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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자본에 의한 폭력

내가 본 히로세 다카시

김승국


* 아래의 본문은, 히로세 다카시(広瀨隆) 지음, 이규원 옮김『제1권력(원제; 億万長者はハリウッドを殺す)』(서울, 프로메테우스 출판사, 2010)의 머리말로 필자가 쓴 글의 원본이다.



* 위의 책『제1권력』의 저자인 히로세 다카시(広瀨隆)는 1943년 일본 도쿄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와세다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중, 우연찮게 의학ㆍ기술서적 전문 번역가로 명성을 쌓으면서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각종 사내 기밀 문서들도 아울러 번역하면서 언론에 보도되는 그들의 모습과 실제의 행태 간에 심각한 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후 30여년 간에 이르는 필생의 작업 과제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하나는 이미 범지구적으로 사슬처럼 엮여진 거대자본의 동향을 추적ㆍ조사하며 그 실태를 지속적으로 고발하는 저술활동과, 또 하나는 그들의 투기 수단일지도 모를 핵무기ㆍ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며 그 대안을 함께 모색하고 설계해 나가는 활동이다. 이런 작업을 거쳐 1980년대 초반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그의 저서들은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일본의 재벌과 극우파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그는 자신이 발언한 내용만큼이나 그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실천하는, 일생을 반핵평화 운동에 투신한 활동가인 동시에 다방면에 걸친 취재조사를 통해 심도 있는 분석을 펼치기로 정평이 난 일본의 저널리스트 겸 픽션작가이다.<히로세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제1권력』의 표지에 실린 글을 약간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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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로세 다카시와의 만남


그리 크지 않은 몸매. 가냘픈 손. 약간 ‘창백한 지식인’처럼 보이는 풍채. 청바지를 입고 모임에 나타나는 활동가풍의 면모. 워낙 밥을 적게 먹어 약골처럼 보이는 인상.


히로세 다카시를 생각할 때 맨 처음 떠오르는 잔상(殘像)이다. 소식(小食)을 즐기는 일본 사람들 중에서도 덜 먹는 편인 그의 두뇌 용량은 광대하다. 나는 그보다 두 배 이상의 밥을 먹는데 두뇌의 지적 생산성은 형편없이 뒤떨어진다. 이게 히로세 다카시를 부러워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평화 활동가인 나는 반핵운동의 현장에서 히로세 다카시를 여러 번 만났다. 1990년대 초중반에 일본에서 열린 [No Nukes Asia Forum]이라는 반핵(원자력 발전소 반대를 포함한 반핵) 국제연대 모임에서 그를 몇 차례 만났다. 내가 일본에 체류했던 1996~1999년에 [담뽀뽀(민들레)]라는 반핵ㆍ평화ㆍ생태(환경)운동 단체의 사무실에서 열린 학습 모임에서는 그와 가까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No Nukes Asia Forum]에서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미쓰비시 재벌(초국적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자면서, 미쓰비시 계열의 회사가 만든 연필을 청중들에게 내보이던 장면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연필심의 재료와 반핵ㆍ생태운동의 연결지점을 지적하며 “이렇게 악독한 짓을 하는 미쓰비시 회사의 물건을 사면 안 된다!”는 이야기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식 군(軍)ㆍ산(産) 복합체의 핵심기업인 미쓰비시를 규탄하는 강연이었던 것 같다.


히로세 다카시를 반핵평화 운동의 마당에서 만난 탓인지, 나는 그를 반핵평화 운동가로만 보았다. [No Nukes Asia Forum] 대회장 등에서 “히로세 다카시는 일본에서 유명한 글쟁이이며, 그의 저서가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인물평을 듣고도 ‘유명한 글쟁이’와 사귀게 되어 기분 좋은 일이다’는 생각에 그쳤다.


그런데 단견은 사라지고 점차 ‘유명한 글쟁이와 사귀게 되어 영광스러운 일이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그가 운동의 현장에서 나에게 건네준 ‘반핵운동 관련 책자’를 읽으며 그와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고 단견을 버리게 된다.


‘그가 작성한 반핵운동 관련 책자’중 첫 번째 받은 것은, 원자력 발전소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무언가 그림과 도표를 넣어 열심히 선전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책자속의 그림과 도표를 읽어보니 놀랄만한 사실들의 연속이었으며, 내가 생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원자력 발전 산업계의 지배구도이었다. 전 세계 원자력 산업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자를 읽으며 그의 저서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히로세 다카시와 가장 가까운 한국인인 김원식 선생님이 읽어보라고 권유하는 그의 저작들을 정독하면서 ‘활동가인 히로세가 아닌 유명한 작가와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새로운 만남의 초반에는 원자력 발전에 관한 그의 저작이 매개체이었는데 점점 그의 저작에 대한 독서의 범위가 넓어져 ‘군ㆍ산 복합체’의 내막을 폭로하는 글에 매료되었다. 평화활동가의 관심사항인 군수 산업계의 움직임을 인맥 중심으로 설명하는 그의 구상력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나도 히로세 다카시와 같은 방식으로 한-미-일 동맹체계를 설명하려고 했으나, 그의 흉내만 낼 뿐이었다. 그를 따라가려고 흉내 낼수록 그의 발상력이 뛰어남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게 그를 부러워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부러워할 뿐 아니라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의 ‘생각의 힘’이 위대하여 나를 압도하므로 그를 존경할 수밖에...


