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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7) ---중립화 통일될 평화향(平和鄕)

김승국


1. 대동사회의 평화향(平和鄕)


‘유토피아(utopia)’는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만들어낸 말로, 처음에 라틴어로 쓰인 그의 저작『유토피아』에서 유래되었다. utopia는 그리스어의 ‘ou(없다)’와 ‘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서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유토피아처럼 생각되지만, 미래에는 유토피아가 아닌 실현가능한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 지금은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이 꿈과 같은 이야기이지만, 앞으로 힘차게 노력하면 실현가능한 일이므로 중립화 통일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중립화 운동에 열중하는 사람들에게 ‘중립화 통일된 한반도’는 평화로운 이상향 즉 평화향(平和鄕)이다. 평화향 안에 (현재는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요소가 있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향(중립화 통일된 한반도)을 향한 운동을 벌인다. 그래서 평화운동은, 평화향을 앞당기는 유토피아 운동이다. 한갓 유토피아를 실현 가능한 꿈으로 바꾸어가는 운동이다.


평화향을 꿈꾸는 유토피아 운동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평화롭게 잘 살 수(well-living) 있을 것이라고 믿거나 상상하는 목가적인 이상(理想) 사회ㆍ이상적(理想的) 도시ㆍ이상적 마을ㆍ이상적 공동체ㆍ이상 국가를 ‘평화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플라톤(Platon)의『Politeia』에 나오는 이상적인 Polis, 토마스 모어의『유토피아』에서 그리는 이상 국가, 『老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공동체도 평화향에 포함되며, 동양의 고전에 나오는 대동사회(大同社會)가 동양인이 가장 그리워하는 평화향이다.  
 

대동사회는『예기(禮記)』「예운(禮運)」편에 나오는 유토피아를 말하는데, 첫마디부터 민주평등(주1)을 선포한다. 이어 공동체(주2)ㆍ복지사회(주3)ㆍ공유제(주4)ㆍ평화세상(주5)을 그리는 말로 끝맺는다. 이와 같은 민주평등ㆍ공동체ㆍ복지사회ㆍ공유제 사회의 요소를 담은 평화세상을 이룩하지 않고 한반도 중립화 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없으므로, 대동사회는 한갓 유토피아가 아닌 실현가능한 평화향이다.


대동사회가 구현되는 평화향을 향해 매진할 때,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특히 민주평등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은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제창한 손문 선생의 화두인바, ‘천하위공의 삼민주의’를 평화향(중립화 통일될 한반도)의 규범으로 삼아도 될 것같다.


2. 소강사회의 평화향(平和鄕)


요순(堯舜) 시대와 같이 대도(大道)가 행해지던 사회를 대동사회라고 한다. 그런데 공자가 살던 시대는 이미 대도가 무너져 주나라의 예치(禮治)가 불가능한 때이어서, 예치를 회복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차원의 이상사회론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소강(小康社會)이다.


공자가 지향하는 이상사회는 소강사회이다. 소강사회도 물론 공동체를 지향하지만 대동사회와 같은 ‘천하위공(天下爲公)’의 공동체가 아니라 ‘천하위가(天下爲家; 예치를 앞세운 제왕의 家가 천하를 주도하는 사회이고 이 家들이 모여서 國을 이룬다)’의 사회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간특한 모의와 전쟁이 일어난 혼란을 수습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성왕(成王), 주공(周公) 등이 천하를 차지한 사회가 소강사회이며, 이 소강사회마저 무너져 극도의 혼동 속에서 패권전쟁을 거듭한 말세가 춘추전국 시대이다.


대동사회ㆍ소강사회라는 이상사회를 언급한『禮記』「禮運」은, 요순의 대도(大道)가 이루어진 대동사회에서 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ㆍ성왕(成王)ㆍ주공(周公)이 주도한 소강사회로 ‘禮(禮治 질서)’가 운행ㆍ이행함을 강조한다. 사회과학적인 용어를 빌리면 사회구성체가 대동사회에서 소강사회로 발전한다는 역사발전 단계설을 말한다.


그런데『禮記』「禮運」편의 역사발전 단계론(대동사회에서 소강사회로의 이행)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생겼다. 청나라 말기의 개량주의적 혁명운동을 주도한 강유위(康有爲)가 그러한 해석을 취한 인물이다.


강유위는 자신의 저서『대동서(大同書)』에서『禮記』의 ‘대동사회→소강사회’로의 역사발전 단계과 반대로 ‘소강사회→대동사회’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큰 틀에서 ‘소강사회→대동사회’로 발전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보면 ‘거란세(據亂世)→승평세(升平世)→태평세(太平世)’라는 3단계로 진화한다는 것이다.(기세춘, 276)


이를 한반도에 무리하게 적용해보면 據亂世(한국전쟁에 의한 분단체제)→升平世(남북한 연합; 남한의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사회와 북한의 사회주의 사회의 연합)→太平世(연방제 통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립화 운동이 거란세(분단체제)→승평세(남북한 연합)을 촉진할 수 있고, 승평세(남북한 연합)→태평세(연방제 통일)를 촉진할 수도 있겠다.


