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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안보-군사/안보론-안보 패러다임 전환

다자간 안보 틀

김승국

<들어가는 말>

* 전문가들의 견해

다자간 안보 틀에 관하여 국내에서 짜임새 있는 이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므로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병렬적으로 소개한다:
동북아에는 NATO와 같은 지역안보 협력기구나 NAFTA나 EU 같은 지역경제 협력기구도 아직 결성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체제 구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동북아 지역 국가 간의 불신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경험에서 적절히 배워 다자간 안보대화 및 협력체를 개발하여 지역의 각국들이 맺고 있는 기존의 양자적 안보 체제를 보완하여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최근에 악화되고 있는 지역 국가 간의 군비경쟁을 완화할 길을 찾는 장이 더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더욱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 방지, 테러, 환경, 마약 등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범세계적 문제가 동북아 지역에서도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다자간 협력체 창설은 매우 시급하다.<이호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간 협력」 {통일시론}(2000년 봄) 117쪽>

21세기의 동북아시아에 평화가 정착되고 유지되기 위해 어떤 조건이 조성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자. 우리 생각에는 첫째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권외 국가의 군사력이 물러나야 하고, 둘째 20세기를 통해 이 지역의 평화를 깨뜨린 장본의 하나였던 일본이 진정한 평화주의 국가로 되어야 하며, 셋째 이 지역의 새로운 강대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 평화주의를 견지해야 하고, 넷째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는 한반도 지역이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방향으로 통일되어야 하며, 다섯째 이 같은 조건을 바탕으로 하여 동북아시아의 지역 평화 공동체가 성립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강만길 「동북아시아 평화 구상: 역사적 관점에서」 {통일시론}(2000년 봄) 63~64쪽>

20세기 전반 일본 식민주의의 역사는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도 그러한 역사적 심리적 분단의 구조를 물려놓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지배세력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매개로 하여 동맹의 관계에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 역시 근본적으로는 그 같은 역사심리적인 동아시아적 대분단의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결과 20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 들어선 오늘의 시점에서도 이 지역질서의 근본적 특징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직접적이고 자율적인 소통구조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고도한 정치적 소통구조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미국을 매개로 하여서만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어떤 다자적 형태의 동아시아 안보포럼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해상 군사동맹 체제에 부수적인, 또는 그것을 미일동맹의 관점에서 보완하는 지극히 제한적인 의의만을 갖는다. 따라서 동아시아에 실질적인 공동안보와 지역 국가들 간의 직접적인 정치적 소통구조를 확립하는 것은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와 관련한 가장 근본적인 과제다. 그것은 곧 한반도의 장기적인 운명을 결정한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해 왔듯이, 동아시아는 역사적 조건들 때문에 평화구축을 위한 국제 레짐의 형성은 유럽에 비해 어려움이 크다. 전통시대에는 중화중심적 질서, 그리고 19세기 이후 서세동점과 뒤 이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등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초국적인 협력을 위한 국제 레짐 형성의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못지않게 중요한, 그리고 더 가까운 원인은 전후 냉전체제 밑에서 응결된 동아시아 대분단 구조의 지속으로 그러한 국제 레짐이 실험조차 되어보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의 세계 및 동아시아 전략에 의해 그러한 실험이 터부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중단기적으로 동아시아에 동맹의 정치를 대체하거나 그것과 병존할 수 있는 공동안보 레짐 형성의 지난함을 가리킨다.<이삼성 「한미동맹의 유연화를 위한 제언」 {국가전략} 9권 3호(2003년) 33쪽>

