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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경제론

제주도를 평화의 순례지로

김승국

세계적인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평화산업(Peace Business) ・평화관광(Peace Tour)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평화가 산업적 가치를 지니는 점, 평화기행의 경제적 중요성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도 평화가 산업적 가치를 갖는다고 증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전쟁이 산업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하기는 의외로 쉽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전쟁의 특수(特需)를 통해 경제부흥을 도모한 사례가 많고 무기수출 등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산업이라는 말이 상식처럼 회자되고 있으나, ‘평화산업’하면 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오히려 ‘가상적(假想敵)에 대한 살상’을 전제로 한 ‘죽임의 국방’은 산업체계와 연계되는 데 비하여, ‘활인(活人)의 평화(사람을 살리는 평화)-살림의 평화’가 경제적 가치를 발휘한다고 증명하지 못하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

제주도 역시 이러한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듯하다. 국방(해군기지 신설)과 관련된 경제적 이득이 거론되는 현실과 평화산업이라는 담론을 개발하려는 현실 사이의 충돌지점에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

이러한 엇박자를 타고 넘어 평화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평화지향적인 체계, 즉 ‘평화 복합체(平和複合體)’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제주도에까지 밀려오는 ‘군(軍) ・산(産) 복합체’의 물결을 타고 넘을 평화 복합체의 구축이 요청된다. ‘軍(섬의 군사화)’와 산업(경제)의 유착관계를 대변하는 ‘군 ・산 복합체’의 그림자를 제주도민들의 평화력(Peace Power)으로 물리칠 때, 비로소 평화산업의 기반을 자유롭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국방산업의 주력부대인 군 ・산 복합체가 경제체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군사 케인즈주의(military Keynesianism)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미국은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군사 케인즈주의에 따른 군 ・산 복합체가 지배구조의 일부를 이루는 곳이다. 그러므로 미국과 같은 군사 국가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기 위해, 미국 사회를 평화 복합체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라는 가치가 씨줄 ・날줄로 얽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게 평화 복합체이므로, 온전한 평화 복합체를 이루기 위해 군 ・산 복합체를 배제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평화 복합체라는 기제(機制: Mechanism)가 없거나 평화 복합체를 구축할 잠재력이 결여되어 있으면, 군 ・산 복합체가 바이러스처럼 엄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 제주도의 상황은 어떠한가? 제주도라는 지역 사회가 아직 평화 복합체를 이룰 잠재력이 부족하므로,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군 ・산 복합체의 그림자와 조우할 수 있다. 따라서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제주도를 평화 복합체로 만들어야 하며 그 일환으로 평화산업 ・평화관광을 진흥해야 할 것이다.

한편 평화산업의 배양기가 될 평화 복합체의 주체는 민족 ・국가・시민사회 ・지역 ・지방자치체 등이 될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제주도라는 지역 ・지방자치체를 중요한 주체로 다룬다.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받은 ‘제주’라는 지역, 제주도라는 지방자치체에 평화 복합체를 건설하여 평화산업을 진흥하는 길을 모색하는 게 이 글의 중점이다.

1. 제주도에 평화 복합체 건설을

제주도라는 지역 전체를 평화 복합체로 만들기 위해 지방 자치체가 발 벗고 나서야 하며 기본적으로 제주의 시민사회가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시민사회의 구성원인 시민(제주도민) 개개인이 제주를 평화 복합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제주시민 ・서귀포시민이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평화의 발신자(發信者), 평화의 메시지(Message)를 전하는 평화지기(Peace Keeper)가 되는 게 급선무이지 않을까? 평화의 메신저(Messenger)가 된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제주도에 평화 복합체를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가 보기에 아직은 제주 ・서귀포시민들이 평화의 메신저를 자임하지 않고 있으며 제주도의 지방 자치체도 세계평화의 섬 지정에 어울리는 평화 복합체 건설에 매진하지 않는 것 같아,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의미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사례를 든다.

2.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사례

히로시마 ・나가사키는, 어쩌면 ‘제주 4 ・3’ 보다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군 ・산 복합체의 결정적인 산물인 핵무기 세례를 받아 수십만 명이 사망했으니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핵 세례의 피해자인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시민들은 적수공권으로 자기들이 사는 지역을 평화의 동산으로 만드는 메신저가 되었다. 핵무기 세례를 받아 쑥대밭이 된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평화의 도시로 만드는 1등 공신은 시민들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시청,히로시마 현청(도청)은 2등 공신일 뿐이다.

형식상 지방 자치체가 히로시마를 평화의 도시로 만드는 데 앞장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1945년의 피폭 직후) 상황을 자세히 보면 시민들이 ‘히로시마형(型) 평화 복합체(‘반핵평화’의 가치를 중심으로 삼는 히로시마 특유의 평화 복합체)를 건설한 주역이며,나가사키도 예외가 아니다. 시민들이 평화 복합체 건설의 주역임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지금도 쉽게 증명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시민들은 스스로 평화의 메신저가 되어 평화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평화의 도시’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풀이하면 ‘평화라는 밥을 먹고사는 도시’라는 뜻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는 평화가 밥을 먹여 준다는 말이다. 평화산업이 히로시마 ・나가사키 지역경제의 효자라는 것이다.

