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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분쟁지역(동아시아 등)

카슈미르 분쟁의 요인과 평화의 과제

김승국

Ⅰ. 서론

“카슈미르(Kashmir)는 지금 피를 흘리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주민을 피 흘리게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 카슈미르 땅을 장악하려 하기 때문이다. 1947년의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 이후 카슈미르는 무덤으로 변해 있다. 카슈미르 분쟁의 피해를 보지 않은 가정이 없다. 카슈미르 백성은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최근에 인도-파키스탄의 정상이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양국의 대화는 수박 겉핥기의 대화(cosmetic dialogue)일 뿐이다. 카슈미르인(人)의 약 70%가 ‘자주 독립국(Independent State) 카슈미르’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가 자기 나라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계속해서 전쟁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카슈미르인만 피를 흘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도는 1947년에
카슈미르를 해방시키지 못했다. 인도 정부가 약속한 카슈미르의 자치를 실행하지 않았다. 57년 동안 이루어진 인도 지배계급의 분할통치(divide and rule) 때문에, 카슈미르인은 분열되어 있다. 지금 카슈미르에서는 분리독립(Independent State 수립)론, 자치(Autonomy)론, 세속적인 민주주의 수립(Secular Democratic)론 등으로 갈라져 있다. 이러한 분열을 극복하는 게 급선무이다.”

위는 카슈미르의 언론인 바신(Ved Bhasin; {Kashmir Times} 회장)이 2004년 1월 20일 인도의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 포럼(World Social Forum)의 워크숍에서 ‘카슈미르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다.

카슈미르를 점령한 인도군에 의해 1989년 이후 10만 명의 카슈미르인이 사망했으며, 지금도 50만의 인도군이 카슈미르를 점령하고 있다. 파키스탄 군 장성들은 인도를 갈기갈기 찢어 피를 흘리게 해야 한다며 전쟁을 주장했다. 중무장한 인도군과 파키스탄군이 카슈미르의 실효 지배선(Loc; Line of Control)을 따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무장 게릴라들이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인도군-파키스탄군-무장 게릴라의 3자 간 혈투의 희생양은 카슈미르인이다. 카슈미르인의 더 이상의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카슈미르에 반드시 ‘평화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이렇게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카슈미르 분쟁의 요인은 무엇인가? 카슈미르 분쟁은 종교적인 요인 때문에 발생했다는 일반론에 문제는 없는가? 카슈미르 분쟁의 원인을 종교로 환원시킬 수 있나? 분쟁의 정치적인 요인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분쟁의 정치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면, 종교적 요인과는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나?

이와 같은 물음에 대답하려는 본 연구는 카슈미르 분쟁에 있어서 종교-정치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종교-정치적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카슈미르 분쟁의 요인을 분석한 데 이어, 카슈미르에서 평화의 과제와 갈등해소 노력을 소개하는 데 이 연구의 목적이 있다.

카슈미르 분쟁의 원인을 제공한 ‘1947년 인도 대륙의 분리독립(partition)’의 배후에 민족론의 분화(종교적 민족주의와 세속적 민족주의의 갈등)가 있으며, 민족론의 분화가 카슈미르의 분쟁에 미친 영향이 크다. 그러므로 카슈미르 분쟁의 종교, 정치적 상관관계를 다룰 때 민족주의(Nationalism)의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상황을 다루는 ‘제4절 카슈미르에서 평화의 과제와 갈등해소 노력’을 제외한 이 연구 전반의 분석 시점(時點)은 1947년의 인도 분리독립 전후의 시기이며, 잠무 카슈미르(Jammu & Kashmir; 인도가 점령한 카슈미르 땅)를 지리적인 공간으로 설정한다.

이 글은, 우선 카슈미르 분쟁의 외부요인을 제공한 영국의 분할통치와 이와 연동된 1947년의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의 종교-정치적 함의를 ‘인도에서의 민족(Nation)개념’에 따라 분석한다. 이어 카슈미르 분쟁의 내부요인을 제공한 ‘번왕(藩王: Maharaja)의 인도 귀속’이 초래한 분쟁을 분석하는 순서를 밟는다. 이와 같은 순서에 따라 카슈미르 분쟁의 종교․정치적 함의를 ‘종교적 민족주의(Religious Nationalism)-세속적 민족주의(Secular Nationalism)-종족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의 3자 관계와 연동시켜 분석한다.
<이하 생략>

Ⅴ. 결론

지금까지 카슈미르 분쟁에 있어서 종교-정치의 상관관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다음 평화의 과제와 분쟁해소 노력을 소개했다.

