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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군축 운동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

김승국

1. 사상적인 기반

양심상 부정하다고 확신하는 법이나 정책을 개선할 목적으로 기존의 법을 위반하여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행한 공적(公的)이고 정치적인 집단적 항의 행위를 시민 불복종이라고 말한다. 시민 불복종은 기존 법질서의 정통성을 전제로 특정한 법규에 위배되는 비폭력적 방법에 의한 양심적 항의 행위인 점에서 대중시위 ・군중폭동 ・양심적 복종거부 ・혁명 등과 구별된다.
시민 불복종은 양심상의 이유로 법에 불복종하는 행위이다. 이점에서 양심적 복종거부(conscientious objection: 양심적 병역거부, 부정한 납세에 대한 거부, 여호와 증인의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등)와 유사하다. 그러나 양심적 복종거부가 법규의 범위 안에서 행하여지는 점에서, 법을 위반하는 시민 불복종과는 구별된다. 양심적 복종거부는 일반적으로 항의 행위의 일종으로 이해되지만 결코 시민 불복종은 아니다.

시민 불복종 운동은 직접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인종 격리법에 반대하여 격리가 실시되고 있는 금지구역에 들어가 농성하는 행위, 징병법에 반대하여 징병명령을 거절하고 징병거부를 선동하는 행위), 간접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정부의 핵군비 정책에 반대하여 납세를 거부하거나, 군사훈련장에 불법으로 들어가 농성 ・피케팅하는 행위)
으로 구분할 수 있다.(주1)

  1) 양심의 자유과 납세거부(주2)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납세거부는 간접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에 해당되며, 일본 ・독일 등에서 반전평화 운동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다.

    ① 일본의 경우

일본은 1991년의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을 위해 90억 달러의 전비를 지원하고, PKO(Peace Keeping Operation)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주변사태법 제정과 유사법제 등으로 국가의 군사적 행동으로 개인의 양심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일본의 시민사회는 국가의 조세권에 대한 도전으로서 납세거부를 시도했다. 특히 자위대 예산을 둘러싼 납세자의 저항운동이 일어났으며 걸프전 때의 전비 90억 달러에 대하여 3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원고가 된 ‘시민 평화 소송’ 캠페인을 전개했다.

    ② 독일의 경우

독일의 납세거부 운동은, 1980년대 나토에 대한 중거리 핵탄두 설치에 대한 항거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운동에 참가한 독일인들은, 조세기본법의 저항권 및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군사비 상당분의 납세거부권을 주장하면서 법정 투쟁을 벌였다.

    ③ 한국에서 ‘양심적 납세거부’ 가능한가?

한국의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양심상 결정의 자유, 침묵의 자유, 양심상의 결정을 표명 ・실현할 자유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 납세거부, 즉 ‘양심적인 납세거부’를 할 수 있나? 특히 분단체제 아래에서 ‘국방’ 문제에 대한 도전이 금기시되어 있는 한국에서 국방-국방비와 관련된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를 할 수 있나?

      ㉠ 납세거부의 근거

한국의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선언하여 국민의 납세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납세의무는 국방의 의무와 더불어 고전적 의무의 하나이며, 양자는 근대헌법 이래 국민의 2대 의무로 되어 있다. 현행 헌법은 조세법률주의를 선언하고 있으며,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으로 조세법률주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현행 조세법상 세금을 체납하는 경우 국세징수법에 의해 강제 징수할 수 있다. 만약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납세를 거부하면, 국가가 강제징수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양심적 군사비 납세거부를 감행했을 경우 납세의무와 ‘신성한’ 국방의무를 거부하는 데 대한 ‘쌍벌죄(?)’를 내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세금을 징수하는 목적은 국가의 존립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이 국가공동체의 재정력을 마련하기 위하여 스스로 책임지는 차원에서 조세 문제를 해석할 수 있다. ‘스스로 지는 책임’은 책임의 정당성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국민(시민)의 납세거부를 에워싼 논리적인 공간이 생긴다.

한국에서도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납세거부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현행 실정법은 납세거부 시 강제집행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실정법은 국민주권 원리에 의거하여 사실상 국민에 의하여 제정되는 법률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수긍하지 못하는 납세요구는 그 타당성의 근거를 잃게 된다.
둘째, 납세거부는 국민의 소극적인 저항권이다. 실정법상 명문화된 권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당연히 국민에게 유보되어 있는 권리이다.