국가들이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에서 탈출해 군비경쟁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성장과 발전을 위해 자원을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오인(misperception)’이나 ‘불신(mistrust)’을 제거하고, 나아가 국제체계의 자구 원리를 완화할 수 있는 다자적 조정이나 권위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 레짐의 유용성이 지적된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정치학의 비근한 예로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에 빠진 국가들이 국제 레짐의 형성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상호안심(mutual reassurance)을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가 파레토 최적 이하에서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의 상황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경우가 제시된다. 더구나 냉전종식과 가속화된 세계화의 과정이 초래하는 ‘지구적 문제들’은 개별국가 차원을 넘어선 다자적 포괄적 관리를 필수적으로 만들어가고 있고, 상호의존의 심화와 ‘다중채널(multiple channels)’의 확대는 한 국가의 안보 문제가 더 이상 그 국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면에 있어서, 세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다자적 안보 레짐의 필요성과 바람직성은 배가되고 있다.
다자적 안보 레짐의 시도는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유럽 제국은 집단적 군사동맹을 통한 안보전략이 안보위협 요인에 대한 본원적인 해결이 아님을 깨닫고,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위협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즉 이들은 국가 생존과 그를 위협하는 원인들을 지역 국가 모두의 ‘공동’ 문제로 인식하고 군사적 투명성 제고, 신뢰구축 ・이해 증진을 통해 지역 불안정 ・불확실성 요인을 감소시키거나 제거해 나가고자 하였던 것이다. 1975년 발족한 유럽안보협력회의(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CSCE)가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다자간 안보협력에 대한 유럽의 실험과 성과는 21세기 지구적 리더십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면서도 그러한 다자적 제도를 결여하고 있는 동북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북아의 질서는 소련의 붕괴로 인한 ‘새로운 전략적 삼각구도(a new strategic triangle)’의 형성이 수반하는 불협화음, 제국주의 ・냉전 역사의 유제 미청산에 따른 증오와 경계, 북한의 체제적 불안감과 그에 따른 공격적 행태, 일본의 우익화 경향 등으로 인해 매우 유동적이며 불안정하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핵폐기물 해상 투기(投棄), 중국의 현대화에 따른 산성 강하물(降下物) 등 다양한 환경위협, 그리고 마약, 인권 문제 등 동북
아의 비군사적 안보위협도 도를 더해 가고 있다. 이와 같이 ‘공동의 이익과 혐오(common interests or aversions)’의 범주가 확대되어 가면서 동북아에는 다자간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한 강력한 유인(誘引)이 발생하고 있다.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의 필요성은 한반도의 평화, 안정, 통일을 위해서도 재강조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은 남북한에 독자적 안보능력 강화를 불가피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과 통일, 그리고 평화배당금이 기여할 경제발전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남북한의 군비 지속은 긴장을 심화하여 평화통일의 과정을 결정적으로 방해하는 요인으로 된다. 따라서 한반도 군축의 분위기를 조성 ・유지하는 중요한 촉진제로서 다자간 안보협력은 한반도의 이익과 크게 부합한다.
동북아에서의 권력정치(power politics)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남북한의 정치 외교적 자율성의 범주를 좁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남북한은 그러한 체제하에서는 동북아 4대 강국 중 누구와도 군사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한 정부는 효율화된 자주 국방 능력을 도모하면서 다른 한편 억지를 넘어선 새로운 안보 개념에 기초한 다자간 안보협력의 형성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다자간 안보협력의 바람직성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제국은 그의 제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은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광역적인 안보대화체이고, ASEAN 제국이 중심세력으로서 동북아 강국들 간의 안보관계를 지도하는 데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의 조건’은 변화하고 있다. 탈냉전으로 인한 보편경쟁 체계의 공고화와 세계화의 가속화로 인해 지역 강국들의 내외적 조건이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특히 2000년 6월과 10월 남북공동선언 및 북미 공동선언을 기점으로 동북아 역할관계의 핵심 고리라 할 수 있는 한반도 상황이 전향적으로 급변할 조짐을 보임에 따라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의 형성은 추상적 미래의 범위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박건영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 현실과 전망」 {한국과 국제정치} 제16권 제2호(2000년 가을 ・겨울) 40~42쪽>

