기미이기 때문에 천하의 일을 이룰 수 있다.”에서와 같이, 한반도 주변정세의 기미를 깊이 살펴 ‘시중(時中)의 중립외교’를 펼치면 천하의 일(중립화 통일)을 이룰 수 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기미만 잘 살핀다고 중립화 통일이 이룩되는 게 아니다. 중립화 통일의 준비를 철저하게 하면서 때를 보아 행동해야한다. 시의(時宜)에 적중(中)하는 중립화 정책의 완성본을 예비하고 있다가, 중립화 통일의 결정적인 때에 중립화 노선을 관철시켜야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반도 주변정세의 틈을 노리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중립화를 성사시켜야한다. 오랫동안 예비훈련을 거듭했던 야구선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을 치듯이...


『주역』해(解)괘에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공후 또는 왕공(王公)이 활을 쏘아 높은 성벽 위에 웅크린 송골매를 잡으니, 이롭지 않은 바가 없다)”라는 爻(上六)가 있다. 이 爻에 나오는 송골매(隼)는 ‘행패를 부리는 패란자(悖亂者) 또는 사납고 해로운 존재로서 ‘해로운 소인(小人)’ 또는 ‘해방을 막는 높은 자리의 강력한 소인배’를 형상한다. 이 爻는 공후가 가장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힘세고 사악한 소인배를 제거함으로써 마침내 어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황태연, 625).


위의 爻에서 ‘公用射隼(왕공이 활을 쏘아 높은 성벽 위에 웅크린 송골매를 잡음)’은 ‘반역자가 조성한 위난을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풀이했듯이 반역의 소인을 숙청하고 험난함을 일소함을 비유한다.『계사전(繫辭傳』下에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군자는 몸에 이기(利器)를 지니고 있다가 때가 되면 그것을 사용한다(君子藏器宇身, 待時而動)”고 했으니 ‘왕공이 활을 쏘아 성벽 위에 웅크린 송골매를 잡음’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쑨 잉퀘이ㆍ양 이밍, 598~599)


위와 같이 군자(중립화 통일을 이룰 지도자ㆍ주도 집단)가 이기(利器; 중립화 통일의 비책秘策)를 몸에 지닌 채(君子藏器于身), 중립화 통일의 틈새를 노리며 때를 기다리는 대시(待時; 중립화 통일을 위한 時中)의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 더 나아가 중립화 통일을 저해하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송골매(중립화 통일의 저해세력)를 잡는 행동이 긴요하다. 송골매를 잡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심하며 준비된 행동이다.


더욱이 사람이 어떤 일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지식도 있고 능력도 있는 것이 바로 ‘장기우신(藏器于身)’이다. 절대 남에게 의지할 수 없다. 만약 다른 사람이 도와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벌써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설사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패한 것이다. 천하를 당신이 얻은 것이 아니니까. ‘藏器于身’에서 ‘장(藏)’자에 주의해야한다. 깊이 감추어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 드러내서도 안 된다. 재능을 갖추고 있으면서 쓰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재능이 없어서는 안 된다.(南懷瑾, 397)


이와 같이 남(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自主)의 정신으로 중립화 통일을 위해 ‘장기우신(藏器于身)’해야 한다. 즉 중립화 통일의 비책(秘策)을 깊이 감추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가운데, 중립화 통일의 잠재력을 길러야 하며, 결정적인 때 중립화 통일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해야한다. ‘장기우신(藏器于身)’을 역행한 채 “중립화 통일을 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다가는 중립화 통일을 싫어하는 외세(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중립화 통일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남북한이 조심스럽게 ‘장기우신(藏器于身)’의 호흡을 맞춰가며, 중립화 통일의 발판을 마련해야한다. 한반도 주변의 어느 국가와도 사이좋게 지내는 외유내강의 중립화 외교를 펼치는 가운데, ‘장기우신(藏器于身)’의 호흡을 남북한 간에 나누어야할 것이다.


남북한이 ‘장기우신(藏器于身)’의 호흡을 나누려면 ‘늪지대와 같은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에서 처신을 잘 해야 한다. 『주역』이(離)괘 六二 효의 ‘黃離, 元吉(황색을 띠고 붙좇으니 크게 상서롭다)’와 같이 외원내방(外圓內方)의 중립화 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황색은 중도(中道)를 상징하므로, 중국 등에 대하여 ‘황색의 중립외교 노선’을 제시하는 게 유리하다. 유순하면서도 중정(中正)한 도(道)에 의존하는 태도, 마음은 반듯하고 굳세면서도 겉으로는 원만하고 부드럽게 처신하는 ‘외유내강ㆍ외원내방의 황색 중립외교’를 펼치면, 남북한이 중립화 통일을 이루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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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김재범『주역 사회학』(서울, 예문서원, 2001)
* 南懷瑾 지음, 신원봉 옮김『주역 강의』(서울, 문예출판사, 2000)
* 쑨 잉퀘이ㆍ양 이밍 지음, 박삼수 옮김『주역』(서울, 현암사, 2007)
* 황태연『실증주역』(고양, 청계출판사, 2008)
* 柳七魯「儒家의 權道에 관한 연구」『한국 동서철학 연구회 논문집』제8호(19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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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
* 위는,『책과 인생』2010년 4월호에 실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