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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안보론-안보 패러다임 전환

언병의 전수방위로 전환을

김승국

Ⅰ. 동양 고대의 군대, 무력, 무기에 대한 관점

  1. 노자의 ‘兵者 不祥之器’

노자는, 봉건 지주계층이 ‘살인<夫佳兵者 不祥之器…是樂殺人; {노자(老子)} 31장>’을 계속 일삼는 침략전쟁을 반대하고 그들의 대국주의를 비판하였다.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노자} 31장)’은 원시 농촌사회 그대로의 촌락 단위 공동체의 독립성을 침해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그는, ‘군대가 한번 머물렀던 곳은 가시밭이 되고 큰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난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노자} 30장)고 비판했다. 이는 직접 피해 당사자인 농민 대다수의 소박한 반전(反戰)의식이 반영된 말이라 하겠다.(이운구, 2004, 116)

노자의 반전 의식은 아주 명확하게 군대, 무력, 무기에 대한 촌철살인의 비판에 이른다. {노자} 30장․31장을 통해 노자의 ‘군대, 무력, 무기 비판’에 접근할 수 있다.

    1) {노자} 31장

夫佳兵者 不祥之器(대저 우수한 병기는 상서롭지 않은 도구이다)
物或惡之(만물도 小國들도 그것을 싫어한다)
故有道者不處(그러므로 道를 행하는 자는 그것에 몸담지 않는다)
是以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그러므로 군자는 평시엔 좌측을 귀히 여기고 병사에서는 우측을 귀히 한다)
兵者不祥之器 非君子之器(무기란 상서롭지 못한 도구이며, 군자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부득이 쓰는 경우에도 이욕을 탐하지 않는 것을 상책으로 하고)
勝而不美(승리해도 찬양하지 않는다)
而美之者 是樂殺人也(승리를 찬양하는 것은 살인을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夫樂殺人者 不可以得志於天下矣(대저 살인을 즐거워하는 자는 천하에 그 뜻을 얻지 못한다)
吉事尙左 凶事尙右(길사에는 좌측을 높이고, 흉사에는 우측을 높인다)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그러므로 편장군은 좌측에 앉고 상장군은 우측에 앉는다)
言以喪禮處之(이것은 군사의 예는 상례로 처리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殺人之衆 以悲哀泣之(살인을 많이 했으므로 슬픈 마음으로 그들을 애도하고)
戰勝以喪禮處之(전승을 상례로서 처리하는 것이다)

수많은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기물이기 때문에 군자는 평상시에 왼쪽을 존중하지만, 무기를 사용할 때는 오른쪽을 존중한다.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기물이기 때문에 군자의 기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사용할 때는 담담하게 무욕으로 다루는 것이 상책이며, 설령 이기더라도 좋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만일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살인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에서 뜻을 얻을 수 없다. 길한 일은 왼쪽을 존중하고, 흉한 일은 오른쪽을 존중한다. 군대에서도 부장군은 왼쪽에 있고, 상장군은 오른쪽에 있다. 아마도 군대는 불길한 상례(喪禮)와 관련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면 슬프게 울부짖고, 이기면 상례에 의한다.(大濱皓, 1999, 280-281)

위의 {노자} 31장의 ‘夫佳兵者’에서 ‘병(兵)’을 병기, 무기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나, 함석헌 선생은 군대로 해석한다.

함석헌 선생은 노자 31장을 아래와 같이 해설한다. “이 글은 군대에 대해서 한 말이다. 군대를 으리으리하게 만들어 세상에 행세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천지가 말은 안 하지만 어딘가 그것을 미워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기 때문에 도를 가진 사람은 거기 있지 않는다. 군자, 점잖은 사람이 평시에 있을 때는 왼쪽을 높이 친다. 가령 예하면 남좌여우(男左女右)라해서 남자가 왼편에 서고 여자가 오른편에 서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돼서 군대를 움직이게 되면 그때는 평시와는 반대로 오른편을 높인다. 이것은 군대는 좋은 것이 못 된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어진 이가 혹 군대에 관계하는 것은 마지못할 만한 일이 있어서 하는 것이지 거기 늘 있는 것은 아니다. 군대를 쓰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고 마지못해 하는 것이므로 거기 어떤 욕심을 두지 않고 고요하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러므로 이기고도 뽐내지 않는다. 사람 죽이기 좋아하는 사람이 천하에 뜻을 얻을 수는 없다. 뜻을 얻는다는 것은 천하 정치를 맡아 하게 된단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목숨을 아까워하고, 그릇된 욕심에 잡히지 않는 한 남의 목숨도 아깝게 여긴다. 그것이 인간의 근본 천성이다. 그러므로 사람 죽이기를 꺼리지 않는 군인 정치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인심을 얻어서 천하를 다스리는 자리에 나아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함석헌, 1988, 40-41)

    2) {노자} 30장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무위자연의 道로써 군왕을 보좌하는 자는 무력으로 천하인민을 강압하지 않는다)
其事好還(그의 직무는 즐겁게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이다)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군대가 머문 곳에는 가시덤불만 자라고, 대군을 일으킨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故善者果而已矣(그러므로 善政을 펴는 자는 뜻을 행하는 것으로 그칠 뿐)
不敢以取强焉(감히 강압으로 취하려 하지 않는다)
果而勿矜 果而勿伐(道를 행할 뿐, 자만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果而勿驕 果而不得已居(道를 행할 뿐, 교만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며)
是謂果而勿强(道를 행할 뿐, 강압하지 않는다)
物壯則老(그 사물이 용력을 과용하면 곧 노쇠해진다)
是謂不道 不道早已(이것을 不道라 하니, 不道하면 하급무사가 될 뿐이다)

위의 {노자} 30장의 ‘不以兵强天下’ ‘是謂果而勿强’의 ‘강(强)’을 ‘폭(暴)’ 또는 ‘강력(强力; Gewalt)’으로 해석하는 게 좋다. ‘무력이 동반된 강력’을 민중에게 강압적으로 휘두르지 않는 게 안민의 지름길(道)이라는 뜻이다.

도(道)에 의해서 군주를 보좌하는 신하는 병력으로써 천하의 강국이 되려고 도모하지 않는다. 그 정치는 오로지 근원에 돌아가기를 좋아한다(其事好還을 ‘병력을 사용하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되돌아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병마(兵馬)가 가는 곳은 사람과 가축을 해치고 논과 밭을 황폐하게 만들며, 가시나무가 돋아나게 한다. 큰 전쟁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있다.(大濱皓, 1999, 279)  전쟁, 군대, 무력은 안민을 크게 해친다.