* 다자간 안보 틀을 위한 법체계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 헌법 전문 ・제9조를 사수하여 일본 군사대국화를 저지하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 각국이 일본 헌법 제9조와 같은 평화헌법 체제를 만드는 게 급선무이다.
일본 헌법 제9조는 동아시아의 평화에 최대의 위협이었던 일본 군국주의를 저지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안전보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국 헌법 제9조는 일본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도 동아시아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일본국 헌법 전문은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국민의 공정과 신의를 신뢰하여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보지(保持)하고자 결의하였다.’ 이는 지역적 안전보장, 보편적 안전보장, 포괄적 안전보장의 구상이다. 즉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를 멤버로 하는 보편적 ・포괄적인 안전보장의 틀을 만들고, 개개 국가의 군비나 무력행사를 가능한 한 제한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일본의 안전은 보장된다는 것이다. 일-미 안전보장 조약이 아니라 동아시아 안전보장 기구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때 국가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아키히코 키미지마 「일본국 헌법의 평화구상」 {민주법학} 25호(2004) 257~258쪽 요약>

일본 헌법의 고수 및 세계화는 아주 유용한 평화구축 경로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국가들이 자국헌법에 부전(否戰) 조항, 전쟁반대 조항을 삽입한다면 평화권 ・평화헌법이 21세기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박명림 「남북 평화협정과 한반도 평화」 {민주법학} 25호(2004) 287쪽>

유럽 헌법(Draft Treaty Establishing A Constitution For Europe)처럼 국가안보 개념을 뛰어넘는 ‘동아시아의 공동안보 ・공동방어(common defense) 개념’을 채택하여, 각국의 평화헌법과 조율하는 ‘평화헌법과 안보의 연계구조’를 동아시아에서도 이룩하면 다자간 안보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헌법-안보 연계구조’를 내오기 위해서는 각국의 안보 틀(안보 패러다임)의 혁신적인 변환과 이를 수렴한 동아시아 차원의 안보 틀의 창출이 불가결하다. 현재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 틀을 내올 수 있는 기구로서 ARF(아세안 지역포럼, ASEAN Regional Forum)가 있다.

*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 틀

동아시아에 부분적으로 불가피한 동맹의 정치를 보완하고 그것과 병행하는 것으로서 공동안보 국제 레짐을 형성하는 시도는 의미 있고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고려사항에 근거해 한국외교의 장기적 비전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첫째, 동아시아 질서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 때문에,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는 처음부터 포괄적인 공동안보 레짐을 형성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안보, 경제, 환경 등 각 영역에서 구체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어떤 형태로든 다 같이 참여하는 레짐을 형성하기 위한 창의적인 방안과 외교를 추구한다. 예컨대, 북한 핵문제라는 현안과 관련되면서도 장기적인 공동안보 레짐의 단초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동북아 비핵 지대화 문제를 들 수 있다.
동아시아 분단구조의 핵심에는 중국과 일본의 갈등구조가 있다. 그 구조를 해소해 나가는 시금석은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 간극을 넘어서 공동안보를 창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한반도와 일본 간의 공동안보에의 노력은 비핵화를 지키고 확대하는 공동의 노력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군사동맹 체제에 대한 의존에서 점진적으로 그리고 평화 지향적으로 탈피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한반도와 일본 간의 이 같은 노력은 중국과 일본의 간극, 즉 동아시아 대분단 구조의 핵심을 극복하는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정부적 비정부적 차원 모두에서 필요하다. 비핵 지대화 문제 외에도 안보영역에서는 대인지뢰 금지협약에 대한 미국과 그 동맹국
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그것을 한반도와 아시아 전반에 적용하기 위한 협력을 조직하는 것도 안보영역에서 중요한 사안별 레짐 형성을 위한 노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경제에도 그리고 환경과 같은 초국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될 수 있다.
둘째, 그러한 노력은 한국과 일본이 특정한 군사 초강대국과의 동맹의 정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맹을 유연화시키는 것을 전제로 가능해진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대륙세력을 가상적으로 하는 안보질서를 강화하는 다른 형태의 노력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필리핀과 호주를 포함하는 동아태지역 국가들과 기존에 미국이 맺고 있는 쌍무 군사동맹 조약들을 엮어서 동아시아판 나토[NATO]와 같은 패권주의적 안보기구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경우, 그에 대한 한국의 추종은 장차 동아시아 분단질서 영속화에 기여하고 말 것이다. 이 점에 대한 각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반면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필요한 동아시아 주변 4강이 함께 참여하고 역할을 담당하는 협의 프로그램들은 더욱 발전시키고 제도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장차 포괄적인 동아시아 공동안보 레짐의 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이삼성 「한미동맹의 유연화를 위한 제언」 {국가전략} 9권 3호(2003년) 34~35쪽>