필자는 카슈미르에서 종교-정치적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열쇠말’을 ‘종파 정치’에서 찾았다. 카슈미르를 포함한 인도 대륙 전체를 식민지 지배한 영국 제국주의는 ‘종파 정치’를 통한 ‘분할 통치’를 구사했다. 이 분할 통치의 결과 인도가 분리독립되었고, 분리독립의 여파가 카슈미르에 미쳐 카슈미르에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이러한 카슈미르 밖의 상황이 카슈미르 분쟁의 외부적 요인이 되었다.

카슈미르 분쟁의 외부 요인 중 중요한 것은 ‘한 민족론’과 ‘두 민족론’의 대립이다. 이 대립은 카슈미르의 여러 정파들에게 영향을 미쳐 카슈미르 분쟁의 내부요인을 이룬다. 카슈미르 분쟁의 내부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카슈미르에서 종교-정치적 상생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 온 수피즘, 카슈미리야트가 동요한 현상이다.

카슈미르는 본래 다민족(다종족), 다종교, 다언어 사회이므로 내적 통합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그러나 수피즘, 카슈미리야트 덕분에 평화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평화를 깬 외부적 요인은 영국 제국주의의 ‘종파 정치’를 악용한 ‘분할통치’이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카슈미르 내부의 사회적 분단이다.

1947년의 분리독립 직후 카슈미르 번왕의 ‘인도에로의 귀속’을 에워싼 정치적 결단은 ‘다민족(다종족), 다종교, 다언어 사회구성체’에 사회적 분단을 초래했다. 결국 ‘인도에로의 귀속’에 반발한 파키스탄 측의 파슈툰 종족이 카슈미르 계곡을 향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인도-파키스탄 간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인도-파키스탄 간 세 차례의 전쟁을 통해 카슈미르의 분쟁은 심화되었다. 세 차례의 전쟁 끝에 그어진 실효 지배선(Loc)은 카슈미르의 분단선이 되어 있다.

1987년 카슈미르에서의 선거 결과에 불만을 가진 세력에 의해 분리주의 무장 투쟁이 전개되면서 카슈미르 분단 해소의 대안을 더욱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온 카슈미르 분쟁 해소의 대안은 크게 분리독립론, 자치론이다. 이 밖에 인도에로의 합병론, 파키스탄에로의 합병론 등이 있으나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캬슈미르人들은 대체로 분리독립론을 지지하고 있으나, 인도 정부가 이를 수용할 리 없다. 자치론의 경우, 인도 정부가 ‘카슈미르의 전폭적인 자치를 허용한 인도 헌법 제370조’를 실행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인도 헌법 제370조의 실행은 카슈미르 분쟁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 중의 하나이다. 이 370조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현재 초계엄(超戒嚴) 상태의 카슈미르에 평화의 훈풍을 집어넣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분리독립 운동에 나선 무슬림 무장 게릴라 집단 및(이 무장 게릴라들을 지원하는) 파키스탄과의 정치적인 협상이 불가피하다.

다행히 2004년 초부터 인도-파키스탄 정부 간의 신뢰구축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다. 양국 간 협상의 초미의 관심사는 카슈미르 분쟁의 해소 방안이다. 그러나 양국의 협상이 겉핥기의 대화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

카슈미르 분쟁, 분단으로 말미암아 물심양면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캬슈미르人의 평화적 생존권을 깊이 생각한다면 ‘겉핥기 협상’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양국 간 협상이, 분쟁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外傷) 이후의 스트레스 장애(PTSD)’를 없애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분쟁으로 고난받는 캬슈미르人의 영혼에 평화의 기운을 넣어주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는 분쟁해소 방안은 결국 실패작으로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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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20호에 실려 있다.
* 김승국『평화연구의 지평』(파주, 한국학술정보, 2009) 155~228쪽에도, 위의 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