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안보-군사/비핵화-비핵지대화

'비핵화'에 관하여

김승국

먼저 ‘비핵 지대(화)’, ‘비핵무기지대(화)’, ‘비핵화’의 같은 점과 차이점을 설명한다.

비핵 지대화(establishing denuclearized zone)란 비핵화(denuclearization), 핵 자유 지대화(establishing nuclear-free zone) 또는 핵무기 자유 지대화(establishing nuclear-weapon-free zone)라고도 불리며 이를 정의한 실정 국제법상 유권적 규정은 아직 없다.<김명기 외 {한반도 비핵 지대화와 국제법}(서울, 소화, 1999) 14쪽>

1975년 11월 11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결의는 비핵 지대의 개념(the concept of a nuclear-weapon-free zone)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비핵 지대는 유엔총회에 의해 그 지위가 인정되고, 어떤 국가 집단이 주권의 자유로운 행사를 통하여 조약 또는 협약에 의해 설정된 지대로 간주될 수 있다. ⓐ 적용 지대의 경계를 설정하는 절차를 포함한, 해당 지대에 적용되는 핵무기의 전반적인 부재(total absence)를 내용으로 하는 규정(statute)이 확립되어 있으며 ⓑ 그러한 규정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의 이행을 보장할 ‘국제적 검증 및 통제 체제(an international system of verification and control)’가 설립된다.”<UN Document A / RES / 3472B(ⅩⅩⅩ)>

한편 비핵무기 지대(NWFZ: Nuclear Weapon Free Zone)와 비핵지대(NFZ)를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비핵무기 지대 개념은 핵무기에 대한 ⓐ 비제조(非製造) ・비생산(非生産) ⓑ 비배치(非配置) ⓒ 비취득(非取得) ・비상용(非常用)으로 규정하고 비핵 지대 개념은 앞의 3가지 항목 이외에 평화적 핵폭발(PNE: Peaceful Nuclear Explosions)까지 금지한다. 비핵 지대는 특정지역 내에서 핵무기의 제조, 생산, 배치, 취득, 사용, 실험(폭발)을 금지하고 이를 통하여 핵무기의 확산과 군비경쟁을 피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군축방식이다. 비핵 지대는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에 의한 공격이나 위협으로부터의 면제를 보장해 주고 그 국가 또는 다른 비핵국가의 주권과 안보이익을 존중함으로써 일정 지역 내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나아가 국제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개재된 핵확산 방지 노력이다.”<외무부 {주요 국제문제 분석-북한의 핵개발 및 한반도 비핵 지대화 주장}(서울, 외교안보 연구원, 1961.6.8) 11쪽>

그러나 NPT(핵확산 금지 조약) 체제 이전에 설립된 ‘틀라텔롤코 조약’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비핵 지대 조약들이 모두 평화적 목적의 핵실험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NPT 체제는 핵무기뿐만 아니라 ‘기타 핵폭발 장치(other nuclear explosive devices)’를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일반적인 명칭은 ‘nuclear-weapon-free zone(NWFZ)’으로 통일되고 있는 형편이며, 우리말 해석은 ‘비핵무기 지대’보다는 ‘비핵 지대’로 통용되고 있다.

다음으로 ‘비핵 지대’와 ‘비핵화’가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특히 이 문제는 남북한 간에 1991년 12월 31일에 채택한 바 있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비핵화(denucleariz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국내에서 일부 제기된 바 있다. 이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이 주장해 온 ‘한반도 비핵 지대화’와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관련해서 ‘비핵화’는 ‘비핵 지대’와는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북한에 대한 핵무기 국가들의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핵무기 국가에 의한 핵우산의 철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핵무기 적재 함정 및 항공기의 영토와 영해내 기항 및 통과를 금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UN과 ‘제네바 군축 회의(Conference on Disarmament, CD)’ 등 국제 군축 관련 회의에서는 ‘비핵 지대(NWFZ)’와 ‘비핵화(denuclearization)’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비핵화’가 ‘비핵 지대’와 다른 개념이라는 주장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무기 존재 및 사용을 유지하려는 한국과 미국의 자의적 의도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비핵 지대’와 ‘비핵화’의 개념이 서로 다르며 이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개념을 작위적으로 해석하는 결과로서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다.<이삼성 외 지음 {한반도의 선택}(서울, 삼인, 2001) 272~273쪽?

