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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5) --- 1882∼1904년의 한반도 중립화론 (2) 김승국 1. 고종 정부의 중립화 추진 조선의 영세중립 필요성은 1880년대 초반부터 제기됐으나, 조선정부가 영세중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검토한 것이 아니고, 외국이나 학자의 수준에서 주장되었다. 더 나아가 조선의 정세도 영세중립 정책이 필요한 국제적 환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정부는 영세중립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고종은 1891년 6월 조선의 지정학적 요인이 스위스와 유사한 점을 감안하여 국제적 보장 아래 조선의 영세중립 문제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은 조선의 영세중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중국이 조선의 영세중립을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고종의 영세중립 노력은 실패하게 되었다.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 실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반도를 ..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34) --- 1882∼1904년의 한반도 중립화론 (1) 김승국 스위스가 영세중립국가가 된 1815년을 영세중립의 원년(元年)으로 삼아 한반도 중립화의 조건을 탐색하려는 필자의 방침에 따라, 앞에서 1815년 이전의 중립화론을 펼쳤다. 이제 영세중립 원년(1815년) 이후의 조선 역사 특히 임오군란(1882년)~러일전쟁(1904년) 기간에 제기된 중립화론(주1)을 소개하면서 ‘중립화의 가능조건’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1. 중립화의 가능조건 중립화가 가능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춰야한다; ① 중립화 대상 국가는 자위력을 갖춰야하는바 군비가 충실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재정자립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② 지정학적 위치가 국제중간지대로서 전략상의 요충이거나 열강 간의 완충지대이어야 한다. ③ 중립화 국가는 대내적으로 중립화를 위한 거족적이며 초당적인 국민..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27) --- 지정학적인 조건 ① 김승국 1. 스위스의 지정학적인 조건 스위스의 지형은 2개의 습곡(褶曲) 산맥(알프스 산맥ㆍ쥬라 산맥), 이 두 산맥 끼어있는 구릉지대인 ‘미텔란트(Mittel Land)’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중앙 알프스를 수원(水源)으로 하는 주요 하천이 유럽과 연결되어 있다. 스위스는 산협(山峽)으로 둘러싸인 전략적ㆍ지정학적인 거점이기 때문에, 로마제국에 편입된 이후 스위스의 요충지대에 대한 인근 국가들의 침공ㆍ지배를 받았다.(浦野起央, 77~78) 스위스는 프랑스, 독일, 이태리와 같은 유럽의 전통적인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스위스 지역이 역사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신성 로마제국 시대부터인데, 스위스 칸톤(canton; 스위스 산악지대에 있었던 공동체 형태의 자치지구)들이 교류의 중심지였던 지중해와 서유럽을..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24) --- 사회적인 조건 ① 김승국 1. 중립정책-사회적 평화-평화경제의 3박자 어느 나라이든지 대외적으로 중립외교를 펼치려면, 국내사회가 평화로워야한다. ‘사회적 평화’가 중립외교의 필요조건이다. 국내에서 사회적 평화가 유지되어야 위정자들이 대외정책으로서 중립외교를 전개할 수 있다. ‘사회적 평화’가 좀 낮선 용어이므로, ‘평화 지향적이며 지속가능한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평화의 상태’라고 표현하면 적절할 것 같다. 더욱이 중립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내의 사회적 평화가 필수적이며, 중립국가가 된 다음에 사회적 평화가 강화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코스타리카,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의 국가들은, 중립국가가 되기 이전에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중립국가가 된 이후에 사회적 평화가 질적으로 향상되었다. 대내적으로 사회적 ..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14) ---역사적인 조건 ② 김승국 1. 1815년 이전의 역사 영세중립 원년(1815년)의 앞뒤로 나누어 한반도 중립화의 조건을 탐색하려는 필자의 방침에 따라, 1815년 이전의 조선의 역사를 서술한다. 1815년 이전의 역사가 너무 방대하므로, 임진왜란(조일전쟁)~1815년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1) 임진왜란 1592년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는 일본 전국을 통일한 뒤 명(明)나라와 조선을 정벌하여 이름을 만세에 남기려는 허황된 꿈을 꾸었다.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영주들에게 포상으로 약속한 토지가 부족하자 그들에게 나누어줄 땅을 확보하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백여 년간 계속된 내전으로 전쟁이 일상화된 무사들의 넘치는 전쟁 욕구를 해소해주는 대안으로 명과 조선을 접수하고자 그 길목인 조..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13) ---역사적인 조건 ① 김승국 1. 영세중립 원년(元年)을 중심으로 서술 스위스는 1815년 11월 20일에 영세중립 국가가 되었다. 영세중립의 원년(元年)인 1815년은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가 기념해야하는 해이다. 인류가 평화를 추구한 역사를 1815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것은 너무 무리한 구획이지만, 영세중립의 역사를 공부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중립의 관점에서, 영세중립의 원년을 ‘평화지향적인 세계사의 분기점’으로 삼을 수 있겠다. 그러면 중립ㆍ평화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까지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를 다룬 책이 없으므로, 이는 매우 난감한 질문이다. 전쟁사(戰爭史) 중심의 역사책은 있어도 평화사(平和史; 평화를 주제로 삼는 역사) 중심의 역사책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전쟁에 대한 위협ㆍ.. 더보기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길』의 머리말 김승국 1.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한반도는 스위스⋅오스트리아와 같은 지정학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오스트리아처럼 중립국가가 되는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모색하자는 논의가 거의 없다. 스위스와 같이 모범적인 연방제 아래에서 영세중립을 통해 통일을 이룬 ‘중립화 통일’의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중립화 통일이라는 평화통일의 지름길이 있는데도 기존의 국가연합⋅연방제 논의에 매몰된 통일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2. 이 글의 구도 1)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함 지금까지 남북한에서 제기된 통일방안은 국가연합과 연방제에 중점이 있었다. 남한은 주로 국가연합에 의한 통일을, 북한은 연방제 통일을 주창했다. 6⋅15 선언의 제2항은 국.. 더보기
해외의 '중립화' 김승국 정리 * 이 글을 쓰기 위해 강종일 선생의 중립화 연구논문을 참조했다. ------- 미국의 정부, 정치가, 학자들은 1947년부터 1970년 중반까지 주한미군의 철수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중립화 방안을 검토하거나 논의했다. 미국은 동북아 문제를 관리해야 하는 조정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중립문제를 국가이익과 연계하여 검토했다. 1953년 6월 휴전협정 조인을 앞두고 미 국무성은 휴전 후 대한반도 정책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서 한국의 중립화 방안을 국가안보회의(NSC)에 제출했다. 국무성의 한국 중립화 연구목적은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휴전협정 초안 중 “휴전협정 서명 후 3개월 내에 한반도 내 외국군 철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양측의 고위급 정치회담 개최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한편 미국의 정치가, 학자.. 더보기
유럽 진보기행 3-인터라켄(스위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