  2. 공자의 ‘거병(去兵)’

공자의 군사에 대한 가장 함축적인 견해는, 논어(論語) 에 보이는 자공(子貢)과의 대화이다. 논어 「顔淵」에는 “자공이 정치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께서는 ‘식량을 충분히 하고 병(兵)을 충실히 하며, 백성들을 믿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자공이 다시 묻길, ‘부득이하여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셋 중에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께서는 ‘병(兵)’을 버리라’라고 하셨다. 자공이 또 묻길, ‘부득이하여 한 가지를 또 버려야 한다면, 나머지 둘 중에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께서는 ‘양식을 버리라. 자고로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그러나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병(兵)은 정치의 세 가지 요소에 해당하지만, 그것은 국가운영에 필요한 수단 중 우선순위가 맨 나중이었다. 공자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병을 버리라(去兵)’는 입장을 긍정하였던 것이며, 사실상 병(兵)은 국가운영상 제 조건을 논함에 있어서 다른 것보다는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국방군사연구소, 1996, 87-88)

공자의 ‘거병(去兵)’은 유가의 평화관을 반영한다. 유가에서는 현실적으로 국가 간에 전쟁 없는 화해로운 교린관계를 유지하고 동시에 온 백성이 내적으로 화합을 이룬 이상적인 상태, 곧 ‘태평(太平)’을 지향한다. 이는 평화를 의미하며, 평화가 이상적으로 실현된 유가의 전형적인 예는 ‘대동(大同)’이다. 이러한 유가의 평화 관념은 전쟁이나 군사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보다는, 오히려 형이상학적으로 화(和)의 원리나 그에 관련된 중용(中庸), 인애(仁愛), 화동(和同) 혹은 대대(對待), 상수(相須), 상생(相生)의 원리라든지 평(平)의 원리인 정(定), 안(安), 일(一)의 원리 추구, 윤리나 정치적으로 덕치(德治), 예치(禮治)의 인정정치(仁政政治)로 표현 되었다. 따라서 유가의 입장은 군사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했다기보다는 정치, 사회 현실에서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병(兵)’에 관심을 가졌다고 하겠다. 공자는 평화수단으로서 군사(兵)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강했으며, 국가운영의 차원에서 본질적 요소로서보다는 상대적으로 보조적이거나 차선적인 것으로 규정하고자 하였다.(국방군사연구소, 1996, 87, 95쪽)

이와 같은 노자, 공자의 반전, 거병 사상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사상가들이 병가(兵家), 법가(法家)이다. 병가의 대표적인 인물은 손자(孫子)이다. 그는 ‘병(兵) 또는 전쟁이란 국가의 대사로서, 그 존망과 백성의 생사에 관계되므로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춘추 시대의 군사사상은 ‘병(兵)을 버리라(去兵)’는 입장에 반대하는 좌전(左傳)의 흐름에서 점차적으로 유가를 중심으로 한 논의 및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계기적 발전, 그리고 독자적인 군사론의 체계를 이룬 병가(兵家)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국방군사연구소, 1996, 95)

  3. 법가의 ‘농병(農兵)’

법가(法家)사상의 중요 인물은 상앙(商鞅)과 한비자(韓非子)이다. 이들은 ‘농병(農兵; 농사짓다가 유사시 참전하는 병사)’을 중심으로 나라를 지키는 ‘농전(農戰)국가’ 모델을 통해 진나라의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상앙의 상군서(商君書)와 한비자의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농전(農戰) 국가’의 ‘농병’을 중심으로 법가의 군대, 전쟁에 대한 관점을 살펴본다.

    1) 상앙

상앙은 농업과 전쟁만이 나라와 백성을 부유하고 강력한 군대를 가질 수 있는 수단이라고 주장하면서, 온 나라를 농업과 전쟁에만 몰두하도록 한 ‘농전국가’를 가장 이상적인 국가체제라고 여긴 인물이다.(고전 연구회, 2006, 286)

상앙은 국가의 실질은 ‘대외적으로 무력을 사용하는(外用甲兵)’({상군서} 「開塞」 18-1) 일종의 폭력이며, 전국 시대의 실정은 힘으로 남을 굴복시키는 약육강식의 세계임을 깊이 인식하였다. 상앙은 강한 힘은 나라를 잘 다스림(國治), 나라를 부유하게 함(國富), 군사를 강하게 함(兵强)에서오며, 또한 이들은 서로 함께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국가와 군대를 부강하게 하는 것은 주로 백성들을 농업, 전쟁에 종사시키는 데에 달려 있다. 상군서 「農戰」 3-1은 ‘국가가 흥성하는 길은 농업과 전쟁이다(國之所以興者, 農戰也).’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거국적으로 백성들에게 군인이 될 것을 요구할 것(擧國而責之於兵)’({상군서} 18-3 「劃策」)을 주장하였다. 그는 농민이 질박하고 순정한 것이야말로 병사의 공급원으로는 최적격이라 생각하였다.(商鞅, 2005, 31-32쪽,41쪽)

상앙은 농업을 본업(本業), 상공업을 말리(末利)로 규정하는 ‘중농억상(中農抑商)정책’을 펼쳤다. 이 중농억상 정책은 단순히 수공업과 상업을 배제하고 농업에 기반을 둔 경제력 향상에 목적이 있었던 것만이 아니고 힘든 농사를 통해 단련되어 강인한 체력을 소유한 농촌 장정의 육성에도 목적이 있었으므로, 이 중농억상 정책은 상앙이 추진했던 부국강병책 중에서도 가장 핵심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앙은 이 중농억상 정책을 통하여 농업진흥을 기본으로 한 경제발달과 평소에는 농사를 짓고 유사시에는 전쟁에 출동하는 ‘경전의 병사(耕戰之士)’ 양성을 도모하였음을 알수 있다.(이춘식, 2002, 105쪽 198쪽)

    2) 한비자

법가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한비자 역시 천하를 통일하는 왕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농사와 전쟁에만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전 연구회, 2006, 291)

한비자는 전국 시대의 국제사회를 배경으로 유가, 도가, 묵가의 정치사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국가상을 제시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농전(農戰)체제에 기반을 둔 부국강병의 달성과 농전국(農戰國) 수립이었다. 한비자는 무력양성을 위한 여러 가지의 정책을 제시하였는데 이 중에서 ‘중농억상 정책’은 그 자체가 강병 육성책이었다. 한비자는 상앙과 마찬가지로 상공업을 억제하고 농본정책을 강조하였는데 이 같은 농본정책은 모든 백성들의 농민화(農民化)를 전제하고 있다. 모든 백성들이 농민들로 구성되었을 때 힘든 농사를 통하여 단련된 강인한 체력과 보수적인 성격의 농촌 장정들을 다수로 양성할 수 있으며 이같이 강인한 체력과 보수적 성격의 농촌 장정들이야말로 강병 육성의 기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엄격하고 공평한 신상필벌의 원칙에 기반을 둔 포상제도를 실시하면 평소에는 오로지 농사에만 몰두하고 유사시에는 전쟁에 출동하는 ‘경전인(耕戰人)’을 양성할 수 있으며 이렇게 ‘농사지으면서 싸우는 경전인’이 양성되면 여기에서 ‘부국강병’이 이루어지며 천하의 패업(霸業)도 달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이춘식, 2002, 304, 312, 319, 320쪽)

  4. 묵가의 ‘언병(偃兵)’

상앙, 한비자와 같은 법가들의 농병-농전국가 모델에 따라 약소국이었던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패권국가가 되었다. 진 나라는 천하통일 뒤 침략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로운 군대(義兵)-의로운 전쟁(義戰)’론을 필요로 했는데, 이를 집대성한 사람이 여불위(呂不偉)이다.

