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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16) ---역사적인 조건 ④ 김승국 1. 중립외교의 핵심인 기미ㆍ자강 정책 광해군이 후금에 취했던 대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기미책(羈縻策)으로 유연한 관계를 유지하되,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나아가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군사적 자강책(自强策)을 마련하는 것이다.(한명기, 2002, 72) 『광해군 일기』권 147 (광해군 11년 12월 신미)에 따르면, 광해군이 후금에 대한 대응책을 신하들에게 지시한다; “第惟我國人心兵力無可爲之勢 奈何 奈何...大槪一邊羈縻一邊自强 誠是長算 固不可廢一 皆無着實擧行之事 予切痛焉.” 이를 우리말로 풀어보면 “생각건대 우리 나라의 인심이나 병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대개 한편으로는 기미책을 쓰고 한편으로는 자강책(自强策)을 쓰는 것은 진실로 장구한 계산으로 한 가지도 ..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15) ---역사적인 조건 ③ 김승국 1. 광해군의 중립외교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지정학적 특성을 지닌 한반도에서 역대 왕조들은 양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부심해야 했다. 한반도의 정권들은 대외정책을 펼쳐 나갈 때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만 했다. 서북방에서 중국이나 다른 북방민족과의 관계가 긴장 상태에 놓여 있을 때, 동남방에서 일본과의 관계까지 악화시킬 수는 없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양쪽에서 긴장을 초래하고 중국과 일본을 모두 ‘적’으로 만들 경우, 정권은 물론 국가의 존속 자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쪽에서 동시에 적을 만들 경우 생존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임진왜란 이후의 상황을 통해 분명하게 입증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명의 군사적 도움을 받아 난국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