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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평화기행

통일의 땅 길 열다 (9)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다녀와서

 
김승국
 


2003년 10월 8일 ②- 묘향산의 국제친선 전람관에서

 

말로만 듣던 묘향산 국제친선 전람관 앞마당에 서 있다. 필자는 평소에 전람관이라고 해보았자 세종문화 회관 정도이겠지 생각해왔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국제친선 전람관 앞에서 그런 생각이 착각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전람관의 규모가 웅장하고 전시 작품의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뿐 아니라 묘향산의 정기를 흠뻑 받는 명당자리에 있는 게 특이했다.

전람관 앞마당에서 설명하는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국제친선 전람관은 1978년 8월 26일 건립되었다. 전람관은 북녘 땅에서 채취한 화강암 대리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전람관 전체면적은 7만평인데, 김일성 주석의 선물관은 6층 건물(105개의 방; 5만평)이고 김정일 위원장의 선물관은 2만평이다.

우선 김정일 花가 새겨진 입구의 ‘구리로 만든 문’의 무게가 4.5톤인데 좀 힘을 주면 살포시 열렸다. 내부로 들어가자 짐 보관소에 카메라 등을 맡기고 구두 위에 덧신을 신었다. 전람관 전체에 22만 7천점이 전시되어 있어서 제대로 감상하려면 적어도 열흘은 머물러야할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모두 둘러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김일성 주석이 선물 받은 전시품이 소장되어 있는 곳의 일부와 김정일 위원장이 받은 선물이 진열된 곳만을 겉핥기로 보기로 했다. 한 사람의 안내인이 되도록 많은 것을 빨리 보여주고자 하는 바람에 전시품을 눈요기로만 보았으며, 안내원의 설명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빨갱이(?)’ 매도한 자들이 선물공세 앞장

 

남쪽의 인사들이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한 공간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평소에 친북 세력으로 찍혀 국가보안법의 적용 후보로 되어 있는 진보적인 단체, 통일운동 단체와 개인들은 돈이 없어서 그런지 변변한 선물을 김일성 주석에게 주지 못했다. 고작 민주노총이 증정한 족자 정도가 눈에 띠었다. 그런데 친북세력들을 빨갱이로 매도한 보수 언론들이 앞 다투어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운동 관련 기사를 금으로 도금한 선물을 바쳤다.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남쪽 냉전 수구 세력의 원조인 김종필 씨의 선물이 반짝이고 있었으며, 남쪽 노동자를 착취해온 재벌의 회장들이 경쟁하듯 보물을 김일성 주석에게 바쳤다. 남쪽의 진보세력을 빨갱이로 매도한 이들이 ‘빨갱이의 본당(?)’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 공세를 펼친 것을 보고 ‘괘씸한 비웃음’이 나왔다.

남쪽 인사들의 초호화판 선물에 비하면 미국쪽 지도자들의 선물은 볼품 없었다. 몇 년 전에 방북한 올브라이트의 선물은 농구공이었고 카터의 선물도 보잘것 없었다. 식민지(?) 남한의 종주국인 미국의 정치가들은 실용적이고 가벼운 선물을 한데 비하여, 남쪽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과도한 선물을 한 듯 보였다. 물론 동양과 서양의 선물 문화의 차이도 있겠으나, 선물을 뇌물처럼 여겨 돈을 물 쓰듯 하는 남쪽 인사들의 로비 관행(비자금으로 로비하는 관행)이 친선 관람관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았다.

대륙별로 선물을 진열한 곳에 들어가 보았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내온 선물만 해도 50개 방에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2000년 한해에 김정일 위원장이 받은 선물은 2천점이고, 2002년 2월 16일 ‘탄신일’에 620점을 받았다고 한다. 121개국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작년 말까지 51,000점의 선물을 증정했다고...

 

김일성 주석의 臘像 주변에서 ‘권력의 aura' 현상이...

 

필자가 본 선물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1996년 7월 18일에 중국의 黨과 인민들이 김일성 주석에게 보냈다는 ‘김일성 주석의 臘像’이다. 이 臘像을 보고 김주석이 生還한 줄 알았다. 어쩌면 ‘지금도 살아서 북녘 인민들에게 주체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臘像 조각가의 천재적인 정치의식과 리얼리즘(realism) 예술 감각에 절로 놀랐다.

‘김일성 주석의 臘像’이 배치된 공간처리, 영상 처리, 배경 음악까지 어우러져 ‘권력의 aura'를 잔잔하게 강요하고 있었다. ‘지배의 영성’을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으로 느낄 수 있는 장치가 ‘김일성 주석의 臘像’의 주변에 설치되어 있었다. 국제친선 전람관의 발상 자체가 그러하지만, ‘김일성 주석의 臘像’ 주변에서도 북측의 ‘권력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인자한 동네 아저씨 같은 ‘김일성 주석의 臘像’이 피지배자의 동의를 구하는 메시지를 은은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곳 전람관 안에서도 김일성 주석의 유훈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런 유훈통치가 관철되는 듯 ‘김일성 주석의 臘像’ 앞에선 북측 주민들이 경배하고 있었다. 경배하는 북측 주민들의 표정을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았지만, 김일성 주석에 대한 은근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것 같았다. 존경심의 강요를 받아 경배하는 것 같지 않았다.