여불위는 진(秦) 효문왕에게 유세하여 화양(華陽) 부인의 아들 자초(子楚)를 태자로 삼게 했다. 자초는 후에 진시황이 되는데 여불위의 사생아라는 설도 있다. 그는 전국 시대 중국 최초 최고의 재벌이므로 이를 기반으로 자초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여 시황제가 되게 했으며, 자신은 상국(相國)이 되었다.

당대의 금융 자본가이었던 여불위는 유가, 묵가, 명가(名家), 법가들을 빈객으로 거느리고 여씨춘추(呂氏春秋) 라는 책을 펴냈다. (기세춘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36호, 2006)

여불위는 묵가들이 아직 활동하고 있던 시대에 활동했으므로, 그가 {여씨춘추}에서 주장한 ‘의병(義兵)-의전(義戰)-전쟁 불가피’론은 묵가의 ‘언병(偃兵)-비전(非戰)’론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의병’ 對 ‘언병’

{여씨춘추}에 의하면, 전쟁을 조속히 종결함으로써 백성을 난리로부터 구해 내려면 이른바 의로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로움의 명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수행해야 하는데, 하나는 천자를 세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위해서 백성을 괴롭히는 폭군과 어리석은 군주들을 축출하는 일이다. 폭군들과 어리석은 임금들을 축출해야 하는데, 이때 이른바 ‘의로운 군대(義兵)’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군대란 무엇이고, 의로운 군대는 무엇인가? {여씨춘추}는 “싸움이 존재하는 한 군대의 존재도 필연적일 수밖에 없으니, 훌륭한 군주는 의로운 군대를 보유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불가피성을 설득한다. 군대를 어쩔 수 없이 보유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성왕에 의해서 슬기롭게 운용될 때 의로운 군대가 되는 것이다. 의로운 군대에 대한 이러한 논설은 어디까지나 진나라의 입장에서 입론된 명분에 지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나라가 무력을 사용하면 침략행위이고 진나라가 군대를 움직이면 의로운 전쟁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명분을 이렇게 내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이러한 명분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진나라의 공벌(攻伐)행위를 비난하는 담론들이 나오기 마련이니, 당시에는 이것을 언병설(偃兵說)이라고 불렀다. 언병설은 여러 사상가들이 주장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겸애(兼愛)를 주창하는 묵가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진 나라가 공벌의 명분을 만들어 어느 나라를 침공하면 전국의 묵가들을 규합하여 그 나라로 달려가 구해 주거나 같이 지켜 주곤 하였는데 이를 구수(救守)라고 하였다. 그래서 진나라의 의병론(義兵論)은 언제나 언병설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여씨춘추}가 곳곳에서 언병설을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씨춘추}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군대와 전쟁이란 난리만을 야기할 뿐 결코 평화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부르짖는 언병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옛날의 성왕들이 그랬듯이 의로운 군대는 태평성세를 이룩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수단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김근, 2005, 85-89)

    2) 언병의 지평

‘언병(偃兵)’의 ‘언(偃)’은 ‘쉰다’ ・‘그만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언병’은 ‘전쟁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언무(偃武)’ ‘언갑(偃甲)’  ‘언과(偃戈)’  ‘언혁(偃革)’과 비슷한 말이다. ‘언무’는 ‘무기를 창고에 넣고 쓰지 않으니 천하가 태평해진다’는 뜻, ‘언과’는 ‘전쟁을 그만두니 세상이 태평해진다’는 뜻이다. 이렇듯 ‘언(偃)’ 자 돌림은, ‘무기를 거두고 쓰지 않거나 전쟁을 그만두니 세상이 태평해진다’는 의미군(意味群)이다. 태평한 세상, 즉 대동세상을 위해 무기를 거두거나 전쟁을 그만둔다는 ‘비전(非戰)’의 각오가 ‘언’ 자 돌림에 깃들어 있으며, 이는 묵자의 ‘비전론’을 반영한다.

묵자 비전(非戰)사상의 ‘비(非)’는 묵자 「비공(非功」편의 ‘비공론(非功論)’에 가장 잘 어울리며, 이를 현대화한 ‘비핵(非核)지대화’의 ‘비(非)’, ‘비(非)폭력’의 ‘비(非)’와 어감이 통한다. 한갓  ‘반전(反戰)’의 ‘반(反)’을 넘어서는 ‘비상하고 비장한 전쟁, 무기 거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반(反)전’보다 ‘비(非)전’이 더욱 철두철미(radical)하고 근본적(fundamental)인 평화-적극적인 비무장을 주창하는 가운데, 비장하고 비상한 평화의 의지를 드러낸다. 이라크 전쟁 반대의 ‘반전’이 ‘전쟁 반대를 통한 평화유지(peacekeeping)’에 중점이 있다면, 비핵 지대화에는 핵무기를 철두철미하게 없앰으로써 평화지대를 만들자는 비감(悲感)어린 평화 만들기(peacemaking)의 결의가 배어 있다. 전 세계의 군대 없는 25개국, 특히 코스타리카의 비장한 비전(非戰) 의식이 돋보인다. 코스타리카, 일본의 비무장 평화헌법, 일본의 비핵(非核) 3원칙의 비타협적인 ‘평화 만들기’ 의지가 ‘비전’의 세계를 반영한다.

이와 같은 비전(非戰)은 묵자의 비전 의식-언병설과 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묵자의 언병설의 주체는 언병인데, 이 언병을 ‘비전 의식을 갖고 적극적(positive)인 평화를 지향하는 군대, 병사’로 규정할 수 있겠다. 이러한 언병(평화 만들기 군대)은 맹자의 의병<왕도정치를 위해 ‘정의의 전쟁(패도정치 지향적인 군대를 정벌하는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과 다르며, 부국강병을 위해 농전(農戰)을 전개하는 법가의 의병(農戰國家의 군대)과 다르며, 소극적(negative)인 평화를 지향하는 공자의 거병(去兵)과 결이 다르다.

