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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일본 서부 지방 탐방기 (4)


김승국

 

군국주의의 악취가 진동하는 신사 - 야쓰시로 구

 
 
 
일본 군사대국화의 현장은 자위대 · 주일미군 기지이고 본당은 신사(야스쿠니 신사 등)이다. 자위대 · 미군기지를 거쳐 신사(神社)를 방문하면 일본 군사대국화의 움직임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필자는 이번에 ‘군국주의의 악취가 진동하는 신사’를 샅샅이 살펴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8월 10일 구마모토 현의 야쓰시로(八代) 시에 있는 ‘야쓰시로 구(八代宮)’에서 신사를 심층취재했다(‘야쓰시로 구’에 대하여 화보 형식으로 설명함).

필자가 방문한 ‘야쓰시로 구’는 야스쿠니 신사의 야쓰시로 지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야쓰시로 구’의 ‘구’는 한자로 ‘宮’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으로 황실과 관련이 있는 특별한 신을 모시는 신사를 가리킨다.

황실과 관련이 있는 특별한 신이란 무엇인가? 천황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을 신격화한 신을 말한다.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을 신격화하기 위해 위령제를 지내 대표적인 장소가 야스쿠니 신사이고 ‘야쓰시로 구’는 야스쿠니 신사의 지부이다. 따라서 ‘야쓰시로 구’와 야스쿠니 신사의 기능은 동일하지만 야스쿠니 신사가 가장 핵심적인 장소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 중심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죽은 전사자들을 순국영령으로 신격화하여 제사지내는 곳이자 천황 · 일본 수상 등이 참배하는 특별한 신사이다. 천황이 일으킨 전쟁을 신성시하며 앞으로도 천황을 위해 계속 전쟁터에서 죽으라고 은근히 권유하는 곳이다. 한국을 비롯하여 어느 나라든지 순국영령을 잘 모시지만 순국영령을 신격화하지 않는다. 오직 일본만이 천황을 위해 충성한 장병들을 신(軍神)으로 모신다.

야스쿠니의 신(군신)이 되는 자격을 나타내는 핵심어가 ‘충혼(忠魂)’이고 ‘충혼’이 신령으로 전화하기 위한 종교적인 수속이 ‘초혼’의식이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초혼’의식을 한 다음 합사(신사에 신으로 모셔짐)를 해야 비로소 천황제가 인정하는 군신 즉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충성을 바친 진짜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메이지 정부 수립 무렵부터 천황을 위해 전사한 수백만 명 중 충성도가 강한 250만 명만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모셔져 있고 나머지는 개죽음을 당한 것으로 처리한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봉헌하는 전사자 250만 명을 신으로 모시는 나라가 군국주의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완전히 파괴한 다음 제2의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의지가 깃든 군국주의 부활의 전당이다. 현재 일본 군국주의 부활세력이 내세운 고이즈미 정권이 군국주의 부활의 첫 번째 화살을 북한 쪽으로 날려 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따라서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목숨 바쳐 조선 땅을 점령했던 황군(천황의 군대)의 충혼을 한반도에서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봉헌하는 250만의 군신의 힘을 빌려 한반도에 다시금 상륙하겠다고 다짐하는 의식이 고이즈미의 신사참배인 셈이다. 250만의 전쟁귀신이 자위대의 원군세력이 되고, 그런 자위대를 미군이 원격조종하는 전쟁체계가 미 · 일 동맹의 이름으로 작동중이다. 미 · 일동맹이 한국군을 거느리고 북한을 붕괴시키는 전쟁체계를 야스쿠니의 250만 전쟁귀신이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필자가 이와 같이 설명해도 야스쿠니 신사와 한반도 재점령 의지의 연결지점이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야스쿠니 신사의 경내에 있는 ‘유취관(遊就館)’쪽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유취관은 야스쿠니 신사의 오른편에 있는 건물인데, 1882년 일본 최초의 군사박물관으로 설립되었다. 일본 패전이후 폐쇄되었다가 1980년대 이후 군국주의 부활의 기류에 편승하여 군국주의 역사(야스쿠니 역사관)를 미화하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필자가 도쿄에 갈 때 마다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바로 유취관이다. 야스쿠니 신사보다 유취관을 더 유심히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서대문 형무소의 역사관과 비교하면서...특히 평화운동가들은 반드시 유취관을 들러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악취를 냄새 맡아보기 바란다.