1.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실천

1991년 12월 31일에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표되기 이전에 한반도 비핵 지대화안이 여러 형태로 나왔다. 1972년 미국의 외교관 커닝험(William Cunninghum) 씨는 ‘미 ・중 ・소 3국 간의 조약 또는 미 ・중 ・소 ・일 ・남북한 6자 조약에 의해 한반도를 비핵 지대화하여, 동북아 비핵화 혹은 군비통제에 합의점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1975년 핼퍼린(Morton H. Halperin) 교수가 ‘남북한 간의 상호 무력 불사용(不使用)을 합의하고 한반도를 핵무기 금지지역으로 설정하는 조약을 체결하여 이것을 미 ・소 ・중 ・일 4개국이 공동으로 또는 별개로 남북한 간의 조약을 찬성하고 이에 동의, 한반도의 비핵 지대화에 대하여 존중할 것을 약속하게 한다’는 안을 제안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한 사람은 일본의 군축문제 전문가인 마에다 히사시로서 1966년에 ‘남북한과 일본 비핵 3국이 비핵 3원칙을 약속하고 주변의 미 ・소 ・중 3강대국으로 하여금 핵공격 또는 핵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게 한다’는 제안을 했다. 그는 자신의 초기안을 기초로 1979년 좀 더 포괄적인 「한반도 평화안」을 내놓았다.
일본 사회당의 외교국방위원회는 1966년에 「아시아 태평양 비핵무장 중립벨트 지대의 설정」을 제기하였다.

원래 한반도의 비핵화 구상은 1950년대 후반부터 북한 측에서 일관하여 주장해 왔다.<북한의 비핵 지대화 주장의 경과에 관하여, 졸저 {한국에서의 핵문제 ・핵인식론}(서울, 일빛, 1991) 312~314쪽을 참고할 것>

분단상태인 한반도에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군사적 대립이 상존하고 있음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지만 북한 측에서는 주한미군, 특히 핵무기의 철수를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한반도의 비핵화안을 주장하였다.

이후로도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면서 아울러 군축안의 일환으로서 비핵화 문제를 제시하였는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의 비핵화안을 제시하였다.

이 같은 북한의 비핵화안은 1990년대에도 어김없이 주장되었는데 내용 면에서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종래의 주장은 한반도의 비핵화안을 주한미군의 철수와 연계시킨 데 비하여 1990년대 들어와서는 주한미군의 철수와 함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수락을 전제조건으로 추가한 점이다.

그러나 1991년부터는 한반도 비핵화안이 남북한 쌍방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1991년 평양에서 개최된 제4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한반도 핵문제가 주요 쟁점이 되었는데 북한은 이 회담에서 또 다시 ‘조선반도의 비핵 지대화에 관한 선언(초안)’을 제시하면서 IAEA의 안전조치 수락을 조건으로 주한미군 및 핵무기를 철수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부응하여 남한 측에서도 북방외교를 정치적인 과제로 삼고있던 노태우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선언’을 발표하고 동 12월에는 핵무기가 한국에는 없다는 내용의 ‘한반도 내의 핵부재 선언’을 하였다. 한반도 비핵화의 장애 요인인 핵무기가 없다는 핵부재 선언은 남북한 당국이 각각 가지고 있던 국내외적 입지조건과 맞물려서 급속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였고 이로써 1991년 12월 31일에는 남북한 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김명기 외 {한반도 비핵 지대화와 국제법} 76~78쪽>

