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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이론)-평화학/지역 연구(한반도, 일본 등)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 Johan Galtung 외 편저 {ガルトゥング平和學入門}(京都, 法律文化社,2003) 153~167쪽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김승국 정리

1. 동아시아 분단선의 기본적 구도

동아시아의 분단구도는 다음과 같다. ① 북한이, 미국의 패권확대로 말미암은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벼랑 끝 외교를 거듭하고 있다. ② 한-미-일 동맹의 서방확대와 NATO의 동방확대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중국 ・러시아가 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의 패권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대강 이러한 구도 위에서 동아시아의 분단선이 그어져 있다.

동아시아 분단선의 핵심은, 압도적인 힘(power)을 배경으로 하는 미국의 대외전략에 의해, 이 지역의 질서가 끊임없이 동요해 왔다는 점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미국과의) 2국 간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상대방과의 관계를 ‘적이냐 아군이냐’로 규정하는 의미에서 ‘2분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전략의 인식론적 배경-문화적 폭력-으로서 ‘서양 문명(근대=보편)’ 對 ‘비(非)서양 문명(前近代=특수)’이라는 2분법의 존재를 지적할 수 있다.

2. 분단선을 에워싼 세 가지 시나리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분단선을 강화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국이 북한에 대한 ‘외과수술적(外科手術的)인 공격’을 하면 북한이 반격할 것이고 그러면 서울이 불바다가 됨과 동시에 제2차 한국전쟁으로 발전할 것이다. 또 북한이 보유한 중거리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있는 일본이 전쟁에 말려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관계가 극도로 긴장된다. 북한의 양보를 위협적으로 얻어내기 위해 경제제재 ・해상봉쇄를 통해 틀어막을 경우 1994년과 같이 동아시아 전체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진다. 동아시아의 분단선이 현상 유지될 경우 러시아 ・중국의 접근이 더욱 강화되어 제2차 냉전구도가 명확해질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각국이 다국 간의 외교노력을 통한 긴장 완화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이 주효할 경우 ‘전쟁이라는 비극’을 예방하는 틀을 구축할 수 있겠다. 각국의 노력에 더하여 ‘ASEAN+3(한국 ・일본 ・중국)’ 정상회담에서처럼 다국 간 협력관계를 확대하면 동아시아의 질서유지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평화적인 분쟁전환의 실현 여부는, 미-일 동맹을 주도하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의 귀추에 달려 있다. 북한은 자국에 대한 결정적인 위협을, 미국의 군사패권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북한을 국제사회에 끌어들이는 노력은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를 에워싼 분쟁 당사자의 합의 아래,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후퇴시키는 노력이 불가결해진다. 이를 위해 안전보장 ・경제의 양면에서, 동아시아를 각국 간의 평등원칙에 기반을 둔 하나의 자율적 질서체(秩序體)로 발전시키는 대안을 창조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3. 동아시아의 평화구축과 화해의 연쇄

여기에서 ‘동아시아 공동체(EAC)’의 구상을 제기하고자 한다.(주1) 동아시아 공동체는, 한반도 ・중국 ・일본 ・베트남으로 구성된다.(주2) 이러한 EAC의 핵심(core) 국가들 주변에 러시아 ・미국 ・ASEAN ・EU가 배치되는 구도가 바람직하다.

이 구상은 2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사고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분쟁을 제거하고 합의 ・협력에 의해 미래지향적인 공동체적인 관계를 조성하는 데 주안점으로 두고 다음과 같은 점을 중시한다. 첫째, 분쟁이 생겼을 경우 분쟁을 2국 간의 관계로 파악하지 않고 지역 전체 ・당사자 전체의 문제로 파악한다. 둘째, 분쟁을 제거하기 위해 한 당사자의 원리 ・규범을 다른 쪽에 내리누르지 않고 각 당사자의 서로 다른 목표를 명확히 하는 바탕 위에서 지속 가능하거나 당사자들이 수용 가능한 해결방법을 탐구한다. 셋째, 이를 위해 대화의 장(場)을 설치하고 분쟁을 비폭력적으로 전환하며 당사자가 협력하여 몰두할 수 있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넷째, 이런 과정(process) 가운데 상호의 화해를 겨냥한다. 이러한 지역 공동체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참가국 간의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가 기초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요한 문제는, 안전보장과 경제이다. 안전보장의 최대의 현안은 한반도의 남북한 관계이다. 남북한 관계를 말할 때 국가[북한]를 붕괴시키는 극단적인 해결이 아니라, 제도상의 공감 ・행동상의 비폭력을 관통하여 미래지향적이고 구체적 ・창조적인 협력방도를 찾는 게 요청된다.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사회 ・경제적 협력에 초점이 놓이게 되었다. 남북 정상회담에 힘입어 한반도 횡단철도 구상이 드디어 실현단계로 들어갔다. 앞으로 아시아 공동체 각국을 잇는 철도망으로 확대하는 것을 생각해 봄 직하다.