묵자의 비전 의식은 노자의 반전 의식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전쟁, 평화의 현장에서는 차이가 드러난다. 비전 의식으로 무장한 ‘언병’은, 적극적인 평화 만들기를 위한 방위-안보론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노자의 ‘兵者 不祥之器’의 ‘병(兵)’은, 군대-무력-무기에 대한 촌철살인의 구체적인 비판은 할 수 있지만 그 비판에 어울리는 방위론-안보론을 내오기 힘들다. 방위론-안보론은 국가를 상정하는 논의인데, 국가권력에 회의적인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론으로 국가의 방위-안보체계를 짜기 어렵다. 노자의 무정부주의적인 사상이 배어 있는 ‘兵者 不祥之器’의 ‘병(兵)’이 국방의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묵자가 공수반(公輸盤)을 굴복시켜 전쟁을 중단시킨 비전(非戰) 의식과 (전쟁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추상적으로 ‘兵者 不祥之器’를 주창하는) 노자의 반전 의식에 차이가 있다.

이렇듯 묵자의 비전사상으로 무장한 언병은 노자의 추상적인 반전 의식을 넘어섬과 동시에, 법가의 부국강병론, 유가의 정의의 전쟁(義戰)론에 맞서 평화 만들기를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

앞에서 비전 의식으로 무장한 묵자의 ‘언병’이 적극적인 평화 만들기를 위한 방위-안보론을 펼칠 수 있다고 언명했는데, 어떠한 방위․안보론이 가능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묵자의 언병설이 현대 국가체제와 어울릴 수 있는지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필자는 묵자의 언병설에 입각한 방위-안보론이 전수 방위론과 유사한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묵자의 언병이 21세기의 전수방위를 감당해 낼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보기에 ‘언병의 전수방위’는 현대의 국가체제를 평화 지향적으로 전환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언병이 전수방위에 주력
(注力)하면 한반도 평화 만들기의 주력(主力)군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주력군을 지향하는 가운데 안보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룩하면 평화체제 구축을 가속화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 만들기를 위해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한데, 이 절실함을 ‘언병의 전수방위’로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반도의 평화 만들기까지 고려하는 ‘언병의 전수방위’를 다음 장에서 논의한다.

Ⅱ. 언병의 전수방위

묵자의 언병은 묵자 「비공」편의 평화사상을 실현하는 군대, 전쟁을 그만두게 하는 군대, 무장은 하되 전쟁 억지력을 지닌 군대,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 군대, 패권국가의 침략적인 정책을 거부하는 군대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의 경우, ‘제2차 한국전쟁의 저지(No More Korean War)’를 담보하는 군대, 박빙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Peace Keeping Army)에서 벗어나 ‘정전 상태를 종식시켜 평화를 만드는 군대(Peace Making Army)’,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과감한 군축을 제안하는 군대, 미국 등 패권주의 국가의 침략전쟁에 동조하지 않는 군대가, {묵자} 「비공」편의 평화사상을 실현하는 ‘한반도형(型) 언병’이라고 볼 수 있다.

묵자가 말하는 비공(非功)은 비공격, 침략 반대(부국강병론에 입각한 패권주의 군대의 침략 반대)를 의미하는 것이지, 비무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주1)

‘비공’은 군사대국주의를 반대하기 위한 논리이다. 그것은 전쟁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 아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병탄해 버리는 정치공학과 맞서야 할 실력 항쟁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절대 평화론이 될 수 없다.(이운구, 2004, 231) 이 점에서 무정부주의적인 노자의 절대 평화론과 다르다. 노자의 무정부주의적인 절대 평화론과 유사한 ‘군대 무용론(無用論)’을 전개하는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의 논리(주2)와 다르다.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은, 국방을 책임지는 정부-국가권력을 배제하는 논리이므로 방위론이 적용될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 만한 군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거대국가가 아닌 지역 공동체로서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위해서는 비무장이 더 어울린다. 무장(국가권력의 무장)이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지역 평화 공동체를 위협하거나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묵자가 살았던 전국 시대의 정세에서 비무장론은 국가 멸망론과 직결되므로, 묵가는 비무장을 주장하지 않고 ‘최소한의 무장 상태에서의 비공(非功)’을 주장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최소한의 무장 상태에서의 비공(非功)’을 현대말로 풀이하면 ‘전수방위’이다.

  1. 전수방위와 묵자의 ‘선수어(善守禦)’

전수방위는 자위를 위한 수동적 전략이고, 군사적으로는 전략적 수세로 국가를 방위하는 것을 말한다. 전수방위는 ① 상대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한다. ② 이러한 방위력 행사의 양태도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으로 줄이며 ③ 보유하는 방위력도 자위를 위해 ‘최소한으로 국한’하는 등 수동적 방위전략 자세를 말한다.

전수방위는 자기 나라의 영해-연안과 영해 위의 상공을 지키는 방어에 중점을 둔다. 그러므로 전수방위를 안보정책으로 채택한 나라는, 공격적 무기(현대전의 경우 대륙 간 탄도 미사일, 장거리 전략 폭격기, 공격형 항공모함 등과 같이 상대국의 국토를 괴멸적으로 파괴하는 데 쓰이는 무기)를 도입할 수 없다. 이러한 공격적 무기는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전수방위의 틀을 일탈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F-4 전투기에 폭격장치가 탑재되어 있으면 공격적 무기로 인식되므로, 그러한 F-4 전투기는 전수방위를 위해 도입할 수 없게 된다.

전수방위의 경계선을 이루는 F-4 전투기와 묵자 생존 당시인 BC 5∼4 세기의 전수방위용 무기의 질적 차이는 엄청날 것이다. 추측건대 묵자에 등장하는 ‘운제<雲梯; 높은 곳에 걸쳐 올라가는 공성용(攻城用)의 사닥다리>가 전수방위의 경계선을 이룬 무기이다. 묵가(묵자와 그의 제자들)가 운제라는 전수방위용 첨단 무기로 침략국가의 야욕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사례가 많았으므로 ‘선수어(善守禦; 수비․방어를 아주 잘한다)’라는 찬사를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전수방위 집단을 ‘수어집단(守禦集團)’이라고 불렀고, 의협심이 많은 묵가 집단이라는 의미에서 ‘묵협(墨俠)’이라는 별명이 생겼을 것이다.