매년 8월 6~9일(핵무기 세례를 받은 날), 일본 안팎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향한 평화의 순례가 이루어진다. 이 기간 동안 히로시마 ・나가사키는 평화의 순례지가 되어 평화를 주제로 한 바자(Bazaar)가 곳곳에서 열린다. 평화의 가치가 상품화되는 시장이 활기차게 열린다. 마치 이슬람교의 순례지인 메디나에 바자(시장)가 열려 해당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듯이….
평화의 순례지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는 1년 내내(8월 초에 집중적으로) 평화의 순례자들이 넘쳐흐르며, 이들이 소비한 돈만으로도 히로시마 ・나가사키 시민들이 먹고살 수 있다. 특히 8월 초 반핵평화 행사가 집중적으로 개최되는 기간에 호텔은 만원이고, 상가에는 평화의 순례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평화의 순례자들은 평화관련 시설만 돌아보는 게 아니다.

순례자들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시 안팎의 관광지에 가서 충분한 소비를 하고 귀가한다. 평화의 순례자들이 움직이는 걸음마다 평화관광이 저절로 이루어져 그 대가를 히로시마 ・나가사키 시민들이 누린다. 매년 8월 초의 피폭 기간에는 평화의 순례자들이 뿌린 돈으로 히로시마 ・나가사키 시민들이 밥을 먹고살 수 있다. 이 기간 이외에도 1년 내내 평화의 순례자들이 그치지 않고 히로시마를 찾으므로 평화산업이 상설적으로 꽃을 피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향한 평화관광이 평화산업의 전령사 역할을 한다.

필자가 보기에 제주도 역시 평화관광을 평화산업의 전령사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제주도는 히로시마 ・나가사키보다 풍광이 아름답고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곳이어서 평화 순례지로 손색이 없다. 4 ・3 항쟁 관련 시설(4 ・3 평화 기념관 등) ・유적지만으로도 히로시마 ・나가사키 못지않은 평화의 순례지로 만들 수 있다(제주도의 ‘4 ・3’ 학살과 비슷한 사연을 지닌 오키나와가 ‘학살’과 관련되어 평화의 순례지가 되어 ‘평화의 바자’가 열리는 사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함).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제기를 한다: ① 제주도를 평화 순례지로 만들 수 있는가? ② 평화 관광객이 일반 관광객보다 질(質) ・양(量)에서 우세하고 일반 관광객보다 제주도 경제의 활성화에 더욱 큰 공헌을 할 수 있는가?

위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적절한 논평이 될지 모르지만, 필자가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평화 기행단을 모집하면서 “제주도로 평화기행 가자.”고 제의할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제주도보다 히로시마가 평화기행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히로시마에는 평화관광을 가면서 제주도에는 평화관광을 가지 않으려는 경향을 극복하는 묘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일단 평화관광이 이루어져야 평화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생기므로, 제주도를 평화 관광지로 바꾸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제주도민 스스로 평화지기, 평화의 파수꾼이 되어 평화의 메시지를 평화 관광객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제주시민 ・서귀포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평화의 염(念)으로 의식화’하여 평화의 발신자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제주시민 ・서귀포시민들의 일상생활이 평화의 흥취 속에서 이루어져, 관광객들에게 평화의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정도가 되지 않으면 히로시마로 갈 사람들을 제주도로 오게 할 수 없다.

3. 몇 가지 대안

제주도를 히로시마와 같은 평화의 순례지로 만들어 평화산업을 발전시킬 대안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면서 이 글을 끝맺는다:
  1) 제주 ・서귀포시 시민들을 평화의 발신자로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2) 이러한 작업과 관련하여 평화운동(평화교육 포함)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가 반핵평화 운동의 메카가 되었듯이,제주도가 ‘4 ・3 학살의 기억’을 넘나드는 가운데 평화운동의 메카가 되어야 한다.
  3)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제주도의 평화 NGO들과 평화연구소・지방자치제가 거버넌스(Governance)를 형성하는 게 좋다.
  4) 위의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제주도를 평화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평화산업이 부흥할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5) 위의 전략은 해군기지 신설 전략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신설함으로써 얻을 이익(이익이 있다면…)보다 훨씬 많은 경제적 가치가 ‘제주도의 평화 산업화’를 통해 보장된다고 증명할 수 있는 전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있어야 해군기지 찬성파를 설득하여 반대진영으로 모실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전략이 없으면 ‘해군기지 신설을 통한 지역경제 부흥’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하드웨어 중심의 군사적 유용성을 넘어서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평화산업 육성책’이 제주도민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320호(2008.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