히로세 다카시의 ‘위대한 발상력’


그의 발상력(생각의 힘)이 위대한 점을 기술한다. 히로세 다카시는 논문을 쓰는 학자, 기사를 쓰는 기자, 논평을 쓰는 논설위원, 방송사 해설위원, 방송사 작가, 르포 작가, 자유 기고가, 운동의 이론가가 아니면서, 이들의 능력을 모두 지닌 ‘이 시대의 보기 드문 글쟁이’이다. 그래서 위대하다. 특히 한국에는 그에 필적한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욱 위대하다.


‘이 시대의 보기 드문 글쟁이’가 되려면, 글 쓰는 솜씨가 뛰어나야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취재력이 뛰어나야하며 무엇보다 생각의 힘이 탁월해야한다. 그런데 히로세 다카시는 뛰어난 발상력의 바탕 위에서 치밀한 취재력ㆍ글 솜씨를 겸비한 글쟁이이다.


그의 발상력은 자본주의 세계의 암호를 해독하는 데에서 발휘된다.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족보를 폭로하고, 지배계급의 인맥도를 중심으로 지배구도를 그려내는 발상력은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르크스의『자본론』에도 안 나오는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신성가족 도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능력은 마르크스 보다 우수하다. 그렇다고 소설 쓰듯, 만화를 그리듯, 음모론적으로 지배계급의 인맥도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게 비결이다. 이 비결이, 논문식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핀잔하는 학자들의 태도를 누그러지게 한다. 그의 글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하며 저평가하려는 이들의 발설을 자제하게 한다.


그의 글이 논문식이 아니어서 불만인 학자들은, 한국의 IMF 위기를 예고하거나 미국 금융경제의 붕괴징조(서브 프라임 사태)를 감지하지 못한 무능력을 먼저 밝혀야할 것이다. 사회과학의 몇 가지 가정 아래에서 국가-시장-시민사회의 3각 관계를 해명하는 상아탑의 연구실에서 밝힐 수 없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밝혀야 유능한 학자가 아닐까?


자본주의는 질긴 고무줄 같아 탄력성ㆍ유연성이 강한 생명체이다. 이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다보스 포럼이 열린다. 그러면 다보스 포럼의 기획자들을 원격 조정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고, 더 높은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총체적으로 은밀하게 관리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더 높은 차원에서 관리할수록 우리 눈으로부터 멀리 벗어난다.


이들 세력의 움직임을 실증적으로 사진 찍듯이, 기사 쓰는 방식으로 풀이할 수 없으므로, 히로세 다카시의 지배계급 인맥도가 투시경 역할을 한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세계만 놓고 논문식으로 글 쓰는 것은 빙산의 일각을 보고 세계를 보았노라고 떠드는 행위에 불과하다. 도대체 스위스 은행은 누가 어느 세력이 원격조정하고 있으며, 인터넷 세계의 최종 확장자 표기인 [닷컴(.com)]는 누가 최종적으로 관리하는가? 세계화를 주도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9ㆍ11 테러와 이들 세력과의 관련은 없을까?


이러한 끊임없는 물음에 대하여 일부 작가들은 음모론적으로(?) 풀어내는 책을 펴낸다. 소위 그림자 정부가 지구촌(현상적인 정부들로 이루어진 지구촌)을 은밀하게 통제한다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이러한 책들은 프리메이슨(Free Mason)과 같은 절대 권력자들의 세계지배 음모를 폭로하지만, 히로세 다카시처럼 세계지배의 메커니즘을 인맥도를 통해 드러내지 못한다.


양자가 동일하게 프리메이슨의 후예인 유대인 자본가, 로스차일드 가문, 록펠러 재단을 다루지만, 암호를 풀이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림자 정부론자들’이 세계 역사(특히 자본주의 역사)의 이면(裏面)을 들춰내는 고투(苦鬪)는 찬사를 받을만하지만 원격조정 세력을 신비화하는 것은 무리이다. 히로세 다카시는 무리수를 두면서 프리메이슨의 본질을 밝히기보다, 프리메이슨의 후예 중 현실적으로 자본주의를 원격조정하는 실체를 파헤친다. 이게 히로세 다카시의 매력이자 능력이다. 내가 세 번째로 부러워하는 것은 이러한 능력이다.


그림자 정부론자, 학자, 기자, 논설위원, 방송 작가, 르포 작가, 자유 기고가, 운동의 이론가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구중궁궐(九重宮闕)을 마음대로 들락거리며 심층 취재한 보고서를 흥미진진하게 인맥도로 그려내는 그의 능력을 늘 부러워하며, 히로세 다카시의 화제작『億万長者はハリウッドを殺す』의 우리말 번역본의 출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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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평화 활동가이다.