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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중립화, 영세중립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

김승국

1. 국방비를 제로(zero)로 만들다

코스타리카의 인구는 340만이 채 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에는 근대산업에 필요한 지하자원이 거의 없다. 그래서 당연히 국가재정 기반이 취약하다. 예전에는 농업국가로서 환금(換金) 작물로 외화를 벌어들였으나, 최근 세계시장에서 농산물 가격이 떨어져 국제경쟁력이 저하되었다. 이렇게 나라 살림이 여의치 않은 코스타리카는 국방비를 거의 제로(zero)로 만든 국가재정의 여유분으로 사회복지, 교육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제아무리 가난해도 군대는 보유해야 한다는 제3세계 국가들’과는 발상 자체가 다르다. 코스타리카 역시 예전에는 미국의 입김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침공이 있을 때 미국이 적극적으로 방어해 주겠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다.

1987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아리아스 대통령은, 미국의 이러한 유혹을 에워싸고 국론이 양분된 상태에서 비무장을 제창한 끝에 당선되었다. 아리아스는(이미 영세 비무장 중립 노선을 천명한) 몬헤 대통령의 후계자로서 여성과 학생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그는 당선된 뒤에 국경 경비대의 무장마저 경무장으로 바꿨다.

코스타리카의 역대 대통령들은, 비(非)군사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피땀을 흘려가며 자국의 정책을 다른 나라에 호소한 끝에 비무장 영세중립을 주변국들로부터 인정받았다. 코스타리카의 정치 지도자들이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펼치면서 ‘영세비무장 중립 선언’을 제도화함으로써 ‘군사비 부담이 없는 경제발전’을 도모한 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 군사비 줄인 돈을 교육비로 돌려

코스타리카는 1949년부터 군사비를 없애고 그만큼의 돈을 교육비로 돌렸다. 수도인 산호세에는, 400개의 병상을 가진 아동 병원이 있다. 의료비는 무료.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가 펴내는 권위 있는 자료 {Military Balance}(1995∼96년판)의 코스타리카 편을 보자. 1994년도의 국방지출은 3,600만 달러이지만, 덧붙인 설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코스타리카에 군대는 없다. 국방지출 예산 액수는 경찰, 해상 경찰, 국내치안과 관련된 것이다.”

코스타리카의 치안관계에 관한 이야기인데, 군대가 없는 대신 ‘경비대’가 있다. 즉 시민 경비대 4,300명과 지방 경비대 3,200명이다. 합계 7,500명이 북부, 남부 지구의 국경경비를 포함하여 코스타리카 전 지역을 지키고 있다. 이를 위해 초계정 7척과 세스나기 4대 이외에 최소한의 자위용 소화기는 있으나, 전차(탱크)와 기관총은 1대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럼 코스타리카의 국방비의 변화와 이에 따른 국민 1인당의 부담액을 살펴보자.

1985년도 국방비=3,800만 달러(국민 1인당 부담액=15달러)
1993년도 국방비=3,400만 달러(국민 1인당 부담액=11달러)
1994년도 국방비=3,600만 달러(국민 1인당 부담액=11달러)

이렇게 10년 전에 비해 국방비도 줄고 국민 1인당 부담액도 감소추세이다. 한국의 국민 한 사람이 부담하는 국방비에 비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코스타리카의 하늘에는 전투기가 전혀 떠다니지 않고 땅에도 국방색 군복을 입은 현역군인들을 볼 수 없다. 물론 예비군도 없다.

3. 미국의 압력 물리치고 ‘비무장 중립’ 선택

코스타리카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고 사회복지가 충실하다. 사회복지를 충실히 하는데 군대폐지가 한 역할이 크다. 군대의 폐지, 즉 ‘비무장 중립’의 자세는, 이웃나라 니카라과의 내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남미의 격동기인 1980년대.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권을 깨부수고 반혁명 무장세력(Contras)을 지지한 미국은 공공연하게 니카라과 정세에 개입했다. 미국은 니카라과의 배후에 있는 코스타리카에 경제원조 등을 미끼삼아 미군기지를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보통의 나라 같으면 미국의 제의를 넙죽 받아들여 니카라과의 혁명을 전복시키기 위한 미군 상륙을 허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스타리카의 국민과 지도자들은 이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 점이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화-자주의 의지’이다.

코스타리카가 ‘비무장 중립 평화’를 위해 ‘자주’를 지킨 점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코스타리카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평범한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이런 길을 걸은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코스타리카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국가들에 에워싸여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오면서도 ‘군대 없는 평화 국가’를 형성해 왔다.

1959년의 쿠바 혁명은 ‘군대 없는 코스타리카’에게 커다란 위기를 안겨 주었다.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이 즉각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에 따라 중남미 정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곧이어 1962년 쿠바에 설치한 소련의 공격용 미사일 시설을 에워싸고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나아갔다.

이윽고 1979년 인구 250만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에서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를 얻은 혁명정권이 등장하여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니카라과의 혁명을 주도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 전선(FSLN)은 미국의 눈엣가시이었다. 미국은 FSLN을 거세하기 위한 군사적 공작을 코스타리카에서 하려 했으나, 코스타리카 정부의 선방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정황을 한반도에 대입하면,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을 전복하기 위한 군사적 공작을 남한 정부에 제안했으나 보기 좋게 ‘퇴짜 맞은’ 꼴이다. 불행하게도 남한의 역사는 코스타리카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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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2004.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