유취관을 보는 순서는 2층을 먼저보고 1층을 나중에 보는 게 좋다. 2층에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기억장치가 빼곡히 있기 때문이다. 천황의 명령으로 수행한 전쟁이 정당한 전쟁(just war)이었음을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는 최첨단 장치(영상물, 음향, 전시판)가 즐비하다. 이들 기억장치중 일본이 가해자이었음을 강조하는 내용은 전무하며 미국 · 영국의 위협에 처한 아시아인의 해방을 위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전쟁의 책임을 미국 등에 떠넘기는 전시물뿐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A급 전범인 도조(東條英機) 전 수상 등 연합국 측에 의해 처형된 1천여 명을 ‘쇼와 순난자(昭和 殉難者)’로 야스쿠니 신사에서 특별히 모신다. 전범을 순교자이자 수난자로 기리며 신으로 모시는 전쟁국가가 일본이며, 이런 본말전도에 능란한 일본이기에 더욱 위험하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영웅이 되는 이야기가 고금의 역사에 많이 나오지만. 천황을 위해 살인을 많이 할수록 품격이 높은 신이 되는 나라는 일본 밖에 없다. 유취관을 없애지 않는 한, 살인마 도조 전 수상을 전범이 아닌 신으로 숭앙하면서 영원히 기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군신이 된 도조 등의 위대함을 숭배하기 위한 기억장치가 오늘날 일본 군사대국화의 전도사 역할을 하며 신도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기억장치를 중심으로 유취관을 견학해보자. 2층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자마자 보이는 영상실은 ‘우리들은 잊을 수 없다’는 비디오를 하루 종일 들여준다. 이 비디오는 러 · 일 전쟁 당시의 상황을 노래하는 영상물로서 ‘러시아군을 이긴 황군의 장쾌한 죽음’을 잊지 말자는 내용이다. 러 · 일 전쟁 당시 천황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진 일본군의 투혼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있을지 모를 전쟁(한반도에서의 전쟁 포함)에 대비하자는 각오를 은근히 부추기는 영상물이다.

영상실을 나와 특별 진열실을 지나면 청 · 일 전쟁관련 전시물이 보인다. 한반도를 전쟁의 발판으로 삼은 청 · 일 전쟁 때 장렬하게 전사한 군인들을 신격화하며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바로 옆의 파노라마 관에서는 군가가 흘러나오는데 ‘기미가요(천황제를 부각시키는 일본의 국가)’를 군가식으로 부르는 노래도 선보인다.

이어 일본 · 러시아 전쟁관에서는, 3면의 스크린에 전투풍경을 담은 각종 영상이 하루 종일 방영된다. 대포와 군화의 효과음을 최대로 살려 진군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방문자를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로 세뇌시킨다. 러 · 일 전쟁 당시의 일본군처럼 자위대가 한반도 등으로 진군하자는 세뇌작업이 은근히 이루어진다.

다음 방인 일본 · 중국 전쟁실은 대동아 전쟁 당시 일본이 중국을 점령한 악행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다루는 영상물로 가득차있다.

그럼 야스쿠니 사관(천황의 전쟁을 신성시하는 야스쿠니 신사가 취하는 역사관)의 안방인 유취관 1층으로 내려가 보자. 1층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지자마자 ‘지나 사변 총공격’이라는 비디오가 상영되는 소리가 들린다. 벽면에는 일본군이 폭격한 중국의 도시에 폭탄이 터지는 빨간불이 반짝인다. 상해, 남경 등에서 천황을 위한 전쟁을 끝내주게 했음을 자랑하는 시설이다.

이어 나타나는 대동아 전쟁 실은 뉴기니아 작전에 임한 일본군 제18군의 9할이 식량보급을 받지 못해 굶어죽으면서도 천황제를 고수하기 위해 장렬하게 죽어갔음을 극찬하는 이야기가 지겹게 흘러나온다. 여기에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의해 사망한 시라카와 요시노라 대장의 피 묻은 군복이 진열되어 있다. 물론 윤봉길은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혀있고 시라카와 대장은 신이 되었다.

대동아 전쟁실 옆에 있는 종전실에는 A급 전범 25명이 서명한 일장기(히노마루)가 전시되어 있다. 휴게실을 지나 야스쿠니의 군신 4천명의 사진이 걸려 있는 방이 나온다. 도조의 얼굴사진 밑에 이름이 명기되어 있고 이름의 끝에 미코토(命; 일본 고대에 신 · 지위 높은 사람의 이름에 붙인 높인 말)라는 신격화의 용어를 붙여 4천명을 신으로 부른다. 아시아인을 가장 열심히 죽인 자들이 여기에서는 신이 되어 부활한다. 그리고 1층의 한 가운데 공간에는 일제의 특공대가 사용했던 각종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 정도 둘러본 일본의 보통사람들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영웅을 신으로 모실 태세를 취하며 앞으로 천황의 부름을 받아 전쟁터에 나갈 마음의 준비(무의식 속의 준비)를 하게 된다. 이런 의식화 작업도 부족했다고 생각한 듯 야외에 열차(인도 점령을 위해 버마-타이 국경에 건설한 콰이강의 다리를 달리던 열차), 천황군대가 사용하던 각종 무기가 위용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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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98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