묵가가 운제를 이용하여 전쟁을 예방한 사례는, 오늘날 유엔의 평화 유지군이 전 세계 분쟁지역에 투입되어 분쟁해결에 주력하는 모습과 닮은 꼴이다. 만약 묵가 집단이 무기를 들지 않고 분쟁을 해결했다면, ‘국제 평화여단(PBI; Peace Brigade International), 비폭력 평화단(NP; Nonviolent Peace Forces) 등의 평화 NGO가 첨예한 분쟁지역에 맨손으로 뛰어들어 분쟁을 해소하는 국제평화운동’과 비슷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가 가능하다면 묵가를 ‘전수방어 평화유지군’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전수방어에 주력한 ‘국제 평화유지군’ 노릇을 전국 시대에 수행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묵가가 ‘전수방어 평화유지군’으로 활약한 모습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① 묵자는 비록 전쟁을 반대하였으나 정의의 방어전쟁에는 결코 반대하지 않았거니와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것은 {사기(史記)} (孟子 筍卿列傳)에서 그를 일러 ‘방어에 능하였다’(善守禦)고 평하였거니와 그가 공벌과 겸병을 불의로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성읍의 방위에 분골쇄신하였던 데서도 알 수 있다. {묵자} 「公輸」에는 공수반(公輸盤)이 초(楚)나라를 위하여 운제(雲梯)를 만들어 송(宋)을 공격하려고 함에 묵자가 10일 밤낮을 달려가서 설득하는 문답이 실려 있다. 먼저 묵자가 자신을 욕보인 사람을 공수반에게 보복을 부탁하였다. 이에 공수반은 자신은 살인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의(義)를 삼는다고 대답함으로써 묵자의 제의를 거절한다. 이에 묵자는 ‘사물의 유별을 안다고 할 수 없다(不可謂知類)’고 공수반을 비판한다.(윤무학, 1999, 79-80)

② 묵가는 ‘수어집단(守禦集團)’이라는 명칭대로 ‘불의’로 규정된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실제로 성읍의 방어 임무에 충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윤무학, 1999, 92)

③ 묵자는 침략전쟁을 분쇄할 선제공격까지 방기하지 않는다. 더 우세한 방어 무기의 개발과 수성(守成)기술의 향상만이 침략을 억제할 수 있다는 과학적 인식에 도달하였던 것이다.(이운구, 2004, 232)(주3)

④ 묵자를 가리켜서 ‘선수어(善守禦)’라고 평하였다. 침략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는 책무를 인식하고 자신이 직접 성읍방어에 헌신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묵협(墨俠)’이란 말도 전한다.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 서서 약육강식의 정치 풍토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투철한 의식이 반영된 것이다.(이운구, 2004, 232)

공수반(公輸盤)이 당대의 군사대국이었던 초왕(楚王)의 청탁을 받고 ‘운제(雲梯)’라는 공성(攻城) 무기를 창안해 냈다. 그것을 동원하여 약소국인 송(宋)을 침략하려는 계획이었다. 묵자가 즉각 자신이 고안한 특수방어 전술로 그 침공을 포기하게 한 일이 있다. 공수반은 또 주전용(舟戰用) 신예 무기인 ‘구(鉤)’와 ‘거(鋸)’를 개발하여 그 성능이 탁월하다고 과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묵자는 ‘구지이애 거지이공(鉤之以愛, 鉅之以恭)’이라고 충고하였다. 실전에서는 무엇보다 겸애와 교리(交利)하는 자세가 기본적이고, 그 최종적 득실은 얼마든지 상대편으로 역전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묵자는 전쟁의 참화에서 민중을 구출하고자 강고하게 수어(守禦)집단을 결속하였다. ‘묵수(墨守)’라는 말은 그들의 성읍 방어가 얼마나 공고하였나를 가르쳐 준다. 침략자에 대해서는 추호의 관용(仁)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이운구, 2004, 232-233)

⑤ 묵자는 전쟁이 일어나려 하면 제자들을 공격받는 나라로 미리 보내 방어에 임하게 하고 자신은 침략하려는 나라로 달려가서 왕을 만나 담판했다. 만약 공격을 한다 해도 자신의 300명의 제자들이 우수한 방어무기를 가지고 지키고 있으므로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설득했다. 그래서 묵자는 송(宋)나라를 공격하려던 초(楚)나라를 설득하여 전쟁을 사전에 막았으며({묵자} 「公輸」), 초나라가 정(鄭)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막았고, 노(魯)나라를 공격하려던 제(齊)나라를 저지시킨 일도 있었다. ({墨子} 「魯問」)

⑥ 전쟁이 일어나면 침략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묵자의 제자들(기술자들)은 모두 침략당하는 나라로 달려가 수비에 참가했다.(기세춘, 1992, 319)

⑦ 묵자는 고대 성왕들이 침략자를 치거나 폭군을 제거한 것을 긍정한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고 하느님의 주벌(誅罰)이다. 즉 우임금이 침략을 일삼는 오랑캐 묘적을 친 것이다. 탕이 걸을 치고, 무왕이 주를 친 것은 정벌이나 전쟁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벌을 내린 주벌(誅罰)이라는 것이다. 묵자는 이러한 전쟁까지는 비난하지 않으나 엄격한 조건이 있다. 첫째,천자만이 주벌을 할 수 있다. 둘째, 하느님의 뜻, 즉 인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 공격전쟁이 아니고 방어전쟁이어야 한다.(기세춘, 1992, 323)

⑧ 묵자는 이와 같은 비전론(非戰論)을 펴 인민의 의식개혁을 고취했을 뿐 아니라 평생 동안 온몸으로 실천했다. 그는 송나라를 공격하려던 초나라를 사전에 막았으며, 초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 그는 노나라를 공격하려던 제나라를 저지시켰다. 끝으로 더욱 그는 기술자이기 때문에 방어전술과 방어무기를 연구-개발하여 공격이 성공할 수 없도록 침략당하는 나라를 도와주었다. 묵자는 오로지 정의만을 무기로 반전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기세춘, 1992, 324)

⑨ 묵자는 초(楚)나라와 월(越)나라 등 여러 곳에서 봉토를 주겠다고 하여 초빙을 받았으나 귀족의 신분이 되는 것을 거절하고 노동자의 검은 옷을 입고 절용 문화운동을 펼쳤으며, 또한 그들은 방위무기 제작기술자이며 침략을 받는 곳이면 자기 나라가 아니라도 어느 나라든 달려가 방어해 주는 등 전쟁 반대 운동에 목숨을 걸었으며, 천하무인의 안생생 대동사회(安生生 大同社會) 건설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묵자를 따르는 무리는 180명인데 칼날 위를 걷고 불길 속에 뛰어드는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용사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묵수(墨守)’라는 말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우리말 사전을 보면 ‘묵수’란 성을 잘 지킨다는 말로 묵가(墨家)들로부터 유래된 말이다.(기세춘 {평화 만들기} 145호, 2004)