‘김일성 주석의 臘像’을 둘러보고 나오자 북측 안내원들은 자랑스럽게 선물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안내원의 자긍심은,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 앞으로 들어온 선물을 하나도 개인용으로 致富하지 않고 公的인 용도를 위해 모두 내놓은 滅私奉公 정신’에 대한 찬양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다.

 

‘선물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까닭

 

필자는 이를 ‘선물 사회주의’로 재해석하고자한다. 필자가 묘향산 국제친선 전람관을 ‘선물 사회주의’의 현장이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선물 중에는 ‘북한’이라는 국가 앞으로 보낸 것이 있을 것이며, 상당수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개인에게 증정한다고 명백히 밝힌 것도 있을 것이다. 국가 앞으로 들어온 선물은 응당 국고로 들어가야 하나, 개인 앞으로 들어온 선물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개인 앞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자기 집에 가져다 보관해도 된다. 사유화해도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물의 사유화를 적극적으로 피하고 선물의 공유화를 ‘국제친선 전람관’이라는 형식으로 취하지 않았나? 개인 소유해도 무방한 ‘값을 계산할 수 없는 무수한 선물’들을 모두 공유화하지 않았나? 그래서 ‘선물의 사유화’ 대신 ‘선물의 公共化-선물의 사회주의화’를 선택한 지도자의 ‘무욕(無慾)’이 돋보였다.
수령의 ‘무욕’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되었을까? ‘심장에 남을 만한 사람’의 발자취가 ‘선물 사회주의의 현장’인 이곳의 전시물에서 물씬 풍겼다.

② 갑자기 ‘선물 사회주의’란 말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남쪽의 사례를 든다. 남쪽의 경우, 동장만 해도 公的인 선물도 슬쩍 자기 호주머니에 넣는 습성이 여전하다. 동장 앞으로 들어온 선물을 공개적으로 보관하는 동사무소가 있을까? 행정조직의 말단이 이럴진데 고위 공무원은 오죽하랴...생각컨대 남쪽의 대외관계가 북쪽보다 광범위하고 자본거래가 왕성하기 때문에 청와대, 외무부 앞으로 수많은 선물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남쪽의 역대 정권을 통틀어 그런 선물을 모두 정리한 대장이 청와대나 외무부에 비치되어 지금이라도 내역을 공개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선물을 사유화하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 청와대나 외무부에서 보관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만약 정부 차원의 公的 선물 보존소가 없다면, 묘향산의 친선 전람관의 작품 못지않게 들어왔을 보물들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했단 말인가? 단 한사람의 양심적인 관료․정치인․장관․대통령이라도 있었더라면, 자신이 받은 公的인 선물을 퇴임시에 공개하고 국가에 헌납했어야하지 않을까?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공무원이 퇴직 때 선물을 公共化했다는 뜬소문조차 들어 보지 못한 남녘땅의 ‘선물 사유화’와 북녘 땅의 ‘선물 사회주의’는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③ '見物生心’은 어쩌면 人之常情이다. 특히 세계에서 보기 드문 선물을 받은 북녘의 지도자에게도 '見物生心의 人之常情’이 있을 법한데, 이를 억누르고 선물을 公共化-사회주의화한 것을 단지 개인의 품성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의 정치화를 위해, 북녘의 지도자가 사유화의 욕심을 억누른 채 公共化했을지 모른다. ‘무욕’의 솔선수범을 통한 ‘북한 사회주의의 발전’을 위해 殺身成仁하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럼 좀 각도를 달리해서 보자. 북녘 땅의 사회주의 발전-사유화 철폐-모든 財物의 공유화 과정에서 북쪽 인민들이 공감한 ‘소유의 사회주의화’ 철칙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게 거꾸로 도덕적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을 법하다. ‘소유의 사회주의화’ 원칙이 수령의 ‘무욕’을 강제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④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게 권력욕은 있었을 성 싶은데, ‘物慾’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는 묘향산의 국제친선 전람관에 가서 보면 대뜸 알 수 있다. 이렇게 때뜸 아는 ‘직관적인 접근’으로 전람관의 선물들을 보니 새롭게 開眼이 되는 듯했다.
수많은 비자금을 분산시켜놓고 재산 신고할 때 통장에 30만원밖에 입금되어 있지 않다고 ‘오리발(?)’을 내민 전직 대통령이 버젓이 활보하며 골프장을 드나드는 남쪽 땅의 도덕지수를 생각해보면, 국제친선 전람관의 ‘선물 사회주의’를 실감할 것이다. 지방자치체의 말단이 시의회 의원들부터 시작하여 권력욕과 물욕을 마음껏 채우는 연습을 하는 남쪽 땅에서 ‘선물의 공공화’란 그림의 떡이다.

‘선물 사회주의’의 전당인 국제친선 전람관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는데 북측 안내원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친선 전람관을 찾은 외국인들이 ‘그동안 북조선에 대하여 모르고 살았는데 이 전람관을 보고 알았다. 앞으로 북조선을 알고 지내자. 북조선을 알고 말하자’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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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舊 {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 112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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