  1) 북한 핵문제 해결 노력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표되었음에도 한 ・미 연합군에 의한 ‘팀 스피리트 훈련(북한과의 핵전쟁에 대비한 空地戰 훈련)’이 강행되었다. 이에 북한은 비핵화 공동선언을 파기한 한미동맹을 비난했다. 더욱이 1992년부터 북한 핵문제가 부각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천할 겨를이 없었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천하려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전부터 줄곧 ‘북한의 무조건적인 핵사찰 의무’를 주장하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비핵화를 연결시키려는 북한의 입장’에 반대해 왔다. 남한 정부는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문제와 북한의 핵사찰 수용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여왔다. 더구나 북한의 ‘비핵 지대화를 위한 공동선언’의 제안에 대하여 미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평가기준을 보면 미국은 유사시에 미국 핵무기의 운반 ・폐지를 제약받고 싶어 하지를 않는다. 결국 한미 양 정부는 유사시의 핵무기의 한반도 반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 반입을 금지하고 핵우산을 철회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서로의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북한의 비핵 지대화 방안과 한국의 비핵화 방안의 커다란 차이점이다.<김용현 「한반도의 비핵 지대화 가능성에 관한 연구」(고려대 석사논문,1994) 40~41쪽>

그러므로 위의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한반도 비핵 지대화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핵우산, 핵무기 탑재 미군 함정 ・잠수함의 한반도 영해 진입, 핵무기 탑재 미군 공군기의 남한 영공 ・주한미공군 기지 진입 등을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한반도 비핵 지대화 입장)을 외면하는 한, 한반도의 비핵 지대화를 실현하기 어렵다(한반도 비핵 지대화를 원론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말은 아니다).

  2) 북한 핵문제 해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면 한반도 비핵화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렇다고 북한이 주장해 온 ‘한반도 비핵 지대화’의 실현 여부는 점칠 수 없다. 북한-중국-러시아가 비핵 지대화에 긍정적인 데 반하여, 한-미-일 3각 군사 공동체가 비핵 지대화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한-미-일 3각 군사공동체의 지도국가인 미국은 1991년 3월 8일 ‘한반도 비핵 지대화’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당시 걸프전의 완승에 고무된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핵억지력 저하를 거부함으로써 북한-소련-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에 쐐기를 박았다.

걸프전에 이은 아프간 전쟁~이라크 전쟁을 통해 ‘중동에서의 미국식 평화’를 이룩하려는 미국은, 승전의 여세를 북한으로 몰아붙여 전세계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려 한다. 미국이 보기에 세계 패권의 장애물은 ‘북한 등 불량국가(Rogue State)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량파괴무기(핵무기, 생화학 무기, 미사일 등)’이다. 즉 북한의 핵개발을 패권의 장애물로 여기는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빌미 삼은 북한과의 전쟁 계획’에 집착하고 있다(북한 핵문제는, 전쟁 ・평화의 가늠자이자 한반도 비핵 지대화 실천의 요체이다). 그러므로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면 한반도 비핵 지대화를 본격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된다.

  3)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실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북한 간의 신뢰구축, 국제적인 보장장치 없이 합의된 문서이며 선언문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신뢰구축이 중요하다. 군사적인 신뢰구축 못지않게 정치적인 신뢰구축이 중요하다. 이미 남북한 간에는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행하기 위한 신뢰구축 체제(남북한 기본합의서, 6 ・15 공동선언 등)를 갖추고 있으며,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행하기 위한 핵통제 공동위원회, 남북 기본합의서를 실행하기 위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두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핵통제 공동위원회와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면 되는데, 이를 위한 남북한의 정치적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행하기 위한 정치적 신뢰가 이루어져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중에서 검증수단 ・검증수단의 확보가 관건이다. 검증방법의 일환인 핵사찰을 위해 핵물질 보유 여부를 직접 육안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의 남북한과 같은 적대국 간에 합의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경우 검증장치의 유무가 비핵 지대화 실현의 시험대이다. 두 가지 검증장치를 생각할 수 있다. 즉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남북한 상호 사찰이다. 전자는 북한 핵문제가 풀려야 하며 후자는 남북한 간의 정치 ・군사적 신뢰관계 없이 불가능하다.(2004.9.21)
-----------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131~139쪽을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