남북한의 당면한 관계와 함께 북 ・일 관계의 개선도 모색되어야 한다. 이러한 다국 간 협의의 장(場)을, 동아시아 전체의 안전보장을 위한 기구로 전개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은 동아시아 공동체이다. 이 기구에서 대화 ・합의에 의한 신뢰양성의 촉진 ・예방외교의 진전을 도모하는 게 주요한 과제이다.(주3)

이와 같은 노력과 함께 동아시아의 비핵 지대화를 구체적인 목표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案으로 생각되는 것은 ‘3+3’案이다. 이는 남북한에 의한 ‘비핵화 공동선언’(1992), 일본의 ‘비핵 3원칙’(1967년)과 ‘원자력 기본법’(1955년)을 기초로 남북한과 일본이 비핵 지대를 구성하고, 핵보유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핵공격 ・핵공격의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형태로 해주는 꼴’로 참여하는 것이다. 비핵 지대화 노력은, 동아시아에서 ‘군사에 의하지 않는 안전보장’의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상의 안전보장의 과제와 더불어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으로서 경제협력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와 안전보장은 별개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군사가 긴장되면 경제도 연동되고 빈부의 격차가 지역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안전보장과 경제를 통합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아시아 공동체에서는, 안전보장 틀 자체가 경제협력의 틀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역시 각국 간의 평등원칙이다. 그리고 경쟁보다 협력이 더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EAC는 생산 공동체이며, 무역 ・각국 간의 경제협력을 위해 새로운 이념이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대신할 지역별 자연 에너지 개발을 향해 각국이 협력하는 것도 거론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분단선을 타고 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폭력의 연쇄를 ‘화해의 연쇄’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군사패권을 배경으로 하는 세계화가 아니라, 화해의 세계화를 진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동아시아 지역은 참으로 다원적인 공동체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에서 주체를 국가로 한정하지 않고 시민의 역할을 중시하는 체제가 요망된다. 유럽에서 최종적으로 냉전을 종식시킨 것은, 시민사회의 힘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시민사회의 형성이 유럽과 다르지만, 경제협력 ・분쟁해결을 위한 유력한 행위자로서 NGO ・민간기구 등이 중시(重視)되어 왔다.(2004.11.16)

* 김승국 지음『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285~290쪽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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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주1) 동남아시아 국가와 한 ・중 ・일 등 동북아시아 국가의 연례 협의체인 ‘아세안+3’을 대신할 ‘동아시아 공동체(EAC)’가 추진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고 {Financial Times}(2004.8.5)가 보도했다. 1990년대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마하티르 모하마드가 처음 주창한 동아시아 공동체 설립 문제는 지난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3 각료회의에서 논의됐으며, 11월 라오스에서 다시 의제에 오를 예정이라고 이 신문이 전했다. 첫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내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릴 예정이며, 두 번째 회의는 2007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신문은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실현되면 기존의 21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의 역할이 줄어들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한겨레 신문} (2004.8.6).

(주2) 갈퉁(Galtung)이 예전부터 이 지역의 평화구상으로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제안했다. 갈퉁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유교 ・대승불교 ・중국 문화를 공유한) 중국 ・한반도 ・일본 ・베트남을 열거한다. 베트남-미국 사이에서 베트남 전쟁의 화해에 관한 대화가 시작된바, 그것을 동아시아 전체의 화해 구도에 연결시키는 차원에서 베트남을 동아시아 공동체에 포함시켰다.

(주3) 안전보장에 관한 대화 ・협력체로 착실하게 발전하고 있는 ARF(ASEAN 지역 포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