2. 과잉 무기 도입에 쐐기를 박기 위한 ‘양심적 군사비 납세거부’의 논의를 위하여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는, ‘양심의 자유’라는 국민의 권리와 ‘납세’라는 국민의 의무가 길항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이 길항관계는, 실정법을 집행하는 국가권력의 성격에 따라 양심의 자유에 무게를 더 두는 쪽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납세 ・국방의 의무를 강조하는 완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독일 ・일본과 같이 국가권력이 시민의 양심의 자유나 시민사회의 권리 주장을 경청하는 곳에서는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이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반공 ・냉전 수구적인 법 이데올로기’가 많이 남아 있는 곳에서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을 전개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F-15K 등 거액의 최첨단 무기 도입을 비판 ・반대하는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이제 한국에서도 ‘양심적 군사비 납세거부운동’을 조심스럽게 거론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2002년 2월 20일 방한한 부시 대통령의 방한 목적이 F-15K 강매에 있음을 심증으로 확인한 국민들은, ‘FX 사업의 백지화 ・유보・연기-F15K 구매 반대’ 운동을 전개한 시민사회운동 단체 ・인터넷 운동 그룹에 동조하면서 ‘FX 연기-F15K 도입반대’ 전선(국민과 시민사회운동 세력 사이의 ‘심리적’인 네트워크)이 형성되었다.

이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은, F-15K 도입과 관련하여 ‘민족적 양심’을 지닌 양심적 시민들이다.
이들은 북한의 종심공격을 노린 F-15K 도입으로 남북한의 군비확장이 더욱 심화되어 평화통일이 지체될 것을 우려하는 ‘민족적 양심’에 따라 ‘FX 연기-F15K 도입’을 비판 ・반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민족적 양심에 따라 ‘F-15K 구매 비용으로 들어가는 국방세’의 납세를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한다면, 이는 지극히 한국적이며 평화통일 지향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 운동은 F-15K 계약을 재가한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의 성격을 지닐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홍수같이 이루어질 외국무기 도입(특히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도입)에 대한 시민 불복종 운동의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

3. 한국형 ‘양심적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의 모델을 찾아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은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열린사회’에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고난도의 운동’이다. 더구나 한국처럼 ‘반공 중심의 안보의식’으로 무장한 채 납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는 곳에서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운동은 ‘고난의 행군(?)’을 강요한다.

그러나 F-15K 등 외국무기의 과잉도입을 반대하는 국민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현실은,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을 요청하고 있다. F-15K 도입 이후 쇄도할 ‘외국무기 도입(특히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도입) 압력’에 순종할 경우 나라 살림이 거덜 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바, ‘양심적인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은 시대가 요청하는 애국운동이다.

그러면 ‘양심적 군사비 납세거부’ 운동의 선구자인 일본 ・미국등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형 운동의 모델(전형)을 찾아보자.

4. 일본 ・미국의 운동 사례

  1) 일본의 사례

일본에서는 ‘양심적인 군사비 납부 거부’, ‘양심적 군사비 분납(分納) 저항운동’ 등의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① 걸프전 전비 부담 90억 달러에 대한 ‘시민 평화 소송’; 생략
    ② ‘良心的軍事費拒否の会’의 운동 사례; 생략
    ③ 주일미군 주둔 분담금 위헌 소송; 생략
    ④ 방위비 상당분의 소득세 납세거부; 생략

  2) 미국의 사례

‘War Resister League’ 등의 미국 쪽 평화 운동 단체들은 ‘전쟁세(戰爭稅) 납부 거부(War Tax Resistance)’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생략

* 출처=김승국 지음『이라크 전쟁과 반전평화 운동』(파주, 한국출판정보, 2008) 444~454쪽/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2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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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시민 불복종 운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할 수 있겠다: ▲ 간디의 영국에 대한 비협조-시민 불복종 운동과 비폭력 운동의 연관성 ▲ 소로(Thoreau)가 시민 불복종의 차원에서 실행한 납세거부 ▲ (미국의 인종차별, 전쟁 ・핵무기, 여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0~60년대에 전개된) 시민 불복종 운동이, 킹(King) 목사의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의 효과적인 전술로 활용된 점 ▲ 한국의 낙선운동

(주2) 윤성호 「양심의 자유와 납세거부」, {부산경상전문대 논문집} 12(1992.1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