1. 제1단계; 동아시아판 ARF 창설

앞에서 거론된 포괄적인 동아시아 공동안보 레짐의 맹아형태인 ARF에 주목하면서 ‘동아시아판 ARF’를 평화 로드맵 제1단계에 창설하는 데 남북한이 앞장설 필요가 있다.
ARF는 1993년 7월의 아세안(ASEAN) 외무부장관 회의에서 설치하기로 결정한 지역안전보장 협의기관이다. 가맹국은 아세안 10개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브르네이, 베트남,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非아세안 13개국(미국, 일본, 캐나다,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파푸아 뉴기니아, 중국, 러시아, 인도, 몽골, 파키스탄, 북한)+EU이다. ARF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안전보장에 관한 정보와 의견을 정기적으로 교환하는 비군사적인 안전보장 조직이다.
ARF는, 미국의 입김을 덜 받는 아세안이 주도하므로 아시아인에 의한 다자간 안보 틀을 내오는 데 유리한 점이 있다. 아세안의 맹주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등이 미국에 대한 견제구를 날린 바 있으므로, 미국의 패권이 크게 작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ARF 회의가 하루 만에 행사를 그치는 게 문제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 문제를 하루 만에 협의한 다음 후속적인 조치에 대해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ARF는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광역적인 안보대화체이지만, 아세안 제국이 중심세력으로서 동북아 강국들 간의 안보관계를 지도하는 데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ARF는 지역적 다자간 안보협력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참여자의 결속도가 낮은 ‘제한적 안보 레짐(limited security regime)’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소국들의 집합체인 ASEAN의 관행과 규범에 입각한 기구 관리 ・운영 체계 등으로 인해 느슨한 형태의 안보대화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박건영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 현실과 전망」 {한국과 국제정치} 제16권 제2호(2000년 가을 ・겨울) 40, 51쪽>

위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중심(남북한+일본+중국+대만+미국+러시아)의 안보 틀을 내오기 위해 ‘동아시아판 ARF’를 창설할 필요가 있다.

2. 제2단계; 동아시아판 CSCE 창설

CSCE[유럽안보협력 회의]는 유럽에서 평화와 안정을 조성하고 독일인도 그 속에서 자결권을 행사하여 독일통일을 이룩하였다. CSCE는 유럽에서 성공사례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에서도 CSCE 모델의 유용성의 말들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이영기 「동아시아에 있어서 CSCE모델의 유용성」 {평화연구} 제3호(고려대 평화연구소, 1994년) 70쪽>

최근에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CSCE모델의 유용성 여부의 논의가 어느 때 보다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CSCE는 유럽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세계 여타 지역에서는 그 모델의 적용이 유럽과는 다른 조건하에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예컨대 페르도브지(Mir A Ferdowsi) 박사는 아프리카, 중동, 남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에서의 CSCE모델의 유용성을 부정적으로 관찰하고 있다.<이영기 「동아시아에 있어서 CSCE모델의 유용성」 {평화연구} 제3호(고려대 평화연구소, 1994년) 79~80쪽>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도 CSCE모델이 적용될 여지는 있다. 첫째, 동아시아에는 NATO와 같은 집단 안보 체제는 없지만, 세력 균형이 유지되고 있으므로 신뢰구축 ・군비통제 및 군축 등을 논의할 수 있다.
둘째, 동아시아에서 APEC 등을 통한 경제협력이 가능하다. 셋째,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 CSCE 모델의 유용성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이영기 「동아시아에 있어서 CSCE모델의 유용성」 {평화연구} 제3호(고려대 평화연구소, 1994년) 81~83쪽>
이와 같은 가능성을 좇아 동아시아판 CSCE를 창설할 수 있겠다.

3. 제3단계; 동아시아판 EU 창설

‘동아시아판 EU 창설’은 먼 장래의 일이고 현재의 단계에서 실증적인 논리전개가 어려우므로,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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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251~262쪽을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