⑩ 묵자는 전수방위를 위해 방어전쟁에 필요한 군사기술과 함께 무기들을 개발했다. 묵자의 제자들인 묵가 집단은 공성전(攻城戰)에 대항하는 방성전(防城戰)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훈련하여 그 분야의 대가들이 되었다. 예를 들면, 묵자의 사상이 담긴 묵자 에는 성문을 지키는 방법(備城), 높은 곳의 적을 대비하는 방법(備高臨), 사다리 공격을 대비하는 방법(備梯), 수공(水攻)에 대비하는 방법(備水) 등 방어 전쟁에 필요한 대책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전 연구회, 2006, 305-306)

위와 같은 묵자의 방어방법은 분쟁의 중립지대에서 이루어지므로 중립주의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묵자가 무기를 사용했으므로 비무장 중립주의가 아닌 ‘유(有)무장 중립주의’이다. 묵자가 유무장 중립주의에 따른 전수방위를 펼쳤으므로, 묵가의 노선을 ‘무장(有武裝) 중립-전수방위 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다.(小林正弥, 2003, 148-149)

그러면 묵자의 ‘무장 중립-전수방위 주의’를 오늘날 발전시켜 현대 국가의 안보노선으로 채택할 수 없을까? 묵자의 비전론(非戰論)에 입각한 ‘무장 중립-전수방위 주의’를 현대화함으로써 안보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지 않는가? 북한 핵문제 등의 난제를 풀기 위해 비전론(非戰論)에 입각한 ‘무장 중립-전수방위 주의’를 적용할 수 있을까? 북한 핵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비핵-중립화 노선(주4)의 근거를, 묵자의 ‘무장 중립-전수방위 주의’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요한 갈퉁(Johan Galtung)의 방어론을 원용한다.

  2. 갈퉁의 방어론과 묵자의 ‘무장 중립-전수방위 주의’

갈퉁의 저서 {Die Andere Globalisierung} 의 제4장 “과도기의 군대”에 나오는 방어론과 묵자의 ‘무장 중립-전수방위 주의’를 비교 평가하는 가운데,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한다.

갈퉁은 이 책에서 현대의 군(軍)이 당면한 새로운 과제가 ‘방위적, 비공격적, 비도발적 방위’임을 아래와 같이 밝힌다.(주5)

* 군(軍)이 방어에 임할 때의 요소를 거론하고자 한다. 군(軍)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경우 통상의 군사방위(CMD), 준(準)군사적 방위(PMD), 비(非)군사적 방위(NMD)의 혼합을 통하여, 공격으로부터의 면역을 국가에 제공한다. 여기에서 CMD만으로 무리이다. 세 가지 요소 전부가 하나로 되어 잠재적 공격자에게 ‘이 나라를 정복․점령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근거리 공격, 은폐공격, 전주민의 비(非)협력․불복종을 동반하는 끝없는 문제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숙려(熟廬)를 하게 해야한다. 이는 ‘메조(Mezzo) 방위’에 가름하는 ‘마이크로(Micro) 방위’에 해당된다.

* 물론 CMD-PMD의 경우 군(軍)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도덕적 의무를 생각할 때 NMD는 다소 복잡하다. 방위적 방위는 상대측의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의무를 지닌다. 이게 비폭력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방위적 방위는 군(軍)을 비폭력에 가깝게 하는 정지작업을 한다. 그런데 이에 반하는 ‘공격적 공격’이 있다. 20세기 초반에 각국의 전쟁성(전쟁부서)은 공격적 공격을 수행했다. 이러한 공격적 공격이 부도덕하여 정통성이 없다는 평가가 뒤따르자, 구실을 붙일 필요가 생겼다. 예컨대 상대방의 침략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구실로서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는 옛말을 자주 인용했다. 그 결과가 ‘방어적 공격’이라는 위선적인 방어론이다. 그러나 의도가 완전히 방위적이더라도(보통은 그런 일이 없지만), 모든 공격능력은 실제로 ‘무언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느낌’을 상대방에게 안겨준다. 이러한 느낌을 받은 상대방 역시 공격적 방위, 더 나아가 공격적 공격을 숙려하게 된다. 이게 바로 냉전 시대에 미국-소련 쌍방이 취한 ‘전방전개 전략(前方展開 戰略)’의 딜레마이다. 이러한 곤란함에서 생겨난 것이 방위적 방위이다. 자신(자국)의 의도가 순수하게 방위 지향적이라면 그것이 자신의 공격능력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위목적이라는 귀에 거슬리는 말보다 무기 시스템의 사정범위-정밀도 쪽이 효과를 분명히 나타낸다. 어쨌든 방위적 방위의 공통점은 고슴도치와 같은 방위이다. ‘고슴도치형(型) 방위’를 취하면 다른 나라가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으며, 도발당한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 이 ‘고슴도치형 방위’에 불가결한 요소는 NMD이다. 단거리 무기 시스템에 입각한 방위적 방위를 취할 경우, 강대국과 연결된 ‘즉시 개입부대’를 폐지해야 한다. 국가 간의 분쟁이 줄어드는 대신 민족 간의 분쟁이 증가하는 최근의 상황 속에서 민족이 방위적 방위 특히 NMD의 능력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갈퉁, 2006, 71-75)

    1) 묵자의 ‘무장 중립-전수방위 주의’와 관련하여

갈퉁이, 군(軍)의 새로운 과제로 내세우는 ‘방위적-비공격적-비도발적 방위’를 한마디로 축약한 말이 ‘고슴도치형 방위’이다. 고슴도치처럼 ‘방위적-비공격적-비도발적인 전수방위’를 하는 안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고슴도치형 전수방위’ 패러다임은, 강력한 비전(非戰; No More War) 의식 속에서 ‘상대방의 공격을 고슴도치처럼 되받아치는 전수방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는 묵자의 ‘무장 중립-전수방위 주의’와 유사하다. 묵자의 ‘무장 중립-전수방위 주의’는 그의 비전론(非戰論)에 입각하므로, ‘고슴도치형 전수방위’ 패러다임의 비전(非戰) 의식과의 접점이 형성된다. 스위스와 같이 ① 무장 중립국가로서 평소에 전수방위 주의를 취하면서 ②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③ 상대방이 공격해 오면 되받아칠 무력을 충분히 갖추는 ‘안보 패러다임 전환’이 한반도에도 요청된다.

Ⅲ. 결론: 한반도의 ‘안보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통일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 군축, 외국군 철수에 걸맞은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한반도 통일형 안보 패러다임 전환에 어울리는 발상으로서, 묵자류(類)의 ‘무장 중립․전수방위’와 갈퉁류(類)의 ‘고슴도치형 전수방위’를 합성한 전수방위 패러다임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보 패러다임 전환의 주체가 될 군(軍)의 상(像)으로 묵자의 언병을 추천한다.

