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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22) ---역사적인 조건 ⑩ 김승국 1. ‘중립외교의 이정표’를 가로막는 차단막 최명길은 호란(정묘호란ㆍ병자호란)의 위기 극복 대안으로 변통(變通)의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광해군 중립외교의 맥을 이으려 했다. 변통이란 새롭게 전개되는 현실에 맞추어 때로는 명분을 굽혀서라도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명나라의 적인 후금과 겉으로는 화약을 맺고 안으로 군대를 양성하여 앞날을 대비하고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광해군이 추구한 실리외교를 조금 절충하여 ‘친명(親明)’의 관계는 유지하고 ‘和金[후금과의 和親]’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이화, 318) 이렇게 광해군 중립외교를 변용한 최명길의 ‘변통’은 고집불통의 척화파에 의해 단절되었다. 최명길은 청의 진영을 오가며 화의에 앞장섰다...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19) ---역사적인 조건 ⑦ 김승국 1. 병자호란과 중립의 가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쫓겨간 인조는, 청나라에 대한 항복의 수위를 놓고 완급을 조절하기 위해 신하들과 심각한 논란을 벌였다. 이 논쟁 즉 ‘남한산성 논쟁’은 중립의 가치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준다. 광해군의 국제감각을 이어받은 최명길(주1)이 주화(主和; 청나라와의 강화교섭에 적극적임)를 주장했고, 이에 맞선 김상헌은 숭명사대의 척화(斥和; 오랑캐인 청나라와 싸워야하므로 되도록이면 청나라와의 강화교섭을 늦추며 버텨야 한다)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남한산성 논쟁에서 ‘중립ㆍ중립화ㆍ영세중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었겠지만, 주화(主和)ㆍ척화(斥和)의 ‘和’를 어떻게 풀이하느냐에 따라 중립의 가치를 찾을 수 있겠다. 후금(.. 더보기
영세중립ㆍ중립화 통일의 길 (13) ---역사적인 조건 ① 김승국 1. 영세중립 원년(元年)을 중심으로 서술 스위스는 1815년 11월 20일에 영세중립 국가가 되었다. 영세중립의 원년(元年)인 1815년은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가 기념해야하는 해이다. 인류가 평화를 추구한 역사를 1815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것은 너무 무리한 구획이지만, 영세중립의 역사를 공부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중립의 관점에서, 영세중립의 원년을 ‘평화지향적인 세계사의 분기점’으로 삼을 수 있겠다. 그러면 중립ㆍ평화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까지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를 다룬 책이 없으므로, 이는 매우 난감한 질문이다. 전쟁사(戰爭史) 중심의 역사책은 있어도 평화사(平和史; 평화를 주제로 삼는 역사) 중심의 역사책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전쟁에 대한 위협ㆍ..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