소강사회를 언급하는『禮記』「禮運」편에 ‘세상에는 간특한 모의가 일어나니 전쟁이 일어났다. 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ㆍ성왕(成王)ㆍ주공(周公)이 이 어지러움(전쟁의 혼란)을 수습했으므로 천자로 선출되었다.’는 문구가 나온다. 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ㆍ성왕(成王)ㆍ주공(周公)이 전쟁을 수습하여 ‘전쟁이 중단된 평화로운 소강사회’를 이룩했다는 말이다.


한반도의 경우, 한국전쟁이 중단된 현재의 소강상태(분단ㆍ정전협정 체제 아래의 불안한 평화상태)를 더욱 평화롭게 만들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우ㆍ탕ㆍ문ㆍ무ㆍ성왕ㆍ주공이 전쟁의 어지러움을 수습하여 소강사회를 조성했듯이) 남북한 사이의 소강사회가 조성된다. 이러한 남북한의 소강사회에 힘입어 남북한의 연합이 가능할텐데, 이러한 흐름을 중립화 운동이 촉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강유위(康有爲)처럼 소강사회<중립화 운동에 힘입은 남북한 연합; 거란세(분단체제)→승평세(남북한 연합)>에서 대동사회<연방제 통일; 승평세(남북한 연합)→태평세(연방제 통일)>로 진화하는 ‘통일지향적인 역사발전’을 이루는 가운데, 남북한을 평화향(平和鄕)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


3. 안생생(安生生) 사회의 평화향(平和鄕)


『墨子』「尙賢下」에 “어질게 되는 길(賢之道)는 무엇인가? 그것은 힘이 있으면 부지런히 인민을 돕고 재물이 있으면 힘써 인민에게 나누어주고 도리가 있으면 권면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배고픈 자는 먹을 것을 얻을 것이요, 헐벗은 자는 옷을 얻을 것이요, 피로한 자는 쉴 것이요, 어지러운 것(亂)은 다스려질 것이다. 이것을 安生生(안락한 생명 살림 또는 자유로운 살림살이)라고 한다.”는 문구가 있다.


‘安生生’에서 ‘安’을 평안하고 자유로운 또는 편안하고 자연적이라는 뜻으로 읽어 ‘자유로운 생명 살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生’은 인간의 자연적인 성품, 인간 본래의 자유로움을 말한다. 즉, 대동세계 또는 공동체적 삶을 뜻한다.(기세춘, 451)


대동세계 또는 공동체적 삶을 뜻하는 ‘安生生’은, 묵자가 염원했던 대동사회이며『예기(禮記)』「예운(禮運)」편의 대동사회론을 묵자는  ‘安生生’으로 풀이한다.


『예기』의 대동사회에 대한 기록과 묵자의 천하무인(天下無人)의 안생생 사회에 관한 어록을 비교해 보면 너무도 같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예운」편의 ‘천하는 만민의 것’이란 말은 묵자의 ‘천하에 남은 없다(天下無人)’ ‘백성이 주권자(百姓爲主)’라는 주장과 일치하며,「예운」편의 ‘재물을 땅에 버리는 낭비를 싫어하지만 결코 자기만을 위하여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은 묵자의 절용(節用), 절장(節葬), 사유제 반대와 일치하며「예운」편의 ‘몸소 노동노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나 반드시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다.’는 말은 묵자의 노동주의와 일치한다.(기세춘, 277~278)


묵자는 평등공동체를 지향한 공화주의자였다. 그의 이상사회는 대동사회였다. 그의 ‘천하무인(天下無人)’은 천하 만민은 모두 남이 아니라 한 형제요 동포라는 뜻으로 공동체 사회를 표현한 말이다. 묵자의 ‘상동(尙同)’은 대동(大同)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묵자의 ‘안생생’은 ‘안락한 살림살이’라는 뜻으로 대동사회를 경제적으로 표현한 말이다.(기세춘,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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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1) “큰 道가 행해지면 천하는 만민의 것이 된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
(주2) “자기 부모만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식만 자애하지 않는다.”
(주3) “늙은이는 수명을 다하고 젊은이는 재능을 다하고 어린이는 무럭무럭 자랐으며 홀아비ㆍ과부ㆍ고아ㆍ병자도 모두 편히 부양받았다. 남자는 직분이 있고 여자는 시집을 갈 수 있었다.”
(주4) “재물을 땅에 버리는 낭비를 싫어하지만 결코 자기만을 위하여 소유하지 않으며, 노동하지 않는 것을 미워했으나 반드시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다.”
(주5) “이렇게 되면 간특한 모의가 통하지 않고 도둑ㆍ변란ㆍ약탈이 없으니 대문을 닫지 않고 살았다. 이것을 일러 ‘대동(大同)’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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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 기세춘『묵자』(서울, 바이북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