남북한이 각각 ‘고슴도치형 전수방위’ 노선을 취하면서 ‘무장 중립-전수방위’ 쪽으로 나아가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비핵-중립화의 길이 보일 것이다. 남북한이 이렇게 합성된 노선에 따라 비핵-중립화의 일주문에 들어서면, 2007년의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선언문(10, 4 선언)에 나오는 한반도 통일을 논의하는 3자-4자 회담의 입구가 보일 것이다. 물론 이 3자 또는 4자 회담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과 보조를 맞춰야 할 것이다. 다행히 6자회담과 보조를 맞춘 3자 또는 4자 회담이 열린다면 3자 또는 4자 간의 한반도 평화협정 틀이 마련될 것이다.

그런데 3자 또는 4자 간의 한반도 평화협정 틀이 마련될 것에 대비한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남북한이 원활하게 이루어 낼 수 있느냐는 문제에 봉착한다. 남북한의 군대가 묵자의 언병처럼 ‘선수어(善守禦)’하는 전수방어를 하는 가운데 평화협정 틀을 내올 수 있느냐의 중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갈퉁의 NMD를 중시하는 ‘고슴도치형 전수방위’ 쪽으로 남북한 군(軍)의 체질변환-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하냐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 문제 제기에 대답하는 길은 남북한의 군(軍)이 경쟁적으로 묵자의 언병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남북한의 군(軍)이, ‘한반도 통일의 언병’으로서 남북 상호 군축을 이끌어 낼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지금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3자 또는 4자 회담의 공든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남북한이 평화공존의 차원에서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해야 하며,
이를 위한 방법론을 정교하게 내와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론을 모색하기 위해 묵자형(型) ‘언병의 전수방어-무장중립-전수방위’와 갈퉁의 ‘고슴도치형 전수방위’를 이 글에서 거론했다. 그러나 위의 두 방위론은 추상적이므로 구체성을 띤 방위론이 필요한데, 그러한 방위론으로 고르바초프의 ‘합리적 방어의 충분성’ 원리에 입각한 전수방위를 추천한다.

    1) ‘합리적 방어의 충분성’ 원리에 입각한 전수방위<김승국{평화 만들기} 148호, 2004>

‘합리적 방어의 충분성<합리적 충분성(reasonable sufficiency)>’의 원리는 소련 공산당 제27차 및 제28차 전당대회, 1987년 베를린 문서(Berlin Document), 1987년 9월 프라우다(Pravda)와의 고르바초프 회견, 그리고 1988년 12월 유엔연설 등에서 ‘피해갈 수 없는 국가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라고 언급되었다.

‘합리적 방어의 충분성’의 내용은 소련 군사력의 근본적인 역할이 소련과 동맹국에 대한 침략을 격퇴하기에는 충분한, 그러나 공격을 감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도록 명백하게 방어적인 것으로 군사조직을 재편성하고, 그 규모는 합리적이고 신뢰할 만한 충분한 수준에서 일방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위의 합리적 충분성의 원리를 한반도에 적용하면, ‘남한 정부가 북한에 대한 침략을 격퇴하기에는 충분한, 그러나 공격을 감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도록 명백하게 방어적인 것으로 군사조직을 재편성하고, 그 규모는 합리적이고 신뢰할 만한 충분한 수준에서 일방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총체적인 군사력 우위에 선 남한의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처럼 새로운 사고, 즉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군사력을 일방적으로 감축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더 강한 국력을 가진 남한 정부가 일방적인 군축을 시행하지 않는 한 남북한 간의 원만한 군축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zero sum game에 의한 군축’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 더 가진 자가, 더 힘이 있는 자가 선도적으로 군축을 선언함과 동시에 화해의 외교를 추진하는 길만이 평화통일에 다가가는 첩경이다.

이러한 획기적인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서는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안보관부터 폐기하지 않으면 안 되고, DMZ 부근에 남북한이 배치한 대량 파괴무기를 일방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한 정부가 ‘합리적 충분성’ 원칙에 따라 군축을 먼저 선언하면 북한도 이에 부응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6․15 공동선언이 군사적으로 실천되는 입문에 들어설 것이다.

남북한이 각기 ‘합리적 충분성’ 원칙을 지키면 저절로 전수방위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남북한 정부가 ‘합리적 충분성’ 원칙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침략을 격퇴하기에 충분한, 그러나 공격을 감행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방어적인 것으로 군사조직을 재편성하는 것 자체가 전수방위를 예약하는 일이다.

남북한이 ‘합리적 충분성’ 원칙에 따라 방어정책을 취하면 DMZ 부근의 미사일도 장사포도 전차도 최첨단 군사감시 장치도 불필요하다. 망원경 정도로 상대방의 진지를 지켜보며 방어하면 된다. 대량 파괴무기도 중무장도 전혀 필요하지 않고 재래식 무기로 상대방의 침입을 억제할 만큼의 자위력을 보유하면 된다.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종심 공격할 필요도 없으며 남북한군 당국이 상대방의 영토에 스파이를 보내 군사 정보를 염탐할 필요도 없다. 남북한이 실정법상 방어할 땅, 영해, 영공만을 전적으로 지키는 전수(專守)방위에 임하면 된다. 이 정도로 남북한의 전력(戰力)을 감축하는 ‘군축’ 없이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없으며, 남북 공동안보를 시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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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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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an Galtung 지음, 木戶衛一외 옮김 {ガルトゥングの平和理論(Die Andere Globalisierung)} (京都, 法律文化社, 2006)

2. 인터넷 매체

* 기세춘 「공자 묵자와 평화(26)」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5호(2004. 8. 18.)
* 기세춘 「공자 묵자와 평화(94)」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36호(2006. 6. 13.)
* 김승국 「한반도 평화로드맵(5)」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48호(2004. 9. 7.)
* 김승국 「한반도 평화로드맵의 대강과 과제」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271호(2007.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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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묵자의 비공이 불의의 세력에 대한 주토(誅討)를 허용하는 개념이므로 전쟁을 그만두는 언병(偃兵)과 다르다는 주장(이운구, 2004, 231)이 있지만, 이러한 주장은 묵자의 전반적인 평화사상을 반영하는 비공(非功)과 ‘언병의 적극적 평화 사이’의 연계 가능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주2) 국가에는 군사적인 신체가 있습니다. 군사적인 조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군사조직은 기본적으로, 정치용어로 말하면, 독재입니다. 사령관이 있고, 그리고 사령관 밑에 권력의 위계 구조가 있어서 명령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갑니다. 군대조직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각 병사, 개인의 일상생활의 세밀한 곳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게 관리됩니다. 전부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트리면 처벌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전체주의 조직인 것입니다. 사상으로부터 일상생활, 아침부터 밤까지의 모든 스케줄, 전부가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폭력에 의해 관리됩니다.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지는 국가는 정치적 신체 이외에, 이 군사적 신체도 갖고 있습니다. 건강한 젊은 남자라면 누구든 적어도 2년이나 3년간 군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가 많습니다. 그것은 정부의 일입니다. 정부가 이 것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군대입니다. 정부는 경우에 따라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계엄령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군대조직의 논리, 군대조직의 지배 방식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계엄령은 그 국가의 군사조직으로서의 신체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대조직이 없어지지 않는 한, 국가가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조직이 강해져서 일반 사회에 대한 영향도 강해집니다. 즉, 일상생활이 군사화됩니다. 따라서 전쟁의 가능성, 그리고 군대조직의 존재는 언제나 민주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정신의 발목을 잡아끄는 것이 됩니다.(더글러스 러미스, 2003, 128-131)

