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은자들은 조정에 숨는다
김승국 정리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변증론을 중요하게 여겼다. 옛말에 “작은 은자들은 산속에 숨고, 중간의 은자들은 저자거리에 숨으며, 큰 은자들은 조정에 은둔한다”고 했다. 중국인들은 이 세 부류 가운데 세 번째, 즉 정치에 참여하고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자신을 지키고, 때로는 은둔하고 때로는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모은 걸 꿰뚫어 보며 위험을 피하고 유유자적하며 소요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장 운 좋은 이들이라고 생각했다.…위에서 말한 은자의 세 가지 부류 가운데 상수리나무[『莊子』 「人間世」의 상수리나무에 관한 부분(匠石之齊,至乎曲轅,見櫟社樹。其大蔽數千牛,絜之百圍,其高臨山十仞而後有枝,其可以為舟者旁十數。觀者如市,匠伯不顧,遂行不輟…)을 참조할 것]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조정에 은둔하는 큰 은자’다. 상수리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면서도 사당을 지키는 나무라는 자리를 거절하지 않았다. 산속에 숨는 것은 은거(隱居)하고 하는데 이런 이들은 작은 은자다. 남들이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이들은 은둔하는 척만 하고 있을 뿐 언제라도 속세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간의 은자들은 저자거리에 은둔하는데 이들의 은둔에는 도행(道行)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긴 채 저자거리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섞여 어울리면서 속세와 교류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다른 은자들과 다를 게 없으면서도 건달이나 필부의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니 작은 은자보다는 훨씬 더 높은 경지다. 그런데 큰 은자들은 조정에 숨는다고 했다. 그들이 왜 하필 조정에 숨는지는 확실히 이해할 수 없지만, 아마도 이미 지혜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숨고 싶어도 숨을 수 없기 때문일 것 같다. 숨어서 은둔하고 싶지만 이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조정에 들어가는 편을 택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언제든 훌훌 털고 나와 은둔할 수 있는 준비를 했던 것이다.
*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나는 장자다』 (파주, 들녘, 2011) 310~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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