(주3) 이운구의 이와 같은 해석에 따르면 북한 핵실험이 정당화될 수 있다. 묵자의 전수방어 논리를 넘어서는 방어용 선제공격을 허용하는 해석을 내리면 북한 핵실험을 비판할 근거가 사라진다. 그러나 수성(守成)기술의 향상을 통한 침략의 억제에 대한 해석은 올바르다. 이러한 억제(침략전쟁의 억제)론이 묵자의 전수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해야지, 선제공격과 연관된 억제론으로 무리하게 해석하면 안 된다.

(주4)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중립화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양자를 결합하는 구상이 바람직하다. 비핵화와 중립화를 연결시키려는 셀리그 해리슨(Selig Harrison)은 {코리아 엔드게임} (서울, 삼인, 2003)에서 ‘미국의 국익에 근거한 미군철수-한반도 비핵중립화’를 제기한다. 해리슨에 의하면, 한반도 비핵중립화론은 기존의 시각을 뛰어넘는 논리이며 이에 걸맞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면 한반도 비핵화의 기운이 높아질 것이다. 이때 미국(및 미국의 영향을 받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입김을 배제시키려는 중립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남북한이 미국-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제국주의적 압력으로부터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한반도 비핵화를 견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비핵화와 중립화 카드를 연동시키는 일이 요청된다. 특히 한반도 비핵지대화로 진입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로 예상되는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위한 ‘비핵-중립화’가 긴요하다.(김승국 {평화 만들기}, 2007)

(주5) 갈퉁은 군(軍)의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기에 앞서 아래와 같은 문제 제기를 한다.
* 이행기에 있는 군(軍)에 주목하면서 노르웨이의 복음주의 전통에 따라 세 가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군(軍)이 이행기에 있다면 왜 그럴까? 무엇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가? 둘째, 죄와 죄인을 구별한다면 군(軍)의 미덕은 어디에 있을까? 셋째, 이 미덕을 이용할 수 있는 군(軍)의 새로운 과제는 무엇인가?
* 국가의 정치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연대(聯隊)를 이용한다는 클라우제비츠流의 수단인 전쟁은 파국을 맞이하여 종말에 이르렀다. (클라우제비츠의 안보패러다임에서) 군(軍)은 정치 엘리트가 바라는 것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클라우제비츠의 안보 패러다임에 따른) 민족학살,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 제2차 세계대전 등의 비참한 살육을 낳은 ‘매크로(Macro) 전쟁’의 악평은 이미 정착되었다. ‘메조(Mezzo) 전쟁’, 즉 중거리 무기에 의한 국가 간의 고전적인 전쟁의 오명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제는 ‘마이크로(Micro) 전쟁’, 즉 소총-지뢰-손도끼-테러리스트의 폭탄-고문용 전기충격 등으로 싸우는 전쟁에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전쟁의 해결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앞에서 ‘국가의 정치목표’와 ‘연대의 군사적 미덕’의 구분을 거론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정식(定式)은 연대의 군사적 미덕을 국가의 정치목표 아래에 두었지만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포스트 모던(Post Modern) 전쟁의 부조리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군(軍)은 적의 병대(兵隊)보다 많은 민간인을 살해했다.
* 더욱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우리들이 구축할 수 있는 네 가지의 군사적 미덕은 담력, 규율, 연대정신, 조직(양호한 병참업무, 시간엄수, 정확함 등 포함)이다. 이 네 가지 미덕을 잘못된 폭력정치를 위해 사용하면 희화적인 악(惡)이 된다. 그러나 올바른 목적을 위해 이용하면 실제의 미덕이 된다. 특히 조직의 경우 ‘알파형(型)’이 되어야 하는가, ‘베타형’이 되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거대한 위계형 군대가 되어야 하는가, 수평적 지휘구조를 지닌 작지만 비교적 자립적인 부대로 되어야 하는가?
* 방위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군(軍)의 종류는 방위적인 부대로서 ‘베타형’이어야 한다. ‘더욱 작을수록 더욱 평등하다’는 조직론의 일반적 경향과 합치되기 때문이다.
* [군(軍)이 네 가지 미덕에 따라] 헌신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지만 새로운 임무․기능을 요구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전 세계의 군대 없는 23∼28개 나라를 생각할 필요가 있으며, 이 문제를 에워싸고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군(軍)을 폐지함으로써 (쿠테타 등을 통해) 군대를 이용한다는 중대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둘째, 작은 나라가 군대를 해체하면 별도의 ‘Big Brother’를 견제하는 ‘Big Brother’의 보호에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셋째, 군대를 폐절(廢絶)했다고 하여 군(軍)의 능력․미덕을 평화를 위해 어떻게 이용하느냐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2000년도에 스위스 군대를 폐지하기 위한
국민투표(35. 6%가 찬성함으로써 스위스 군대에 충격을 준 일이 있다)’와 관련된 논의에서, 이러한 대안이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어서 군(軍)을 민생목적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이 전환 모델은 군(軍)을 철폐하는 모델, 군을 보유하지 않는 모델과 달리 점진적이어서 반드시 군(軍)의 전폐(全廢)로 끝나는 게 아니다. 위의 전환이 거의 전면적이지 않으면 군(軍)의 고전적인 전통과의 단절에 이를 수 없다. 군(軍)의 전환이 반드시 군(軍)의 파괴력을 약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강화시킬지도 모른다.
* 이제 군(軍)의 해체․전환 문제까지 포함하여 남아 있는 대안은 명확하다. 여기에서 잘 통제되는 큰 조직을 필요로 하는 대형 프로젝트, 자연재해(허리케인・쓰나미・지진), 사회적 비극(내란・전쟁), 생태계의 참사(오염・벌채・사막화) 뒤의 재건․지원에 군(軍)이 투입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활동은 군사훈련을 받지 않아도 다른 조직이 감당할 수 있다.(갈퉁, 2006, 6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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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31호에「잘사는 평화 (15)」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